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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27화 (28/144)

# 27화

# 27화

정호는 키드의 안내를 따라, 녀석을 찾아내고서 숨을 죽였다.

“케륵, 케르르르.”

새빨간 피부.

머리 위에 솟아오른 커다란 뿔.

작은 뿔 고블린들과 달리 강철로 담금질 되어 있는 검까지.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

아니.

정호의 기억 속에 있는 홉고블린, 그 자체였다.

‘도대체 뭐야?’

정호는 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입을 비틀었다.

톨비아에서 홉고블린은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녀석이다.

초보존이라 불리는 ‘작은 뿔 고블린의 서식지’에서 이따금씩 등장하는 희귀 필드 보스.

초보들이 감당하기에는 강력했던 탓에 ‘뉴비분쇄기’, ‘뉴비학살자’라는 제법 무서운 이명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녀석의 강함은 ‘삼 성급 화신’을 상회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니 막 게임을 시작한 초보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초보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럭키 몬스터인 건 확실한데...’

각 서식지마다 등장하는 규격 외의 강함을 가진 녀석들을 부르는 이름, ‘럭키 몬스터’.

그리 부르는 까닭은 당연하게도 보상 때문이다.

오로지 현금으로, 그것도 ‘뽑기’를 통해 얻어 낼 수 밖에 없는 장비를 녀석들이 드랍한다.

비록 고 등급의 장비는 그 확률이 낮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유저들이 눈에 불을 키고 찾으러 다니는 수준이었다.

“...”

그런 럭키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서도, 정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호의 시선은 아직도 홉고블린이 쥔 검에 고정되어 있었다.

‘작은 뿔 고블린에 홉고블린까지...’

지금까지 현실에 나타난 몬스터들.

그것이 정호에게 너무도 익숙한 녀석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우연도 두 번이나 일어나면 웃으며 넘길 수 없는 노릇이다.

‘종말의 전조가 어째서 톨비아와 닮아 있는 거지?’

그런 불안감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호는 톨비아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고, 그것만이 다가오는 종말에 대비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믿고 의지해야 할 시스템이 전조와 닮아 있다는 것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놓치겠는데. 쏴요?”

어느새 등을 돌리고, 풀숲을 헤치고 떠나는 홉고블린을 본 키드가 정호에게 물었다.

“...그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녀석을 쓰러뜨리고, 꿀맛 같은 달콤한 선물상자를 까보는 것이다.

타닥, 타닥-.

몸을 숨기고 있던 풀숲에서 나온 정호가 순식간에 홉고블린을 향해 달려갔다.

쉐에에에엑-.

한 순간에 끝내겠다는 듯, 온 힘이 담긴 정호의 검이 녀석의 등 뒤에 떨어졌다.

작은 뿔 고블린이었다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격.

하지만 과연 ‘삼 성급의 화신’을 능가한다는 홉고블린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는지.

까아아아앙!

검과 검이 만나 굉음을 일으켰다.

분명 등을 돌리고 있던 녀석은 이미 새빨간 눈을 빛내며 정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윽...?”

정호는 신음을 삼켰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고작 단 한 번의 힘겨루기였으나, 단숨에 녀석의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일대일로 싸웠다면, 승기를 점치기는커녕 당장 도망을 떠올릴 정도였다.

물론, 혼자였다면 말이다.

타앙! 타앙!

파르르르르-.

“어우 질기네.”

“주군, 도와드리겠소.”

정호의 뒤에서 날아오는 지원 사격.

“키륵?”

홉고블린은 곧장 멀리 떨어진 키드와 서서를 바라보며, 적의를 내세웠으나.

“어딜 봐?”

쉐에에에엑-!

한눈을 판 상태로 막아낼 정도로 정호의 공격은 무르지 않았다.

타앙! 타앙!

파르르르!

수없이 쏟아지는 총탄과 파초잎.

그 지원을 등에 업은 정호의 공격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까아앙! 깡!

“키르륵! 치사! 케륵!”

불만어린 목소리를 드높이는 홉고블린의 말에 정호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설마하니 몬스터의 입에서 ‘치사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진검승부라도 원했어?”

쉐에에엑-.

검을 휘두르는 얼굴에는 일말의 자비도, 동정심도, 하물며 감흥조차 없었다.

