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28화
지구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껏 많았다.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종말설을 필두로.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까지.
비단 예언가뿐만 아니라 수학자, 과학자, 종교가 할 것 없이 그 권위를 내세우던 이들까지도 ‘종말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불발했다.
1999년에 멸망한다.
2000년에 멸망한다.
2012년에 멸망한다.
아니다, 2032년에 멸망한다.
아주 한 번만 걸려라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말론이 성행하고 사람들이 믿었던 까닭.
그들이 내세운 주장이 꽤나 그럴싸한 ‘근거’를 들고 왔던 탓이다.
이를 테면, 오래 된 예언이라던가.
권위가 있는 이들의 이야기라던가.
혹은, 일반 사람들은 알아듣기도 어려운 과학적인 내용을 가져 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본디 게임의 시스템이 현실이 되었다는 점은 충분히 그 믿음에 부합했다.
[종말이 찾아온다.]
다만 쉬이 믿기 어려웠던 까닭.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왔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그 어떤 위기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현실에서 즐기는 게임의 시스템은, 종말이라기보다는 ‘신의 선물’과도 같지 않은가.
힘을 올리면, 지금껏 들어 올리지 못한 무게를 들 수 있게 되고.
체력을 올리면, 병실에 누워있던 환자도 그 기력을 되찾는다.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들.
시련이라 주어지는 배려는 ‘죽음’조차도 배제한,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다.
거리가 멀다.
세상이 무너지고, 살아가는 것조차 급급한.
그러한 종말과는 너무도 동 떨어져 있다.
그 사실이 사람들의 인식을 하여금 종말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몬스터들이 세상에 나타남에 따라,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는 종말은 사람들의 위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저급 몬스터’인 고블린이었던 탓에 큰 피해 없이 막아냈다는 사실이었지만...
[세계 각지에 나타난 포탈]
[미국 정부에서 비상 상태 선포, 한국의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달랐다.
[서울 지하철 완전 마비]
[부산에서도 발견된 포탈이 열 개]
갑작스레 등장한 포탈은 사람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고작해야 허공에 문이 무수히 많이 생겼을 뿐인데, 사람들이 이토록 난리인 까닭.
-앞으로 한 달 후, 그림자 지하 성채의 괴물들은 지구로 총 공격을 나설 겁니다. 성채를 파괴하고, 그들을 막으십시오.
이따금 들려오던 목소리.
시련을 내리고,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던 아스텔의 천사가 내건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기현상에, 본래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더더욱 높아졌다.
당연히 이 포탈, 게이트는 군과 정부에 의해 민간인의 출입이 봉쇄되었지만...
┖저걸 왜 정부가 막음?
┖들어가서 깨지 않으면, 종말이 온다며.
┖이럴 때 일수록, 그림자 성채 깨도록 열어놔야지.
반대의 관점인 이들이 훨씬 많았다.
가만히 집에서 손이나 빨며 기다릴 수는 없다는 이들.
┖야, 지하철 머임? 왜 이럼?
┖거기 플레이어들 다 가서 그럼.
┖이거 전부 그럼, 레벨 업 하려고 온 거라고?
┖전투민족이네.
┖종특임.
그들은 사뭇 가볍기는 했으나, 이 상황에 대해 제법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종말이 찾아온 마당이다.
한 달 이내로 포탈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수 없이 많은 괴물들이 튀어나온단다.
시련이라느니, 굳이 전 세계인에게 힘을 준 까닭.
바로 이러한 종말에 대비하기 위해 있었던 일이 아니던가.
이대로 있어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포탈 안으로 진입하여, 레벨 업을 하겠다. 종말에 대비하겠다.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렇군.’
상황은 이해했다.
세계 곳곳에 나타난 포탈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한국에서만 하더라도 수백 개가 넘는 포탈들.
그 모든 것을 군과 정부에서 막기는 어려웠다.
댓글처럼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이들이 많은 이상, 그 상황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진입했다.’
제아무리 용감한 플레이들이라 할지라도.
시련과 달리 목숨의 위험이 있는 포탈이다.
그런 장소에 속속히 진입하는 것은 시답잖은 ‘인류애’나, ‘영웅심’이 아니었다.
그들은 철저히 목표를 가진 채, 포탈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레벨 업, 전리품.’
두 번의 시련.
그마저도 첫 시련에서 ‘실패’한 이들이 많은 마당이다.
아스텔의 천사조차도, 배려랍시고 시련을 내어, 유저들을 끌어올리려 하지 않았던가.
전조로 나타난 고블린들은 이미 랭커들과 군인들에 의해 씨가 말라가고 있는 입장이다.
상위권과 하위권 유저들의 차이는 극명하게 나뉘고 있었다.
한데 그 길이 열린 것이다.
‘너무 안일해.’
정호의 생각처럼.
그들도 이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알고 있을 터다.
전조로 나타난 작은 뿔 고블린들조차도 상당한 힘을 지녔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마당에, 목숨을 내거는 일은 바보나 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외의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쓰읍...”
정호는 바싹 마른 입술을 물어뜯었다.
스스로도 저들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쉬이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림자 지하 성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톨비아에서 있던 던전 아닌가?
┖┖그게 뭔데.
다른 댓글들에 의해 금세 묻히기는 했지만, 댓글 중 간간히 그런 소리가 끼어 있다.
‘그성...’
정호에게 있어서 익숙하기 짝이 없는 단어.
그림자 지하 성채.
그것이 정호가 즐기던 톨비아에서 알고 있던 던전의 이름이지 않은가.
불안감이 없을 수는 없다.
더 이상 현실로부터 눈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조로 나타났던 ‘작은 뿔 고블린’과 ‘홉고블린’.
