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화
1.
전쟁이 수년 간 벌어졌다하여, 잠도 자지 않고 싸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병사도 사람이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마련이다.
타다닥. 타닥.
화톳불에 삼삼오오 앉아, 늦은 저녁을 해결하는 병사들.
그 중에는 정호도 있었다.
‘무슨 국이...’
정호는 배가 고픔에도 불구하고, 입으로 나르기는커녕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대기만 했다.
배당된 식량은 스프 한 접시.
스프는 맑았다.
풀떼기라도 넣은 것인지 연한 녹색을 띠고, 그 속에 자그마한 고기 한 점이 있었다.
저녁 식사는 이게 전부였다.
하나, 정호가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부실한 저녁 식사 탓이 아니었다.
“자네도 검 같은 것은 버리고, 창을 써라.”
정호의 옆에서 쉬지 않고, 떠벌리고 있는 녀석 탓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 것인지 창을 몇 번이고 바닥을 내리치고 있는 병사.
정호가 잘 아는 녀석이었다.
‘노련한 창병.’
정확히는 ‘노련한 창병’의 젊은 시절이 맞을 것이리라.
눈치 채는 것이 늦었다.
본래 녀석의 왼쪽 눈에는 긴 자상이 났던 흉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었던 탓이다.
고작 상처 하나.
그 뿐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이미지가 달라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역시 창이 최고라니까.”
앵무새 같은 녀석을 이대로 무시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리 할 수만은 없었다.
‘이 놈이 확실해.’
화신과의 동기화율을 올리는 것이 녀석에서부터 나온다고 확신했던 탓이다.
‘화신 도감에 ’유능한 용병‘과 관련이 있으니까.’
톨비아는 수집형 RPG에 속하는 게임이다.
보다 높은 화신을 키워나가고, 장비를 강화해 적을 쓰러뜨려나가는 전형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게임에는 타게임과는 다른,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도감.’
화신의 종류는 많고, 그 중에서도 사용하는 화신은 정해져 있다.
많은 화신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수집형 게임에는 ‘도감’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화신 도감]
- 전장의 전우들 :
그들은 전장에서 만나, 전우가 되었다
- 능력치 : 강신 시, 모든 스텟 10 상승.
- 조건 :
유능한 용병☆☆ (보유중)
노련한 창병☆☆ (보유중)
십발칠중 궁병☆☆ (미보유)
고작해야 이 성급 화신 세 명을 모으는 것으로, 전체 스텟이 10이나 상승하는 위엄.
게임일 적에도 뽑기를 실패해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이 바로 화신 도감 덕분이었다.
‘그리고 노련한 화신은 유능한 용병과 아는 사이인 거고.’
정말이지 빌어먹을 설정 노름이나 다름없다.
도감에 적힌 저 한 줄의 글귀가 단서였다.
“내 창은 오늘 다섯을 쓰러뜨렸지! 자네는 몇 명인가?”
“후우...셋.”
한숨을 크게 들이 쉰, 정호가 단답했다.
결국 녀석과 대화를 하긴 해야 했으니까.
“하하! 역시 검보단 창이 낫지 않나? 자네는 아직 미래가 창창한 나이이니 지금이라도 바꿔 보자고.”
“그럴 생각 없다.”
정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녀석의 창에 대한 애착은 화신이 된 후에도, 그 이전에도 바뀌지 않은 듯 했다.
더군다나 이 기억과 경험은 오롯이 ‘유능한 용병’의 것이다.
애초에 검을 사용하는 화신인데, 창을 써서 어쩐단 말인가.
‘아니면...’
정호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창병의 말은 오롯이 ‘창’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대화 흐름 자체가 동기화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혹, 자네. 지금 검이 창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뭐?”
아니나 다를까.
후일, 노련한 창병이 되는 녀석은 정호의 말에 대뜸 화를 냈다.
오해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는군?”
“무, 무어라...!”
하지만 정호는 그런 오해를 풀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런 외골수적인 성격은 결코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법이 없었다.
설령 정호가 손을 내저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의 흐름이었을 것이다.
“그럼, 확인시켜 주지! 당장 따라 나와라!”
예상처럼.
녀석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정호의 어깨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군.’
