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수정)
# 22화
가상현실게임, 톨비아.
그 게임 안, 던전 공략을 위해 떠나는 공격대에는 꼭 확인해보는 절차가 있었다.
-헤라클레스 유저는 반드시 소환시켜 볼 것.
헤라클레스는 오 성급 화신 중 으뜸을 자랑하는 화신이다.
그만큼 인기도 높아서, 많은 유저들이 주력으로 키우는 화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러한 절차가 있는 까닭은 바로 헤라클레스가 ‘자기주장이 강한 화신’ 중 하나였던 탓이다.
헤라클레스는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반신.
그 자존감과 오만함은 주인을 무시하기 일수였다.
소위 말하는 ‘트롤’, 공격대를 망치는 주범으로 손꼽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던전에 입장하기 전.
반드시 헤라클레스를 소환하여, 시키는 일이 있었다.
‘기다려.’
단 한 가지의 키워드.
애완동물도 아니고, 너무한 처사라고 할 수 있지만.
주인의 말을 듣는가, 듣지 않는가.
그것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애초에 화신은 주인의 명령에 불복종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기다려’라는 꽤나 광범위한 키워드는 화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살펴보기 좋은 단어였다.
그 자리에 코를 파며 눕는 것조차 ‘기다려’에 포함되니 말이다.
‘완전한 복종은 원치 않아.’
화신의 자유의사를 완전히 뭉게는 일은 정호도 원치 않았다.
완전한 복종은 화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판단을 제한한다.
‘서서가 행동한 것처럼.’
자유의지란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호가 서서에게 내린 지시는 ‘책략모방’ 뿐이다.
그럼에도 서서는 도합 세 번의 ‘속사’를 모방하여 적들을 섬멸시켰다.
그것은 오롯이 서서가 내린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반항은 달라. 이건 위험해.’
키드의 이번 돌발행동은 어디까지나 ‘트롤링’이었다.
정호의 명령에 따라 적을 쓰러뜨리기는 했으나, 그 결과 파티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설사 게임이라도 웃고 넘길 수 없을 진데, 이곳은 엄연한 현실.
제대로 잡고 가지 않으면,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괜찮겠어? 난 모른다?”
키드는 정호를 향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주인을 걱정하는 충신에 가까웠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정호를 완전히 깔보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대답이었다.
‘내가 이 성급 화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가?’
이 성과 삼 성.
그 차이는 고작 별 하나가 아니다.
이름을 부여받고 영웅으로 불리는가. 그렇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사라졌는가.
그 힘의 격차는 능력치라는 수치로 나타난다.
녀석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죽어도 난 몰라! 정말이야.”
호들갑을 떨어대는 녀석의 얼굴에는 긴장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상관없어.”
정호의 대답은 키드에게 ‘자신을 상처 입혀도 좋다’고 명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정호는 모든 계산을 끝낸 후에 내린 판단이었다.
-빌리 더 키드☆☆☆
-힘 : 23 체력 : 21 민첩 : 95 지능 : 30
키드의 능력치는 눈이 부릅떠질 정도였다.
도감으로 인해 증가된 스탯에 의해 민첩이 100에 한없이 가까운 95.
특수화신이기에 비루하기 그지없었던 힘과 체력이었지만.
그조차도 상당히 올라, 약점이라 할 수도 없었다.
‘단순 능력치로는 밀리지 않아.’
-이정호/29
-힘 : 68 체력 : 39 민첩 : 44 지능 : 45
다만 종합적인 능력치는 ‘강신 시 120%의 능력치 증가’를 가지고 있는 정호가 오히려 높을 지경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95라는 높은 수치의 민첩.
게다가 키드는 현대 문명의 이기인 ‘총’을 사용하는 영웅이다.
그럼에도 정호는 승산이 있다 판단했다.
“정말 괜찮겠어?”
재차 물어오는 녀석의 입고리가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한 정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알았으니까...”
쿠웅!
정호가 허리춤의 검을 부여잡은 채, 발이 강하게 바닥을 찍었다.
허리를 살짝 굽히고, 자세를 낮게 잡는다.
그 상태를 유지한 채, 발을 떼자.
기이하게도.
화아아아악!
열 걸음은 되는 먼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져, 키드의 품속에 당도했다.
제아무리 높은 민첩을 가지고 있는 키드였으나, 잔뜩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예상외의 속도로 다가온 정호의 공격을 피해내기는 어려웠다.
까아아앙!
