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4화
정호는 서서와 노련한 창병에게 영약을 쥐어주는 만행을 저지르진 않았다.
레벨에 관계없이,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영약은 아스텔 내에서도 높은 가치를 가질 게 분명하다.
정호는 그 능력치를 올릴 방법이 전혀 없다.
그 가치는 더욱 높았다.
다만.
‘내가 사용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애초에 스텟조차 없는 정호지 않은가.
영약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스텟을 준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무려 ‘SS+’의 추가 보상이다.
쉬이 도전해보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화신에게 주기에도...’
이 성급의 노련한 창병이나 유능한 용병에게 주기에는 그 영약이 아깝다.
다만 사 성급의 서서라면, 분명 영약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으나.
‘지능 증가 영약이었으면 모를까.’
그것이 어디까지나 민첩이라는.
전투 클래스에 특화된 능력치라는 점이 문제였다.
‘베스트는...’
정호가 내놓은 가장 좋은 사용법은 민첩을 주된 능력치로 사용하는 화신에게 먹이는 일이다.
‘당장은 사용도 못하겠어.’
계륵이었다.
그것도 그냥 계륵이 아니라, 아직 익지 않은 산해진미 속 계륵이었다.
당장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보기 마련이지만.
아끼면 아낄수록 그 가치는 증가한다.
정호는 영약을 잠시간 뒤로 미뤄두었다.
‘이건, 킵.’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영약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새로운 화신을 얻는 수밖에.
“화신 뽑기.”
결국은 뽑기였다.
[1회 화신 뽑기 : 100코인]
[11회 연속 화신 뽑기 : 1000코인]
[잔여 코인 : 5000코인]
이번에야 말로, '3성 이상의' 주력 화신을 뽑아야만 했다.
* * *
뽑기란 도박이나 다름없다.
이를테면 도박사들이 카지노의 정문으로 입장하는 것이 불행하다 여기며 일부러 뒷문으로 향하는 것처럼.
이러한 게임에서도 수많은 미신이 존재한다.
깨끗하게 몸을 청결하게 해야, 좋은 화신이 나온다.
손으로 별 모양이 그리고, 뽑으면 대박이 뜬다.
특정 자세를 취해야 한다.
아예 굿을 하는 이도 있다.
그 내용은 다르지만, 각자가 징크스 하나 둘 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징크스라 불리는 ‘노하우’다.
정호는 그런 뽑기 게임을 수 년 간이나 플레이 해 온 이력이 있었다.
‘웃기는 소리.’
정호는 그따위 미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믿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번에는... 나온다고 생각하지말자.’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 듯.
눈을 감고서 ‘뜨지마라, 뜨지마라.’고 되뇌는 정호의 모습.
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뽑기 유저들의 하나에 불과했다.
‘전에는 너무 호들갑을 떨어댔어.’
정호가 생각하는 뽑기 노하우는 ‘무심하게’가 그 키워드였다.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나오지 않는 것이 뽑기라고 생각했다.
‘현자의 목걸이 때도 눈을 감았을 땐 안 나왔잖아?’
이런 징크스들의 특징은 어디에 끼워 맞추느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정호는 현자의 목걸이를 뽑기 전,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결과 뽑기가 그대로 망했다.
뽑을 때엔 눈을 뜨고 있었다.
더더욱 소리를 치긴 했지만, 그 따위 것이 기억날 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결과만으로 바라보는 이야기.
다 끝나고서야 떠올리는.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선택적 기억상실증이다.
“후우...후우...”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숨을 몇 번이고 내쉬는 정호는 무심하게 외쳤다.
“11회 화신 뽑기.”
휘리리리리릭-
룰렛이 곧장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눈을 감지도 않았고, 두 손을 감싸지도 않았다.
슈웅, 슈웅, 슈웅.
연이어 나오는 일 성급의 화신들이 나타나는 소리.
그에 실망할 법도 했으나 정호의 얼굴은 해탈한 현자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힘들다.’
슈웅, 슈웅, 슈웅.
이번으로 여섯 번째 등장하는 일 성급의 화신.
정호는 자신의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음을 느꼈다.
다만 속은 타들어갔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슈웅.
한 번의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게임에서야, 잃는 것은 돈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정호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목숨 줄.
그야말로 인생을 뽑는 일이다.
그것을 무념, 무심으로 바라 볼 수 있다면 부처, 석가모니의 재림이나 다름없다.
