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9화 (10/144)

# 9화

# 9화

1.

전장에 처음으로 발 디디는 이가 가장 무서운 적.

그것은 말을 타고서 수없이 많은 병사를 휩쓸어 버리는 기사가 아니다.

전공을 세우고자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병사가 아니다.

수십 년간 전쟁에서 구른, 노련한 노병 또한 아니다.

전장의 열기.

피와 살점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르는 장소에서.

“아, 아하하!”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병사다.

그들은 미쳐있다.

어제만 하더라도 빵 조각을 나눠먹고, 미래를 이야기하던 동지들이 죽어나간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의 친우 또한, 싸늘하게 바닥에 누워 있다.

슬픔에 잦아들 틈도 없이 찾아오는 것은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지에 가까운 선고.

두려움은 그 끝을 알지 못하는 공포로 이성을 집어 삼킨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부대장이 몇 번이고 경고했던 말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기초적인 검법도 잊어버린 채, 공포로 점철된 그들의 검에는 오로지 절규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몸부림, 발악이다.

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인 판단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적을 죽이고 싶다기보다, 자신이 살고 싶다고 내던지는 검에 대단한 힘은 없다.

그들은 이미 싸늘하게 주검이 된 동료의 곁으로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까아아앙!

“크흑!”

다만 아직 사람조차 죽여 본 적 없고,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릴 것만 같은.

전장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에게만큼은 그 어느 악마보다도 두려운 존재다.

까앙, 까앙, 까앙!

피 한 점 묻지 않은 새하얀 검신이 쉬지 않고 정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주, 죽어! 죽으라고!”

절규인지, 소망인지 모를 악에 바친 목소리가 정호의 귀를 때렸다.

정호는 처음으로 진검을 쥐어 보았다.

고작 2킬로그램도 되지 않을 롱 소드는 그 생각보다 무거웠다.

잠깐 방심이라도 하면 바닥에 끌고 다닐 것만 같았다.

까앙!

적병이 내던지는 검을 막아낼 때마다 손이 저릿저릿했다.

“하아, 하아.”

정호의 호흡이 거칠었다.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게 뭐야.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성공적으로 강신을 펼쳤나 싶었더니, 갑작스레 이 상황이지 않은가.

아니, 굳이 갑작스럽지 않아도 매한가지다.

피잉! 피잉!

““와아아아아아아!””

화살이 빗발치고, 귀를 어지럽히는 전장의 소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호를 당황하게 하고 있었으니까.

“제발, 제발 죽어줘!”

정호는 자신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적병을 보았다.

스물은 되었을까.

앳된 얼굴을 가진 청년은 가려진 투구 속에서 울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투구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그 모습은 절로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부탁은 정호로써는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휘이이익-

상체와 하체를 나누기라도 하겠다는 듯, 허리를 양단해오는 적병의 검에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곧장 머리를 보호하고 있던 검을 내려, 비스듬히 세웠다.

그것을 횡으로 베어오고 있는 적병의 검에 가져다 대자.

끼이이이이이.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검이 적병의 검신 위를 내달렸다.

터억.

결국 녀석의 손잡이 끝, 크로스 가드에 맞물리고 나서야 멈추었다.

“허억, 허억, 허억.”

짧은 대치 상황.

정호는 적병의 숨소리마저, 귓가에 들려올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했다.

‘내가 이런 기술을 알고 있던가?’

상대의 검을 막아 세운 정호는 의문을 떠올렸다.

자신은 오늘 처음 검을 쥔, 초심자나 다름없었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적의 공격이 날아오는 족족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유능한 용병.’

정호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머릿속에는 유능한 용병이 가진 기억과 경험이 있었다.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몸이 멋대로 움직여 줬다.

정호는 마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눈을 돌렸다.

‘이거라면, 가능해.’

그 중, 유능한 용병이 펼치던 검법을 몇 개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으로 보이는 병사는 이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을 쥐고 있는 손조차 제대로 된 파지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니, 힘이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정호가 검에 힘을 주자.

털석.

녀석이 엉덩방아를 찌었다.

정호는 이대로, 녀석을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제발 살려주세요.”

한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시발.’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적은 인간이다.

심지어 정호와 일면식조차 없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다.

“홀몸인 어머니가 있습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전장의 한복판.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목숨을 구걸했다.

