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29화
그림자 지하 성채.
줄여서 그성이라고 불리는 던전은 톨비아에서 꽤나 유명한 이름이었다.
무자본 유저들과 초보들은 그성을 반복해서 돌아, 코인과 재료를 수급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장소.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꿈과 희망의 땅이었으나.
‘여긴 다시 오기 싫단 말이지.’
어느 정도 자본을 투자한 유저들은 결단코 들리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윽.”
정호는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코를 틀어막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후각에 있었다.
던전의 이름부터 지하.
거기에 도사리는 대다수의 몬스터는 구울이라 불리는 언데드형이다.
특유의 시체 썩는 퀴퀴한 냄새는 그 자체로 독이다.
거기에 지하 성채라는 이름과 다르게, 형태는 하수구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 보단 낫겠지.”
정호는 지하 성채의 내부를 스윽 훑어보았다.
초입부여서 그런 것일까.
아직 몬스터들의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챙겨온 가방을 뒤적였다.
얼굴 전체를 덮는 마스크.
독가스와 병원균을 막아준다는 정화통을 연결하고는 그대로 뒤집어썼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몇 번이고 정화통에 손을 가져다 대어, 정상인 것을 확인 한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되네.’
준비한 것은 방독면이었다.
본래 게임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으나.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 녀석이었다.
“스으으으읍.”
그렇다고 해서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정호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숨은 좀 막히지만...’
그림자 지하 성채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냄새였으나, 가장 위험한 것은 따로 있었다.
‘구울의 독.’
톨비아의 구울 녀석들은 식사도 하고, 배설도 하는 녀석들이다.
다만 그 배설과 식사를 입으로 한다는 게 문제다.
‘잘못하다가, 녀석들의 입김에 닿을 수도 있으니까.’
구울의 입김은 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입에서 내뿜는 특유의 암모니아를 정면에서 마주하면 시독(屍毒)이라는 상태 이상에 걸린다.
시독은 몸의 반응을 늦추는 단순한 독의 종류였지만.
‘게임이 아니니까.’
이곳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겨우 상태 이상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사전 방지하기 위한 방독면이었다.
“좋아.”
코가 잔류하는 냄새에 익숙해질 때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서, 키드 소환.”
“부르...셨습니까. 주군.”
아니나 다를까.
담담하게, 침착함을 유지해왔던 서서조차도 소환과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자기의 말을 끝까지 해내는 그 모습은 절로 신뢰가 갈 정도였다.
“무슨 일이...윽! 아! 악!”
하지만 그와는 달리, 키드는 곧장 자신의 코를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굴러댔다.
‘그래도 영웅 등급인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분명 소년왕이라 불리는 이명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호는 견디기 힘들다는 듯, 눈을 감고 있는 서서와 바닥이 무너져라 발을 구르는 키드에게 방독면을 집어던졌다.
“정화통을 끼우고 뒤집어쓰기만 하면 돼.”
“고맙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스읍...후. 스읍...후.
꽤나 거친 숨소리가 오가고 나서야, 키드와 서서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호는 지체할 것 없이 곧장 입을 열었다.
“움직인다.”
이번 목적은 당연하게도 그림자 지하 성채의 완전 클리어다.
이것은 필수 전제이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각성을 위한 재료는 보스에게서 떨어지니까.
거기에 클리어 코인을 얻기 위한 ‘조금 빠른 속도’와 ‘조금 많은 수의 적 처치’는 생략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선택 사항이 하나 있었다.
“그성이라면.”
탁.
정호의 발이 지하 성채의 냄새나는 통로를 밟았다.
‘강신.’ 자그마한 목소리로 외치자, 정호의 손에는 묵직한 검이 쥐어졌다.
[유능한 용병의 이해도가 높습니다.]
[동기화율 120%]
“클리어만 하는 걸로는 모자라.”
그러니 확인해야 한다.
타박.
발걸음을 떼는 정호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 * *
구울은 언데드형 몬스터이기도 했으나, 이미 죽어버린 좀비와는 다른 종류의 녀석이다.
녀석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 하는 원혼들의 갈망이 이루어진 존재들이다.
응당 식욕도 존재하고, 그 형식이 꽤나 역겨운 형태였지만 배설도 한다.
‘시각, 후각, 청각 모두 일반인보다 뛰어나다.’
톨비아를 플레이할 때, 정호는 이를 분기점으로 보았다.
이런 류의 게임에는 하나의 구간이 늘 있다.
일정 이상의 벽을 넘지 않으면, 스토리 진행이 불가한 구간.
보통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열 배는 우습도록 노력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벽이 말이다.
하지만 그 벽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게임 회사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루트를 반드시 만들어 둔다.
그 루트란 녀석이 바로.
‘현질 외에는 돌파하기 힘든 구간.’
돈을 조금이라도 지르면 거대해 보였던 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일단 무과금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이 맛을 보여주는 것이 이 벽이 가진 효과라고 할 수 있었다.
톨비아는 이를 ‘적절히’, ‘악랄하게’ 이용했다.
‘파티 던전.’
솔로를 벗어난, 파티 컨텐츠.
당연히 유저들은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
‘어느 정도’의 스펙이 되지 않으면, 이 컨텐츠 자체에 끼워주지 않는다.
난이도에 걸맞은 구성원을 직접 뽑아가는 시기다.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난이도를 대폭 올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 스스로가 그런 구조를 만들게 하는 치밀함이 있었다.
‘포세이돈을 뽑은 구간도 여기였으니까.’
정호에게 있어서는 악몽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플레이했다.
그런 정호의 지갑을 풀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바로 그 잣대들이다.
