# 30화
# 30화
이스터 에그, 또는 히든 피스.
종종 게임에서 개발자가 유저들 모르게 숨겨놓은 것을 뜻한다.
마치 어릴 적,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군가 발견해주었으면 하지만, 아무나 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그런 애매한 관심으로 출발한 게 바로 히든 피스란 녀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림자 지하 성채 1층은 꽤나 매력적인 장소였다.
모두가 거쳐 가지만, 그저 그 뿐.
숨겨놓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
자신이 이렇게 대담한 성격을 지녔다.
이런 과시욕을 뽐내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뭐, 못 찾았었지만.’
정호는 1층의 통로를 손을 짚으면서도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히든 피스는 정호가 찾은 것이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다른 유저가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그림자 지하 성채 1층에 숨겨진 장소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처음으로 밝혀진 게 유저들이 잔뜩 빠진 이후의 ‘업데이트 공지’에 의해서였으니.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히든 피스가 밝혀졌을 때.
정호는 이 장소를 숨겨둔 녀석의 멍청함에 감탄했다.
지하 1층에서 숨겨진, 히든 피스로 향하는 방법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지하 2층으로 향하지 않을 것.’
첫 조건부터 숨이 턱 막힌다.
파밍 던전이라고 정평이 난 그림자 지하 성채.
그곳에서 누가 젖과 꿀이 흐르는 2층으로 가지 않고 1층에서 잔류하겠는가.
‘네 구역의 탐사를 마친 자.’
거기에 한층 더 한다.
그림자 지하 성채는 동, 서, 남, 북 네 방향으로 뻗어 있는 형태다.
그 네 개의 구역에는 각각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존재한다.
제아무리 히든 피스를 찾으려고 안달이 난 유저라 할지라도.
모든 구역을 탐사하는 동안 2층으로 향하지 않는 경우는 없으리라.
‘여기까지만 해도 문제지만...’
사실상 개발자가 밝혔다 한들, 첫 조건인 ‘2층에 발을 딛지 않은 자’라는 부분에서 대다수가 탈락한다.
그런 유저가 톨비아에 남아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됐다.”
벽 틈에 난 홈이 손가락에 걸리자,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서 손을 떼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다.
빙 돌아, 다시 제자리였다.
“이곳은... 처음 있었던 장소가 아닙니까?”
“허억, 허억.”
서서와 키드는 꽤나 지친 눈치였다.
1층의 모든 구역.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진데, 그 동안 일어난 전투만 하더라도 수백을 아득하게 넘기는 형태였다.
“이제 갈 거야.”
“이대로...말입니까?”
“허억, 허억. 간다고요? 지금?”
확실히 이대로 다음 층으로 향한다면, 그만한 강행군이 따로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화신들을 이끌고 2층으로 향한다면, 전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아니, 괜찮아.”
하지만 정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적 방향이 2층이라면 자살 행위였지만.
홱.
정호의 발걸음은 2층 계단에서 반대로 향했다.
“우린 되돌아갈 거니까.”
이미 구울이란 구울은 씨를 말려 버린 방향.
전투와는 관계없는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장소에 도달 했을 때.
“...정말 여기 맞아요?”
키드는 주인인 정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도 그럴 게.
정호 일행이 도달한 장소는 방독면을 착용했던 장소인 ‘처음’이었으니까.
‘어이가 없다니까.’
타박.
발걸음을 떼면서도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모든 탐사를 마친 후, 다시 입구로 되돌아가야 한다니 말이야.’
그러니까.
넷 정도의 인원이 합심해서 코인을 얻기 위해 오는 던전에다가.
1층의 모든 구역을 탐사해야 하며.
아직 파밍 시작은 하지도 않은 채, 입구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니 찾을 리가 있나.”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정호는 분명 출발 직전에는 없었던, 벽에 난 홈을 발견하고는 곧장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찌이이이익.
“이, 이게...”
그러자 벽이 찢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단한 벽으로 되어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천막이 찢어지듯 새까만 내부를 토해냈다.
“따라와.”
