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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7화 (18/144)

# 17화

# 17화

“선배님 오셨어요?”

“그래.”

정호는 회사 앞에서 대기 중인 동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녀석은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장비란 장비는 다 챙기고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대단한 놈이긴 하네.’

순수하게 감탄했다.

종말이 다가온다는 터무니없는 말과 함께 시련이 두 번이나 있었다.

한데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출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밝은 얼굴과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인터뷰 섭외 자체는 되어 있더라고요. 연락하니까 곧장 나오겠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아무것도 몰랐을 때야 아스텔의 막대한 자본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지만.

천사의 존재나 시련 같은 비정상적인 일을 벌이는 녀석들이다.

새삼스레 무슨 일을 벌여 놨는지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처음은 누구야? 꽤 인원수가 많던데.”

랭커라고는 하나, 전 세계인이 즐기던 게임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랭커가 있었고, 그들 전부를 인터뷰하기란 무리가 따랐다.

“제가 당연히 다 추려 놨죠.”

동하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서너 장의 종이를 건네었다.

대상자는 고작 셋.

여자 하나와 남자가 둘이었다.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 내용을 확인한 정호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꽤 열심히 했는데.”

“제가 게임을 얼마나 했는데요. 모르는 랭커가 없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가슴을 탕탕 두들기는 동하.

정호는 새삼스레 녀석이 아스텔 내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랭커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파고들었으면 아스텔의 내부사정 정도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타시죠. 약속 잡아 놨으니, 금방 나올 겁니다.”

“그래.”

탁.

정호는 동하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아들고서, 차에 올라탔다.

한 모금 들이켜자, 시럽을 꽤나 많이 탄 것인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하지만 피곤함을 달래는 데에는 딱 좋은 수준이었다.

‘부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역시나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동하였다.

“솔직히 기대한 랭커는 다른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아쉽긴 하네요.”

“다른 사람?”

“네. 지금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랭커들이 많잖아요? 그 때문에 정보도 사실 많이 풀려 있고요.”

“그렇지.”

스으읍.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정보의 양은 꽤나 방대했다.

굳이 그들에게서 얻을 정보라 해 봐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이번에 만날 사람들이 꽤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사람만 선정했는데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빠져 있더라고요.”

“중요한 사람?”

“네. 비정상적인 랭커가 하나 있잖아요.”

스윽-.

동하가 정호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이번에도 압도적이에요.”

화면에 띄워져 있는 내용은 역시나 아스텔 시련의 랭킹 페이지였다.

-1위 : 과금망겜플레이어 / 1841마리 처치

-2위 : karien / 840마리 처치

-3위 : 레이나 / 620마리 처치

“시련이 두 번에 걸쳐서 총 20분이었으니까...초당 한 마리 넘게 고블린을 잡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니까요.”

“푸학!”

정호의 입에서 커피가 뿜어져 나왔다.

* * *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간 이후.

취재 대상자를 만난 장소는 꽤나 특이한 장소였다.

“끄응...차! 오셨습니까?”

꽤나 넓은 장소의 헬스장.

한 사내가 벤치프레스를 하며 맞이했다.

끼이이이-. 끼이-.

한데 양옆에 끼워진 무게가 심상치 않았다.

어찌나 무거운지 봉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이 기이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터어어어엉!

살짝 내려놨을 뿐인데도, 거대한 굉음이 일어났다.

쏟아지는 땀을 닦아 낸 사내가 정호와 동하를 향해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박철우라고 합니다.”

“아, 네. 이번 취재를 맡은 김동하라고 합니다. 이쪽은 선배님이신 이정호 선배구요.”

“반갑습니다.”

정호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철우가 자리한 벤치프레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500KG? 괴물이네.’

그 무게는 인간이 들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신기록이 488KG일 텐데, 그것을 가뿐히 넘겨 버린 무게였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아스텔의 시스템 덕분일 것이다.

“이야, 힘 스탯이 몇이기에 이런 걸 가뿐하게 들어 올리십니까?”

