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3화 (4/144)

# 3화

# 3화

[실시간 검색어 1위. 아스텔]

[동시 접속자 1억 4천만명, 아스텔. 이대로 서비스 종료?]

[아스텔, 현실 업데이트]

[위기는 무엇인가?]

[상태창의 올바른 사용방법]

인터넷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이고,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이 비현실적인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정호는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 하나를 살펴보았다.

┖지구에 위기가 다가온다는데, 왜 이렇게 가벼움?

┖위기는 무슨. 너 같으면 상태창이 현실에 나타났는데, 안 기쁘게 생겼나?

┖소설 속에서나 보던 거잖아.

┖-찐-

┖그 딴 거 말고, 포인트 분배 어떻게 함? 초기 스탯 포인트 5 얻었는데.

┖아스텔을 아직 안 해 본 놈이 있네. 천연기념물인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게임 한 번 안했는데, 상태창 생겼음. 체력부터 올리라고 말씀드렸다. 근데 정말로 건강해지시더라.

┖효놈이네.

댓글들도 기사의 호들갑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정호의 얼굴에 심란함이 더해졌다.

“...이거 정말 나만 빼고 다 얻은 모양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정말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아스텔의 상태창을 얻은 모양이었다.

“...상태창.”

정호는 괜히, 다시 한번 중얼거려 보았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정호의 눈앞에는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상태창!”

혹시나 싶어, 큰 소리로 외쳐 보기까지 한다.

정호의 집은 방음이 잘되지 않는 까닭에, 옆집에서 들었을지 모른다는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정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

남들이 말하는 아스텔의 인터페이스.

체력, 힘, 민첩, 마력, 지능을 숫자로 표기한 상태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거 진짜 큰일 아니야?’

정호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스탯 포인트를 분배해서 강해졌다,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다가오는 위기에 대비한 것이라면, 작금의 상황은 정호에게 심각했다.

남들은 점점 강해질 텐데, 자신은 스타트 라인조차도 서지 못했다는 의미였으니까.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도 이해는 되었다.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에게 이 변화는 생활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저 상태창이라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나타났을 뿐이다.

제대로 위기의식이 생겨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정호에게는 다르다.

모두가 팔이 하나 더 돋아났는데, 자신만 도태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뽑기...”

상태창을 외칠 때와는 다르게.

정호는 아주 조심스럽고,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이다.

하나, 그런 정호의 바람과는 달리.

[무료 뽑기 1회 가능]

[소환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정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난 왜 다른데. 왜.”

정호는 망연자실했다.

저 메시지는 정호에게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바로 가상현실게임, 톨비아의 첫 뽑기 때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불과 이 사태가 일어나기 하루 전, 서비스를 종료한 그 게임 말이다.

“후우...그래. 이게 어디냐.”

정호는 이대로 절망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

상태창은 부여받지 못했다.

다시 보니 선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하지만.

낫다는 말이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톨비아의 과금 시스템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경험까지 한 정호였기에.

이러한 뽑기 시스템이 얼마나 악독하고, 징그럽고, 표독스럽게 돈을 빨아먹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료로 뽑고 나면, 그걸로 끝. 현질 외에는 더 이상의 스펙 업 수단 없음.”

기어코 입으로 내뱉자.

어째서 지금까지 톨비아란 게임을 즐겨 했는지 본인도 의심스러워질 지경이었다.

무료 뽑기라는 것도 말이 무료 뽑기지, 사실상 돈을 지르라는 것이다.

‘화신 하나로 어떻게 하라고.’

톨비아는 화신, 강령체를 소환하여 싸우는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다.

그중 강신이라는 시스템이 있는데.

하나의 강령체를 자신의 몸에 빙의 시킨다.

한마디로,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개체는 있어야 했다.

화신을 하나 소환하고, 자신에게 빙의시킬 강령체가 적어도 하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여기에서 별 세 개 이상의 화신은 나와야 하는데.”

톨비아는 그런 게임이었다.

