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12화
[앞으로 3분 후, 시련이 시작됩니다]
동굴의 벽에 대문짝만하게 붙은 글귀.
사람들은 처음 나타났을 무렵만 하더라도 혼란스러워 했으나, 금세 제정신을 차렸다.
“다행이네요. 이번에는 바로 시작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그러게 말이에요.”
“고블린도 그 고생을 했는데, 이번엔 고블린 전사라니...”
“어쩔 수 있나요.”
“그럼, 세오 씨.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고블린 때처럼 똑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고블린 잡아서 레벨 업을 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까처럼 하도록 하죠.”
그들은 마치 서로가 아는 사이인 양,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아니, 첫 시련을 같이 겪은 듯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정호는 의문을 흘렸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완전히 타인일 것이 분명한 이들인데도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지 않은가.
심지어.
“아까처럼 1번 출구는 혜지 씨, 형준 씨가 전위에 서고, 동하야 네가 보조를 서.”
“네, 세오 씨.”
“그렇게 하죠.”
“네, 형.”
아까처럼.
그 말이 계속해서 들려오지 않은가.
심지어 세오라 불리는 남성은 사람들을 진두지휘하며 다가올 시련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거, 시련을 혼자 겪은 건 나뿐인 것 같은데?’
시련의 내용도 이상하기는 했다.
제아무리 레벨 1의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홀로 수백에 달하는 녀석들을 막아서는 것은 평범한 이들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이들이 첫 번째 시련에서 목숨을 잃었으니, 레벨도 1에 불과할 진데 말이다.
“지금은 그래도 3레벨인 이들도 많고, 4레벨인 이들도 많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들려오는 소리.
정호는 그것으로부터 사람들이 지난 시련으로 레벨 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짜놓은 것처럼 착착 자리를 잡고, 하나의 동굴에 두 명 내지 세 명의 사람이 배치되었다.
“낙오한 이들 때문에 8번은 저 혼자 서야...응?”
사람이 스물이나 되는 까닭일까.
세오라고 불렸던 남성은 각기 퍼진 사람들을 나누고 나서야, 이곳에 불청객들이 있음을 깨달았다.
“...자네들은 누구지?”
곧장 경계하며, 허리춤에 찬 자그마한 단도를 꺼내는 세오.
세오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동굴의 앞에 자리 잡고 있던 이들도 고개를 홱 돌렸다.
당연하게도 그 불청객은 정호와 서서, 그리고 노련한 창병이었다.
“누구지?”
“적인가?”
곧장 쏟아지는 의문과 적의.
생각해보면 어째서 지금까지 알아 차리지 못했는지, 그들 스스로도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정집에서 쓰일 법한 식칼이나 야구방망이같이 ‘장비’라 불릴 만한 물건이 없었으니까.
한데, 정호의 일행은 어떠한가.
노련한 창병은 전장에서 튀어나온 듯, 가죽과 사슬이 덧입혀진 옷을 입고 있었으며 등에는 몸보다 긴 창에 내걸려 있었고.
서서는 일상복치고는 너무도 펑퍼짐한 중국의 포를 연상케 하는 옷,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정호조차도 번듯한 검과 함께 일 성급 가죽 갑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아군이라기에는, 너무도 다른 정호의 일행은 같은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워 보였다.
“감히 그런 망발을...!”
정호는 급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서서를 막아 냈다.
‘이 놈은 또 왜 이래?’
서서의 충직한 마음은 알겠으나, 이래서야 오히려 오해만 깊어질 뿐이었다.
정호는 천천히 손을 내저었다.
“...아군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우리도 막 시련을 끝내고 온 참이니까요.”
“아, 시련에서 리타이어 한 이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군요. 이해합니다. 저희도 세 명이나 잃었거든요.”
대표로 보이는 세오가 나서서, 정호의 말을 받았다.
의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긴 했으나.
그도 시련을 앞두고서 생기는 불협화음은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비가 꽤나 좋으신 듯하니, 8번 출구는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7번 출구에 사람이 모자라니 그 쪽을 지원하도록 하죠.”
“...네.”
정호는 고개를 올려, 동굴 벽에 적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련은 애초에 스물 셋이었다.’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본래 이 시련은 모두가 협동하여, 버티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호는 그 시련을 혼자 받았고.
이들은 세 명을 잃고서 클리어 했다.
정호와 서서, 그리고 노련한 창병이 그 대신으로 참가하게 된 게 분명했다.
‘곤란한데.’
정호는 자신의 자리인 8번 출구로 당도하고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상황이 꽤나 묘하게 흘러갔다.
정호의 목적은 이 시련을 클리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다 많은 코인과 보상을 목표다.
굳이 세이프티 존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것에 있지 않았던가.
‘고블린 전사라...’
분명 레벨 1의 고블린과 레벨 5의 고블린 전사의 격차는 크다.
기껏해야 돌팔매질만 하던 고블린이 병장기를 들고, 갑옷까지 단단히 챙겨 입은 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호도 모든 출구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고블린 전사를 오롯이 막아낼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위험 없이 얻는 보상은 작기 마련이야.’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한데 이래서야 정호의 발에 제동이 걸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서서, 노련한 창병.”
속삭이듯 말하자, 과연 눈치가 빠른 것인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정호의 말이 이어졌다.
“이곳은 내가 막을 테니, 다른 곳에 지원이 필요하면 도와주도록.”
보상이 적어지면 곤란했다.
정호는 지금 이 상황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명령을 내렸다.
물론.
“최대한 많은 수의 고블린 전사를 쓰러뜨리도록 해.”
당부의 말도 잊지는 않았다.
“시작 됩니다! 모두 전투준비!”
세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시련이 시작됩니다]
[두 번째 시련 : 생존]
[2. 사방에서 몰려오는 LV5 고블린전사들로부터 10분간 생존하십시오.]