정호는 짤막한 한 마디와 함께 몸을 내던졌다.
* * *
타박, 타박, 타박.
정호가 벽을 뚫고서, 맞이한 것은 길게 이어진 통로였다.
그것도 값비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시원하게 뚫린 일직선의 길.
“뭐, 어울리진 않네.”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는 어찌 되었던 간에, 언데드들이 살고 있는 장소다.
현대의 하수구와 다를 바가 없는 형태이지만, 그 안에 이루어진 것은 중세의 건축물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 숨겨진 길은 중세라기보다는 현대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실험실처럼.’
분명 이곳에서 생활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것도 언데드가 아니라 살아 있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춘 녀석이 말이다.
우뚝.
한참을 걸어가던 정호는 새하얀 대리석이 빨갛게 바뀌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멈추어 섰다.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 모양이로군요.”
서서가 충고하듯 말했다.
‘레이저선.’
그도 그럴 것이.
레이저처럼 보이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선들이 길게 늘어져 빽빽하게 길을 막아서고 있었던 탓이다.
더군다나.
‘버튼식 스위치라...’
아무것도 없이 쭉 뚫려 있던 벽에는 묘한 버튼이 세 개가 붙어 있었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저 레이저는 함정이고, 그것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저 버튼 세 개를 어떤 방식으로 눌러 헤쳐 나가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다.
‘해당사항은 없지.’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당당히 앞으로 향했다.
“엇. 주군 위험...!”
서서가 붙잡으려고 달려왔으나.
“..합니..”
그 행동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다.
스르륵.
정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저선을 통과했던 탓이다.
“얼른 와. 문제없으니까.”
등 뒤로 손을 뒤 흔드는 여유까지 느껴지는 모습에 서서와 키드도 뒤따라 붙었다.
‘정확해.’
물론 정호가 이곳에 온 기억 따위는 없었다.
애당초 이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림자 지하 성채의 2층을 가지 않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적어도 이 같은 히든 피스가 밝혀질 무렵, 게임에서의 정호는 갈 수 없던 장소였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업데이트 공지로 보았지 않은가.
‘내용도 맞았고.’
적어도 숨겨진 장소로 들어왔을 무렵부터.
정호는 자신의 기억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도.’
곧이어 튀어나오는 것은 바닥이 훤하게 뚫리고, 그 아래에 창이 솟아 있는 함정.
정호는 가뿐하게 점프로 넘어갔다.
본래라면 함정 속에 숨겨진 함정이 정호를 덮쳐야 했으나, 그것조차 없었다.
후웅, 후웅.
좌우로 흔들리는 도끼날이 도사리는 함정.
베인다면 몸이 세로로 쪼개어 질 것 같은 예리함이 있었다.
바닥에는 ‘쉬이 지나가는 자에겐 죽음을’이라는, 섬뜩함이 느껴지는 글자마저 적혀 있었다.
“닿지도 않는데 뭘.”
정호는 그 도끼날이 한참 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앞서 걸었다.
키까지는 닿지도 않았고, ‘쉽게 지나가면 죽는다’라는 오묘한 글자 따위는 아무런 효능을 내지 못했다.
뚜벅.
결과론적으로.
함정은 많았으나 정호가 길을 따라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기관진법(機關陣法)인 듯싶으나, 모두 눈속임에 불과하군요.”
서서의 말마따나.
자질구레한 함정은 많았으나, 죄다 실속이 없었다.
“그게 목적이니까.”
한 마디로 시간 끌기다.
별 것 없는 함정이라 할지라도, 길을 따라 전진하는 속도 정도는 늦출 수 있다.
너무도 뻔한 함정들.
일부러 풀어달라는 듯, 해제의 도구가 놓여 져 있고.
무언가 암시하는 듯한 글자를 남겨둔다.
실상은 아무것도 없이, 보이는 게 전부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한 시간 내로 빠르게 돌파한다.’
히든 피스에 도달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이다.
“그래서...”
정호는 마지막 문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거대한 문.
