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화
빰빠람-
무료 뽑기 때와 다른 빵파레가 울렸다.
삼 성 이상의 영웅 급 화신이 등장했을 때만 울리는 그 소리는 정호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뭐, 뭐가 떴냐...!”
벌써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간이었으나, 졸린 눈치도 없었다.
육 성급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 확률이 얼마 낮은지 알고 있으니까.
애초에, 정호가 톨비아를 할 때 얻은 포세이돈은 신규 유저 이벤트로 확률이 열 배가 된 상황에서 얻은 것이다.
그 마저도 0.0012%라는 극악의 확률이었으니.
지금은 0.00012%라는 말이 되었다.
그렇기에 바라지도 않는다.
오 성 급의 영웅도 매한가지.
일 프로가 되지 않는다.
사뭇, 이게 게임인가 싶었으나.
모바일부터 이어온 과금에 대한 게임 업계의 노하우는 철저하게 개돼지의 지갑을 노리고 설계되었다.
뽑기, 수집류 게임의 확률은 낮으면 낮을수록 그 만큼의 희소가치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더더욱 부추기면, 지갑이 열린다.
‘삼 성만 아니길...아니, 삼 성이라도 좋아. 유명한 놈으로!’
정호는 많이 바라지도 않았다.
VIP 특전으로 얻은 프리미엄 뽑기는 별 세 개 이상의 화신이 ‘확정’적으로 뽑히게 된다.
삼 성급은 ‘노련한 창병’처럼, 이름도 없는 녀석들이 아니다.
스스로 이름을 가지고, 어디선가 들어 본.
사람들도 한 번쯤은 알고 있는 녀석이 화신으로 등장한단 말이다.
그 탓일까.
삼 성급의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능은 평범한 사 성급을 넘어서는 화신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하나, 둘, ....셋!’
정호는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세고서 눈을 떴다.
멈춰 있는 룰렛을 보자마자, 얼굴빛이 환해졌다.
“...좋아!”
새벽만 아니었으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별은 고작 세 개 따위가 아니었다.
무려 네 개.
그것도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 보았을 법한 네임드 급.
“서서 원직!”
삼국지의 서서였다.
* * *
서서(徐庶).
자는 원직(元直), 초명(初名)은 서복(徐福)으로 예주 영천군에서 태어났다.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서서는 본디 검술을 좋아했으며, 불량한 이였다. 하나, 관원에 붙잡힌 이후 마음을 고쳐먹은 서서가 무기를 버리고 학문을 닦았다.
서서는 제갈량의 친한 벗으로, 유비와 제갈량을 이어준 것이 바로 서서이다.
유비 또한, 그런 서서를 극진히 대접했으나 장판파의 사건으로 인해 조조, 위나라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나라에서 서서의 직책은 어사중승으로, 관리와 백성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가졌는데.
이는 분명 밑바닥에서 시작한 서서로써는 객관적으로 볼 때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었지만, 제갈량은 이를 보고 탄식했다.
어찌 서서를 저렇게 쓰냐고 말이다.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정호에게는 아무래도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정사 따위는 필요 없다.
톨비아는 게임이기에, 소설로 정평이 난 삼국지 연의를 토대로 서서를 재구성했다.
연의에서 서서는 제갈량처럼 뛰어난 지략가로 나온다.
본래 전장엔 등장한 적도 없는 서서가, 연의에서는 당시 천인장이었던 조인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는 특급 군사로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톨비아는 정사가 아닌, 연의의 서서를 차용했다.
-서서☆☆☆☆
-힘 : 28 체력 : 18 민첩 : 22 지능 : 78
-[+]
그런 탓일까.
서서의 지능 수치는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사 성급의 지능 화신 중에서는 독보적이었으며.
능력치를 조금만 더 확보할 수 있다면, 오 성급 화신에도 비벼볼 만한 수치였다.
‘초반 강신용 화신으로 캐스터만큼 좋은 게 없지.’
정호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서서를 바라보았다.
지능을 주 스텟으로 사용하는 화신들은 캐스터라 부른다.
주술, 마법처럼 원거리 포지션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아스텔의 천사는 위기에 대비하라 했으니, 분명 무언가와 싸움이 있을 게 분명했다.