[힌트 : 중앙에 총 5분간 쉴 수 있는 세이프 존]
시련이 시작되었다.
* * *
김세오는 올해로 스물이 되었다.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않은,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게임에서는 달랐다.
정확하게는 아스텔이라는 게임에서만큼은.
‘칼날귀족.’
암살자계열의 히든 클래스인 그는, 아스텔 내에서 죽이지 못하는 유저가 없다고 유명한 네임드 급의 유저였다.
단검 하나로 상대를 유린하는 모습은 해외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
유명세와 함께, 암살을 요청하는 많은 유저들의 의뢰는 세오의 인생을 뒤바꾸어주었다.
고작 스물이라는, 어린 나이에 얻는 수입은 어지간한 회사원보다도 훨씬 많았다.
‘아스텔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많은 게임 유저들이 꿈꾸는, 일종의 이상향에 불과했다.
게임처럼 움직이고, 스텟을 올리고,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는.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강해지는 게임과 비정한 현실은 그 격차가 너무도 컸다.
한데.
-아스텔의 시스템을 통해, 힘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런 아스텔이 현실이 되었다.
그 날 세오가 얼마나 기뻤는지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세오는 그 힘들었던 첫 번째 시련마저도 재미를 느낄 정도였다.
-랭킹 148위, 클리어 시간은 2시간 48분.
전 세계에서 고작 2,382명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12명이 전부인 랭커가 된 것이다.
‘아직이야. 아직.’
하지만 세오는 만족하지 못했다.
고작 148위 밖에 되지 않다니,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수치였다.
‘이번 시련은 다를 거다!’
다가온 두 번째 시련은 랭커인 세오에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고블린과 고블린 전사의 패턴은 줄줄이 꿰고 있었으니까.
“키엑! 키엑!”
고블린 전사의 도끼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조금 전 시련에서 만난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섬뜩함이었다.
하지만 세오는 그것을 고개를 살짝 젖히는 것으로 피해냈다.
후우우우웅-
‘녀석들은 종 베기와 횡 베기 밖에 하지 못하는, 머저리들이야.’
그것도 있는 힘껏 휘두르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패턴이다.
동작이 크면, 그만큼 강한 힘이 실리기 마련이지만.
‘빈틈도 커지지.’
세오는 가뿐하게 고블린 전사의 목에 단도를 꽂아 넣었다.
레벨 1일 때야, 꽤나 고전했으나...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몰려오는 적들을 하나, 둘 처리하는 세오의 몸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시련을 클리어 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한데.
“꺄아아악!”
“여, 여기 좀 도와주게!”
다른 이들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이래서 협동 퀘스트는...’
세오는 슬쩍 다른 동굴을 바라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이 간단한 것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도와줘야 하나?’
하지만 세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랭커라는 점 때문에 저들의 리더가 되었으나, 어디까지나 이곳은 ‘생존’해야 하는 곳이다.
다른 이를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사람 수도 채워주니까.’
두 번째 시련의 첫 번째는 고블린에게서 생존하는 것이었다.
한데 고블린조차 쓰러뜨리지 못하고, 낙오한 이들이 세 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다시 인원은 충당되었지 않은가.
지금 저들을 잃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콰득.
“끼에엑-.”
고블린 전사의 목에 다시 한 번, 단검을 꽂아 넣은 세오는 한 일행을 떠올렸다.
낙오된 이들을 대신해 나타난 세 명의 사람들.
‘장비가 꽤 좋았는데...’
세오는 새로 온 인원들을 향해 슬쩍 시선을 옮기려 했다.
한데.
촤아아아악-
촤악!
“가,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흥, 내 창이 녹슬겠군.”
도움을 요청하던 방향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그에 세오가 고개를 돌렸다.
‘뭐야?’
그곳에는 기이한 장면이 있었다.
촤아아아악-
도와준 것은 창을 든 사내였다.
휘이이이익-
“끼에에에에에!”
“끼엑!”
그 사내가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 전사들이 목을 떨구고 있었다.
세오는 눈을 부릅떴다.
‘저게 도대체 뭐야?!’
자신의 레벨은 7이다.
첫 번째 시련을 클리어 하고 6레벨이 되었고, 조금 전에 레벨 업을 했다.
한데, 저 창을 쥔 사내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 감사합니다!”
“주군께서 도와주라 명했네. 세이프 존에서 쉬다 오게.”
“네, 네...!”
“고마워요.”
이번엔 4번 출구에서 들려오는 소리.
황급히 목을 돌리자, 이번에는 부채를 들고 있던 사내였다.
쏴아아아! 쏴아아아!
부채를 휘두르는 족족 깃털들이 날아가 고블린 전사의 목숨을 손쉽게 끊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그럼. 8번 출구는?”
분명 새로 나타난 일행은 세 명이었다.
무려 두 명이 다른 곳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면, 8번 출구를 막고 있는 것은 한 명뿐이라는 말이다.
세오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본래 향하려던 곳으로 눈을 돌리자.
“...뭐?”
수많은 고블린 전사들이 밀려오는 동굴의 앞.
그곳에.
촤아아아아악-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키에에에...”
“키엑? 키이이이...!”
그토록 멋대로 날뛰던 고블린 전사마저도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 채, 겁을 먹고 있었다.
그것을 행하고 있는 이는 고작해야 사내 한 명이었다.
스으으윽-
세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허어어업!”
세오는 숨을 들이켰다.
고블린 전사의 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갛게 변한 사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
그런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움.”
촤아아아악-
다시 한 마리의 고블린 전사가 목숨을 달리 했다.
사내, 정호의 말이 이어졌다.
“필요한가?”
무엇이 기쁜 것일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악마와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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