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11화
“푸후...!”
정호는 기진맥진하여, 벽에 등을 기대고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렵네.’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난 삼 일.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은 채, 집 안에 틀어박혀 정호가 한 것은 당연하게도 ‘노련한 창병’을 몸에 강신시키는 일이었다.
물론, 동기화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호에게는 이미 동급의 별을 가진 ‘유능한 용병’을 동기화시켰던 경험이 있었다.
화신 도감에도 같은 선상에 있는 이, 노련한 창병을 동기화시키는 것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화신, ‘노련한 창병’의 강신을 완료했습니다]
[최종 동기화율 : 100%]
120%에 육박했던 유능한 용병 때와는 다르게 최종 동기화율이 백 퍼센트가 한계였다는 게 문제였다.
계속해서 시도해도 매한가지.
놓친 것이 있나 샅샅이 뒤져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내가 창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실제로 정호가 검을 써보고, 창을 써보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게임에서라면 달랐다.
톨비아 시절, 정호는 뒤에서 화신들을 서포터하기보다는, 직접 전장에 뛰어드는 것을 선호했다.
그 중에서도 주로 이용했던 강신은 검을 사용하는 화신.
결국 숙련도의 차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곤란한데.’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이 맞다면,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이 모조리 틀어진다.
동기화율에 따라 유의미한 스탯 차이를 내는 이상, 정호가 강신을 선택하는 폭이 굉장히 좁아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임이었을 때나 최전선에 나섰지.
현실이 된 지금, 앞장 설 생각은 전혀 없었던 정호로써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전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직접 나서야 하는 리스크를 지게 된 셈이다.
이른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선택지는 없어.’
더 이상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자신은 남들과는 다른 시스템을 부여받았다.
톨비아의 시스템은 당장에야 남들보다 뛰어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지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모두 취해야만 한다.
-지구의 여러분들에게 알립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지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 정호가 눈을 빛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그 성과를 취해야 할 시간이었다.
한데.
-종말의 전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정호가 원하고,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다.
* * *
-현재 지구의 수준은 종말에 대비하기에 너무도 미약합니다.
어느 때와 같은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러나 감정이 실린 것처럼 차가운 그 목소리는 매몰차기까지 했다.
마치 무언가에 실망한 것처럼.
‘시련 때문이군.’
녀석이 무엇에 실망했는지는 눈에 훤했다.
종말에 대비하라며, 준비한 시련.
그것을 클리어 한 이가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리라.
톨비아와는 달리.
아스텔은 전 세계인이 즐겼던 게임이다.
그만큼 많은 공략법이 존재했고, 저렙 몬스터의 패턴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목소리의 주인이 내놓은 시련은 그리 높은 난이도에 속하지 않았을 터다.
다만 문제는.
‘현실과 게임은 다르다는 점과...무기겠어.’
안일한 사람들의 대처다.
제아무리 종말이니 뭐니 떠들어도, 그들에게는 아직 찾아오지 않는 미지의 사건이다.
심지어 현실의 세계는 그리 달라진 점이 없지 않은가.
어이없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맨손으로 시련에 진입했고, 실패했다.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스스로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온전히 그들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렇지.’
정호는 그러한 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은 녀석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고. 클리어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스스로 내 건 말이지 않은가.
심지어 시련에 접어들기 전에 아예 죽지 않는다는 보장까지 내걸었다.
현실이 종말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은 녀석의 탓도 분명히 있었다.
-시련의 난이도를 재조정합니다.
다만 그 사실을 녀석도 잘 아는지 실수를 인정했다.
첫 번째 시련조차 낙오한 이들에게 두 번째 시련은 그 허들이 너무도 높다.
난이도를 낮추지 않고서야,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여러분에게 주는 기회입니다. 종말이 다가옵니다. 시련을 이겨내고, 대비하십시오.
이른바 두 번째 시련이자, 보너스 스테이지.
분명 이는 인류에 있어서는 아주 좋은 일이고, 당연히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다만 정호는 그 말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것은 결코 인류가 강해지는 것을 정호가 원치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고.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나은 법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유저들이야.’
첫 번째 시련에서의 실패를 겪고, 이를 갈고 있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
정호만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랭킹에는 많은 경쟁이 붙는다.’
정호가 랭킹에 연연하는 까닭은 당연하게도 ‘코인의 수급’ 때문이었다.
