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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7화 (8/144)

# 7화

# 7화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안 되는 법이지.”

정호는 현자의 목걸이를 손에 쥐고서 읊조렸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의미가 달랐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눈을 감고 있었으니, 제대로 뜰 리가 있나.’

그저 뽑기 할 때 눈을 뜨지 않았으니 망했고, 눈을 뜨니 대박을 쳤다.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에 불과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러나저러나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3성 급의 장비가 덜컥 나왔으니까.

인간은 부정적인 일에 대해선 금방 잊고, 긍정적인 일만을 생각한다고 하던가.

“흐흐...”

음침한 웃음소리가 방 안에 감돌았다.

조금 전가지만 하더라도 절망에 빠졌던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비록 생각보다 많은 양의 코인을 썼기에, 상정했던 계획과 틀어졌지만 3성급의 장비는 그 의미가 달랐다.

‘특수능력.’

상점에 들러 악마의 대검을 본 정호가 얼마나 놀랐던가.

톨비아에서 특수 능력이 붙는 장비는 삼 성 이상의 장비부터였다.

한데 데몬의 대검은 이 성급의 능력치를 지니고서 특수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삼 천 코인이라는 비싼 가격이 납득이 갈 정도였다.

‘장비에 달린 특수 능력은 전황을 바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물론 그것은 삼 성보다 더욱 높은, 고 등급의 장비에 해당되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제쳐두고서라도 의미가 남달랐다.

‘화신의 스킬 자체가 적은 톨비아에서 이런 장비의 특수능력의 유무가 중요해.’

삼 성의 화신이 가진 스킬의 수는 하나.

사 성의 화신이 가진 스킬의 수는 둘.

자신이 게임에서 얻었던 최고 등급의 화신, 포세이돈이 가진 스킬이 넷이라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특수능력이 붙은 장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꿀꺽.

호화진미를 눈앞에 둔 것도 아닌데, 절로 침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었다.

정호는 곧장 이 현자의 목걸이를 확인했다.

[현자의 목걸이☆☆☆]

-이름 없는 현자의 추억이 담긴 목걸이.

-능력치 : 지능 30증가

...

“...삼십?”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과연 삼 성 등급의 장비라고 할까.

단일 능력치가 무려 ‘30’이나 오르는 압도적인 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능력치가 지능이라는 점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지난 시련에는 창병이 활약을 해줬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최대 전력은 서서야.’

정호가 가진 유일한 사 성 등급의 화신.

서서 원직은 캐스터에 해당하는 화신이다.

지능에 공격력이 비례하고, 스킬도 지능에 따라 정해지는, 한 마디로 지능의 수치가 높을수록 강해지는 화신이라는 말이다.

한데 그 수치가 무려 ‘30’이 오른다.

서서의 지능은 78으로, 사 성 등급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높은 수치를 가진 화신이다.

거기에 현자의 목걸이를 착용하는 것만으로 108이라는 수치.

‘백을 넘겼다.’

하나의 스텟이 ‘100’을 넘긴 시점에서 인간을 초월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외의 영역.

단순히 스텟 만으로 비교한다면 오 성급의 화신에 달하는 수치다.

덜덜.

손발이 떨리고, 몸 전체에 닭살이 돋아났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본래 정호가 확인하려 했던 내용은 단순한 능력치가 아니었으니까.

시선을 끌어내려, 삼 성 이상의 장비부터 붙는 특수능력을 확인했다.

-특수 능력 :

[단죄 - 아군이 적에게 주는 원거리 피해가 6프로 증가하는 낙인을 새긴다]

‘나쁘지 않아.’

정호는 그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원거리 공격’이라는 제한이 붙기는 했지만 상시 피해 증가라는 점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아니 좋아. 더 할 나위 없이 좋아.’

애초에 현자의 목걸이는 삼 성 등급의 장비다.

단일 능력치를 삼십이나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탈 삼 성이라 할 만 했다.

더군다나 상시 피해 증가라는 옵션은 상위에 해당하는 특수 능력이다.

실망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하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

“역시 선택은 옳았어...”

만약 이 천 코인을 주고 ‘달빛의 스피어’를 샀거나, 가진 코인을 모두 소모해 ‘악마의 대검’을 샀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000코인으로 얻은 현자의 목걸이는 저 둘을 아득히 상회하는 힘을 지닌 녀석이었다.

“한, 한 번만 더 할까?”

이토록 큰 리턴이 있으면, 다시 한 번 뽑기를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치솟아 올랐다.

장비 뽑기로 절로 가는 손.

‘아니야.’

그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막아 세웠다.

이래서야 도박 중독자나 다름이 없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이어지는 것은 자기비판이었다.

본래 정호가 사용하려던 것은 1000코인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억지로 한 번 더 뽑기를 진행했다.

