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15화
게임사에서 뽑기 시스템이란 양날의 검이다.
유저가 원하는 영웅을 뽑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에 매출은 급상승하지만.
많은 돈을 쏟아 붓고 나서도 실패한다면, 아무 것도 남지 않기에 금세 떠나간다.
그렇기에 뽑기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수집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도감을 만들어 유저에게 무언가 건진 것처럼 포장시키거나.
아무 쓸데도 없는 낮은 등급의, 중복으로 나온 것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화신 합성.’
톨비아에서는 화신 합성이 그것과 같았다.
다만 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화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이후, 같은 화신이 등장해 ‘중복’이 된다면.
세 개의 중복 화신들을 합성시켜, 다음 등급의 화신 하나를 만드는 방식이다.
‘베이스는 충분해.’
Base. 직역하면 기초, 기반이라는 뜻이고.
정호가 내건 말도 그리 다른 의미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화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제한을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중복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지난 ‘8000’이나 되는 코인들은 허투루 낭비되지 않았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기초 공사 위에, 중복 화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 성급 중복이 열 하나에. 이 성급이 셋.’
팔천 코인이나 사용한 것치고는, 꽤나 비루한 성적이었지만 정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삼 성 저격.’
원하는 것은 삼 성급의 화신이었다.
현재 정호가 사용하는 화신은 이 성급의 유능한 용병과 노련한 창병, 그리고 사 성급의 서서다.
고작해야 별이 하나 늘어날 뿐이지만, 그 의미는 정호에게 남달랐다.
비단 그것은 삼 성급 화신부터 이름 난 녀석이라는, ‘영웅’급의 화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더욱 큰 의미다.
‘서서를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어.’
정호의 최대 전력인 서서 원직.
그는 분명 도움이 되고는 있다.
지난 시련에서도 서서는 구원대를 이용하여, 홀로 동굴의 입구를 세 개나 막아낸 위용을 보여주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서서의 존재 의의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 성급이라는 이름이 운다.
‘책략모방.’
서서의 스킬 중 하나.
가진 화신들의 스킬을 모방하여, 사용하는 그 능력은 어째서 서서가 무과금의 꽃, 무과금의 희망이라 불렸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을 제대로 이끌 수 없었던 것이 정호의 현실이었다.
‘삼 성급의 화신이 없으니까.’
고작 삼 성급의 화신이 추가되는 것 하나만으로 전력은 배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푸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호에게 있어서, 이번 합성 저격은 앞으로의 길이 결정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
정호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라앉았다.
“화신 합성.”
[화신 합성]
- 재료가 되는 화신 셋을 사용합니다.
“재료. 평범한 용병, 평범한 창병, 평범한 궁수”
- 일 성급 화신 셋을 재료로 삼아, 이 성급 화신으로 합성하시겠습니까?
정호의 고개가 지체 없이 끄덕여졌다.
“물론.”
* * *
일 성급 화신이 이 성급이 될 확률은 30%.
이 성급 화신의 합성 확률은 20%.
삼 성급 화신의 합성 확률은 10%.
높은 등급의 화신으로 갈수록, 그 확률은 줄어든다.
오 성급 화신에 이르러서는, 셋을 소모하고도 육성급 화신을 뽑을 확률은 채 3프로가 되지 않는다.
고개가 절로 내저어지는.
확률에, 확률에 의한, 확률을 위한 게임이 톨비아다.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음, 다음.”
정호는 화신 합성을 대수롭지 않게 진행했다.
지금 당장 실패해도, 큰 의미가 없다.
‘진짜는 이 성부터야.’
삼 성을 도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그 기로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정호의 방식은 조금 이상했다.
“일 성급 확률이 30프로. 보너스 수치를 합치면 45프로인가?”
VIP 보너스로 얻은 합성 확률 증가 10%.
그리고 업적, ‘운이 나쁘군’의 효과로 이 성급 화신의 합성 확률 증가 5%.
합쳐서 45프로.
분명 해 볼만 수치였으나.
“이번에 실패했으니, 구십. 그럼 다음엔 붙겠네.”
합성 성공 확률 45%.
실패했으니, 다음은 90%.
흔한 도박사의 오류를 간단히 건너고 있는 정호의 방식은 실로 어이가 없는 것이었으나.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이 성급의 화신, 미숙한 총사가 소환되었습니다.
“그래, 알고 있어. 이건 붙어야지.”
놀랍게도 그 방식은 잘도 들어맞았다.
늘 그렇듯, 정호만의 징크스였다.
정확히는 ‘무심하게’라는 키워드를 활용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화신 합성.”
착착 진행되는 일 성급의 화신 합성.
정호의 노하우 아닌 노하우가 먹힌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는지.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이 성급의 화신, 노련한 창병이 소환되었습니다.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이 성급의 화신, 숙련된 방패병이 소환되었습니다.
“그렇지. 이거지. 이게 합성이지.”
이어지는 합성이 모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확률로만 보아도 네 번중 세 번, 75프로에 달하는 좋은 흐름이었다.
그 뿐인가.
‘모두 중복...!’
놀랍게도 모두 중복이 떠주는 바람에 이 성급의 중복 화신이 모두 일곱에 달했다.
‘기회가 두 번.’
삼 성급 화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삼 성으로의 합성은 20프로의 기본 확률, 거기에 VIP 합성 확률을 더 한다면 30프로의 확률이다.
높은 확률은 아니다.
분명 실패해도 할 말이 없는, 낮은 확률.
‘이거면 할 만 해.’
하지만 정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충분히 할 만한 확률이라 판단했다.
‘두 번이면 60프로고.’
물론 그것은 징크스에 따른.
