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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23화 (24/144)

# 23화 (수정)

# 23화

모두가 잠든 새벽.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길은 언제나 발걸음이 무겁기 마련이다.

한데, 오전 3시.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비명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내지어져 있었다.

자르륵.

주머니 속에서 춤추는 수많은 양의 동전.

상당한 무게인 탓에, 걸음걸이가 이상해질 지경이었지만 결코 덜어낼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297코인.’

노력에 대한 보상을 손에 쥐고서 기뻐하지 않을 이는 없다.

무려 한나절 만에 단일 뽑기를 두 번, 조금만 더 모은다면 세 번까지도 할 수 있는 코인을 벌지 않았는가.

하지만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현실에 나타난 작은 뿔 고블린은 적었던 탓이다.

녀석들을 찾으러 다니는 시간이 전투 시간보다 훨씬 비중이 컸다.

물론 그것은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아다닌 정호의 탓도 있었다. 때 아닌 야간등산을 강행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무려 10시간 동안 뛰어다닌 노력에 비하면 297마리는 적은 수였다.

‘아니지. 녀석들이 더 나타났으면 그게 종말이지.’

아쉬움을 삼켰다.

작은 뿔 고블린은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다.

김세정, 레이나.

시련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랭커가 고작 두 마리의 고블린에 고전하지 않았던가.

백마법사라는 직업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녀석들은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직은 괜찮아...’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전투를 상기했다.

꽤나 속을 썩이는 키드 덕분에 머리가 아픈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성능 면에서는 성능 면에서는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원거리 클래스, 총이라는 ‘현대 무기’는 고작해야 몽둥이를 사용하는 고블린들에게 있어서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서서가 확실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어.’

정호는 서서를 떠올렸다.

지난 시련에서의 서서는 불만을 가질 수가 없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사 성. 영웅이라 불리는 수준의 힘이라고 하기에는 서서의 활약은 적은 감이 있었다.

‘책략모방이 사기였어.’

서서가 키드의 속사를 모방한 모습을 떠올린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어째서 서서가 무과금의 희망, 꽃이라고 불렸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책략모방]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화신 스킬을 모방합니다.

-그 위력은 화신의 지능 수치를 따르나, 최대 70%를 넘을 수 없습니다.

┖현재 65%

현자의 목걸이, 그리고 도감 스탯으로 인해 올라간 지능 수치.

그에 따라 일종의 한계라 불리는 스탯 100을 넘어섰다.

50프로에서 65프로로 올라간 서서의 책략모방 스킬은 정호의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키드조차도 한, 두 번이 한계인데.’

속사의 본 주인인 키드조차도 계속해서 쏘아낼 수 없을 정도의 스킬.

한데 서서는 세 번 연속으로, 무리한다면 다섯 번 연속으로 속사를 뿜어낼 수 있었다.

‘지능 수치가 그 정도로 영향을 줄 줄이야...’

높은 지능으로 인해 민첩 특화 화신인 ‘키드’보다도 훨씬 스킬을 자주 사용할 수 있다.

제아무리 그 위력이 반감되었다고 한들, 무차별적으로 쏘아지는 탄알을 쉬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삼 성의 화신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던, 서서의 힘은 정호가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

정호에게 있어서 ‘작은 뿔 고블린’이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쯧...”

하나, 그럼에도 혀를 차내는 까닭.

그것은 지난 하루 동안 만나 본 랭커들의 수준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어.’

그들은 하나, 하나가 ‘화신’에 비견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뽑기 게임인 톨비아 시스템은 그 ‘저점’은 높을 지언정, ‘고점’으로 갈수록 대기만성형의 아스텔의 시스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최대한..’

전조가 나타난 이상, 당장 내일 종말이 찾아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직 ‘작은 뿔 고블린’에 불과할 때 최대한 많은 코인을 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타앙! 타앙!

도심지에 가까워질수록 들려오는 발포음은 정호의 심기를 거슬리게만 만들었다.

‘군대가 동원됐으니, 몇 남아있지도 않겠네.’

재난문자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니, 도시 쪽은 대체로 정리는 끝난 모양이었다.

이런 마당에 정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도심지 외곽, 아직 위험지역인 장소로 일부러 돌리는 것 외에는.

-67-4번지 CK편의점 앞, 몬스터 ‘고블린’ 셋 출현 신고. 외출을 삼가주시고 근처에 계신 분들은 대피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꺄아아아악!”

발걸음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 들려오는 비명 소리.

대번에 다급한 상황임을 알아챌 수 있었지만, 정호의 발걸음은 결코 빨라지지 않았다.

사박, 사박.

마치 하이에나처럼 조심스럽기만 했다.

* * *

정호는 평범한 사람이다.

자신이 성자나 성인, 그렇다고 영웅 같은 그릇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외의 인간이 위험에 처했다고 해서, 다짜고짜 달려드는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재난문자처럼 셋, 편의점 안에 사람이 하나.’

정호는 제법 다급해 보이는 모습을 두고서, 착실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작은 뿔 고블린 셋은 편의점 안의 인간을 표적으로 삼은 듯,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편의점 내의 사람은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매장 내의 물건들로 바리케이드를 세우며 문을 굳건히 걸어 잠그고 있었다.

...타앙, 타앙!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자그마한 총 소리를 확인한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는 아직이고...’

솔직히 말해서.

정호가 위기에 처한 저 사람을 도와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자신과는 아예 무관계한 인간이고, 앞으로 나타날 종말에서는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시대일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치진 않았다.

정호는 오히려 녀석들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도, 도와주세요! 누군가, 누군가...! 아!”

편의점 안에 있던 사람은 도움을 요청하다, 정호와 눈을 마주쳤다.

