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6화
삼 성.
영웅이라 불리는 화신들의 경계선.
고작해야 이 성보다 별이 하나 더 많을 뿐인 녀석.
하지만 그 하나의 차이가 가지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영웅.’
이 성급 화신과 상위의 화신의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다.
정호가 가진 사 성급의 화신, 서서 원직.
그 누구나 알 법한 삼국지의 영웅이지만, 이 성급의 화신인 노련한 창병은 이름조차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나타난 삼 성급의 화신은 그런 서서와 노련한 창병 사이에 있는 존재.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름’을 내보일 수 있는 영웅에 해당하는 이라는 말이다.
고작해야 이름에 불과했으나.
그 이름은 스스로를 개별적인, 독자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증빙 자료나 다름이 없다.
‘서서에 비하면 확실히 떨어지지만.’
당연한 일이다.
삼 성급의 화신은 분명 ‘영웅’에 당하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지만.
그 활약상이나, 유명도에서 사 성급의 화신에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영웅이나, 영웅보다 떨어지는 반영웅.’
반영웅.
그렇게 속으로 곱씹던 정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눈앞에 있는 이 화신만큼 반 영웅에 어울리는 녀석은 없었다.
그 의미는 달랐지만 말이다.
“윌리엄 헨리...”
정호는 눈앞에 있는 이의 이름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마지막의 마지막.
길게만 느껴졌던 합성 시간처럼, 녀석의 이름도 참으로 길었다.
“...맥카티 주니어.”
삼 성급의 화신은 영웅이다.
다만, ‘윌리엄 헨리 멕카티 주니어(William Henry McCarty, Jr)’는 결코 영웅이라 칭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정확히는 반영웅(反英雄).
그도 그럴게.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녀석은 서부 개척시대, 무법지대에 존재했던 살인마이자 범법자.
세계 6대 살인마 중 하나였으니까.
* * *
‘빌리 더 키드’는 영웅이 아니다.
애초에 영웅이라고 받들어질 만한 이가 아니란 말이다.
그의 이름에 ‘소년왕’이나, ‘무법자’나 하는 타이틀이 붙어 있기는 했으나.
아무리 포장을 한다 한들, 그는 그저 범죄자.
연쇄살인마에 불과한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드가 서부 문화의 전설이 되어 있는 까닭은 당연하게도 그의 행적 덕분이다.
‘전설적인 총잡이.’
서른 명의 총잡이들을 모조리 권총 승부로 쏴 죽임으로 얻은 칭호.
부풀려져 있는 소문일 것이 분명했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가 없는 법이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서부 개척시대의 흔하디흔한 범법자가 권총 한 자루로 이름을 날렸다는 것.
그것은 출중한 실력의 반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충분해.’
그리고 그 사실은 희소식이었다.
정호에게 있어서는 빌리 더 키드가 범법자든, 연쇄살인마든, 인성이 글러먹었던.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관심이 있는 점이란 그가 얼마나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오로지 그뿐이었으니까.
-빌리 더 키드☆☆☆
-힘 : 8 체력 : 9 민첩 : 75 지능 : 10
-[+]
‘...!’
곧장 그 능력치를 확인한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힘과 체력, 지능 스탯은 분명 실망할 만한 것이었으나.
단 하나 특출난 능력이 있었다.
‘민첩이...75이라고?’
어느 화신이건 간에 특화된 능력은 있기 마련이다.
서서가 지능에 특화되어, 85라는 사 성급 화신 중에서도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호가 놀란 이유는 특화된 쪽이 ‘민첩’.
그것도 아주 비정상적인 수치였던 탓이다.
‘서서라면 캐스터니까. 지능 수치가 높을 수밖에 없어. 캐스터는 지능에 특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스탯이 낮은 거니까.’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는 클래스는 다른 경우다.
모든 화신은 하나에 특화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키드처럼 이토록 편중된 스탯을 가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75’이라는 특화 수치는 삼 성급의 화신에게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특수 화신.’
특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스탯이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특화된 스탯만큼은 그 등급을 벗어나는 화신.
유저들은 하나의 편중된 스탯을 가진 화신을 그리 불렀다.
‘과연...속사(速射)의 키드라 이거지.’
캐스터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체력은 걸림돌이나 다름없지만, 그것을 커버할 정도의 높은 민첩이 있었다.
‘그렇다면...’
정호는 입맛을 다셨다.
어째서 삼 성급 이상의 화신을 얻기를 원했던가.