슈웅. 슈웅. 슈웅.
마지막까지도 빵파레는 울리지 않았다.
삼 성 이상의 화신이 뜨지 않았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정호는 그 결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렇지 뭐, 다시 뽑기.”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당연한 결과를 수용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외쳤다.
이제 남은 총알은 4발이었다.
* * *
두 번째 뽑기와 세 번째 뽑기는 처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나타나는 것이라고는 일 성급과 이 성급의 화신들.
그나마 가끔 얼굴을 비출 법도 한 삼 성급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나무꾼☆]
[평범한 용병☆]
[평범한 궁수☆]
[평범한 창병☆]
[평범한 전사☆]
일 성급으로 도배되어 진 뽑기 현황들.
“나쁘지 않다.”
정호는 그 현황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단 그것은 ‘대박’을 바라지 않는다는 정호의 자기최면, 자위만은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나쁘지만은 않았다.
[화신 도감]
- 평범한 이들 : 평범해도 할 건 한다.
- 능력치 : 모든 스텟 5 상승.
처음으로 화신 도감 중 하나를 완성시켰던 까닭이다.
평범한 나무꾼, 용병, 궁수, 창병, 전사가 모여 나오는 시너지 효과.
모든 스텟 5라는 포인트는 결코 낮지 않다.
힘, 체력, 민첩, 지능이 모두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합 능력치가 20.
아스텔 레벨로는 ‘4’에 해당했다.
“이제야 빛을 보긴 하네. 다음.”
톨비아의 시스템은 이런 식이었다.
운이 좋아, 얼마 되지 않는 과금으로 높은 성급의 화신을 뽑아내는 이는 많지는 않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확률이 제로에 수렴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0’이 아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한계는 정해져 있다.
그게 바로 화신 도감이라는 시스템이었다.
정호가 처음 뽑기에서 ‘포세이돈’이라는, SSS급에 해당하는 육 성급 화신을 뽑고서도 계속해서 과금했던 이유도 이것이 아닌가.
‘돈으로 때린다는 게 이런 거지.’
톨비아에서 높은 성급의 화신은 절대적이나 다름없다.
고작 별 하나 더 달고 있을 뿐인데, 그 격차는 쉬이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도감 작업, 즉 ‘도감작’을 완료한 유저의 화신은 그보다 높은 화신을 넘어서기도 했다.
슈웅, 슈웅, 슈웅, 슈웅.
빵파레는 여전히 울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호의 얼굴에 동요는 더 이상 없었다.
‘망해도 된다.’
마인드 컨트롤은 극에 달해 있었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에서.
망하면 안 된다는 그 압박감을 ‘도감작’이라는 이름의 녀석이 덜어주고 있었던 탓이다.
결국 해야 할 작업을 미리 해둔다는 생각에 가까웠다.
그런 정호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화신 도감]
- 게으른 자들 : 재능은 있으나, 스스로의 게으름으로 망친 이들.
- 능력치 : 모든 능력치 2증가
- 나는 겁이 많지 : 그들에게 전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 능력치 : 지능 2증가
...
속속히 완성되어 가는 일 성급의 화신 도감.
그것을 넘어서, 이 성급의 도감도 하나 완성되었다.
[화신 도감]
- 전장의 전우들 :
그들은 전장에서 만나, 전우가 되었다
- 능력치 : 모든 스텟 10 상승.
- 조건 :
유능한 용병☆☆ (보유중)
노련한 창병☆☆ (보유중)
십발칠중 궁병☆☆ (보유중) NEW
십발칠중 궁병이라는, 현재 주력으로 사용하는 유능한 용병과 노련한 창병의 도감이었다.
그 능력치는 무려 모든 스텟 ‘10’이라는, 일 성급 도감을 훨씬 능가했다.
정호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됐어...!’
그저 도감이 완성되어, 스탯이 증가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원거리 딜러.’
바로 정호가 구상했던 조합 중 하나가 완성되었던 탓이다.
현자의 목걸이의 특수 능력, ‘단죄’.
원거리 공격이 상시 증가하는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십발칠중 궁병 ☆☆
-힘 : 21 체력 : 18 민첩 : 38 지력 : 7
곧장 궁병의 능력치를 확인한 정호는 미소를 내지었다.
분명 노련한 창병이나, 유능한 용병에 비해 그 전체적인 능력치는 낮았으나.