10m는 가뿐히 넘는 문의 압도적인 높이는 절로 입이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정말 이 정도의 크기라면, 최상위 몬스터가 해도 믿겠어.’
문의 크기로 미루어 본다면.
이 방의 주인이 얼마나 거대할 지는 눈에 훤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정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어 재꼈다.
끼이이이익-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는지, 듣기 싫은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숨기고 있던 속내를 드러냈다.
-내 보금자리에 발을 들인 불청객들은 너희들이냐?
거대한 그림자.
그와 함께 울려 퍼지는 굉음과도 같은 목소리.
그 모든 것들은 정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음...”
마침내 그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정호는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는지 다시금 재검토를 해야만 했다.
* * *
히든 피스란 말 그대로 숨겨진 조각이다.
히든 피스라 하여, 마냥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의 강대한 무구를 주는 경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숨겨진 장소만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히든 피스를 찾아 헤매는 유저들을 엿 먹이는 몬스터를 풀어놓기도 한다.
-어째서 나의 보금자리에 왔는가?
이 경우에는 누가 봐도 후자로 보였다.
‘이것 참...믿을 수가 없군.’
정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은 족히 5m는 넘는 거대한 신장을 가졌으며, 근육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라 올라 있었다.
그뿐이랴.
머리에서 길게 뻗어져 갈지(之) 자로 튀어 나온 두 개의 거대한 뿔과 새까만 피부는 그가 악마의 한 종류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형태를 지니고 있는 녀석은 물론 한정적이다.
“...디아볼로스(diavolos).”
-파하하하하! 나를 알아보는 녀석이 있구나.
정호가 정체를 정확하게 맞추었던 탓일까.
녀석은 흡족한 듯,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디아볼로스.
최상위 악마 중 한 종류로 그 성격이 굉장히 호전적이고, 지랄 맞아 강자를 만나면 반드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악마다.
그리고 결단코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녀석이기도 했다.
‘보스급.’
그림자 지하 성채와 같은 초심자 던전의 보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톨비아에서 ‘비어버린 악마왕의 처소’와 같은, 상위 던전의 보스로 군림하는 것이 디아볼로스였다.
정호의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상급 악마인 디아볼로스, 네가 이곳에 있는 거지?”
정호는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는 녀석에게 물었다.
적어도 정호의 기억에, 이 히든 피스에 디아볼로스가 있다는 것은 해당사항이 없었으니까.
-이곳은 가끔 잠을 청하러 오는 곳이다. 건드는 악마들이 없어서 편하거든.
“...그래?”
그 간단한 대답.
한데, 정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아아, 그렇지. 싸움은 좋아하지만, 귀찮게 구는 것은 질색이라서 말이다.
디아볼로스는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내뱉으며, 정호를 향해서 눈을 부라렸다.
온통 새빨간 눈동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빨려들 것만 같았다.
-나는 잠에 들기 직전이다. 썩 기분은 좋지 않다만 이번만은 눈 감아 주도록 하지. 얼른 돌아가라.
의외의 자비.
“후우...! 고맙다.”
정호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디아볼로스와 같은 적을 상대로 전투가 일어난다면, 파티의 전멸이 확실시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얼른 돌아가라.
“무슨 소리지?”
하지만 정호가 내민 감사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네가 우리를 보내 줄 리가 없어.”
-으음?
디아볼로스는 최상위 악마.
그 성격이 지랄 맞아, 굉장히 호전적인 녀석이다.
심지어 잠을 방해한 상대를 쉬이 내버려둘만한 위인이 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마지막 기회다!
“확실하네.”
정호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처음에야 당황해서 긴가민가했지만 녀석의 반응에 확신했다.
“내가 아는 거랑 다른 게 튀어나와서 당황은 했지만...”
검을 들어올렸다.
-으음...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달은 디아볼로스의 작은 신음.
“진짜 디아볼로스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지.”
터엉!
발을 내딛어, 가벼운 진각을 밟았다.
동시에.
쉐에에에에엑-.
“안 그래? 미치광이.”
녀석을 향해 정호의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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