그리고 홉고블린에게서 나온 '3성의 바스타드 소드'까지.
달칵, 달칵.
한참동안 기사를 뒤적거리던 정호의 얼굴에 결심이 섰다.
“확인해야겠어.”
결국 정호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보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레벨 업’과 ‘코인’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처럼 정호의 목표도 ‘코인’.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한 가지 다르기는 했다.
‘정말 그성이라면...’
정호의 얼굴에는 불안감 속에서 피어 오르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 * *
정호는 자신에게 부여된 것이 아스텔의 상태창 대신, 톨비아의 뽑기였다는 점에서 크게 낙심했다.
그것은 비단, 자신의 운명을 톨비아의 악독하기 짝이 없는 뽑기 시스템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뽑기’ 외에 성장할 발판이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뽑기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현 시점에서 정호가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있다고 한들.
그들은 서서히 정호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고, 겨우 한 번의 시련으로 크게 그 거리를 좁혀왔다.
제아무리 도감으로 그 능력치를 늘리고, 최근에서 알게 된 아스텔의 영약으로 스탯을 올린다 하더라도.
그들의 성장은 분명 눈부시도록 빠르고, 자신은 더딜 뿐이다.
‘적어도 5성.’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안전 불감증에 시달리는 멍청한 녀석이다.
최소한 5성 정도는 뜨지 않으면, 다가오는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나,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나오지 않는 것이 뽑기라는 것 아니겠는가.
스스로도 체감 중이었다.
소수점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는 그 수치를 도저히 뚫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한데...
‘그성이라면...’
톨비아의 던전 중 하나인 그림자 지하 성채.
종말의 신호탄으로써 ‘침공’하게 되는 녀석.
만약 그것이 톨비아의 그림자 지하 성채라면.
아예 가정도 하지 못하고 ‘포기’했던, 하나의 희망이 고개를 든다.
‘각성(覺醒)...’
톨비아는 수집형 RPG다.
뽑기 방식을 채용하면서, 그저 뽑는 것으로 끝난다면 RPG라고 표현할 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RPG는 성장하는 재미로 하는 게임이니까.
“...”
정호는 자신의 화신들의 이름을 보았다.
-빌리 더 키드☆☆☆
-서서 원직☆☆☆☆
-유능한 용병☆☆
정호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화신들.
분명 현재로써는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고, 만족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침공으로 종말이 마무리 된다면 모를까.
더욱 거센 적이 튀어나온다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전력이다.
‘별을 채워 넣을 수 있다면...!’
화신의 성장. 즉 각성이란, 저 비어있는 별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비록, ‘그’ 톨비아답게 ‘확률’에 의해서 이루어지나...
각성을 도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0과 1의 차이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격차가 있다.
‘재료가 필요해.’
화신의 각성에는 재료가 필수 요건이다.
그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사냥을 해야 한다.
톨비아의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가 확률에 의해 떨어뜨리는, 각성에 필수조건인 ‘각성 재료’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생각지도 않았다.
얻을 수 없는 것에 목메는 멍청한 짓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걸...좋아해야 돼? 말아야 해?’
자신의 능력은 톨비아의 시스템.
종말의 주체로 떠오른 대상도 톨비아의 던전.
그 두 가지를 저울질하는 정호의 입이 비틀렸다.
‘아직...아직이야. 확인을 안했잖아.’
하지만 아직 판단하기엔 이른 시기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야, 확신할 수 없는 내용이다.
꿀꺽-.
정호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포탈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 * *
“으음...”
“어떻게 하지?”
“가, 가야지.”
“나는 조금...”
정호가 도달한 곳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산 중에 위치한 포탈이었다.
도심에 널려 있던 군인도 없었고, 사람도 몇 없었다.
현재 어슬렁거리는 이들도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본래는 4인 파티 던전이었지.’
던전은 보상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톨비아에서 대부분의 던전은 그 난이도가 높았으나, 그림자 지하 성채라면 톨비아의 유저가 처음 맞이하게 되는 던전.
그만큼 요구스펙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방심할 정도는 아니지...’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권장 인원 4인 파티를 요구하는 던전이다.
VIP칭호를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화신을 더 사용할 수 있는 정호라 할지라도 쉬이 깬다고 장담하기엔 어려웠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괜한 걱정을 지워내려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준비는 했다. 정말 그성이라면.'
마음을 굳히고, 발걸음을 앞으로 했다.
“어어?”
“한 명 더 가나본데?”
“혼자서 간다고?”
"설마. 목숨이 수십 개씩 있는 것도 아니고. 허세겠지."
포탈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정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들에게 눈빛도 주지 않았다.
마침내 도달한 포탈.
그곳을 향해 정호가 몸을 들이밀자.
화아아아악-
"어어?"
"어어, 진짜 가는데?"
밝은 빛이 터져 나옴과 함께 시야가 반전되었다.
“...”
정호는 시야가 돌아옴과 동시에, 주변 환경을 살폈다.
우려하던 걱정과 기대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채 확인도 하기 전.
“하, 하하.”
정호의 입에서 기쁜지, 슬픈지 모를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변 상황이든, 환경이든, 그 따위 전경은 볼 필요도 없었다.
[그림자 지하 성채 47]
-그림자 지하 성채는 비참하게 죽어나간 언데드가 있는 장소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것에 환멸과 분노를 느낄 것입니다. 그들을 처치하고, 그들을 이끄는 ‘니네체르(Nynetjer)’를 쓰러뜨리십시오.
-파티 구성 : 1인
눈앞에 떠오르고 있는 메시지.
그것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맞네. 맞아...”
톨비아의 ‘그림자 지하 성채’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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