휘둘러지는 검에 자신의 애총을 가져다 대어, 막는데 급급했다.
차아아아악-.
키드의 발이 땅에 쓸리며, 길게 선이 그어졌다.
처억.
검을 어깨 위에 올려 둔 정호가 말을 이었다.
“헛소리 말고 얼른 덤벼.”
“이, 이익...!”
키드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 * *
톨비아를 플레이할 때의 정호는 검을 즐겨 사용했다.
딱히 검에 대해 애착이 있다던가.
혹은, 로망이 있다던가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후위에서 안전하게 공격을 하는 것보다, 전위에 앞장서서 싸우는 스릴을 좋아했고.
보유한 강신용 화신들 중, 가장 높은 등급의 화신이 검을 사용했을 뿐이다.
‘갤러해드(Galahad).’
게임 내에서 정호가 사용했던 화신은 갤러해드.
원탁의 기사이자, 최강의 검사로 알려져 있는 검의 화신이었다.
‘기억 같은 걸 받은 적은 없지만...’
고작해야 ‘게임 속’에서의 이야기.
현실에서 강신시킨 것이 아니기에 동기화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정호는 그런 갤러해드의 스킬을 몇 번이고 사용한 적이 있다.
제멋대로 몸이 움직이는 감각은 당시에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도움이 되긴 하네.’
스킬로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펼친 것도 아니다.
겨우 모방했을 뿐인 겉햝기.
그것에 불과하지만, 민첩 수치가 두 배 이상이나 차이 나는 키드에게 한 방 먹일 수준은 되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키드.
정호는 녀석에게 조언을 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미 전투가 시작된 마당에, ‘적’인 상대를 배려할 정도로 정호는 어리석지 않았다.
쉐에에엑-.
쉐엑-.
정호는 계속해서 키드를 몰아세웠다.
압도적으로 차이 나는 민첩 수치에 의해 키드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어려웠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헉! 허억!”
키드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숨소리.
제아무리 도감으로 인해 체력 수치가 올라간 상태라 하더라도, 키드는 어디까지나 ‘민첩 특화’ 화신이다.
특출 날 것 없는 유능한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체력 수치만은 녀석보다 월등했다.
쉐에에엑-
쉐엑-.
“자, 잠시만요. 주인님.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
계속된 마구잡이 형 공격.
그에 키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다, 결국 두 손을 높게 들었다.
아예 항복해버리는 듯, 모양새를 취하는 키드.
하지만 정호는 그런 얄팍한 수에 속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쉐에에에엑-!
오히려 거세게 내리치는 검.
그에 키드의 표정이 단숨에 변했다.
“거참, 기다리시라니...”
휘리리릭-.
분명 허리춤에 꽂혀 있던 키드의 리볼버가 손아귀에서 돌아갔다.
“까!”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키드는 정호의 어깨를 조준하고는 쏘아 보냈다.
타아아앙!
매캐한 화약 냄새를 뿜어대는 리볼버의 총구를 ‘후’하고 불며, 키드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미 정호는 키드의 시야에 없었다.
정통으로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진 것이 분명하리라.
“그러니까 안 된다니까요.”
“그래?”
하지만 곧장 들려오는 정호의 목소리에, 키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변했다.
피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었다.
아래.
그것도 자신의 발 아래였다.
쉐에에에엑-!
“허업!”
키드는 고개를 아래로 향하는 우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검신은 자신의 턱밑에서 치솟고 있었다.
이미 피하기는 늦었다.
그리 판단한 키드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자, 잠시만요!”
살아날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져, 졌어요! 졌다고요! 제가 잘못 했어요!”
하지만 정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가혹했다.
“아직 멀었어.”
쉐에에에에엑-!
“아, 안 돼!”
멈추지 않는 바람 소리.
키드는 죽음을 떠올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검이 키드의 턱에 당도했다.
빠아아악!
검에 꿰뚫렸다기에는 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드의 신형이 천천히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
정신을 잃어가면서 올려다보는 키드.
그곳에는 저물어가는 석양을 등지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정호가 있었다.
* * *
“으음...”
키드는 서서히 눈을 떴다.
“안 된다니까 그러네.”
“해야만 합니다.”
주인인 정호와 서서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야야...’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턱을 제대로 맞은 것인지 꽤나 신통치 않았다.
“제 아무리 목숨을 노리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키드는 주군에게 총구를 들이댔습니다.”
“허락한 일이야. 내 잘못이기도 하지.”