‘이게 무슨...’

몇 번이고, 검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게임에서야 무언가를 죽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었다. 시련에서 고블린과 오크를 목숨을 취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시련은 직접 손을 물들이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직접 죽여야 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정호는 되뇌었다.

코끝을 찌르는 피비린내.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커다란 함성 소리.

피부에 닿는 기분 나쁜 땀.

그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있었으나, 정호는 그것을 부정했다.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자기최면이나 다름없었다.

이 불쾌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

스르르르르-

정호는 손에 쥔 검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이내, 완전히 들어 올려 진 새하얀 검신.

“제발, 제발.”

녀석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두 손이 하나로 합쳐지기라도 하듯, 쉬지 않고 비벼댔다.

‘제발 공격이라도 해라.’

정호는 차라리 녀석이 발밑에 떨어진 검을 들고 자신에게 달려들었으면 했다.

적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를 죽인다.

그 행위가 얼마나 자신을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툭.

들어 올려 졌던 검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가라.”

“예?”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결국 정호는 녀석을 죽일 수 없었다.

‘죽이지 않아도,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적의 병사는 이미 전장에서 포기한 녀석이나 다름없다.

전의를 잃은 병사는 이미 적이 아니다.

이 장소가 어디인지도, 어떤 전쟁인 지도 모르는 마당에 다짜고짜 사람을 벨 수만은 없었다.

“하아...”

하지만 정호는 알고 있었다.

이 생각이 모두, 불편한 마음을 덜어주기 위한 거짓이라는 것을.

그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하는 마음이 내놓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의 병력 쪽으로 달려가는 사내.

그 모습을 보는 정호의 얼굴에 심란함이 깃들었다.

한데.

[오류]

[‘유능한 용병’의 강신(降神)에 필요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동기화율 10%]

그런 정호의 눈앞에 떠오르는 글귀들.

그 직후 시야가 반전 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분명 도망갔을 터인 사내가 검을 들고 정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2.

“커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새하얗던 검신이 빨갛게 물들었다.

적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비정하게도.

정호는 목숨을 구걸하는 녀석을 단칼에 베었다.

“후우, 후우.”

정호는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 올라,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호에게는 이것이 첫 살인이었으니까.

속이 매스꺼웠다.

칼이 녀석의 살점을 베고, 내장을 찢어발기는 그 감각은 절로 구역질이 났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기화율 50%]

이 상황은 가짜라고 알려오는 글귀가 정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질 나쁜 장난질이야.’

정호는 이 사태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이 상황은 정호의 예상처럼, 현실이 아니었다.

‘설마 강신 시나리오를 이렇게 바꿔놓다니.’

톨비아의 강신 시스템.

그것은 그저 화신의 능력치를 부여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화신의 기억과 경험.

모든 것을 이어받아, 화신과 다름없는 힘을 내게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설정’이었다.

‘고작해야, 동영상 하나였는데.’

다만 그것이 게임이라는 특성상.

유저에게 오롯이 화신의 기억과 경험을 심어줄 수 없는 법이다.

해서, 화신마다 가지고 있는 기억 중 일부.

시네마틱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유저에게 화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직접 경험하게 만들 줄이야.’

하지만 현실이 된 톨비아의 강신은 달랐다.

화신의 기억과 경험을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아예 그 영상 안으로 유저를 집어넣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였는데...’

망겜, 뽑기 망겜.

그리 부르면서도 정호가 톨비아를 계속해서 플레이했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수백, 수천이 넘는 화신의 방대한 수.

심지어 일 성급의 화신이라 할지라도 시네마틱 영상이 있는 섬세함.

그런 점이 좋아, 시작했던 게임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니 원...’

한데, 직접 살인을 경험하게 되니 그 마음이 쏙 사라졌다.

심지어 동기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뭣들 하고 있나! 영주님이 너희 용병 놈들에게 놀고 있으라고 돈을 쥐어 준 게 아니다!”

기사의 외침이 정호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시련보다 더하군.’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야 아스텔의 첫 번째 시련보다도 허들이 높았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휘익. 휘익.

정호는 날아오는 화살들을 헤쳐 나가며, 발걸음을 앞으로 했다.

“커헉!”

“으아아아악!”

앞으로 향할수록, 최전선에 가까워지는지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후우, 후우.”

