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1화
작은 뿔 고블린.
녀석들은 톨비아의 유저가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적이다.
작은 몸집에 무기라고는 조잡한 몽둥이가 끝인, 그야말로 튜토리얼 급 몬스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톨비아의 유저들은 결코 녀석들을 얕보지 않는다.
쉐에에에엑-!
마치 초승달을 연상케 하는, 길게 휘어진 검이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작은 뿔 고블린’의 목을 끊어내었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녀석의 머리가 하늘 위로 솟구쳤다.
푸슈우우우웃!
녀석의 목 끝에서 솟아오르는 피.
단번에 정호의 몸 이곳저곳에 묻어, 비릿한 철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정호는 그 피를 닦아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질렀던 검을 회수하여 솟아오르는 피 분수의 건너편을 노려보았다.
꽤나 신중한 태도.
어찌 보면 소심할 수도 있는 태도였지만, ‘작은 뿔 고블린’을 상대하는 데에는 최고의 판단이었다.
촤아아아악!
목에서부터 솟아오른 피가 정호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려내자.
“케엑!”
도대체 언제 다가왔는지, 정호의 코앞에서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텁! 휘익!
공중에 뜬 동료의 머리를 잡아 채, 정호에게 던지는 작은 뿔 고블린.
텅.
정호는 그 머리를 피하지 않았다.
녀석이 노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찰나의 순간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텅, 데구르르르.
쉐에에에엑!
조금 전 베었던 머리가 바닥에 뒹굴자마자, 녀석의 손에 쥐어진 조잡한 몽둥이가 세차게 휘둘러졌다.
꾸웅.
정호가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왼 발에 온 힘을 담아, 바닥을 향해 크게 발을 구른 정호가 고개를 숙였다.
휘이이이익-.
“끽?”
애꿎은 허공만 때린 몽둥이.
공중에서 무게중심을 잃은 녀석이 허둥대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압!”
쉐에에에엑!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정호가 아니었다.
왼발을 내딛으며 완전히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
관성의 법칙에 따라 세차게 내밀어지는 찌르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퀘엑!”
검은 단숨에 녀석의 주둥이를 통해 두개골을 관통했다.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절명해버린 작은 뿔 고블린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푸후...”
슥-, 슥.
그제야 정호는 숨을 몰아쉬며, 피를 닦아냈다.
‘작은 뿔 고블린’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작은 뿔 고블린은 약하지 않다.
단순히 능력치만으로도 일 성급 화신을 웃도는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다.
그러면서도 홀로 다니는 법이 없다.
최소한 2인 1조, 그 정도로 조심성이 많은 녀석들이다.
그런 주제에 동료애라고는 쥐뿔도 없어, 공격을 해올 때에는 아군을 미끼로 삼는 짓도 서슴지 않는 악독함을 선보인다.
정호가 슬쩍 자리를 옮겼다.
쉐엑-.
그러자 정호가 있던 자리 위를 주먹만한 돌멩이가 바람 소리와 함께 지나갔다.
“키드.”
짧게 키드를 부르자, ‘타앙’하는 소리와 함께 수풀 속으로 탄알이 발사되었다.
“켁!”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절명하는 녀석은 아니나 다를까 숨어있던 ‘작은 뿔 고블린’이었다.
정호는 녀석들의 사체를 빤히 쳐다보다, 코인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
분명 전투가 끝난 후의 달콤한 보상시간이었지만 정호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고작해야 한 마리에 ‘1코인’이라는, 적은 보상 때문이 아니었다.
“역시 작은 뿔 고블린이야...”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녀석들의 행동은 정호가 알고 있는 ‘톨비아의 작은 뿔 고블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딸랑.
코인을 엄지로 튕기는 정호의 입가에 미소 따위는 없었다.
* * *
종말의 전조로 나타난 고블린들.
그것이 정호에게 익숙한 ‘작은 뿔 고블린’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은 찝찝하기 그지없었지만...
적어도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쉐에에에엑-.
“끼륵!”
오히려 녀석들의 수법을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더욱 손쉽게 처리하고 있었다.
“124마리.”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사냥으로 얻은 코인은 무려 124코인.
고작 반나절 만에 단일 뽑기를 한 번 할 수 있을 정도의 코인을 얻었다.
‘나쁘진 않아.’
긴 시간 전투를 이어나갔지만, 생각보다 피로는 적었다.