정호만의 자기 위로에 따른 확률이었지만.
그럼에도 반이 넘는 확률은 정호의 마음에 안식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흐름은 좋아.’
45프로의 확률을 연속 세 번 뚫었다.
그것만으로도 무려 ‘1.5625%’의 확률이다.
고작해야 30프로의 확률을 뚫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합성의 흐름은 분명 거대한 파도를 이끌고 있었다.
“노련한 창병, 숙련된 방패병, 미숙한 총사.”
화신 하나, 하나를 창에 가져다 놓는 정호의 손은 사정없이 떨렸다.
창병을 위에 놓기도 하고, 총사를 바꿔 끼우며 순서를 바꿔본다.
아예 별을 그리듯, 이리저리 옮기며 육망성을 그리기도 한다.
타악.
한참이나 시간 낭비를 하던 정호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화신 합성!”
뚜르르르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운에 모든 것을 맡긴 정호의 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염없이 합성 창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이 성급의 화신, 노련한 창병이 소환되었습니다.
“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아무리 처참하더라도.
* * *
‘진정해. 이정호.’
정호는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며,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합성 실패에 의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당장이라도 거실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을 던져버리고, 식탁을 부수어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럼에도 참을 인을 손바닥에 새겨가며, 화를 억눌렀다.
‘아직,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실패를 한 번 했으니까. 이제 육십 프로인 거잖아. 그렇잖아. 어.’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치솟는 불길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정호도 멍청이가 아니기에 알고 있다.
삼십 프로가 두 번이라고, 육십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독립시행이라는 것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스스로를 속일 생각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서는 현실에 눈을 뜰 수밖에 없다.
‘나중에 할까?’
절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평균회귀라는 늪이 서서히 정호의 발을 잠식시키고 있었다.
이대로 강행했다간, 잠도 자지 못한 채 울부짖다 시련이든 종말이든 맞이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언제든 삼 성급의 화신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라도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최후의 보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니까.
“웃기지마...”
하지만 정호는 고개를 사정없이 내저었다.
칼을 꺼내어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실패를 한다고 쳐도, 지금 모두 끝내놔야 마음이 편안한 법이다.
‘앞으로 삼 주 후면 새로 뽑기를 할 수 있잖아.’
한 달마다 뽑을 수 있는 VIP 특전, 프리미엄 무료 뽑기.
최소 삼 성이상의 화신이 등장하는 그 뽑기가 앞으로 삼 주 뒤에 있다.
최후의 보루는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후...”
삼 주.
그 안으로 종말이란 녀석이 찾아올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 아스텔 유저들의 상태로 보았을 때, 정호의 위치는 상위권.
그 시간 정도는 버틸 만 했다.
탁, 탁, 탁.
실패해도 뒤가 있다.
그런 위로는 정호를 침착하게 만들었다.
정호는 차분히 세 명의 화신을 합성 창에 올려두었다.
“화신 합성.”
뚜르르르르르.
화신들이 한 곳에 모여, 빛을 발하는 합성 창.
이윽고, 환하게 피어오를 거대한 빛을 기대했지만.
-합성에 실패했습니다. 이 성급의 화신 노련한 창병이 소환되었습니다.
“...”
현실은 실로 잔혹했다.
연속된 두 번의 실패.
두 번의 기회를 모조리 날려버린 정호에게 있어, 최대의 고난이 정호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정호에게 더 이상의 반응이 없었다.
멍하니 그 합성 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현실 부정이라도 하듯, 실패창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한다.
한데, 한참이나 매만지던 정호의 입에서 튀어 나온 것은 절규가 아니었다.
“음?”
그 대신 터져 나오는 것은 의문이다.
‘이번에도 중복이잖아?’
최초의 중복 화신이 일곱이었으니, 두 번의 실패 후 남은 중복은 한 장.
한데, 첫 번째 합성 실패로 나온 화신이 ‘노련한 창병’. 이번에도 ‘노련한 창병’이 나왔다.
도합 중복 화신이 세 장이었다.
‘한 번 더 가능해.’
정호의 시선이 절로 위로 향했다.
낮고, 침침하기 그지없는 천장이 정호를 맞이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하늘이 준 기회다...!’
게임을 했을 때야 실패에 의한 중복 화신은 크게 생각지 않았다.
한데 현실이 되니, 마치 자신을 가엽게 여긴 이가 새롭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으로 느껴졌다.
“화신 합성!”
더 이상 정호에게 거리낌 따위는 없었다.
이 성급의 화신의 수는 많다.
정호의 이 성급 화신의 베이스는 적은 편이니, 그것에서부터 중복이 뜬다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기적에는 항시 긍정적인 일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적어도 정호의 뽑기 인생에선 늘 그러했다.
탁, 탁, 탁.
거침없이 화신을 올려둔 정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화신 합성!”
뚜르르르르-
마지막의 마지막.
하지만 더 이상 불안감 따위는 없다.
오히려 기대감에 의해 사정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일에 급급했다.
샤아아아아-
빛이 뿜어져 나온다.
언제나처럼 빛이 꺼질 것만 같았지만, 정호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미소에 화답을 하듯.
화아아아악-.
더욱 큰 빛이 떠오른다.
-합성에 성공하셨습니다.
“하하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정호의 입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었다.
정호는 방방 뛰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억제했다.
삼 성급.
영웅들 중에서도, 어떤 화신이 떴는지가 중요했다.
한데,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쾅! 쾅! 쾅!
정호의 발이 사정없이 바닥을 내리 찍었다.
새벽이 다 되어가는 시간.
아랫집에서 올라오든 말든, 이제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빌리!"
녀석을 부르짖는 정호의 낯빛은 이보다 환할 수 없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