정호는 깨달았다.
이 모든 상황은 가짜다.
전쟁이니, 살인이니 하는 것 또한, 결국 용병이 가진 기억 속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 사건 또한, 어떻게 되든 간에 일어났을 일.
모든 것이 짜여 진 각본이었다.
이번 사건의 키워드는 ‘흉터’였다.
“그럼, 한 번 붙지.”
본래 있어야 할 ‘노련한 창병’ 눈의 자상이었다.
2.
“무슨 일이야?”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전쟁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따르는 일이다.
이런 시시비비는, 병사들에게 있어서 해소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는 수단이었다.
따라온 병사들은 정호와 창병을 중앙에 두고서, 빙 둘러쌌다.
“내 창은 자비가 없는 법이다. 지금이라도 말을 철회한다면, 용서해주도록 하지!”
“...그,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 말을 삼킨, 정호는 녀석의 말을 대충 둘러댔다.
흐름 상 필수불가결적인 사건이다.
변명을 대던, 사과를 하던.
노련한 창병은 싸울 운명이었다.
“아직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군!”
아니나 다를까.
결국 녀석의 창이 꺼내어졌다.
정호 또한, 허리춤에 찬 검을 꺼내었다.
스르릉-
청명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손맛이 올라왔다.
본래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떨어뜨릴 것 같은 무게였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정호는 능수능란하게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보고서, 앞으로 향했다.
“수많은 병장기 중에, 창이 제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만병지왕은 창. 그리 외치는 창병이 ‘타앙’하고 바닥을 치는가 싶더니.
후우우웅-
거센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신형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허공을 나르는 뱀이 한 마리.
“흐읍!”
타앙!
가까스로 창끝을 튕겨냈으나, 정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창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뒤로 물러나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정호는 재빠르게 대응했다.
선수는 빼앗겼으나, 이미 창병은 한 번의 공격을 사용했다. 창을 회수하고, 재차 공격하기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지금이 기회였다.
휘이이익-
하지만 허공을 수놓는 검.
창병의 머리카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훌쩍 멀어진 창병의 얼굴에 미소가 서려있었다.
‘아뿔싸.’
낭패였다.
창의 거리와 검의 거리는 당연하게도 그 차이가 극명했다.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더라도, 검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좁혀야 했다.
‘세 걸음.’
정호가 검을 휘두르기 위해 사용한 시간이다.
그 정도면, 창을 회수하고 다시금 내지를 틈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휘익-
또 다시 날아오는 창.
마치 뱀이 먹이를 향해 뛰어오르듯, 구불구불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향했던 정호는 급히 자세를 무너뜨려, 고개를 왼쪽으로 젖혔다.
촤아아아아악-
정호의 뺨이 찢어지며, 피가 솟아올랐다.
“와아아아!”
“좀 더, 좀 더!”
“죽여 버려!”
병사들의 환호성처럼, 창병도 기회를 잡았다는 듯 쉬지 않고 정호를 압박했다.
카앙, 타앙, 타앙.
정호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현실에서 검조차 쥐어 본 적 없던 정호로써는 한 번의 창조차 막아내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용병의 기억이 그것을 막을 수 있도록 도왔다.
[동기화율 75%]
전장에서 그리 구르며 싸워도 쥐꼬리만큼 올라가던 동기화율이 그 증거였다.
정호의 검은 점차 용병의 그것과 닮아가고 있었다.
투웅!
기어코 방어로 일변하던 정호의 검이 창을 튕겨냈다. 창끝을 노리는 것이 아닌, 그 중간을 노린 것이 유효했다.
‘틈이다.’
정호는 가슴이 훤히 뚫린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녀석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창은 분명 검보다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근접전투에는 검이 우세한 것이 당연했으니까.
“음!!”
녀석의 얼굴에도 잠시나마 낭패가 떠올랐다.
“하지만!”
하나, 창병은 이후 ‘노련한 창병’이 되는 이다.
고블린 전사를 유린하고 오크를 쓰러뜨리는 위엄을 펼치는.
수많은 전장을 겪게 되는 창병이다.
고작해야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창병이 몸을 휘릭 돌리는가 싶더니, 정호의 몸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알고 있어.’
