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13화 (14/144)

# 13화

# 13화

1.

“키르르르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풀썩 주저앉는 고블린 전사.

정호는 녀석의 피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흩뿌렸다.

촤악-.

‘슬슬 마무리 단계인가.’

시련이라 하여, 나타나는 몬스터의 수가 무한한 것이 아닌지.

눈에 띠게 고블린 전사의 수가 줄어들었다.

동굴의 벽을 확인하니 남은 시간은 2분 남짓, 처치 수는 894마리였다.

‘생각보다 유저들의 수준이 높아.’

그 중 절반이 아득히 넘는 수가 정호와 화신들의 결과물이었으나.

정호는 다른 관점으로 아스텔의 유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대다수의 유저들도 일 대 일이라면, 고블린 전사를 상대할 수 있다.’

아스텔의 유저들은 장비조차 볼품없었다.

몇몇 이들은 제대로 담금질 된 검을 쥐고 있었으나, 대부분이 집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정용품들이다.

다만, 그들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레벨 5의 고블린 전사를 상대하면서 여유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저, 저도 잠깐 쉬고 올게요!”

“저도요!”

다만 능력치를 한 쪽으로 치중한 것인지, 체력이 낮은 것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이프 존으로 향하는 이들의 수가 많아졌다.

“...쯧.”

정호는 짧게 혀를 차기는 했다.

그들은 손쉽게 쉬고 온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빠지면 온전히 그 몫은 정호의 부담이 된다.

하지만.

‘원했던 결과야.’

그것은 정호가 원했던, 꿀맛 같은 보상을 위한 일이었다.

다만 정호는 그들의 안일한 행동에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그 뒤를 생각하면 아닐 텐데.’

정호는 고블린 전사들을 하나, 둘 더 잡는다하여 변하는 것은 크지 않다.

확신조차 없는.

‘혹시나’ 더한 보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예상.

그것 때문에 집착하듯이, 적을 쓰러뜨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자신과 달리 온전히 쓰러뜨리는 족족 경험치가 되고,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그야말로 축복받은 능력이다.

‘오히려 몹 스틸이라고 따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다는 게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잠깐 쉬다 온다던 이들은 하나 같이 세이프 존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와, 진짜 잘 싸운다...”

“그러게 말이에요. 레벨도 상당해 보이는데, 저분들도 랭커가 아닐까요?”

“세오 형처럼요? 세상이 좁긴 좁나 보네요. 한국에서 열두 명밖에 없는 랭커를 이렇게나 많이 보게 되다니.”

“칼날귀족보다 더한 랭커가 셋이나 이곳에 있다니...”

“우린 별 도움이 안 되겠어요.”

아예 세이프 존에서 자리를 펴고, 시답잖은 잡담이나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능력을 내버려둘 것 같으면, 당장 자신에게 달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그들의 대화가 아주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오? 칼날귀족?’

곧장 고개를 돌렸다.

푸욱.

“끼엑-”

정확히 고블린 전사의 뒷목에 단검을 꽂아 넣고 있는 세오의 모습이 보였다.

‘과연...’

‘칼날귀족’이라는 이름은 정호 또한 알고 있었다.

이미 랭킹 페이지에서 본 적이 있었으니까.

랭킹 148위.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랭킹에 위치한 이.

‘...랭커라더니...’

첫 번째 시련을 괜히 클리어 한 것이 아니라는 듯.

고블린 전사의 공격을 그저 고개를 젖히는 것으로 피해내고서, 숨통을 끊어놓는 그 모습은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노련한 창병 정도는 아니야.’

조금 느리고, 조금 어수룩한 점이 있었다.

마치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듯, 버벅이는 움직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뛰어 넘는다.’

놀라운 일이었다.

노련한 창병은 현재, 정호가 가진 화신 중 주력으로 내보낼 만큼 그 능력치가 상당한 편이었다.

전장에서 구른 창병은 그 실전 경험도 많아,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점점 강해진 아스텔의 유저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어보였다.

‘쉴 시간은 없어.’

촤아아아악-

지쳤던 정호의 몸에 다시금 활력이 돌았다.