정호는 몬스터 따위에게 전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목숨을 걸고 덤비는 ‘사투’는 더더욱.

“그거 참 미안하네.”

철저히 ‘사냥꾼’의 입장에 서 있을 뿐이다.

* * *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홉고블린의 강인함은 정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타앙! 탕!

“이야, 질기네. 얼마나 박아 넣어야 죽는 거야?”

키드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깊은 상처가 있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서 있는 홉고블린의 맷집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까앙, 깡!

정호는 진땀을 흘리며, 녀석의 공세를 막아 세우면서도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놈이 도시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군.’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홉고블린이 이런 인적 없는 산중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 나타났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에 대포를 쏴댔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쉐에에에엑-! 파악!

“키엑!”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제아무리 강인한 홉고블린이라 할지라도,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뒤엎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지 못했다.

“키드, 속사! 서서, 책략모방. 속사!”

휘리리리릭- 탁.

정호의 말이 떨어지자.

키드와 서서의 손 안에서 리볼버가 동시에 핑그르르-하고 돌아갔다.

“아저씨, 이것도 따라해 봐.”

“아군과의 경쟁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허리춤에 리볼버를 꽂아 넣는 모습은 꽤나 우스운 일이었으나.

그 직후 이어진 공세는 결코 웃음으로 넘길 것이 아니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무차별적인 난사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탄알.

‘이거... 나도 위험한 거 아니야?’

서서와 키드를 등지고 서 있는 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수없이 많은 총탄이 뿜어졌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는 듯.

“캬학! 카학! 카하아아악!”

모든 총탄은 정호를 지나, 홉고블린의 몸체에 정확히 틀어박히고 있었다.

심지어는 정호가 녀석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움직인다하더라도, 쉼 없이 쏘아대는 총탄이 단 한 발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역시 키드를 키우는 건 틀린 판단이 아니었어.’

무려 1,300코인 어치의 영약.

아까워하며 후회했던 정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속사(速射)]

-리볼버를 빠르게 재장전하여, 여러 발의 총탄을 단번에 발사한다. 민첩 수치에 따라 정확도와 그 장탄 수가 증가한다.

┕현재 : 정확도 95%, 4발. (민첩 100)

고작 민첩이 100을 찍은 것뿐 일진데.

속사의 정확도가 75프로에서 단숨에 95프로로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한 번에 발사하는 탄알도 4발로 증가했다.

인외의 영역이라 불리는 ‘100’의 수치를 뚫은 키드의 성장은 빛을 발했다.

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뜻밖의 소득이라고 할까.

노리기는 했으나, 서서의 책략모방 또한 키드의 성장에 의해 달라졌다.

파괴력이야 키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나,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키드의 속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틱. 틱. 틱.

틱. 틱. 틱.

때 아닌 산중에 울려 퍼지는 총탄 세례.

그 발포음이 멈춘 것은 한참이 지나, 탄알이 떨어지고 난 이후였다.

“케에...에...”

홉고블린은 아직까지 숨을 쉬고 있었다.

다만 그 뿐이다.

온몸에 구멍이 뚫려, 서 있는 것이 고작인 녀석에게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흐읍...!”

정호는 검을 치켜 올리고서는, 녀석의 머리통에 내리쳤다.

콰득! 츠즈즈즉!

가죽이 어찌나 질긴지, 목을 잘라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방비한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한 검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데구르르르-.

기어코 녀석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대단하군.”

정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럭키 몬스터’라며 가볍게 볼 녀석이 아니었다.

힘, 스피드는 물론이고 그것을 아득히 상회하는 경이로운 맷집까지.

홉고블린은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적보다도 강인했다.

솔직히 말해서, 만약 서서와 키드가 없었다면 사냥 당하는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푸후...”

정호는 숨을 몰아쉬었다.

지난 열흘, 밤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달려온 시간이다.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정호의 얼굴에 피로 따위는 없었다.

“어디 보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뭐가 떴냐...!”

홉고블린은 죽어서 검을 남기기 마련이다.

* * *

사실 큰 기대는 가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럭키'로 통용되는 보스 몬스터라 해도 홉고블린은 고작해야 하급 몬스터에 해당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이름 있는 무기를 지니고 있다면, 톨비아가 망해버릴 리가 없다.