레벨 자체가 스펙이 되는 유저들과는 달리, 정호는 뽑기를 통해 강해져야 했으니까.
시련의 난이도가 낮아지면 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그만큼 정호가 코인을 수급하기에는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완전히 인류 자체가 적인데.’
아예 전 세계의 사람들을 경쟁자로 취급해버린 정호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있었다.
하나 정호의 생각이 어찌 되었던, 그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다.
그저 다른 이들보다 시련을 빨리 클리어 하고.
보다 많은 코인을 얻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홀로 톨비아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정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딱 이 정도의 이기심은 필요했다.
“푸후...서서 소환, 노련한 창병 소환.”
정호는 이번 시련이 보너스 스테이지라 하여, 손대중을 하는 일은 없었다.
“유능한 용병, 강신.”
마침내 정호가 유능한 용병까지 강신시켰다.
[유능한 용병이 강신했습니다]
[강신 동기화율 120%]
[놀라운 수치!]
[유능한 용병의 스텟이 120%로 상승합니다!]
화아아아아악-
점차 시야가 반전되어 갔다.
시련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이었다.
마침내 떠오르는 시련의 내용.
[두 번째 시련 : 생존]
[1. 사방에서 몰려오는 LV1 고블린들로부터 10분간 생존하십시오]
[힌트 : 중앙에 총 5분간 쉴 수 있는 세이프 존]
이번 테마는 생존이었다.
레벨 1의 고블린.
그리고 세이프티 존까지 있는 것을 보아 난이도를 대폭 하향한 것이 분명했다.
정호는 지체할 것 없이 외쳤다.
“공격!”
* * *
두 번째 시련의 장소는 동굴이었다.
중앙의 빈 굴을 중심으로 쭈욱 여덟 개의 구멍이 둘러싸고 있었다.
정호는 그에 시계방향으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노련한 창병, 너는 1번을 막아라. 서서! 구원대로 2번, 3번, 4번. 보조는 알아서 해!”
“또 다시 내 창이 피 맛을 보겠군.”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게. 구원대!”
서서와 창병을 토대로 네 개의 구멍을 막아 세우자, 곧장 전투가 벌어졌다.
“끼에에엑”
“끼에에-.”
고블린들은 속속히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레벨 1의 몬스터다.
아스텔의 1레벨 유저라 할지라도, 레벨 1의 몬스터에게 쉬이 쓰러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을 상대하는 것은 서서와 노련한 창병.
그 둘은 레벨 10의 오크마저도 쓰러뜨린 전적이 있는 이들이다.
레벨 1의 고블린 정도야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1번 동굴을 맡은 노련한 창병의 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고블린의 머릿수를 착실히 하나하나 줄어나갔고.
파라라라락-.
2, 3, 4번의 동굴을 한 번에 맡고 있는 구원대의 화신들은 버거워 보이기는 했으나.
그 뒤를 보조하는 서서의 활약으로 전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다만.
“허억, 허억, 허억.”
“후우, 후우.”
그 수가 문제였다.
녀석들의 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분명 구멍은 성인 남성 두 명이 드나들기에도 벅찬 자그마한 곳에 불과했음에도.
“끼엑!”
“끼익, 끼익!”
몸을 비집어 넣으며, 동굴 밖으로 몸을 들이미는 고블린의 수는 상식을 넘어서 있었다.
그 문제는 정호에게도 존재했다.
촤아아아아악-.
분명 유능한 용병을 몸에 강신시킨 정호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미 용병의 기억을 통해, 전쟁까지 경험한 정호였다.
다수의 싸움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120%라는, 동기화율에 의한 보정은 정호를 그야말로 날아다니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촤아아아악-.
“얼마나, 나오는 거야?”
파파팍! 팍!
‘벌써 백은 벤 것 같은데.’
그럼에도 꾸역꾸역 튀어 나왔다.
정호의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졌다.
‘코인을 벌 방법은 이것 밖에 없는데.’
두 번째 시련은 어디까지나 ‘생존’이었다.
그저 십 분간 버텨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도망을 치든, 적을 쓸어버리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주인. 아무리 그래도 이 수는...!”
그저 창만 바라보고, 앓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던 노련한 창병마저 질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결국 10분이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을 쓰러뜨려!”
오히려 내놓는 것은 강경책.
정호가 이토록 모든 굴의 고블린들을 쓰러뜨리고자 집착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이유 탓이었다.