하나, 그것조차 정호의 예상 범위였다.
노련한 창병이 싸우는 모습은 익히 보았다.
첫 번째 시련에서도 오크를 상대할 때 종종 보였던 모습.
직접 마주하는 그 속도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으나, 딱 그 정도였다.
정호의 신형이 아래로 쑤욱 내려갔다.
후우우웅-
애꿎은 허공만 때리게 된 창의 바람 소리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허억?”
녀석 또한, 설마 자신이 숨겨둔 수를 피할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대로 몸을 일으켜, 창병의 목을 끊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노리는 건 눈.’
노려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녀석이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흉터, 눈의 자상이었다.
정호의 검이 힘차게 휘둘러졌다.
촤아아아아악-
“크으으으으으!”
창병이 왼 눈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꽤나 고통스러운 지 신음을 흘리는 창병.
하나, 동시에 떠오르는 글귀들에 정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화신, ‘유능한 용병’의 강신을 완료했습니다]
[최종 동기화율 : 120%]
[놀라운 업적!]
[동기화율이 높습니다]
[화신, ‘유능한 용병’의 이해도가 높습니다. 강신 시 스텟이 120% 상승합니다]
동기화율이라는 개념은 게임에 없었던 존재.
강신으로 인한 스텟 상승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으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꿀맛 같은 보상은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치유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데.’
점차 시야가 뒤바뀌며, 정겨운 방의 풍경이 보이는 가운데.
정호의 얼굴은 와락 찌푸려져 있었다.
‘고작 이 성급이 이 정도라고?’
이 성급, ‘유능한 용병’의 스토리만 하더라도 이 정도다.
그렇다면 삼 성, 사 성.
나아가 그 이상의 화신들을 강신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창이 더욱 강합니다. 주인. 검은 결코 창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화신 중 하나인 ‘노련한 창병’이 된 녀석이 정호의 속을 더욱 긁어댔다.
“하아...”
앞날을 생각하는 정호의 얼굴에는 흙빛이 떠올랐다.
3.
강신 해제한 탓에 탈력감이 몰려온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온몸에 힘이 빠진 정호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벽에 기대었다.
“처음에는 기분만 더러웠지만...”
제아무리 현실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여보기까지 했다.
사람을 벤 느낌은 아직까지도 남아, 손이 덜덜 떨려왔다.
“나쁘진 않아.”
하지만 정호는 생각을 달리했다.
‘시체를 보는 일이나, 사람을 상대해야 할 일도 있을 거다.’
세상이 변하고 이젠 종말마저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이해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종말이 당장 내일 찾아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애당초 나는 시련도 제대로 클리어 한 게 아니니까.”
최고 등급, 최단 시간 만에 첫 번째 시련을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이루어낸 일이 아니다.
그저 노련한 창병과 서서가 처리했을 뿐이다.
자신은 뒤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을 뿐.
‘첫 시련의 의미는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함일 터.’
공개된 랭킹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빈약한 스탯을 가진 아스텔의 유저들이라 할지라도 레벨 10의 오크를 쓰러뜨린 이들이 다수 존재했다.
즉, 어렵기는 하지만 녀석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숙련된 유저라면 쓰러뜨릴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클리어 한 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상대의 목숨을 거리낌 없이 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차이일 것이다.
‘정말 죽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죽는 것으로 착각할 만한 경험을 주는 것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위기감을 심어주기 위한 포석일 뿐이다.
“쯧.”
정호는 혀를 차내었다.
결국 오늘 이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출발선부터 틀려먹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저 화신들을 앞세워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지 않은 채, 자만하다 죽게 되는 미래가 펼쳐졌으리라.
‘아스텔 유저와는 강해지는 속도도 다를 거고.’
겨우 초반을 앞서나간다 하여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MMORPG 게임의 아스텔 시스템은 유저들을 계속해서 강해지게 만들 것이고, 수집형RPG 게임의 톨비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뒤쳐질 것이 분명했다.
뽑기를 통한 높은 등급의 화신을 뽑는 것만이 강해질 수 있는 것이 톨비아 시스템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호는 잔뜩 지친 심신을 이끌며, 입을 열었다.
“노련한 창병. 강신.”
기억과 경험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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