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20화
“네?”
정호는 세정의 시선이 자신의 손목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크게 당황했다.
설마하니 자신이 아직까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을 줄을 상상도 못했다.
‘강신 해제.’
황급히 손목을 털어내며, 속으로 외쳤다.
-이정호 / 29
-레벨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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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 8 민첩 : 7 체력 : 12 지혜 : 10 운 : 3
그러자 되돌아오는 능력치.
손목을 다시금 내밀자, 세정이 얼굴을 기울였다.
“음?”
“아무래도 오류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렇네요. 아무래도 초기 제품이라 그런 모양이에요.”
세정에게서 아직 의심의 빛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닦달하지는 않았다.
속으로나마 가슴을 쓸어내린 정호는 스마트워치를 풀어내고서, 세정에게 건네었다.
“부상자도 있으니, 취재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되겠습니다.”
“괜찮으세요?”
“네. 취재라면 이미 다른 랭커들한테서 귀중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럼...”
세정은 되돌려 받은 스마트워치를 다시금 정호를 향해 내밀었다.
“기본적인 통화 시스템은 모두 포함하고 있는 모델이니, 이쪽을 통해 연락을 주세요.”
“괜찮습니까?”
“이미 개발자들이야 다 알고 있고, 곧 발표도 할 거라서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정호 씨의 신상 때문이었어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설마하니 재벌가에 속한 이가 일반인의 신상을 염려할 줄이야.
정호는 미소를 내지으며, 스마트워치를 받아들였다.
“그럼, 감사히 쓰겠습니다.”
“되돌아가는 길은 괜찮으시겠어요?”
“아, 곧 데리러 올 녀석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위험한 상황이에요.”
“괜찮습니다. 녀석도 아스텔에서 꽤 유명한 유저였다더군요.”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다.”
한참이나 지속된 실랑이.
계속된 권유에도 정호가 한사코 거부하자, 결국 세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세정이 전화를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몰려드는 새까만 세단들.
부상당한 경호원들을 실고서 떠나는 데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태풍이 지나가는 듯 했다.
“하아...”
순식간에 홀로 남게 된 정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못할 짓이네.”
세정이 마법을 시전하고 있을 때.
경호원은 이미 옛적에 기절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세정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까닭.
당연하게도 정호의 조력이 있었던 탓이다.
정호는 부상당한 경호원들을 옮기고, 마법을 쏘기 좋도록 고블린들을 한 곳에 모아두기까지 했다.
“힘들어.”
그것은 단순히 고블린들을 쓰러뜨리거나, 죽이는 일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온몸이 쑤시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시체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시선이 향하는 곳은 마법에 의해 고블린이 사라진 장소.
반짝이는 물체가 그곳에 있었다.
‘이 정도 고생했으니, 이건 내가 챙겨야지.’
몬스터를 쓰러뜨린 경험치야 김세정이 다 가져갔겠지만.
그딴 게 무슨 소용인가.
정호에게 있어 경험치란 길가에 나뒹구는 빈 캔보다도 쓸모없는 것이다.
“얼마가 나왔냐.”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 * *
“그럼 어디...”
정호는 기대를 잔뜩 담고서 고블린이 사라진 장소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짜.”
손에 쥐어진 코인은 고작해야 ‘2코인.’
한 마리에 1코인 씩 준 격이었다.
‘이걸 어디 코에 붙여?’
대번에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분명 저급 몬스터이긴 했지만, 현실에 나타난 녀석은 그 궤를 달리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치만 따지면 영웅 등급의 화신에 비견되는 김세정이 고생을 할 정도지 않은가.
접근전에 취약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녀석들의 강함은 시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갖은 고생을 하고 얻은 보상이라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보상마저도 똑 닮았다라...’
하지만 그 코인을 손에 쥔 정호의 얼굴은 심각했다.
‘익숙해...’
시련에서보다 훨씬 강한 고블린들.
하지만 그 고블린을 상대하는 정호는 오히려 녀석들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 세울 수 있었다.
비단 정호가 유능한 용병을 강신시켰기 때문만은 결단코 아니었다.
마치 이미 겪어 본 것처럼.
정호는 녀석들의 다음 공격이 눈에 훤히 보였다.
‘톨비아의 작은 뿔 고블린에 가까워.’
녀석들의 이마에 솟아난 뿔도 톨비아의 고블린들에게 있었던 특징이다.
짜디 짠 보상마저도.
“아니겠지.”
불안함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정호는 그 판단을 뒤로 미루었다.
고블린은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는 괴물이다.
대게 덩치가 작고, 힘도 약하지만 사악한 종족.
게임에서는 ‘저레벨 몬스터’로 나타나는 녀석들.
뿔이 있고, 보상이 적다는 이유로 톨비아와 연관되어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다.
종말의 전조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호는 곧장 동호에게 연락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한 마리에 1코인.’
짜디 짠 보상이다.
다만 그 보상은 시련 때처럼 누군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나타난 몬스터라면, 코인을 지니고 있다.
마침 이곳에만 고블린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은가.
“키드, 서서 소환.”
이제는 거릴 것이 없다.
서서와 키드를 소환한 정호는 곧장 유능한 용병을 몸에 강신시키기까지 했다.
-이정호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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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워치에 나타나는 스탯창을 힐긋 바라본 정호가 미소를 내지었다.
해야 하는 일은 하나 뿐이다.
“코인 노가다는 오랜만인걸.”
* * *
몬스터가 현실에 나타났다.