‘쌓이면 곤란해져.’
지금 정호 일행이 있는 장소는 사방이 가로 막힌 동굴 속이다.
한 쪽이 뚫려버린다면 결국 구석에 몰려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고블린들을 막아서는 수밖에 없다.
쌓이고 쌓인 고블린들은 그 기세를 타고, 사태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세이프 존에서 버티는 것도 가능했으나.
또 다른 한 가지의 이유가 그것을 막아섰다.
‘이것도 코인이야.’
정호는 동굴의 위에 떠올라 있는 하나의 글귀를 보고서 확신했다.
[남은 시간 - 04 : 30]
[처치 고블린 : 401마리]
남은 시간.
그것은 생존해야 할 시간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주목한 것은 그 아래.
처치 고블린의 수였다.
‘시간만 주구장창 보낸다고, 랭킹에 올라갈 리가 없지.’
정호가 원하는 것은, 랭킹이 아니라 코인이었으나.
그게 그 소리였다.
첫 번째 시련에서 삼 천 코인이라는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
그것은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클리어 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나, ‘생존’은 다르다.
그저 시간을 버텨내는 것.
해낸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밖에 나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랭킹을 적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처치 수겠지.’
정호가 쥔 검이 한 차례 크게 휘둘러졌다.
촤아아아아악-.
‘이것으로 420.’
눈에는 고블린이 이제 적으로조차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더 이상 정호의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동굴의 위에 떠오르고 있는 숫자만을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숨소리는 거칠어져만 갔다.
“끼이이이-”
얼마나 베어댔는지 수북하게 쌓인 사체로 인해, 동굴로 들어오는 고블린이 적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호는 멈추지 않았다.
“..허억...! 얼른 나와!”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사체들 틈바구니로 보이는 고빌린의 머리를 끌어내기까지 했다.
콰득.
곧장 목에 검을 꽂아 넣고는,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실로 비정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남은 시간 - 00 : 12]
11, 10, 9, 8.
점차 줄어가는 시간.
급해진 정호는 아예, 몸을 날려 일 성급 화신들이 애쓰고 있는 고블린에게마저 칼을 날렸다.
“가, 감사합니다!”
“아이고, 주인께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고작 10분 남짓밖에 소환되지 않는 녀석들은 그에 감사의 인사를 날리며 서서히 사라졌다.
구원대의 소환 시간이 다 된 것이다.
그 말인 즉.
[두 번째 시련 : 생존]
[1. 사방에서 몰려오는 LV1 고블린들로부터 10분간 생존하십시오]
[완료]
[처치 고블린 : 947마리]
정호는 눈앞에 떠오르는 그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고작10분간 쓰러뜨린 적은 모두 947마리.
서서와 노련한 창병이 절반에 가까운 수를 해치우긴 했으나, 정호 홀로 쓰러뜨린 숫자만 약 400마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천 마리는 채우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정호는 아쉬움을 흘렸다.
천 마리를 쓰러뜨리면, 무언가 더 추가 보상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탓이다.
애초에 세 자리와 네 자리는 그 어감 자체가 다르니까.
하지만, 이미 지난 일.
그보다는 몸이 먼저였다.
“후욱. 후욱.”
아직까지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오르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몸을 쉬어둬야 했다.
시련이라는 것은 늘 그렇듯 가장 힘들 시기에 찾아오는 법이니까.
[두 번째 시련 : 생존]
[2. 사방에서 몰려오는 LV5 고블린 전사들로부터 10분간 생존하십시오.]
[힌트 : 중앙에 총 5분간 쉴 수 있는 세이프 존]
다만, 이번에는 그 난이도가 껑충 뛰었다.
너무도 얼토당토 없었다.
“뭐?”
정호조차도,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뜰 정도.
레벨 1에서 5로 넘어가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컸다.
도대체 어디가 난이도을 조정했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이지 않은가.
하지만 정호는 곧, 어째서 갑작스레 난이도가 올라갔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어? 끝난 것 아니었어?”
“아직 한 번 더 있다고?”
“이번엔 고블린 전사가 그렇게 튀어 나온단 말이야?”
정호의 일행은 서서와 노련한 용병, 자신을 포함하여 셋이었다.
한데, 나타난 것은 모두 합쳐 스물.
‘사람?’
고블린 전사가 아니었다.
아스텔의 유저들.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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