아니나 다를까.

동하 또한 그 무게를 확인한 것인지 감탄을 터뜨리며 질문을 내밀었다.

“그건, 취재에 포함된 질문입니까?”

“어...아직은 아닌데요.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습니까...음.”

한데 가벼운 질문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동하는 고민을 하는 철우를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

“아뇨, 취재에 대한 질문으로 하죠.”

“그렇습니까. 받아먹은 돈이 있는데, 알려 드려야 겠지요.”

정호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텔이 어떻게 랭커들을 섭외했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돈이었다.

“사실 이게 제가 랭킹에 들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합니다.”

텅, 텅.

철우는 벤치프레스를 두어 번 두들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동하는 이미 수첩을 꺼내어 들고서, 철우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게임에서는 한방박살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랭커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운 수준이죠.”

“아뇨, 그 정도면 충분히 랭커시죠. 시련 랭킹에도 320위에 있으신데요.”

정호는 철우의 말에 눈을 빛냈다.

어째서 동하가 철우를 취재 대상으로 선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방박살이라면...’

아스텔이란 게임에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호는 철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악마의 대검. 버서커 클래스. 110492위, 한방박살.’

이전 아스텔의 상점에서 확인했던 악마의 대검.

그것의 주인이 눈앞에 있었다.

확실히 게임에서 인지도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랭커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시련 랭커에 들었다라.’

세계각지의 강자들이 이름 올린 시련 랭킹.

모두가 같은 ‘1레벨’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눈에 띄는 성적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시련 랭킹이라면, 세계에서도 고작해야 2,000명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동하가 호들갑을 떨어 대며 띄워 주었다.

철우는 그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그 비결을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러려고 오신 거 아닙니까?”

조금 전과 달리, 흔쾌히 알려 주겠다는 철우의 말에 정호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단순한 부류였다.

“제 레벨은 10입니다. 하지만...”

철우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들어 올리던 500KG의 바벨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힘 스탯은 60입니다. 체력은 20이구요.”

“네?”

“응?”

정호와 동하의 입에서 동시에 의문이 터져 나왔다.

분명 10레벨이라면, 추가 능력치는 처음을 포함해서 55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힘 스탯이 높았다고 가정하더라도, 대부분의 추가 능력치를 힘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체력 또한 높았다.

“그리고, 이게 제 비결입니다.”

툭, 툭.

바벨을 계속해서 두들기며 미소를 내짓는 철우.

“아.”

“아.”

그 정보가 무엇인지 정호와 동하도 알아채기란 충분했다.

“물론 제가 힘 스탯에 전부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능력치를 붙일 수 있습니다. 체력처럼 낮은 수치일수록 잘 오르더군요. 벌써 ‘3’이나 올랐습니다. 초반에 이 정도 수치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패를 보였으니,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떠들어 대는 철우.

그에 정호의 얼굴이 살짝 무너졌다.

‘이런 망할.’

설마하니 초기 능력치 외에도 추가적으로 ‘단련’을 통해 스탯을 올릴 수 있다니.

아직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상승폭이 아무리 적다하더라도, 유의미한 수치였다.

‘생각보다 유저들 수준이 빠르게 오르겠어.’

아스텔 시스템에 대한 시기심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 번의 시련이 있었지만 아직 고작해야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다.

한데, 그들은 벌써 삼 성급의 영웅 화신에 비견될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 능력치를 스스로 올릴 수도 있다.

삼 성급 화신인 키드를 얻어 내고 좋아하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다.

‘이러면 코인을 벌기가...’

종말이 다가오는 마당에 다른 이를 견제하려는 스스로가 미워졌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호는 최대한 그들보다 높은 성적을 쟁취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더욱 많은 코인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운동이라, 대부분 유저들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알게 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굉장히 좋은 정보네요.”

“낮은 스탯일수록 그 효과가 좋으니, 초반에 알지 못하면 알아채기 힘들 수도 있죠.”