원거리 클래스, 게다가 ‘민첩’을 주된 스탯으로 사용하는 화신이 생겼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정호는 손바닥 위에서 영약을 굴려댔다.
‘으음...’
만약 자신이 두 번째 시련을 하기 전에 이 궁병이 떴다면, 가감 없이 먹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 이 성급 화신에게 SS+ 등급의 보상을 먹이기엔 너무도 아까운 감이 있었다.
“끙...”
정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영약을 다시 주머니로 되돌렸다.
아직 코인은 남아있다.
대부분이 일 성급의 화신이었던 탓에, 큰 기대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오히려 아직 뜨지 않았기에 다음이 기대되는 법이다.
쌓이고 쌓인 도감작은 그 자체로 능력치가 힘 15, 체력 12, 민첩 20, 지능 20이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지 않은가.
아직 흐름은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슈웅, 슈웅.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소리가 정호의 귀를 계속해서 때려댔다.
정호의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결국 그 마지막 상자를 열게 되었다.
[업적]
- 운이 나쁘군 : 운이 나쁘다.
- 능력치 : 이 성 화신 합성 확률 5%증가
- 조건 : 모든 일 성급 화신 (보유중)
“하, 하하...”
정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화신의 합성 확률 증가는 분명 환영해야 할 것이었으나.
거기까지 도달하는데 무려 4천 코인.
삼 성급 화신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착착 진행되는 도감작과 극한의 정신통일을 이루고 있는 정호에게 위기감을 전해주기 충분했다.
‘내 생각이 짧았나...?’
지금이라도 간절히 빌어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야 할 것인가.
정호는 그 두 가지를 두고 고민에 고심을 더했다.
“아니야. 이대로 간다.”
하지만 이미 뽑기라면 몇 십, 몇 백번은 했던 정호였다.
“망...하면 어때...!”
그 말을 꺼내는 정호의 입은 파르르 떨렸으나,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다시 뽑기...!”
단 한 발의 뽑기.
그것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 * *
“아!”
정호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기쁨에 의한 것도, 놀람을 표현한 것도 아니다.
말을 잃었을 뿐이다.
“마, 말도 안 돼.”
11번 뽑기가 무려 5번.
그러니까 55번의 뽑기를 연속으로 이루어낸 정호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빵파레가 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삼 성급의 화신조차도 뜨지 않았다는 말이다.
“...안 돼.”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지금까지 운이 좋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평균회귀는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말은 돼! 말은 된다고! 하지만 말이 안 돼!”
어찌나 당황했는지, 스스로 내뱉는 말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분명 삼 성급의 화신의 확률은 1%에 불과하다.
백 번 시도하면, 한 번은 뜰 정도의 확률.
그렇다면 정호가 55번을 뽑아, 삼 성급의 화신이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단 하나도 안 뜬다는 게 말이 돼?”
부들부들.
정호의 손이 떨렸다.
분명 이 성급의 화신은 몇 개 뜨긴 했다.
도감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숙련된 방패병이나 미숙한 총사라던가 하는 종류의 이 성급 화신들은 착실히 쌓였다.
하지만 그 뿐이다.
오 천 코인이나 퍼부은 결과라기엔, 너무도 잔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우...”
정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벽을 등지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현실에 눈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허탈한 표정을 짓던 정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큰 다짐을 한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끝났다...”
뽑기가 끝났다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이 끝났다는 뜻일까.
밀려오는 좌절감은 정호에게 절망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모든 것을 놓아버린, 해탈의 경지에 이른 얼굴.
하지만 그것은 정호가 포기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전초전이 끝났다.”
돌연, 정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실 육 성급의 화신이나 오 성급의 화신은 뽑기로 뽑는 것은 그야말로 극악이나 다름없다.
나오면 미친 듯이 운이 좋은 것이고.
나오지 않아도 그리 타격이 없기 마련이다.
육 성급이 '0.00012%', 오 성급이 '0.0012%'.
한 없이 제로에 수렴하는 확률.
뜨는 게 이상한 것이다.
톨비아를 새롭게 시작하는 유저들은 이 극악한 확률이 고개를 내젓고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정호는 아니었다.
뽑기는 뽑기고.
높은 등급의 화신을 저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중복이 꽤나 쌓였어.’
아직 마음을 풀 때가 아니다.
“합성.”
정호에겐 아직 한 발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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