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5화
벌써 두 번째였다.
야근이 일상과 같았던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진 게.
아스텔의 천사가 나타나서 한 번.
이번엔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 오는 목소리로 인해 한 번.
‘그럴 만 하지.’
정호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러분은 앞으로 지구 시간으로 8시간 뒤, 첫 번째 시련에 돌입합니다.
다짜고짜 시련이라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으니까.
다만, 정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시련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집이라면 다른 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시련, 첫 번째 시련이라...’
정호는 녀석이 말한, 첫 번째라는 점에 주목했다.
시련은 시련이지, 그 앞에 괜한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적어도 두 번째는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게임 아스텔과 같이, 종말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배려, 자비입니다. 여러분은 시련에 맞서지 않아도 좋고, 시련에 실패해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목숨을 잃을 일은 없습니다.
정호는 그 뒤에 이어진, 꽤나 긴 말을 모조리 메모장에 받아 적어 왔다.
‘목숨을 잃을 일은 없다.’
주목한 것은, 마지막 글귀였다.
시련에 실패를 하든. 맞서 싸우지 않아도 상관없다.
한 마디로 패널티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란 말이다.
이래서야 시련이 아니다.
그 진위를 깨달은 정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건 솎아내기야.’
본디 시련이라 이름을 붙이는 것은, 실패했을 때 그 만한 리스크를 진다는 것에 있다.
한데 아무래도 상관없단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녀석은 지금 인간들을 상대로 등급을 매기고자 하는 것이었다.
위기라는 것이 정말로 찾아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신인지 천사인지 모르는 대단하신 녀석은 그 위기 이전에, 사람을 나누고자 하고 있었다.
‘쓸 만한 녀석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이쯤 되니, 이대로 녀석이 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맞는가 싶었다.
하지만 정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오후 5시였지...”
시계를 슬쩍 바라보니, 이미 오후 4시 50분이었다.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푸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스텔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상태창은 부여받지 못했으나, 녀석이 하는 텔레파시와 같은 수단은 들렸다.
분명 시련도 자신에게 찾아올 게 분명하리라.
‘소, 돼지도 아니고 등급을 매기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녀석은 인간에게 등급을 매기고자 한다.
그럼 F등급보다야 특A등급의 도장이 나은 게 당연했다.
“노련한 창병 소환.”
“내가 나설 차례군! 내 창을 받을 이는 어디 있는가!”
“서서 소환.”
“소인은 서서, 자는 원덕일세.”
정호는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꺼내었다.
듬직한 두 화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금까지 가졌던 불안감이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딸깍, 딸깍.
고작 10분밖에 남지 않았으나.
막상 시련을 기다리고 있자니 일 분, 일 초가 길게만 느껴졌다.
정호는 명상이라도 하듯, 눈을 감고서 그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거짓말일지도 모르는, 그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적은 아직 인가?”
“...”
소환된 화신인 노련한 창병과 서서도, 멀뚱히 그 자리에 서서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꼬꼬데에에에에에에-
스마트폰에서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알람이 울려댔다.
정호는 눈을 떴다.
시간이었다.
“가자.”
“드디어 출발인가? 좋지!”
“가세. 앞을 가로막는 자는 이 서서가 치워주겠네.”
호들갑스러운 화신들의 반응과 함께.
정호의 시야가 반전되었다.
[첫 번째 시련 : 다섯 번의 살해]
[1. (LV5) 고블린 전사를 쓰러뜨리십시오]
허공에 글귀가 떠올랐다.
시련의 내용은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분명 정호는 집 안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독립된, 다른 장소에 떨어졌다는 거다.
하나, 정호는 침착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당황하지 않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던 탓이다.
‘이런 건 타임 어택이나 다름없어.’
천사가 원하는 것은 쓸 만한 인간이다.
허공에 떠올랐던 글이 사라지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찢어졌다.
나타나는 녀석은 신장 150CM도 되지 않아 보이는 왜소한 몹집을 가지 녀석.
그러나 그러한 몸집에 맞지 않는, 단단해 보이는 가죽 갑옷과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는 녹색 괴물.
시련의 목표인 ‘고블린 전사’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정호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정호는 곧장 외쳤다.