“주군의 충실한 종복인 화신이 적의를 드러내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斷)! 후일 소유하실 화신들을 위해서라도 당장 녀석의 목을 베어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던 키드는 바짝 몸을 웅크렸다.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목을 벤다고?
누가 누구의?
누운 채로 스스로의 목을 쓰다듬어 본다.
절로 오싹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고작 한 번의 실수뿐이야.”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자신의 주인인 정호가 꽤나 인자한 구석이 있었다는 점이다.
키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뿐.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는 법이죠.”
그만...그만해...!
당장이라도 일어나, 서서의 입을 막고 싶었다.
저대로 두었다간, 정말로 자신의 목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쩔텐가.
화신이면서도, 옹호하지 않다니 솔직히 배신감이 들었다.
“으음...그것도 그렇군.”
아!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옹호하던 주인이 서서히 저 악마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키드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상태가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 금새 허리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말에 머리를 숙였다.
“그래도 기회 한 번 정도는 주는 게 어떤가?”
“으음... 너무 자비로우신 판단이 아닙니까? 군주란 자고로 신하에게 얕보여서는 안 됩니다.”
“나는 너희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어. 신하라니 말도 안 되지.”
“정말이지 자애 깊으신 말씀이십니다만, 동료라 할지라도...”
“서서. 네 기분을 알겠다. 하지만 나는 녀석에게 한 번의 기회 정도는 주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좀처럼 그 낌새를 내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겠나?”
꽤나 길어진 대화.
그 사이에서 오갈 곳 없이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키드는 죽을 맛이었다.
한 번. 단 한 번만 기회를 준다 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다시는 주인의 말에 거역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외치고만 싶었다.
“그렇다면... 벌보다는 상을 한 번 주어보시지요.”
“상을? 내게 총구를 겨누었는데도?”
“자고로 벌을 받는 자는 그 속내를 더더욱 안으로 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을 준다면 ...”
“자신이 한 일이 자랑스럽다고 여기게 되겠군.”
“예. 녀석의 성격이라면 상을 받자마자 주인을 더더욱 업신여길 것입니다.”
“꽤나 파격적이고, 과한 수단이군.”
“기회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주어야 하는 법입니다.”
“...알겠다. 상을 주었을 때 만약 녀석이 그런 낌새를 보인다면...”
키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히 일어났을 때 자신에게 상을 준다면, 곧장 주인에게 ‘이런 걸 어디다 숨겨두셨대?’하며 취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함정이라니!!
“내가 직접 녀석의 목을 치지. 그 자리에서.”
“지혜로우신 판단입니다.”
헉.
기어코 목숨을 끊겠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키드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점차 말소리가 줄었다.
대화가 끝난 모양이었다.
“녀석이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은데...”
“으음...!”
키드는 연기했다.
마치 자신이 방금 일어난 것처럼, 눈을 비비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악독하고, 기괴한 대화를 결코 엿들었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안 되었다.
“일어났나? 몸 상태는 괜찮고?”
주인, 정호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조금 전의 대화와는 어찌나 다른 모습인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
하지만 키드는 보고 있었다.
저 자애로운 미소 뒤에 숨겨진 새파랗게 빛나는 칼날을.
“아, 아아...! 넵. 괜찬슴미다!”
당황한 탓에 혀까지 깨문 키드는 몸을 단번에 일으켜, 일 자 형태로 세웠다.
“미안하다. 생각보다 좀 심했지?”
텁.
어깨에 손을 올리는 주인의 손이 오늘 따라 악마의 손아귀와 같다.
“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인데요...!”
“아니, 결과적으로 전투 시간도 짧아져서 좋은 결과였어.”
차라리 타박하거나 꾸짖었다면 이처럼 무서울 일도 없었다.
“이건 내 사과의 표시다.”
정호가 키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단약이 올라와 있었다.
“민첩 증가 영약. 너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영롱한 광채로 떠오르는 그것이 키드에게는 그 무엇보다 무서운 독약으로만 보였다.
“받을 수 없습니다...”
“어서 받으래도.”
“받을 수 없습니다...”
“받아.”
필사적으로 사양했다.
저것을 받는다면, 자신의 목이 떨어질 테니까.
“명령이야.”
“네...네, 알겠습니다.”
기어코 명령을 받고서, 상을 손에 넣은 키드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래서일까.
키드는 보지 못했다.
서서와 정호 사이에 기묘한 눈빛이 오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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