비단 그것은 정호가 녀석들의 공격에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촤르르르륵-.
타앙! 탕!
이제는 도감작으로 인해 지능 수치가 100이 넘어간 서서.
노련한 창병을 대신하여 새롭게 파티에 참가한 키드의 지원은 전투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히려 고블린들을 찾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은 지경이었다.
타앙! 탕!
키드의 활약은 상당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저격을 하듯 쏘아대는 탄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궤도로 날아갔다.
리볼버가 한 번 불을 내뿜을 때마다, 작은 뿔 고블린들이 착실하게 쓰러져 나갔다.
분명 실력은 확실했다.
확고한 원거리 딜러가 있는 것만으로 파티의 안정성은 물론이고, 화력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영약을 먹일까?’
그 모습이 어찌나 마음에 들었는지, 두 번째 시련을 통해 얻은 민첩 증가 영약을 키드에게 먹일까도 생각할 정도였다.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삼 성급의 영웅 화신.
민첩 특화 화신답게 그 효율도 좋으리라.
분명 키울만한 가치가 충분한 녀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 다가오지도 못하네. 멍청한 녀석들!”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호들갑스러운 녀석의 말.
그 자체로는 괜찮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시각.
시야는 점차 좁아지고, 작은 소리도 멀리 퍼져나가는 시간대다.
“키드, 조용히.”
“녀석들 몇 마리가 몰려오든 상관없잖아요. 다 내가 처리 해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명령이다.”
“네에~.”
존대인지 반말인지 알 수 없는 대답.
심지어 뒤돌아서 ‘우리 주인은 겁쟁이인가?’하는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정호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이런 종류의 화신은 다루기 까다로운데.’
화신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반항을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언급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주인의 의사를 반드시 반영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반영웅이라...’
특히나 그것이 ‘삼 성 이상’의 영웅 화신들이라면 각각의 성격이 다르고, 자유의지도 지니고 있다.
서서의 경우에야 삼국지의 영웅답게 ‘군주’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에 군말없이 따르지만.
애초에 악당 출신인 빌리 더 키드는 그 경우가 다르다.
그 나이마저 열다섯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반항적인 면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발목을 붙잡힐 줄은 몰랐는데.’
게임에서라면 아무리 성능이 좋다한들 반항적인 영웅은 결단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새로 뽑고 말지.
하지만 이곳은 현실.
키드는 정호가 가진 화신 중 단순 화력만으로는 으뜸인 화신이다.
손쉽게 빼버리는 일은 할 수 없다.
‘어떻게 한다...’
정호가 키드의 처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허억! 허억! 주인님. 북동쪽 산에 무리지어 있습니다.”
서서의 스킬, 구원대를 통해 소환한 일 성급 화신, 겁쟁이 탐색가가 정호를 향해 달려왔다.
“무리?”
“네. 한 열 다섯 정도 되어 보입니다.”
꽤나 많은 수.
하지만 정호의 대답은 간결하고, 재빨랐다.
“바로 안내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
마무리 사냥을 하기엔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 * *
겁쟁이 탐색가의 뒤를 따라, 수풀을 헤집고 들어간 곳에는 미리 탐색한 것보다 많은 수의 작은 뿔 고블린이 있었다.
최초의 보고와는 달리 열다섯이 아닌, 스물에 가까운 숫자.
“...제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겁쟁이 탐색가는 땀을 닦아내며 정호에게 속삭였다.
정호는 손을 들어올려, 괜찮다는 표시를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범위 안이야.’
제아무리 탐색이 특기라고는 하지만 구원대로 소환된 겁쟁이 탐색가는 고작해야 일 성급의 화신.
그런 화신에게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정호는 애초부터 보고보다 작은 뿔 고블린이 많은 경우를 예상하고 있었다.
‘기습을 당하는 거라면 모를까.’
이미 녀석들의 뒤를 잡고 있는 마당이다.
기습을 하는 입장이라면 이보다 더 많은 수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
정호는 소리 없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대기의 신호.
기습이란 한 순간에 이루어져야 성공률이 올라가는 법이다.
‘키드의 탄알은 여섯 발. 그것으로 모조리 쓰러뜨리긴 어려우니 무력화 시키는 쪽으로...’
정호는 생각을 정리하고서, 서서와 키드에게 그 내용을 전달해주기 위해 입을 열려던 그 때.
타아아아아앙!
한 발의 총성이 모든 것을 망쳤다.
키드의 돌발행동.