그들은 이름 없는 자들과 달리, 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킬 확인.’
떠오르는 스킬은 하나.
서서는 사 성급의 화신이기에 두 개의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나, 녀석은 하나뿐이었다.
삼 성급의 화신인 키드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확인한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속사(速射)]
-리볼버를 빠르게 재장전하여, 여러 발의 총탄을 단번에 발사한다. 민첩 수치에 따라 정확도와 그 장탄수가 증가한다.
└현재 : 정확도 75%, 3발. (민첩 75)
과연 특수 화신이라고 할까.
민첩에 특화된 키드의 힘을 최고의 효율로 뽑아낼 수 있는 스킬이 붙어 있었다.
“좋아...!”
정호의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분명 노련한 창병은 정호가 상상했던 이상의 힘을 내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디까지나 노련한 창병은 전방에서 적들을 막는 카드였다.
정호가 가진 최고의 카드는 ‘서서’다.
하지만 서서는 화력에 집중된 캐스터가 아니다. 지원형에 가까운 포지션.
본래 정호는 그 서서를 최대 효율로 뽑아낼 수 있는 ‘방패’를 얻고자 했었지만.
‘현자의 목걸이를 얻은 이상, 그럴 필요가 없지.’
‘단죄 - 상시 원거리 데미지 증가'라는 좋은 특수 능력이 붙은 현자의 목걸이의 존재.
정호는 적을 막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압도적인 힘으로 무너뜨리는 편이 더 안정성이 낫다고 판단했다.
빌리 더 키드라는 존재는, 정호의 파티에서 확고한 딜러의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했다.
“...쯧.”
정호는 혀를 찼다.
그토록 바랐던 원거리 딜러인 키드였지만, 걸리는 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검을 쓰는 클래스가 아니니, 강신시킬 리는 없겠지만.’
여전히 정호는 유능한 용병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강신 시 120%의 공격력 증가 효율은 이미 지난 시련을 통해 확인했다.
서서와 키드 외에 영웅 이상의 화신을 얻지 않는 이상에야 유능한 용병을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제쳐 두고서라도 정호는 키드를 강신시킬 생각이 없었다.
‘키드 쪽은 강신시키기가 꺼려진단 말이지.’
제아무리 경험 그 자체가 힘이 되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그 ‘빌리 더 키드’다.
살인자와 범법자로 유명한 녀석의 기억을 겪는 것은 정호가 바라지 않는 일이다.
“빌리 더 키드.”
그래도 녀석의 얼굴쯤은 알아 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키드를 불렀다.
그러자.
휘리리릭, 탁.
리볼버 한 정을 멋스럽게 돌리던 한 사내가 튀어나왔다. 아니, 사내는 아니었다.
그렇기엔 너무도 작은 체구였으니까.
“...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잠시간 착각을 했다.
이 모든 시스템은 게임, ‘톨비아’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화신이라 하여 다를 것은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라도 있나? 인간이란 동물은 대부분 총에 맞으면 죽거든.”
애용했다던 콜트 M1877, 41구경 리볼버를 겨누며 나타나는 키드는 고작해야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게다가 금발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꽤나 잘생긴 축에 속했다.
‘곱상하게 생긴 건 참 마음에 안 드네.’
지금껏 유능한 용병이나 노련한 창병처럼 일 성, 이 성급의 화신들만 봐 왔기 때문이리라.
심지어는 사 성급의 서서라 할지라도 중후한 매력이 있을 뿐, 큰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더욱 크게 와닿았다.
톨비아는 어디까지나 수집형 게임.
결국 이런 종류의 게임은 유저들의 취향과 성향에 맞춰야 매출을 올리는 법이다.
키드는 아마도 여성 유저에게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다.
‘그래. 이런 게임이었지.’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 중 독보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던 ‘포세이돈’조차도 남성형 화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유저에게 배척받지 않았던가.
정호는 키드를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돌아가라.”
“흥, 김 빠지게 하는군.”
휘리리리릭.
“...하!”
새침스러운 콧바람과 함께, 자신의 리볼버를 화려하게 돌리며 사라지는 키드.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정호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여성형 화신은 하나도 없네.’
그토록 방대한 화신들 중, 자신이 뽑은 화신은 얄궂게도 죄다 남성형 화신이었다.
“하나쯤은 뽑으면 좋을 텐데.”
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원하기는 했다.