사람들이 강해져 살아남을 종말.

그곳에 자신도 서 있을 수 있으려면,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와.”

“지치지도 않나?”

더 이상, 쉬고 있는 사람들의 말은 정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념무상.

그저 앞에 있는 적을 향해 검을 내던질 뿐이었다.

그렇게 2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던, 시련도 그 끝을 향했다.

[두 번째 시련 : 생존]

[2. 사방에서 몰려오는 LV5 고블린전사들로부터 10분간 생존하십시오.]

[완료]

[두 번째 시련이 완료되었습니다]

시련이 완료 되었을 때.

“허억, 허억, 허억.”

[처치 고블린 전사 : 1028마리]

기어코 천 마리를 찍었다.

그 중 정호가 쓰러뜨린 고블린 전사의 수는.

1028마리 중에서...

821마리였다.

2.

[두 번째 시련이 완료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사람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하루보다도 더 긴 십 분이 흘렀다.

첫 번째 시련에서 한 마리조차 제대로 상대하기 어려웠던 고블린 전사.

그런 녀석을 수백 마리, 아니 천 마리가 넘는 수를 상대했다.

결코 깨지 못할 것만 같은 그 아득한 수를 넘어서고, 마침내 시련을 클리어 한 것이다.

“전부 세오씨와 저분들 덕분이에요!”

“그쪽 분들도 랭커 맞죠?”

물론 사람들은 그것이 대부분 정호 일행과 세오의 몫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기껏해야 다섯을 쓰러뜨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랭커면 세오 씨랑 아는 사이 아니에요?”

“아스텔 닉네임이 뭐였어요?”

아스텔의 유저들은 궁금해 했다.

랭커인 세오에 필적하는.

아니, 세오보다도 더욱 높은 성과를 낸 정호의 일행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은 돌아가기 전에, 그 사실을 꼭 알고 싶어 했다.

“...”

정호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련이 끝난 뒤, 다시 볼 일이 없는 이들이다.

알려줘 봐야 의미가 없다.

다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컸다.

‘과금망겜플레이어라니, 어떻게 말해?’

랭킹 1위에 올라와 있는 점은 분명 대단한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부끄러운 이름을 스스로 내뱉을 정도로 정호의 낯짝은 두껍지가 않았다.

“제발 알려줘요.”

쪼르르 달려온 꼬마 하나가 정호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날렸다.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 알려주지 않으면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였다.

‘대충 둘러대자.’

정호가 그리 생각하고, 입을 열려 하는 그 때.

“...저는.”

정호와 사람들의 앞으로 쑤욱 들어오는 하나의 신형이 있었다.

세오였다.

“자, 여기까지 합시다. 시련도 끝난 마당 아닙니까? 이 분들도 곤란해 하시는 것 같으니.”

그리 중재하며, 고개를 돌려 정호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렸다.

‘뭐야, 이놈?’

갑작스런 세오의 행동.

다 큰 사내놈이 냅다 윙크를 날리고 앉아 있으니, 정호로써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캐릭터 명이 부끄럽다는 것은 둘째 치고.

‘나 같은 건 랭킹에서 금방 사라질 거니까.’

오늘 처음으로 아스텔 유저들을 보고 확신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들과 자신의 격차는 분명 컸다.

지금 이 상태라면, 여기 있는 스무명의 아스텔 유저를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무려 랭커인 ‘세오’를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련을 거듭할 때마다, 그 격차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세오를 비롯한 아스텔 유저들의 레벨은 껑충 뛰지 않았던가.

착실하게 하나, 하나 토대부터 탑을 쌓아가는 그들과 달리, 정호는 이미 성을 지은 것이나 다름없지만...모래성이나 다름없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그럼 어쩔 수 없죠.”

“네.”

그들 또한, 순순히 세오의 말에 따라 물러섰다.

그룹의 리더로써 그들을 이끌어 온 세오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물러난 이유는 사실상 다른 곳에 있었다.

“와아...!”

“코, 코인이 200개나 들어왔어요!”

“시련 클리어 보너스 경험치라는데요?”

“오! 저 레벨 업 했어요.”