“서서! 스킬, 구원대 발동. 노련한 창병은 전위로!”
“이제야 내 창에 피를 묻히겠군!”
“나와 주인을 보좌하라. 구원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방심 따위는 없는, 총력전이었다.
* * *
객관적으로 볼 때
시련의 허들은 높았다..
현재 지구의 인간들은 모두 ‘레벨 1’의 상태다.
한데 다섯 번의 살해라는 시련의 첫 시작이 ‘레벨 5'의 고블린이었다.
RPG게임에서 레벨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넘기 힘든 벽이다.
하나 아직 쪼렙이라 불리는, 낮은 레벨이라 할지라도.
게임을 좀 해보았다는 고인물들에게는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그건 게임이고.’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현실이다.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를 받아보는 일이 있을까.
고블린 전사의 눈은 날카로웠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목숨을 끊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사나운 살기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다.
‘어째서 죽지 않는다는 보장을 내걸었는지 알겠어.’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첫 시련에서부터 지구의 절반이 죽어버릴 터였다.
위기에 대비시킨다는 것이, 스스로 종말 시켜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다.
‘얼마나 이 시련을 통과할지 모르겠네.’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에, 정호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다만 정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케에에에에엑!”
“나의 창 맛은 어떠냐! 하하!”
고작 이 성급이라며, 실망을 잔뜩 가졌던 것과 달리.
노련한 창병은 고블린 전사를 완전히 유린하고 있었다.
‘이건, 예상 외 인데...’
고블린 전사는 이미 지친 기색이었다.
여기저기 상처가 난 것은 물론이고, 이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에 반해 노련한 창병은 아주 날아다녔다.
“하앗!”
발을 박차고, 허공을 향해 뛰어드는가 싶더니 아예 공중제비를 돌아버린다.
기다란 창이 풍차처럼 돌아, 고블린 전사의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저기,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노련한 창병님이 있는 곳에 들어가면, 오히려 저희가 당하게 생겼습니다.”
“으으...!”
서서의 스킬, [구원대]로 소환된 일 성급의 화신들.
‘징집된 농부’, ‘평범한 병사’, ‘겁이 많은 종자’는 전투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과연...’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노련한 창병의 스텟 총합은 97.
근접 전투에 특화된 노련한 창병이니, 지능을 제외하면 90에 달했다.
‘아스텔 1레벨 유저의 스텟 포인트는 총합이 50을 넘기가 어려워’
그마저도 운과 지능을 포함시킨 수치다.
아스텔이 레벨 업마다 주어지는 보너스 스텟은 ‘5’.
그렇다면 적어도 노련한 창병은 아스텔의 레벨 10 유저에 비견된다는 이야기다.
결코 레벨이 5에 불과한 고블린 전사가 상대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케, 케에에에에-”
“보아라. 이것이 창의 위력이다!”
결국 정호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 고블린 전사를 쓰러뜨렸다.
[1. (LV5) 고블린 전사를 쓰러뜨리십시오]
[완료]
[클리어 시간 - 00 : 17]
단 17초 만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하지만 정호는 긴장을 놓치지는 않았다.
첫 번째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시련의 내용은 다섯 번의 살해.
고작해야 첫 고비를 넘긴 것에 불과했다.
“긴장을 풀지 마!
의기양양하게 창을 들고, 승리를 만끽하는 노련한 창병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2. (LV6) 랫 맨을 쓰러뜨리십시오.]
[3. (LV7) 랫 맨 워리어를 쓰러뜨리십시오.]
[4. (LV8) 랫 맨 궁수를 쓰러뜨리십시오.]
[완료]
[클리어 시간 - 00 : 15/ 17/ 40]
그런 정호의 주의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나타나는 몬스터들 족족, 노련한 창병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추풍낙엽처럼, 순식간에 쓰러지는 몬스터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괜히 긴장했나 싶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주의]
[마지막 대상은 (LV10) 오크입니다.]
[정말로 도전하시겠습니까?]
레벨이 한 단계씩 증가했던 몬스터와 다르게, 이번에는 두 단계나 뛰었다.
무엇보다도 단 한 번도 뜬 적이 없는 메시지.