그 금액은 겨우 만 원 한 장.
하지만 그 ‘한 번’이 중요했다.
한 번 맛 본 꿀의 달콤함은 결코 지울 수 없는 법이니까.
“쯧...”
후회란 실로 뼈가 아픈 법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혀를 차던 정호.
“잠시.”
짧은 말과 함께 주먹을 들어올려, 서서와 키드를 멈춰 세웠다.
캬아아아아. 샤아아아아.”
뒤이어진 것은 구울의 울음소리.
아직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쉬잇.’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댄 정호는 손바닥을 펼쳤다.
‘대기.’
정호의 발이 성큼성큼 움직였다.
오른쪽으로 뚫려진 통로.
그 꺾이는 지점에 목표가 있었다.
정호는 검을 거머쥔 채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움직이는가 싶더니.
통로를 돌자마자, 검과 함께 날아올랐다.
쉐에에에에엑-!
새로운 검, 바스타드 소드를 장비한 정호의 검격은 호쾌하기까지 했다.
“캬아아아...!”
그런 정호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구울이 고개를 홱 돌려 정호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이미 준비동작과 함께 공세를 취하고 있던 정호의 참격을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샤아아악-!
과연 삼 성 등급의 검이라고 할까.
마치 자신의 별을 자랑이라도 하듯, 길고 긴 초승달을 그리며 아름답게 떨어졌다.
“칵!”
구울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녹색 빛의 입김.
주의를 거듭했던 시독이었다.
하지만 머리와 몸이 분리 된 녀석이 더 이상 그것을 뿜어낼 수는 없었다.
데구르르.
“후욱. 와도 돼.”
정호는 구울의 죽음을 확실히 확인한 뒤에야 서서와 키드를 불렀다.
“주군, 저희를 조금 더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요.”
서서와 키드가 불만을 내비쳤으나,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초입이야. 던전은 적이 많아. 아직은 큰 소음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물론 정호의 판단은 정답이었다.
구울은 고블린보다야 상위의 개체로 평가받지만, 실제 능력치는 그렇지 않다.
구울의 무서운 점은 ‘그 압도적인 수’에 있었으니까.
다만, 정호가 굳이 홀로 구울을 상대한 것은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팍!
구울의 대가리를 아무렇게나 차 버리는 정호.
‘아오...!’
겨우 과거에서, 게임에서 비롯된.
‘아, 후련하네.’
작은 화풀이 일 뿐이었다.
* * *
“키에에에에에엑!”
정호 일행의 걸음은 멈추지를 않았다.
그림자 지하 성채가 파티 던전답게 쉬지 않고 몰려드는 구울들 때문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전력 탓이었다.
타앙! 타앙!
파르르르르르-!
“케엑!”
“키엑!”
원거리에서 지원사격을 도와주는 서서와 키드의 공세는 희귀 몬스터인 ‘홉고블린’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그런 공세를 쉬지 않고 쏘아대고 있으니 제아무리 구울들이 많다한들 쉬이 다가올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흐읍...!”
정호의 활약도 그에 뒤처지진 않았다.
강신 시킨 화신이 겨우 이 성급에 불과한 ‘유능한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쉐에에엑-!
“켁!”
쉐에에에에-!
“케엑!”
숨 한 번 고를 시간도 없이 달려드는 구울들을 향해, 공격을 내던지는 정호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감돌 지경이었다.
분명 구울의 수가 압도적이었으나, 밀고 나가는 것은 정호의 일행이었다.
“자, 잠시만요.”
결국 걸음을 멈추어 세운 것은 적인 구울이 아닌, 아군인 키드에 의해서였다.
“음?”
“너무, 빨라요. 허억, 허억.”
민첩 특화 화신인 탓일까.
체력이 낮은 키드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확실히 진행 속도가 빠르긴 했지.’
그제야 한 시간 동안 전투를 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롭게 얻어낸 삼 성 등급의 검, 바스타드 소드의 특수 능력 ‘멈추지 않는 체력’의 효과는 놀라웠다.
아무리 전투를 해도, 몸이 지치질 않았다.
솔직히 말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 성 등급의 무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잠시 쉬고 가도록 하지.”
정호는 서서와 키드에게 휴식 명령을 내렸다.
생각이 짧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던전 내에서 충분한 휴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구울은 겨우 초심부에나 나오는 녀석들이야.’
그림자 지하 성채가 고작해야 구울 녀석들만 등장한다면, 파티 컨텐츠일 리가 없다.
‘1층은 돈도 안 되니까.’
구울들은 코인을 드랍하지 않는다.
과금이 주를 이루는 톨비아에서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인가.
노가다를 할 의미조차 없다.
“주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습니다.”
진짜는 더 아래.
지하 1층의 구울들은 후딱 넘겨버리고 다음 층으로 향해야만 했다.
“...”
정호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려갑니까?”
재차 던져지는 서서의 질문.
한데, 정호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아니. 우리는 아직 2층으로 가지 않는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적들이 있는 것입니까?”
분명 그림자 지하 성채는 2층부터 그 난이도가 확 떠오른다.
지하 1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정호는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송구스럽습니다. 소신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서의 말마따나.
분명 더 이상 구울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사서 고생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이런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장비는커녕 코인조차 주지 않는.
메리트라곤 전혀 없는 곳에 잔류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나도 확신은 못 해.”
하지만 그렇기에, 당연한 것이기에.
놓치고 가는 것도 있는 법이다.
“확인이라도 해보자고.”
정호는 사소한 것조차 놓칠 생각 따위 없었다.
“톨비아 때엔 아무도 못 찾았던 녀석을.”
사소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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