시련이 완료되고, 그 보상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종합 평가 B? 이거 높은 거에요?”

“저는 C에요.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쉬었으니까요.”

“저는 D지만...그래도 클리어 했다는 거에 만족할래요.”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등급과 보상을 비교해가며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었다.

랭커들을 제외하면, 그들은 처음으로 클리어하는 시련이었다.

처음 받는 보상에 사람들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세오 씨는요?”

그 중 단연, 주목받는 대상은 랭커인 세오였다.

“‘’A‘입니다. 쓰러뜨린 고블린 수만큼 추가 점수를 주나 보군요.”

“와아!!”

“레벨 업도 엄청 하셨겠는데요?”

세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시련 클리어 경험치는 그리 들어오지 않아서 한 번 업 했을 뿐입니다.”

떨떠름하게 말하는 세오였으나, 그 입가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만큼은 지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A등급이라면, 분명 그 보상은 대단했을 것이니까.

사람들은 생각했다.

세오가 저 정도라면.

도대체 새롭게 나타난 랭커들인 저들은 어떨 것인가.

“S등급이에요?”

“SS등급도 있나?”

“보상은 어때요?”

곧장 날아오는 질문 공세들.

“고, 곤란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번엔 세오의 만류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정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 어어?”

“이런.”

“모두들 고생하셨어요!”

시련이 클리어가 되면 일어나는 당연한 일.

모두의 몸이 흐려지며,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속속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기이한 열망을 띤, 뜨거운 눈빛을 정호에게 보내는 세오를 마지막으로.

동굴에는 정호만이 남게 되었다.

“...”

도저히 시끌벅적했던 동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적막.

어째서 자신만 남게 되었는지 의문이었으나, 사실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후우...”

지금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지난날의 노력과 사투 끝에 받는, 꿀맛 같은 보상 시간이었으니까.

‘보상.’

[두 번째 시련이 완료되었습니다]

[클리어 내용 : 고블린, 고블린 전사들로부터 생존]

[1. 고블린 처치 수 : 947마리]

[2. 고블린 전사 처치 수 : 894마리]

[놀라운 업적!]

[고블린 사냥꾼 : 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고블린 학살자 : 오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고블린 정복자 : 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고블린 종말자 : 천오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종합 평가 : SS+]

[두렵습니다. 고블린에 대한 당신의 집착은 기이할 정도입니다. 만일 지구가 고블린들의 세계였다면, 종말은 당신이 일으킬 것입니다]

역시나, 누군지 모를 이의 감상과 함께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것들은 시답잖은 내용들뿐이었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정호는 가슴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첫 번째 시련에선 ’S‘였다.’

바로 종합 평가 부분이었다.

당시 ‘S’의 평가를 받은 정호가 얻은 코인은 3000코인.

그것만으로도 정호는 '현자의 목걸이'라는 삼 성급의 장비를 획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한, ‘SS+’라고 하지 않는가.

그 보상이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SS+ 등급 보상 : 5000코인이 주어집니다]

그 기대는 배신하지 않았다.

무려 5천 코인.

지난 3천 코인에 두 배에 가까운 수치였다.

‘11회 뽑기가 다섯 번!’

게임이었을 때도,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쉬이 지르기 힘들었던 정도의 수준이다.

‘이 정도라면.’

지금까지 아스텔의 유저를 보며, 부러워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제아무리 확률이 낮은 뽑기 할지라도, 마르지 않는 과금 앞에서는 그 빛을 잃기 마련이다.

‘심지어...’

정호는 보상 란을 계속해서 내렸다.

이번에는 코인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보상이 하나 더 있었다.

[추가 보상 : 민첩 증가 영약]

“음...”

다만, 그 내용을 확인 한 정호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분명 아스텔의 유저에게 있어서는 쉬이 얻을 수 없는 보상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정호에게 딱히 쓸모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정호는 스텟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음?”

영약을 쥐고서 한참을 굴리던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민첩이라는 능력치를 가진 이들이 떠올랐던 탓이다.

고개를 돌렸다.

“이거...”

그 자리에는 묵묵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노련한 창병과 서서가 있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