물론 사격 솜씨는 훌륭하여, 단 한 발로 녀석들 중 하나를 저세상으로 보내기는 했다.
홱!
하지만 그 탓에 남은 열아홉의 작은 뿔 고블린들이 모조리 정호가 숨어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젠장! 서서, 녀석들이 다가오기 전에 쓰러뜨려!”
다급한 상황이었다.
정호는 키드를 탓하기보다는 곧장 지시를 내리고서 풀숲 밖으로 뛰쳐나갔다.
촤아아아악!
“끼에에엑!”
아직 상황 파악이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정호의 검은 정확히 작은 뿔 고블린 하나의 수급을 손쉽게 베어내었다.
타앙! 타앙! 타앙!
촤르르르륵-.
“끼엑!”
“끽!”
키드와 서서가 가세하자, 속수무책으로 작은 뿔 고블린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스물이나 있었던 고블린이다.
싸움에 있어서 인원수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법이다.
까앙! 깡!
정호 홀로 전위에 서서, 그 많은 뿔 고블린들의 공세를 막아섰다.
하지만 앞, 뒤, 양 옆.
마치 정호의 사각 지대를 노리고 날아오는 몽둥이들을 모조리 막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큭!”
결국 등 뒤에서 날아온 몽둥이에 얻어맞기까지 했다.
이를 깡 다문 정호가 외쳤다.
“키드! 속사(速射)!”
“우리 주인, 화끈하기도 하셔라.”
당장이라도 저 가증스러운 키드의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휘리리릭-. 철컥.
키드는 리볼버를 두어 바퀴 돌린 후,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It's High Noon.”
타타탕!
웃기지도 않을 대사와 함께 울려 퍼지는 세 발의 총성.
언제 빼어들었는지, 허리춤에 있던 리볼버가 이미 꺼내어져 손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
“..끼엑?”
“..끽?”
정호를 둘러싸고 있던 뿔 고블린은 자신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했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세 마리의 뿔 고블린.
“끼에엑?”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에 당황하는 녀석들을 정호가 놓칠 리가 없었다.
촤아악! 촤악!
정호도 검을 휘둘러, 두 마리의 뿔 고블린을 단숨에 처리했다.
그 사이 서서가 쓰러뜨린 것을 합치면 남은 고블린은 고작해야 아홉.
그제야 여유가 생긴 정호가 남은 녀석들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서서! 책략모방, 속사!”
“알겠습니다. 주군!”
휘리리릭.
서서의 손에 쥐어진 파초선이 순식간에 그 형태를 바꾸어, 키드가 쥐고 있는 콜트 M1877로 변모했다.
삼국지의 인물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우스꽝스러웠지만.
타타탕!
조용히 터져 나오는 총성은 결코 웃음을 자아낼 수는 없었다.
털썩, 털썩, 털썩.
곧장 쓰러지는 세 마리의 뿔 고블린.
“잘했어. 이제 마무리를...!”
남은 뿔 고블린은 이제 겨우 여섯.
이 정도 숫자는 정호가 홀로 전열에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타타탕!
한데, 다시 한 번 울리는 총성.
그에 고개를 돌리자, 아직까지도 총을 거머쥔 서서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는 리볼버를 허리춤에 꽂아 넣고 있었다.
타타탕!
이윽고, 재차 들려오는 총성.
단숨에 모든 고블린을 처리한 서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군. 상황이 급박한 지라, 제멋대로인 판단 하에 처리했습니다.”
“아니, 잘했다.”
당장이라도 서서를 얼싸안고 수염에다가 키스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야. 아저씨, 좀 쏘는데? 시간나면 나랑 대결이라도 해보지 않을래?”
리볼버를 돌리며, 다가오는 키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마주치자 잘못한 것은 아는지, 뜨끔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키드.”
“내, 내가 잘못한 건 없어. 나한테 주어진 명령은 고블린을 쏴 죽여라 뿐이었잖아...!”
정호는 키드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녀석의 말을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맞아. 제정신이 박혔다면, 발포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 정도도 알 수 있었겠지.”
“그, 그건.”
정호는 확신했다.
이대로 키드를 내버려두었다간, 언제고 큰 사고가 나고 만다.
“빌리 더 키드.”
단단히 화가 난 정호의 얼굴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다.
“꽤 자신 있는 모양인데...”
나쁜 아이에겐 사랑의 매를.
“따라와.”
교육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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