주의라고 대문짝만하게 나타난 그 글귀는 지금처럼 쉽게 풀리지만은 않음을 알려주었다.
‘10레벨이면, 노련한 창병과 비등해.’
정호 또한, 그것을 쉬이 도전할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화신은 둘 뿐이다.
그 중 하나인 노련한 창병은 사실 버리는 패나 다름없었으나, 지금까지 보여준 무위는 그러한 정호의 생각을 달리했다.
노련한 창병은 정호의 전위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전력을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해야지.’
과감히, 앞으로 발을 내밀었다.
아직 정호는 모든 수를 꺼내 보인 것이 아니었다.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기자, 하품을 하고 있는 일 성급의 화신들과 무표정한 서서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준비하도록.”
“저, 저희가 나설 차례인가유?”
“명을 받듭니다.”
“으으, 두렵지만... 주인님의 말씀이라면...”
일 성급의 대답이 먼저 나오고.
“노련한 창병은 좋은 장수가 되겠군요. 주인의 말이니 소인도 준비하겠습니다.”
파초선을 곧게 쥔 서서가 앞장섰다.
완벽하게 정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정호가 입을 열었다.
“도전한다.”
그 말과 동시에, 허공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2M는 될 법한 장신.
뒤룩뒤룩 나온 배는, 100KG은 가뿐히 넘어 보인다.
사람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명백히 돼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
오크였다.
정호는 녀석의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외쳤다.
“일제히 공격!”
* * *
오크의 공세는 거칠기 짝이 없었다.
타고난 육체를 믿고서,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오크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전사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크취! 인간!”
후우우우웅!
“허억!”
오크가 도끼는 매섭기 그지없어, 휘두르는 족족 일 성급의 화신들에게서 비명과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카앙! 캉!
그나마 그 도끼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은 노련한 창병이 있었던 탓이다.
노련한 창병은 아군이 당할 것 같으면, 훌쩍 몸을 날려 창을 앞세웠다.
“괜찮소?”
“고, 고마워유!”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노련한 창병과 일 성급 화신들.
마치 수세에 몰린 듯한 모습이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주인은 너희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녀석의 체력은 한정되어 있다. 최대한 공격을 피하고, 지치도록 만들어라.”
서서는 오크와는 멀찌감치 떨어진 장소에서 연신 파초선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때마다, 파초잎이 날아가 오크에게 꽂혔다.
“취익! 인간, 치사하다!”
오크가 불만스러운 말을 연신 내뱉었으나.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정호와 서서로 가는 길목은 노련한 창병이 막아서고 있었고.
뒤는 일 성급의 화신들이 거리를 조절하며 천천히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너무도 착착 진행되는 상황.
정호는 머리를 긁으며,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원래 한 사람이 상대해야 할 것을 다섯이 상대하고 있으니.’
시스템으로 주의를 준 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모습을 본다면 경악할 것이 분명했다.
“취, 취익.”
“지금이다. 녀석의 목숨을 끊어라.”
털썩.
결국 오크는 자신의 힘을 반도 내지 못한 채, 자리에 쓰러졌다.
그 시간은 고작해야 1분 남짓.
‘이거, 시련 맞지?’
시련을 대비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정호로써는 실로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정호의 생각은 다음 순간, 쏙 들어갔다.
[첫 번째 시련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클리어 내용 : 고블린 전사, 랫 맨, 랫 맨 궁사, 랫 맨 워리어, 오크]
[놀라운 업적!]
[첫 번째 시련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첫 번째 시련을 최초로 클리어 하셨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총 클리어 시간이 채 3분이 되지 않습니다.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종합 평가 : S]
[당신은 다가오는 종말에서 인류를 구해낼지도 모릅니다!]
떠오르는 글귀들은 얼굴에 아주 금칠이란 금칠은 모두 다 바르고 있었다.
하지만 정호는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칭찬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보상을 줘야지.’
시련이 시련인 이유.
그것은 모두 이겨냈을 때 얻는, 꿀맛 같은 달콤한 보상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런 정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아스텔 상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스텔의 상점은 오로지 코인으로만 거래가 가능합니다]
[S등급 보상 : 3000코인이 주어집니다]
“어...?”
그런데 그 보상 목록이 이상했다.
“코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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