‘이 성급 정도는 되면 좋겠는데.’

현재 유능한 용병을 강신시키고 있는 정호에게 있어서, 장비가 목숨 줄이나 다름없었다.

현자의 목걸이라는, 삼 성 등급의 장비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서의 몫.

스스로는 고작해야 ‘가죽 갑옷’이라는 일 성급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한 등급이라도 높은 장비, 무기가 나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흥겨운 일이었다.

“음?”

한데, 홉고블린의 검을 확인한 정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하?”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스스로의 눈을 비비고, 다시금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자신의 기대보다 낮은 등급이 튀어나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바스타드 소드(명품)☆☆☆]

-이름 난 거인족 대장장이가 만들어 낸 시험 작 중 하나. 꽤 무겁다.

-착용 제한 : 힘 50이상

-능력치 : 체력 20증가.

-특수 능력 :

[멈추지 않는 체력 - 적 타격 시 일정량 체력 회복]

“이, 이게 뭐야?”

난데없이 삼 성이라니?

대수롭지 않게 확인한 탓일까.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쿵쾅쿵쾅 뛰는 심장은 도저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단독 능력치, 체력이 20.

특수 능력조차도 ‘멈추지 않는 체력’은 어째서 홉고블린이 쉬이 쓰러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생존에 특화된 무기였다.

직접 근접전투를 벌이는 정호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게 시험 작이라고?’

설명은 더 가관이었다.

삼 성 등급의 무기가 고작해야 ‘시험 작’.

그렇다면 제대로 만들어 낸 무기는 어떤 수준이란 말인가.

“후우...!”

쉬이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거친 숨을 내쉬어 털어낸 정호는 곧장 바스타드 소드를 회수했다.

처억.

손잡이를 쥐자마자, 착 감겨오는 검은 대번에 명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흡?”

다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정호의 혈관을 타고 치솟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전투를 한 탓에 쌓인 피로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생기가 차올랐다.

절로 피가 끓어오르는 묘한 고양감이 있었다.

‘시험하고 싶은데.’

당장이라도 이 넘치는 체력을 뽐낼 사냥감을 찾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지금이라면 쉬지 않고 삼 일 정도는 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다.

길고 길었던 밤이 끝나고,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뭐, 이 정도로 싸워댔는데 안 나타났으니까.’

홉고블린의 사냥은 꽤나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작은 뿔 고블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 근처의 몬스터는 씨가 마른 것이 분명했다.

“쯧...”

혀를 차냈다.

분명 홉고블린이라는 대물을 낚아서 기분은 좋았으나, 아쉬움이 남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의 몬스터들은 점차 줄어들기만 하고 있다.

아스텔 유저들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시련이라도 있으면.”

절로 그런 바람이 정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난 일주일 간 벌어들인 코인보다 아스텔의 시련으로 얻어낸 코인이 더욱 많았기에 내뱉은 말이었다.

한데, 그런 정호의 목소리가 정말 하늘에 닿기라도 한 것일까.

-지구의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정호의 귓가를 때렸다.

아스텔의 천사였다.

“어?”

일부러 노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

정호는 묘한 기대감을 품고서, 녀석의 말을 기다렸다.

-종말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뭐?”

삽시간에 정호의 얼굴이 굳었다.

물론 종말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10일이라는 긴 시간은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림자 지하 성채가 지구를 침공합니다. 지구의 여러분들은 다가오는 종말에 맞서 싸우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말은 불안함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정호는 드디어 침공이라는 형태의 종말이 찾아왔다는 것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음..?”

그런데 문득, 정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림자 지하 성채?’

종말이라며, 떠들어 대는 천사의 말.

그것이 몹시 익숙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던 탓이다.

어디선가 들었고.

스스로도 내뱉었던 것 같은.

기묘하기 짝이 없는 말.

‘그림자 지하 성채... 그림자, 그지성, 그성...’

한참이나 그것을 되뇌이다, 마침내 그 정체에 깨달은 정호가 화들짝 놀랐다.

“‘그성’이라고?”

익숙할 수밖에 없다.

“톨비아의 던전. 그성...? 그거 맞아?”

정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지?”

간절함을 담은 외침.

하나,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했다.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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