그것은 비단 정호와 세정만이 겪는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 시련에도 ‘과금망겜’이야? 도대체 뭐하는 놈임? 아스텔하면서 저런 닉네임 본 적도 없는데
┖1800마리는 좀 선 넘었네. 바로 밑이랑 두 배 이상 차이남
┖몸이 세 개 인 거 아님?
-난 10마리도 못 잡았는데.
┖얘 세이프티 존에서 하루 종일 있었을 듯.
┖그건 니 소개구요.
두 번째 시련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사는 모두 그 랭킹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과금망겜만 제외하면 새로 올라온 유저들도 많네.
┖3위에 레이나면 게임에서 유명했던 백마법사잖아. 마법서 가격이 얼마나 비싼데 잔뜩 배웠던 그 유저.
┖길드에서 지원해준 거 아님?
┖┖솔로 유저임. 재벌 3세라는 소문도 있음.
특히나 이번 랭킹에는 새롭게 편입된 랭커들도 즐비해 있어, 사람들의 수다는 끝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가십거리를 떠들어대는 것도 얼마지나지 않아 그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야. 밖에서 비명 들림.
-밖에 몬스터 나돌아 다닌다.
┖구라치지마셈.
┖┖방구석에만 있지 말고 현실을 봐라.
-몬스터 맞는 것 같은데? 고블린임.
┖고블린?
-재난 문자 난리 났다.
현실에 나타난 몬스터의 존재는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사태는 비단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15:00~ 강서구 643번길 14. 돈어반식당 고블린 출현]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15:00~ 삼산동 재래 5길 주유소 앞 고블린 출현]
.
.
.
휴대폰에서 울리는 수없이 많은 재난 문자 메세지는 사태가 꽤나 심각함을 알렸다.
-야, 고블린 쓰러뜨리면 경험치 주나? 1업만 하면 전직 가능한데.
┖코인은 주려나. 나도 날카로운 롱소드 뽑기 직전이었는데 잘 됐다.
-잡아 본 놈 없음?
┖타자 칠 시간에 얼른 나가라.
┖┖너는 안 나감?
┖레벨 1임. 어떻게 나감?
┖┖ㅋㅋㅋㅋㅋ 고블린도 1인데 뭐, 나는 갔다 온다.
하지만 그 정체가 고블린 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고블린이라면 바로 어제 있었던 시련의 주인공이다.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고블린 한, 두 마리 정도도 쓰러뜨리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했다.
-다들 몸조심해라. 시련 아니다.
┖스틸이나 하지 마셈.
간혹 우려와 염려가 섞인 걱정을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고블린에게서 얻을 경험치와 코인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다.
“이, 이게 뭐야?”
하지만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출발한 이들이 쓴 맛을 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키륵! 키륵!”
“키키키킥.”
시련과는 달리, 정형화되지 않은 패턴.
동료의 몸을 숨기고, 등 뒤에서 덤벼드는 악랄함.
무엇보다 시련과는 전혀 다른 강인함을 보여주는 고블린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으, 으아아아!”
결코 쉬이 보지 말았어야 할 적들을 얕본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속출하는 부상자들.
사망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이게 다 뭐야. 어떻게 된 거냐고!”
고작해야 ‘전조’에 불과한 고블린들의 침공.
그것은 사람들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앞 다투어 고블린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은 지옥과도 같은 풍경에 필사적으로 걸음을 되돌렸다.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나타난 몬스터와의 전투는 절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밖에 계시다면, 가까운 대피소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고블린들을 향해 직접적인 접촉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말’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1소대 앞으로!”
타타타탕! 탕! 탕!
거리를 가득 메우는 총성.
과연 징병제 국가라고 할까.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군인들이 시가지로 나와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실제 상황이다! 탄피 줍는 멍청이들은 모조리 잡아다가 영창 보낼 테니 각오해!”
타타타탕! 탕! 탕!
현대 인류 문명은 수없이 많은 전쟁에 의해 피와 살 위에 세워졌다.
그것이 제 아무리 대인(對人)에 특화된 일이라 할지라도.
몬스터에게 통용되지 않을 리가 없다.
“키엑! 키엑!”
“케에에엑!”
K2 소총이 뜨겁게 타오른다.
총 따위를 무시하며 달려오는 강력한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분당 700발을 뿜어내는 5.56mm의 탄알들을 모두 받아내고서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와. 살았다! XX!
-저것들 경험치가 몇인데. 아. 말뚝 박을걸!
┖정신 나갔음?
┖저걸 보고 경험치 타령하는 거 보니까 게임 중독자인 게 틀림없음.
┖┖예비군 소집 같은 건 안 하나? 나도 총만 있으면 당장 나갈 텐데.
그야말로 압도적인 화력.
몬스터가 나타난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한데도 이제는 단발적인 발포음만이 울려 퍼질 뿐, 소음은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타앙! 타앙!
하지만 소탕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 * *
타아아앙!
총성은 정호가 위치한, 도심에서 꽤 멀리 떨어진 카페의 근처에서도 울려 퍼졌다.
다만 그것은 K2 소총에서 흘러나오는 발포음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도.
타아아앙!
그 탄알을 뿜어내고 있는 주인은 군인이 아니었다.
“사람은 총에 맞으면 죽어.”
고작 열다섯이나 될 법한 자그마한 소년.
그의 손에는 제대로 발포가 될지 염려되는 구식의 리볼버가 걸려 있었다.
“키에에엑.”
타앙!
단 한 발에 고블린의 목숨을 빼앗는다.
“뭐,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킥킥.”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서부시대의 소년왕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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