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8화 (9/144)

# 8화

# 8화

세계 각지, 그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

가상현실게임 아스텔의 현실화 업데이트.

‘종말에 대비하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상태창이라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종말’이라는 그 키워드는 이 평화로운 시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으로 찾아온 괴현상은 시련이었다.

[종말은 정말 찾아오는가? 너무도 높은 난이도의 시련]

[아스텔 홈페이지, 시련 랭킹 페이지?]

[세계인 중 단 2,382명! 첫 번째 시련 클리어]

[한국에서 나온 12명의 클리어 유저들]

정호는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기사는 하나 같이, 시련에 관련된 내용만을 떠들고 있었다.

┖나는 고블린 전사에서 죽었다.

┖ㅋㅋㅋㅋㅋㅋ어떻게 한방에 아웃이냐. 난 랫맨 워리어는 갔다.

┖구라치기는.

┖진짠데?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사회가 이토록 하나가 된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모두가 겪었기 때문이겠지...’

본래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고, 관심사 자체가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련이라는 것은 모두가 겪은 기현상이었다. 모두의 관심은 ‘시련’으로 통일되었다.

┖시련 이제 없었으면 좋겠음. 게임에서야 조금 아픈 정도였는데, 칼이 몸에 들어오는 게 그대로 느껴짐. 아직도 생생해서 병원까지 갔다 왔다.

┖그냥 더 현실 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나처럼 고생만 함. 우울증 약 먹고 있다.

하지만 시련의 난이도는 극악했다.

모든 이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경험했다.

그에 우울해 하는 이들도, 불안해하는 이들도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그렇기에 비로소.

┖저 2382명의 랭커라는 게, 시련을 모두 클리어 한 사람이라는 거지?

┖와, 대단하네. 한국 사람도 12명이나 됨.

┖그 중 하나가 나임.

┖┖어그로에게 먹이 금지.

첫 번째 시련 클리어 유저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해낸 이들.

그에 동경하고,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으니까.

┖보면 대부분이 아는 사람들임. ‘칼날귀족’도 그렇고, ‘한방박살’도 그렇고 전부 게임에서도 꽤나 잘 나가던 사람들 아님?

┖와, 악질적으로 PK만 하던 놈도 시련 클리어 했네.

┖최상위권 유저들이 생각보다 안 보이긴 하는데, 게임하고 현실은 다르니까...게임 폐인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도 운동 좀 한 녀석들이 많은 모양이야.

┖파괴쥐도 있네. 구독 두 번째로 하러 간다.

사람들은 본래, 게임 아스텔에서도 유명했던 이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게임에서도 랭커였던 유저, 악명을 떨쳤던 유저, 컨트롤의 귀재로 불렸던 이까지.

아스텔의 랭커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심지어 걔 중에는 게임의 유명 유튜버도 끼어 있었기에 그 여파는 상당했다.

다만.

┖그런데...1위 저 사람은 누구임?

┖나도 모름.

┖아는 사람?

┖처음 보는데...

아스텔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만큼.

그 네임드 유저들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전혀 갈피를 찾지 못하는 유저가 있었다.

┖‘과금망겜플레이어’? 무슨 캐릭터 명이 저래?

┖클리어 시간은 또 어떻고, 무슨 2위랑 저렇게 차이나?

첫 번째 시련 랭킹 1위.

클리어 시간, 3분 11초.

캐릭터 명, ‘과금망겜플레이어’가 그 주인공이었다.

갑작스레 듣도 보도 못한 이가 랭킹 1위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혼란해 했다.

┖이름 대충 지은 거 봐. 어우 무슨 캐릭터 명이 저래?

심지어 그 캐릭터명은 절로 고개가 흔들어지는 수준이었으니, 혼란은 더욱 컸다.

한데.

┖난 아닌데? 오히려 두 글자 닉네임에 집착하거나, 일부러 폼 내는 거보다 훨씬 나음.

┖동의함. 마치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런 느낌 아님?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님?

┖정신병원 가 봐라.

당최 무슨 일인지.

그 캐릭터 명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나, 이는 게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극단적인 예로, AOS 챌린저 유저였던 이의 캐릭터 명 ‘배부른돼지’.