결과가 좋으니 망정이지, 완전히 망해버릴 수도 있었다.

평균은 어디까지나 평균이지, 확정이라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현실이야. 정신차려.’

스스로를 타박했다.

이제 더 이상 톨비아는 게임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처럼 식비를 줄인다고, 적금을 깬다고 생성되는 코인이 아니었다.

이 코인들이 정호의 목숨 줄이었다.

간단히 생각하여 사용해서는 아니 되었다.

‘여기까지야.’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차례였다.

‘당장 필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니까.’

필요한 것은 명확했다.

‘전력이 될 만 한 화신이 하나 더 필요해.’

정호가 사용할 수 있는 화신은 셋.

하지만 가진 화신은 둘에 불과했다. 최소한 한 번의 화신 뽑기는 진행해야만 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삼 성 이상의 화신을 원했다.

높은 등급의 화신일수록 그 잠재 가치는 일반 등급의 화신들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천 코인이라...’

높은 등급의 화신을 뽑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코인이다.

막상 남은 코인을 떠올리니, 장비 뽑기에 사용한 코인이 아까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현자의 목걸이를 뽑아냈던 것처럼, 뽑기란 운에 모든 것이 걸린 일이었으니까.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좋아. 화신 뽑기.”

[1회 화신 뽑기 : 100코인]

[11회 연속 화신 뽑기 : 1000코인]

[잔여 코인 : 1000코인]

“11회 연속 뽑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휘리리리릭-

슬롯머신이 쌩쌩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즈아-!”

기대와 열망을 품은 외침이 조용한 새벽에 울려 퍼졌다.

* * *

운동량 보존법칙이 있다.

물체의 운동량 변화는 결국 ‘0’이고 총 운동량은 보존된다는 녀석이다.

뽑기에도 이 보존법칙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다만 그것이 적용되는 것은 운동량이 아니라 운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평균회귀.

총 행운의 보존법칙이다.

“하, 하하...!”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호의 앞에 선 사내.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정호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 검은 오로지 주인을 위해 휘두르며, 이 한 몸 역시 주인께 바치겠습니다.”

사내는 온몸이 가죽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일 성급의 가죽 갑옷이 그 정체였다.

“그래...알았다.”

정호는 곧장 사내를 돌려보내고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하는 건 무슨 기사라도 되는 줄 알겠네.’

솔직히 말해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정확히 평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용병☆☆

-힘 : 42 체력 : 21 민첩 : 17 지능 : 18

11회 뽑기의 마지막에 뽑은 화신은 이 성급의 화신이었다.

분명 만족할 만한 결과였지만,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삼 성 이상의 화신이 나오지 않아서 나오는 아쉬움은 아니었다.

‘최소한 궁병 정도는 나왔어야 했는데.’

본래 정호는 전위로 두 명의 근접 딜러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후위에 캐스터인 서서를 두고서, 그것을 지키는 식의 방식.

하지만 현자의 목걸이의 원거리 피해 증가, ‘단죄’라는 특수 능력을 확인한 정호는 그 생각을 바꾸었다.

전위로 노련한 창병과 서서의 구원대 스킬을 활용하고, 그 뒤를 확실한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쯧. 너무 잘 풀린다 했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운이 너무 좋았다.

사 성급의 화신과 삼 성급의 장비.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들인 코인에 비해 굉장한 수확이었다.

만약 아직 톨비아가 게임이던 시절이었다면 무과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흔히들 말하는 평작 정도의 게임은 되었을 것이다.

서비스 종료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호가 1억에 가까운 돈을 꼴아 박지 않아도 되었다.

“하아...!”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호라 할지라도 아쉬움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뭐...어쩔 수 없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꼬꼬대애애애애액-!

소란스러운 알람이 울렸다.

이미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시련이 끝났다.

마치 하루 밤의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련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낸 여파는 상당했다.

정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소처럼 회사에 도착했다.

어제 그 난리가 있었으니 나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딱히 결근을 하라는 문자가 날아오지 않았기에 출근했다.

한데.

“한산하네...”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앉아 있는 사원의 수보다 비어있는 자리의 수가 더 많았다.

‘하긴, 그 난리가 있었으니.’

정호가 예상하기에.

시련을 클리어 한 사람의 수는 적을 게 분명했다.

자신이야 화신들로 손쉽게 시련을 넘어섰으나.

그들은 다르지 않은가.

아스텔과 같은 정통 MMORPG의 장르는 레벨이 곧 깡패고, 벽이니 말이다.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겠지.’

천사가 목숨을 보장한다고 하였으니, 실제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큰 충격이 있을 건 확실했다.

제대로 출근하는 거 자체가 이상한 노릇이다.

“어? 선배님. 출근하셨네요?”

그 때, 정호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김동하 사원이었다.