땀 냄새 나는 남정네들 사이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만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눈요기나 하자고 하는 말이나, 실없는 농담으로 가볍게 내뱉은 것만은 아니었다.
‘여성형 화신은 좋은 녀석들이 많으니까.’
종말이 다가온다.
기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능’이었다.
* * *
“...”
시간은 벌써 아홉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평소와 같았으면 벌써 출근을 하고도 한창 일과에 열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호는 아직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두 번째 시련.
게다가 뽑기와 합성까지.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었던 정호다.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에는 잠만큼 좋은 보약도 없다.
드르르륵- 드르륵-
“...음.”
그런 정호를 깨우는 진동이 있었다.
“...뭐야?”
잔뜩 찡그릿 눈으로 휴대폰을 확인하자.
-오후 12시까지 출근하시랍니다. 김동하.
회사로부터의 출근 독촉이 있었다.
“아, 씨. 뭐라는 거야.”
곧장 짜증스러움이 확 튀어나왔다.
시련이니 뭐니 해서 돌려보낼 때는 언제고 이제는 출근 독촉이라니.
‘아예 때려쳐 버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쥐꼬리만 한 월급이다.
이제는 ‘종말’이라는 좋은 변명거리도 있었다.
지금 이 시점까지 꼬박꼬박 회사에 출근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
‘때려치자.’
그런 굳은 마음을 안고 정호는 동하에게 통화를 걸었다.
-아, 선배님.
“어, 그래.”
곧장 밝은 목소리의 동하가 화답해 주었다.
근처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이미 회사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정호는 곧장 본론을 꺼내었다.
살짝 짜증스러움을 담은 것은 덤이다. 녀석에게 화를 내야 할 것은 아니었지만, 심기가 불편한 점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저도 방금 연락받고 출근했어요. 저하고 선배님한테 일거리가 있다고 해서요.
“일거리? 그런 게 어디 있어?”
아스텔이라는 회사의 막대한 자본력 밑에서 기생하던 작은 광고 대행 회사다.
그런 게임, 아스텔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일이 생길 리가 없었다.
-아, 취재 좀 하고 오라던데요?
“취재라면...뭐, 인터뷰? 그딴 걸 우리가 왜 해?”
얼토당토않은 동하의 말을 듣자마자, 정호는 사직서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광고 회사가 이제는 기사라도 쓸 기세였다.
일이 떨어지니, 이곳저곳 손대는 것이 분명했다.
“난 안 갈련다. 회사에도 그만둔다고 해야겠다.”
정호의 저울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종말에 대비해, 당장 정비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이어진 동하의 말에 의해 잠시간 미루어졌다.
-아뇨, 잠시만요. 선배님. 저도 선배님처럼 똑같이 생각했는데요. 이게 좀 흥미롭거든요.
“뭔데?”
-아스텔에서 직접 의뢰했다고 하더라고요. 잠시 문자 하나 보내 드릴게요.
“아스텔?”
정호가 토끼 눈이 되었다.
갑자기 아스텔은 왜 나오는가.
이미 게임이 아니게 된 그 아스텔이 다시금 접촉을 시도했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게 다 뭐야?”
정호는 곧장 녀석에게서 날아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서 되물었다.
보내온 내용에는 여러 인물들의 인적 사항이 들어 있었다.
“이 사람들을 취재해서, 그 내용에 대해 광고 해 달라고. 그렇게 의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람들?”
다시금 그 인적 사항을 찬찬히 확인했다.
인적 사항에는 나이, 이름과 같은 평범한 내용도 남겨 있었지만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레벨, 랭킹, 시련 랭킹.”
-네. 아스텔에서 밖에 모르는 인적 사항이죠.
“알 만해.”
아스텔의 의뢰라는 점은 특이했지만, 녀석들이 원하는 바는 알기 쉬웠다.
랭커들에게서 정보들을 얻어, 그것을 일반 유저들에게 뿌리라는 의미였다.
그 내용은 분명 한낱 광고 대행 회사가 할 일거리의 범주는 넘어섰다.
‘나쁘지 않아. 아니, 좋아.’
하지만 정호는 미소를 지었다.
랭커들에게서의 정보라면, 정호 또한 원하는 바였다.
애초에 정호는 아스텔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한다.
고작해야 레벨 12까지 키워본 것이 전부.
아스텔의 시스템을 부여 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음 시련에 대한 준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기대감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정보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당장 갈게.”
저울이 반대로 기울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