전장의 중심에서 칼을 휘두르다 객사를 하는 것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정호는 철저하게 안전한 후방에 있고 싶었고.
설령 혼자 싸워야 할 경우에도 노련한 창병을 전위에 세우면 되니 이 만한 화신이 없었다.
‘서서 스킬은...’
정호는 톨비아 내에서 오 성급 이상의 화신들만 사용했다.
애초에 첫 과금에서 포세이돈이 떴으니, 그에 준하는 화신들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연하게도 정호는 서서를 사용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가진 스킬은 알지도 못했다.
‘분명 초반에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무, 소과금러들에 한한 이야기였기에 무시했었으나.
이제는 달랐다.
과금을 할 수도 없게 된 이 상황에서, 정호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서서뿐이었으니까.
“스킬 확인.”
정호가 그리 외치자, 서서의 능력치 아래에 있는 [+] 칸이 열렸다.
그 내용을 확인한 정호는 눈을 부릅떴다.
사 성급 화신의 스킬은 총 두 개였다.
[책략모방]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화신 스킬을 모방합니다.
-그 위력은 화신의 지능 수치를 따르나, 최대 70%를 넘을 수 없습니다.
┖현재 50%
[구원대]
-일 성 화신을 최대 열 명 소환합니다.
-소환된 화신은 10분 간 적과 싸웁니다.
┖현재 소환 가능 수 3/3
“...사기잖아?”
서서의 스킬이 생각이상으로 좋았다.
특히, 구원대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스킬이었다.
생존 능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탓이다.
일 성급의 화신은 분명 별 볼일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엄연히 각기 하나의 개체일 경우에만 그랬다.
인해전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작 많은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것도 전술 중 하나였다.
일 성급 개체가 열이면 이 성급, 아니 더 나아가 삼 성급 화신에도 비벼 볼만 했다.
하지만 정호가 주목한 점은 다른 것이었다.
‘책략모방...’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화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스킬.
톨비아에서는 삼 성급부터 스킬을 가지고 있다.
서서가 사 성급 화신이니.
당연히 삼 성급의 스킬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당장 사용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삼 성급의 화신이 없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그 잠재성은 컸다.
‘톨비아에서 화신을 소환하는 것은 둘. 또 다른 하나를 몸에 강신시킨다하더라도 최대로 꺼낼 수 있는 건 셋 뿐이야.’
그마저도 VIP 효과 중 하나인 [화신 소환 개체수 증가]를 받고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본래 유저는 둘 이상의 화신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많은 화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들, 그것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서서는 이상적이야.’
소환 되지 않은 화신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서서 하나만으로 수많은 화신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어째서 서서가 무, 소과금에게 추천하는 캐릭터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서서 소환.”
정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 귀엽고, 아리따운 사내를 두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노련한 창병이 나타난 것처럼, 허공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파앗!
순식간에 노란 빛이 터져 나왔다.
과연 등장하는 것조차 이 성급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인은 서서. 자는 원직일세. 자네가 날 부른 건가?”
중년의 사내가 내는 중후하고, 낮은 목소리.
하지만 정호에게는 아주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환한 빛에 가려진 서서의 모습이 드러나자, 정호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다.
날카로운 눈매, 사내다운 짙은 눈썹.
그의 나이를 보여주는 듯 매끄럽게 빠진 염소수염.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단정한 옷차림.
마치 자기가 제갈량이라도 된 듯, 손에는 파초 잎으로 만든 부채가 들려져 있었다.
“무슨 일로 부른 건가.”
서서가 입을 여니, 그만큼 믿음직스러운 게 없었다.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다. 다음에, 다음에 부르도록 하지.”
“아직 소인의 차례는 아닌가 보군.”
“그래. 소환 해제.”
파앗!
서서는 나타났던 것처럼, 환한 빛을 뽐내며 사라졌다.
정호는 서서를 돌려보내고 나서야, 멈추었던 숨을 내쉬었다.
‘저런 서서가 왜 싫다는 거야?’
단적으로 말해, 서서는 비주류 화신에 속했다.
남들이 추천은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싫어한다는 말이다.
공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수집, 뽑기 게임의 유저들은 그 성능과 무관하게 남성형 캐릭터는 관심사가 아니다.