그가 만약 낮은 계급에 있었다면.

사람들은 비웃음을 흘리거나,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되었겠지만.

챌린저, 랭커라는 자리가 빛을 내니, 너도나도 그 닉네임을 따라했다.

결국 캐릭터 명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그 위치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얼토당토않은 캐릭터 명은 완벽했다.

정확히는 캐릭터 명 따위가 아니라, ‘랭킹 1위’라는 점이 말이다.

┖누군지 진짜 궁금하네.

┖아스텔에서도 숨은 고수가 있었네.

┖에이, 현실에서 비밀 단체 요원 같은 거 아님? 살인청부업자라던가?

┖그런 게 한국에 있다고? 망상 좀 자제해라.

┖그게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정상적인 캐릭터 명이 아니잖아. 클리어 시간은 3분? 말이 돼? 아스텔 운영자 중 하나겠지.

┖운영자면 뭐? 신이냐?

┖그게 더 설득력 있겠네.

사람들의 이목은 하나 같이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유저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아.”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당사자.

정호의 입장에서는 아주 죽을 맛이었다.

‘신은 무슨.’

살인청부업자도 아니고, 비밀 요원도 아니다.

애초에 아스텔의 시스템도 부여받지 못한 것이 정호였다.

시련도 직접 전투에 나서지도 않았고, 화신들을 앞세워 인원수로 찍어 눌렀을 뿐이다.

‘참 못 짓긴 했네.’

이리보고, 다시 봐도 기괴했다.

정호는 자신의 캐릭터 명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게.

‘어떻게 말해.’

정호가 아스텔을 잠깐이나마 하게 된 계기.

‘뽑기가 망해서, 저렇게 지었다고...’

그것은 톨비아에서 큰마음 먹고 도전했던 과금이 완전히 망했기 때문이었다.

정호는 그저, 뽑기를 돌리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캐릭터 명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마저도 지른 돈이 아까워서 금방 접고 톨비아로 돌아갔으니, 스스로 지은 캐릭터 명이라도 어색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랭킹 1위인데, 무슨 숨겨진 의미라도 있는 게 아닐까?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

그것을 바라보는 정호의 얼굴에는 심란함만 감돌았다.

2.

「가상현실게임, 아스텔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지 2일 째, ‘첫 시련’이 일어났습니다. 잇따른 기현상에 많은 회사들이 임시 휴업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몇 시민들은 스스로의 몸을 지키고자 실전 무술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첫 시련 이후, 사람들은 달라졌다.

설령 그것이 실제로 죽은 게 아니라 할지라도, 목숨을 잃는 경험은 그만큼이나 컸다.

게임의 시스템은 현실이 되었으나, 게임 캐릭터가 현실이 된 것이 아니다. 시련에 맞서기 위해서, 사람들은 스스로 종말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고작해야 인터넷에 떠도는 댓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현실에서 경험치를 얻지 못하는 이상,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시련뿐이다. 철저히 준비해, 다음 시련부터는 클리어 해야 한다.

시련을 반드시 클리어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

사람들은 그에 충격을 받았다.

시련에 대해 좀 더 진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내용은 정호에게도 충격이었다.

다만 그 초점이 달랐다.

‘레벨!’

첫 번째 시련.

정호는 몬스터들을 잡으며 어떤 변화도 겪지 못한 채, 마지막인 오크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 시련을 하나 씩 클리어 한 아스텔의 유저들은 달랐다.

‘시련을 모두 클리어 한 유저들은 레벨이 6이다.’

1레벨의 유저가 5레벨의 고블린 전사를 쓰러뜨리며, 2레벨이 된다. 또 다시 6레벨의 랫 맨을 쓰러뜨리고, 3레벨이 된다.

유저와 몬스터의 격차는 고정되어 있었다.

시련은 어디까지나 유저의 수준에 맞는.

적당한 난이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레벨 업...이라.”

정호는 낮게 읊조렸다.

자신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제일 걱정했던 부분 중 하나였다.

시련을 거듭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레벨 업이라는 수단을 통해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 그러니까 유저의 수준이 올라가면 시련의 난이도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착실히 시련을 통해 레벨 업을 한 유저들은 클리어 할 것이다.