‘쉿...!’

아직 작은 뿔 고블린들은 정호를 눈치 채지 못했다.

검지를 들어올려, 괜한 제스쳐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 정호는 천천히 녀석들의 뒤로 다가섰다.

스륵, 스륵-.

아스팔트 바닥을 밟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인 정호.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뿔 고블린 중 하나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꾸웅!

바닥을 크게 짚으며 신형을 날렸다.

“끽?”

“끼엑?”

뒤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린 고블린들.

녀석들은 곧장 새빨간 눈을 빛내며, 정호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타다다닥!

이미 있는 힘껏 발을 놀린 탓에, 정호의 움직임은 녀석들의 예상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순식간에 한 녀석의 품 안으로 들어간 정호.

곧장 검을 녀석의 목에다가 틀어박았다.

쉐에에엑-.

“케엑!”

목에 검이 틀어박히자, 손에 든 몽둥이를 어쩌지도 못한 채 쓰러지는 작은 뿔 고블린.

하지만 정호의 움직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제 하나!’

까드드드득-.

목뼈가 걸린 탓에 제대로 뽑히지 않는 검을 머리통에 발을 가져다 대어 뽑아내고서는 고개를 홱 돌렸다.

“끼에에에!”

“캬악!”

동료의 죽음을 확인한 녀석들이 이미 정호에게 다가와 있었다.

정호는 그에 당황하지 않고서, 한 녀석의 목을 붙잡고서 들어 올렸다.

“키엑?”

설마하니 자신을 들어 올릴 줄은 몰랐다는 듯, 의문을 터뜨리는 녀석.

정호는 녀석을 붙잡은 채, 날아오는 또 다른 녀석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키에엑!”

“키엑!”

덩달아 나가떨어지는 고블린.

서로가 엉켜 제대로 일어서지를 못하는 기회를 정호가 가만히 둘 리는 없었다.

쉐에에에엑-!

곧장 녀석들을 향해 달려간 정호는 검을 크게 들어, 녀석들의 복부에다가 냅다 칼을 꽂았다.

“키에에에에에에에!!”

“키아아아아아악!!”

꼬치구이 신세가 되어버린 녀석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

분명 자그마한 녀석들이 아등바등 비명을 내지르는 모습은 심히 안쓰럽기까지 했으나.

정호에게 그런 동정의 눈빛 따위는 없었다.

콰지지직-.

오히려 녀석들의 복부에 틀어박힌 검을 비틀었다.

“케에엑!”

“켁...!”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 녀석들이 고개를 떨궜다.

아스팔트에 흩어진 피의 양이 상당했다.

분명 죽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정호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들은 이게 취미였지.’

정호는 녀석들이 죽은 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악랄한 행동은 297마리를 잡아대며 이미 숱하게 보아왔다.

이미 죽기 직전인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녀석들이었다.

쉐에에엑-! 콱!

정호는 곧장 검을 빼어, 녀석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고블린들의 머리가 데구루루- 구르며 아스팔트 위를 굴렀다.

“후우...”

확실히 숨통을 끊어낸, 정호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도움 받은 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도와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도심의 외각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빙 둘러 집으로 향했던 이유는 조금이라도 많은 고블린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다.

‘코인 때문이니까.’

스스로가 깨끗한 의도로 도와주질 않았으니, 감사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

녀석들의 코인을 회수한 채 집으로 향하는 정호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 *

고된 노동 후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에는 깊은 잠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정호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허공에 못 박힌 듯, 떨어지지 않는 정호의 시선.

-빌리 더 키드☆☆☆

-힘 : 23  체력 : 21 민첩 : 97 지력 : 30

키드의 능력치, 특히 민첩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정호는 키드에게 민첩 증가 영약을 대뜸 쥐어주려고 생각지는 않았다.

두 번째 시련에서 ‘SS+'라는 높은 점수에 의해 주어진 추가 보상이다.

조금 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호는 키드에게 영약을 주었다.

‘전조가 나타났다.'

다급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당장 수급되는 코인의 양과 키드를 얻기 위해 사용한 코인을 비교한다면.

다음 화신이 3성 이상의, 자신이 원하는 ‘민첩’을 주로 사용하는 화신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설령 운이 좋아 3성 이상의 화신을 뽑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 성급 화신인 유능한 용병을 강신시키고 있는 자신의 몫이 될 것이 뻔했고 말이다.

그렇다면 키드에게 투자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97...!’

그리고 그 판단은 꽤나 나쁘지 않게 흘렀다.

‘민첩 증가 영약으로 2가 올랐다.’

솔직히 키드가 영약을 삼킬 때만 하더라도, 정호는 심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스탯 100을 목전에 두고 있어.’

제아무리 도감으로 인해 증가한 폭이 많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삼 성의 화신이 ‘100’이라는.

인외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정호는 코인을 만지작대며, 눈을 흘겼다.

이 같은 영약을 더 구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시련의 보상으로 얻을 가능성은 있지만...’

시련이 끝난 후, 영약을 줄지 안 줄지 모르는 일이다.

민첩이라는 특정 스탯을 얻을 확률도 적다.

그렇다고 톨비아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도 없다.

어디까지나 영약은 ‘아스텔’의 시스템이다.

뽑기로는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

한참이나 코인을 만져대던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밤 정호가 모은 코인은 ‘300’.

갖은 고생을 하며 얻어 낸 코인이지만, 그것을 뽑기에 사용하기에는 기댓값이 너무도 낮다.

“...가격이라도 확인 하러 가볼까.”

영약이 아스텔의 것이라면.

아스텔의 시스템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상점 열기.”

모든 것이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노인을 만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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