“설마 선배님도 안 오시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다니까요? 다른 분들은 죄다 몸이 아프다고 오자마자 조퇴하거나, 결근했어요.”

죽어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체험했다.

분명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넌 괜찮냐?”

“예? 저야 완전 거뜬하죠!”

오히려 이렇게 밝은 얼굴인 김동하가 이상한 케이스였다.

정호는 동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동하는 자신을 아스텔에서 꽤나 이름난 고렙 유저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하나, 게임과 현실이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시련은 어떻게 했어?”

“당연히 깼죠.”

단칼에 날아오는 동하의 말.

그에 정호가 눈을 부릅떴다.

“아쉽긴 해요. 고블린까진 이해해도, 랫맨이라니 무기도 없는 마당에 허들이 너무 높긴 했죠.”

“...그러냐.”

“아, 선배 설마 고블린에서 탈락이에요? 그러기에 아스텔 하셨어야죠.”

“그러게 말이다.”

정호는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동하의 착각을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죽는 순간은 영 찜찜하긴 한데, 그래도 보상이 확실했으니까요.”

랫 맨이라면, 시련의 두 번째에 해당했다.

다른 유저의 보상을 알지 못했던 정호는 그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나 받았는데?”

“무려 100 코인이요. 이걸로 롱 소드 하나 샀죠. 캬! 아스텔 할 때는 이거 하나 구하겠다고 고생을 얼마나 했던지.”

추억에 잠긴 듯, 만족스럽게 미소를 내짓고 있는 동하.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정호의 한쪽 눈썹이 기울어졌다.

‘고작 100코인?’

녀석은 ‘무려’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정호에게는 한 없이 작았다.

100코인이면 화신 뽑기 한 번이면 없어졌으니까.

‘이런, 이게 아니지.’

정호는 모든 것을 뽑기에 연관 짓기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가치관에 혼란이 찾아왔다.

“하아. 그래도, 저는 이 정도면 꽤 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세상엔 괴물들이 많더라고요.”

“괴물들?”

이어지는 것은 푸념이다.

잠시나마 뜨끔했던 정호였으나, 이내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허, 선배님 진짜 아무것도 모르셨구나. 이번에 기사 뜬 거 못 보셨어요?”

“기사?”

“네. 아스텔 홈페이지가 다시 열렸어요. 그것도 카테고리 하나만.”

동하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밀며, 말을 덧붙였다.

“여기요.”

그 화면을 보자, 숫자들이 가득했다.

1부터 시작한 숫자는 100을 넘어, 200, 300...쭈욱 이어져 2000까지 있었다.

“이게 뭔데?”

“뭐긴요. 당연히 첫 번째 시련 랭킹이죠. 이거 전부 다 시련 클리어 유저들이에요.”

“뭐?”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숫자의 끝은 ‘2,382’.

그렇다면 시련을 오크까지 클리어 한 사람이 무려 2,382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여기 시간 보이죠? 클리어 시간에 따라서 등수를 나열한 거 에요.”

“...”

정호는 떨떠름하게 그 랭킹 란을 바라보았다.

랭킹에는 중국, 일본의 아시아권부터 영국, 프랑스의 유럽권, 미국도 그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무려가 아니라, 고작이었군.’

클리어 유저가 전 세계인을 통틀어, 2382명이란 말이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한국에서도 랭킹에 12명이나 있어요.”

동하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클리어 시간은 2시간 48분.

랭킹 148위에 올라 있는 ‘칼날귀족’.

이름을 보아하니, 랭킹에 등록되는 이름은 ‘게임’시절의 캐릭터 명을 따르는 듯 했다.

“여기도, 여기도. 전부 아스텔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시련 클리어 유저들은, 이른바 아스텔의 ‘고인물’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등장한 랭커가 있어요.”

동하는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정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동하의 손가락이 스마트폰을 사정없이 위에서 아래로 긁었다.

향하는 것은 최상위권.

마침내 도달한 그곳에 자리한 것은 분명 한국어로 된 캐릭터 명이었다.

“첫 번째 시련 랭킹 1등. 클리어 시간은 3분 11초. 2등 기록이 12분인데, 완전 괴물이라니까요?”

그리 말하며, 들이미는 화면.

정호는 그것을 보고, 하마터면 빽-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과금망겜플레이어’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캐릭터 명인데...”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괴상하기 짝이 없는.

대충지어도 이리 대충 지을 수가 있는지.

제한 길이를 꽉 채워 넣은, 의문스러운 캐릭터 명.

“재야의 고수가 분명해요. 아스텔에서도 레벨 높았을 걸요?”

정호는 아니라고 비명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과금망겜플레이어’는.

‘나잖아.’

정호가 아스텔에서 잠깐 맛보기로 키웠던 캐릭터였다.

당시 레벨은 1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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