하지만 정호는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랭킹 1등을 뺏기든 말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허울뿐인 영광 따위는, 다가오는 종말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코인을 얻어야 해.’

정호가 강해질 수단은 결국, 코인.

뽑기 밖에 없었다.

시련 끝에 얻은 3000코인.

그것은 현자의 목걸이라는 보상으로 되돌아왔다.

‘랭커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이 500코인, 많아봐야 1000코인을 보상으로 받았다.’

랭커들의 코인 획득 량은 이미 인터뷰 기사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로 알 수 있는 점은, 정호가 얻은 코인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정호는 그 보상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종합 평가 점수.’

정호는 첫 번째 시련에서 S등급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추가 점수의 영향이 컸다.

‘최초 클리어, 클리어 시간.’

평가 점수에 따른, 차등 보상.

그것이 시련의 정체였다.

차별화된 보상은 사람들에게 목표를 심어준다.

랭킹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부추기기 위한 일종의 장치임에 틀림이 없었다.

정호는 자신이 살아날 길은 하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코인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클리어 해야 해.’

단순히 클리어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도록, 빠르게 클리어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코인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만 강해질 수 있다.

이번에 현자의 목걸이를 얻었다 하여 방심할 것이 아니었다.

뽑기는 어디까지나 운빨이었으니까.

이대로 손을 빨고 있어봐야,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호는 손을 내뻗으며, 입을 열었다.

“노련한 창병 소환, 유능한 용병 소환.”

“나의 창을 받을 적은 누구인가?”

“부르셨습니까. 주인!”

곧장 나타나는 이 성급 화신들.

‘강신(降神)...’

톨비아에는 ‘강신’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화신을 스스로의 몸에 빙의시켜 싸우는 방식.

하나의 화신은 소환하여 서포트하고, 또 다른 하나는 강신시켜 사용한다.

이것이 정석이었다.

‘지난번에는 강신을 시킬 이유가 없었지만.’

다만, 첫 번째 시련에서 서서와 노련한 창병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던 까닭.

그것은 오롯이 VIP 특전 덕분이었다.

[VIP 특전]

[화신 소환 개체 수 증가]

당시 정호에게 주어진 화신도 둘이었으니, 굳이 강신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서서 소환.”

[최대 소환 가능한 화신 수를 초과하였습니다]

코인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빠른 클리어가 중요했다.

두 명으로 싸우는 것보다, 세 명이 당연히 빠르기 마련이다.

‘시련을 빠르게 클리어 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참가해야 한다.’

정호는 이 둘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기로 했다.

유능한 용병을 자신의 몸에 강신시키고.

노련한 창병과 대련을 하여, 전투에 익숙해지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게임에서라면 몇 번이고 해봤지만, 현실이니까.’

사람들이 현실에서 실전 격투기를 배우거나, 몸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의 행동.

다음 시련을 위한 준비였다.

“후우...”

정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눈을 감았다.

‘강신’은 현실에서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불안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겨우 코인 좀 더 벌어보자고...’

스스로를 폄하하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으나.

‘겨우’.

그렇게 치부하기엔, 너무도 값지다.

코인은 정호에게 목숨이나 다름없으니까.

선택지는 없었다.

이윽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정호가 눈을 뜨며, 외쳤다.

“유능한 용병, 강신!”

“저의 차례군요. 알겠습니다. 주인!”

곧장 유능한 용병이 정호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충성스러운지.

부딪치면 금방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만 같은 몸통박치기였다.

한데.

스으으으으윽-

순식간에 다가온 유능한 용병은 마치 흩뿌려지듯이 정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허억!”

정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이물감.

마치 결코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유능한 용병은 정호의 몸속을 마음껏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이, 이게...?”

이어지는 것은 의문이었다.

어째서인지, 정호의 머릿속에서 전혀 겪은 적 없는 기억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전장을 누비는, 칼과 방패.

그리고 그곳에서 피를 흘리며 살려 달라고 외치는 이들.

‘용병의 기억이다!’

정호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죽여라!”

“적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마라!”

그것은 곧 눈앞에 펼쳐졌다.

“이, 이게...”

게임과는 달랐다.

정호는 전장 한 가운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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