‘포세이돈도 성능으론 최고였는데.’
그 강하다는 6성 급 중에서도 0티어로 선정된 포세이돈조차 달갑지 않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고작 남성형 화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물론 정호도 톨비아를 플레이할 때, 여성형 화신을 선호하기는 했다.
‘하지만 성능이 최고지.’
그러나 성능과 효율을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여기는 현실이니까.’
이제는 마냥 즐기기만 하는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 * *
다음 날이 되어, 출근한 회사는 소란스러웠다..
비단 그것은 정호가 잠이 부족해, 신경이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덜컹!
사 내에서 정수기의 물통을 교체하는 것은 항시 남자의 몫이었다.
한데 그것을 한 손으로 손쉽게 교체하는 이.
“간단하네.”
손을 탈탈 털며, 돌아가는 이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지닌 여성 사원이었다.
“어머, 어머. 경미 선배. 힘 스텟 올린 거에요?”
“으응. 혹시나 싶어서 해서 찍어봤는데, 이 정도는 간단한 거 같아.”
“저는 우락부락한 근육이 나올까봐 못했는데...”
서로 꺅꺅대며 대화하는 내용도 가관이다.
“동하 선배, 아스텔 고렙이라고 하셨죠?”
“초반 능력치 분배 아직 못했는데,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요?”
스텟이니, 레벨이니 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대화들.
아주 이곳이 회사인지, 게임 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부장님은.’
정호가 슬쩍 시선을 옮겨, 부장님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줄 이는 이곳에서 부장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거, 김동하 사원... 힘을 올리면... 정력도 쎄지나?”
“하, 하하...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올라가는 게 스텟이니 비슷한 효과를 보지 않을까요?”
“그, 그렇구만...!”
부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마치 자신만 쏙 빼놓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라도 한 듯 거리가 먼 이야기들만이 오갔다.
“쯧...”
정호는 혀를 찼다.
아스텔의 시스템을 받은 이들은, 하나 같이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열고 있었다.
어젯밤, 지구의 위기니 뭐니 걱정하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뽑기를 돌리던 모습은 또 무엇인가.
‘내가 가진 힘도 나쁘진 않은데...’
홀로 아스텔이 아니라, 톨비아라는 게임의 시스템을 받게 되었다.
이 성급의 화신인 노련한 창병도, 저들보다 강할 게 분명했고. 사 성급의 화신, 서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게 끝이라는 게 문제였다.
‘뽑기를 진행할 수가 없어.’
사 내의 어떤 이라 할지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보다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MMORPG라는 게임의 특성이 본래 그랬다.
노력한 만큼, 공을 들인 만큼 레벨이 높아진다.
캐릭터는 성장하고 저렙 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손쉽게 해내게 된다.
물통을 손쉽게 들었던 여성 사원처럼 말이다.
“그런데, 스텟 포인트를 얻으려면 몬스터를 잡아야하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대비하라고 해도, 겨우 레벨 1인데...”
다만 아직 그 격차가 벌어지지 않은 까닭은.
저들도 레벨을 올릴 수단, 경험치를 얻을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테면, 퀘스트나 몬스터 사냥 같은 것 말이다.
‘코인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것은 정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코인을 벌어야, 뽑기를 돌리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아스텔의 유저인 사람들과 톨비아의 유저인 정호.
전혀 다른 방식의 시스템을 차용하는 이들의 마음은 처음으로 일치했다.
같은 바람들이 하나로 모였던 까닭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지금부터.
“어어?”
“이게 무슨 소리야?”
머릿속에 직접 박아 넣는 듯한 목소리.
그것에 사람들이 머리를 부여잡고는,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낯이 익었다.
불과 하루 전에 들은 목소리와 같았으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에, 도시 상공에 나타났던 녀석.
아스텔의 천사.
그 녀석의 목소리였으니까.
-다가올 위기에 대비한, 첫 번째 시련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녀석은 사람들의 혼란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서, 자신의 말만을 내뱉었다.
“시련?”
“그게 무슨 소리야?”
사 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대뜸 시련이니 뭐니, 이해하기 힘든 말이 들리지 않는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당연히 생기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그 중 단 한 명만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들린다!’
이미 철저한 준비를 마친, 정호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