“그럼 이번에는...”

이어지는 형식적인 질답에서 더 이상 건질 것은 없어 보였다.

고블린의 패턴이나, 몬스터들의 특성 같은 내용은 대부분 퍼져 있는 내용이 다수였다.

간단한 작별인사와 함께 헬스장을 나온 정호와 동하는 곧장 차로 돌아갔다.

탁.

“선배님. 꽤 괜찮은 정보였지요?”

“...그래.”

정호의 얼굴에는 심란함만이 가득했다.

* * *

두 번째 취재 대상을 찾으러 간 곳 또한 참으로 특이했다.

랭커들이란 모두가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계십니까?”

“네, 있습니다.”

화답하는 목소리에 정호와 동하는 사람을 찾으려 애썼다.

이십 대 초반의 사내가 취재 대상이었다.

한데 아무리 찾아도 목소리만 들릴 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을 좀 켜도 되겠습니까?”

한 평 남짓한 원룸 안은 모든 커텐을 쳐둔 것인지,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했다.

“아니요. 안 됩니다. 지금 중요한 순간이라서요.”

“네?”

뜬구름 잡는 소리만 되돌아오기만 할 뿐.

정호와 동하는 한없이 어두운 어둠 속에서 사람을 찾으려 애썼다.

한데, 그 한 평 남짓한 좁은 방 안에서 어디에 숨은 것인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취재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아, 상관없습니다.”

결국 어둠 속에서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지금 이렇게 해 둔 까닭이 있겠습니까?”

“음...바로 그것부터 물어보시나요?”

과연 동하는 눈치가 빨랐다.

일반적으로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방안을 캄캄하게 만들어 둘 이유 따위는 없었다.

녀석이 시련 랭킹에 들 수 있었던 까닭도 이와 같은 방식이 이유일 터다.

“뭐...돈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죠.”

“하하, 부탁드립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랭커로 있을 수 있는 이유나 다름없는 정보를 흔쾌히 풀다니.

아스텔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다주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아마 지금 시점에서 히든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뿐일 겁니다.”

“히든 직업이요?”

“암살 계열인데, 전직 방법에 대한 자세한 방법은 알려 드리기가 좀 그렇네요. 아무리 돈을 줘도 그건 안 돼요. 어차피 유니크 직업이라, 먼저 전직해서 이제는 알아도 못하니까요.”

“네. 이해합니다. 그건 당연한 거죠.”

“게임이었을 때와 같아요. 특수 조건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현실에서도 똑같이 히든 직업으로 전직이 가능해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말에 정호의 얼굴이 다시금 와락 일그러졌다.

‘도대체 뭐야?’

능력치를 올릴 수도 있고, 히든 직업으로의 전직도 가능하다.

이런 정직한 시스템은 다가오는 종말에 착실하게 대비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얼굴 찡그리셔도 안 가르쳐 줍니다.”

“네?”

정호는 화들짝 놀랐다.

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표정까지 알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어떻게 생기셨는지는 몰라도, 표정이 바뀌는 정도는 알 수 있거든요.”

점입가경.

스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더 이상 정호는 아스텔의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관두었다.

비교를 하다간 끝도 없다.

결국 동하가 이전에 했던 말처럼 아스텔은 ‘갓겜’이고, 톨비아는 ‘똥겜’.

그뿐이었다.

달칵.

한참이 지나, 문답이 끝나고서야 방 안에 불이 켜졌다.

“후, 죄송합니다. 얼굴을 보고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조금 남았었거든요.”

드디어 불이 켜지며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칼날귀족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김세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동하입니다.”

“이정호입니다.”

때늦은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한데.

‘이런.’

김세오의 얼굴을 확인한 정호에게 낭패의 기색이 서렸다.

설마하니 동일인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오가 천천히 다가오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 혹시...”

정호는 김세오란 인물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뵌 적 있지 않나요?”

칼날귀족, 김세오.

녀석은 두 번째 시련에서 만났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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