다가갈수록 숨소리도 거칠어 졌다.

뜨거운 열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다.

마침내 정호의 앞이 열리고, 수많은 적병들을 마주했다.

“하하하! 더러운 야만인 놈들!”

쉬이이이익-

시야가 트이자마자, 검이 날아왔다.

처음 적과는 달랐다.

매서운 기세는 물론이거니와, 자비라고는 한 줌도 없는 일격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

“허업!”

갑작스레 날아온 그 검을 정호는 허리를 비틀어 피해냈다. 동시에 정호의 손이 쑤욱 내뻗어졌다.

스스로 해내고도, 놀랄 정도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푸우우욱-

검은 정확하게 심장을 꿰뚫었다.

“커허어어억!”

녀석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호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살인이었다.

한데, 두 번째인 탓일까.

아니면 녀석이 살의를 가지고 있었던 탓일까.

처음과 달리 거부감이 적었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겠지.’

정호는 적응하고 있었다.

살인, 전쟁, 절규, 환희, 함성, 외침.

그 모든 상황에 익숙해져 갔다.

“이 놈이!”

“감히!”

병사 하나를 쓰러뜨리자, 이제는 둘이 되어 날아왔다. 하나는 거대한 도끼였고, 또 다른 하나는 검이었다.

‘한 번에 쓰러뜨리진 못하겠고...’

곧장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왼 손으로 쥐고서 상대 검신을 훑었다.

처음 적과 상대했을 때 검으로 펼쳤던 수단이었다.

스르르르르륵- 카앙!

손잡이 부분에 단단히 단검을 고정시키고, 검을 도끼날에 마주했다.

카아아아아앙!

“크흑?”

손쉽게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힘껏 휘두른 도끼의 기세가 상당했다.

드드득, 드득.

당장이라도 검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정호는 몸을 지탱하고 있던 발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당연히 자세가 무너졌다.

정호의 무게중심이 흐트러지자, 도끼가 정호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고작 이 정도로 쓰러질 놈이!”

“죽어라!”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적병들은 그 기세를 더해 압박을 가했다.

‘그럴 줄 알았다.’

정호는 아예 바닥에 누워버리듯, 남은 한 발도 힘을 빼버리고선 녀석들을 맞이했다.

휘릭-

이어지는 것은 시원한 뒷 구르기였다.

“어어?”

“으아아아아!”

한껏 힘을 주고 있던 녀석들이 정호와 함께 앞으로 나뒹굴었다.

“이 놈들은 또 뭐야?”

“죽여!”

적군이 아군의 진형으로 갑작스레 들어오자, 아군 병사들이 그들의 목을 쳤다.

“후우, 후욱, 후욱.”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정호는 숨을 몰아  쉬었다.

시선을 돌려, 허공에 떠 있는 동기화 창을 바라보았다.

[동기화 60%]

‘아직도?’

첫 전투에 50프로나 올랐던 동기화율이었다.

금방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고작해야 10프로 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렇군, 충격이었어.’

정호는 그것을 토대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성급의 유능한 용병이, 유능한 용병으로 있을 수 있게 된 계기, 사건.

그것이 동기화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리라.

첫 전투와 첫 살인.

심지어 무방비한 적의 숨통을 끊는 일은 유능한 용병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리라.

그 탓에 동기화율이 올라갔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정호는 고개를 돌려, 전장을 훑었다.

무언가 있다.

이 전장 속에, 유능한 용병에게 충격을 가져다 준 녀석이 분명히 이곳에 있었다.

“용병인가? 검을 쓰다니, 아직 멀었군.”

그 때, 정호를 향해 대뜸 말을 내걸어오는 녀석이 있었다.

‘이 놈이다!’

정호는 확신 아닌 확신을 가지고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음?”

한데, 곧장 흘러나오는 것은 의문이었다.

무언가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모습의 청년이 창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역시 무기는 창이지!”

외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창 애찬론.

정호가 떠올리는 것은 하나였다.

[화신 도감]

- 전장의 전우들 :

그들은 전장에서 만났기에 전우가 되었다

- 조건 :

유능한 용병☆☆ (보유중)

노련한 창병☆☆ (보유중)

십발칠중 궁병☆☆ (미보유)

완성 직전인, 전장의 전우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도감 현황이었다.

정호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이 놈,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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