별 두 개짜리로는 스토리 퀘스트도 제대로 밀지 못하는, 그저 그런 쓰레기에 불과했다.

“제발.”

정호는 두 손을 모았다.

처음 톨비아를 시작했을 때도, 백만 원 가량의 돈을 단숨에 사용했을 때도 이렇게 간절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정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목숨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무료 뽑기 1회 가능]

[소환하시겠습니까?]

“그, 그래.”

정호의 대답과 함께, ‘두구두구두구’하는 드럼 소리가 들려왔다.

룰렛이 돌아갔다.

정호의 눈앞에는 별이 세 개짜리, 다섯 개짜리의 화신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있다!”

정호는 탁월한 동체 시력을 이용해, 룰렛이 돌아가는 중 하나의 빛을 본 탓이다.

별이 하나, 둘, 셋...여섯!

분명 신화급의 화신체가 분명했다.

“제발 제우스! 제우스! 제우스!”

여섯 별의 주인공은 제우스였다.

정호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방음을 신경 쓰며 옆집에서 듣지는 않을까,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으나.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저것이 아니면 안 된다.

룰렛이 돌아가고, 정호의 눈도 완전히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룰렛이 멈추었다.

“아!”

정호의 감탄사와 함께.

띵동, 띵동.

“저기요. 지금 몇 시라고 생각해요? 상태창인지 뭔지 그만 좀 보세요!”

결국 소음으로 옆집에서 찾아왔다.

“아아아아아아!”

하지만 정호의 절규는 멈추지 않았다.

룰렛이 멈춘 곳.

그곳에 있는 것은.

[축하드립니다! 노련한 창병이 소환되었습니다]

별 두 개짜리.

노련한 창병이었다.

* * *

“이 새끼들...무료 뽑기에 주작질 해 놓은 게 분명해.”

옆집에서 찾아온 주민을 돌려보내고 나서야, 정호는 이를 갈았다.

‘톨비아를 처음 했을 때도, 별 두 개짜리 방패병이었어.’

이쯤되면, 합리적인 의심이다.

두 번이나 똑같이 별 두 개짜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사실 완전히 우연이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정호는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별 두 개나, 별 하나나.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노련한 창병 소환.”

정호는 혹시나 싶어, 화신을 불러 보았다.

톨비아에서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외침이었으나.

그것을 현실에서 말하고자 하니,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정호의 기억은 정확했던 모양이었다.

곧장 허공이 찢어지는가 싶더니, 기다란 창을 쥔 삼십 대의 사내가 등장했다.

“전장에서 다섯 번 죽을 뻔했으나, 모두 살아 돌아왔다. 이곳에 나의 창을 받을 이가 있는가?”

등장하자마자, 낯간지러운 소리를 내뱉는 녀석.

그 소리가 너무 컸기에 정호는 곧장 외쳤다.

또다시 소음으로 옆집에서 찾아오면 곤란해졌다.

“해제.”

노련한 창병은 나타났던 것처럼,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창을 받을 놈은 많겠지... 목이 떨어지는 건 너 일거고.”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겨우 별 두 개짜리가 으스대는 것이 아주 녀석이 신화급인 줄만 알았다.

“아, 다시 뽑고 싶다.”

정호는 만약, 이곳이 현실만 아니었으면 캐릭터를 삭제했다가 다시 만들고만 싶었다.

별 두 개짜리 화신은 톨비아 내에서 티어표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급의 화신이었다.

“그래도, 정말 소환할 수는 있구나.”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자신에게 나타난 이 기현상이 오직 뽑기뿐만이 아니라.

소환, 강림처럼 모든 톨비아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확인, 노련한 창병.”

정호는 노련한 창병의 능력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톨비아는 플레이어에게 능력치가 없는 대신, 화신의 것은 간단하게 볼 수 있었다.

-노련한 창병 ☆☆

-힘 : 42  체력 : 27 민첩 : 21 지력 : 7

“그럼 그렇지 별 두 개짜리가...어...?”

그런데 그 능력치를 확인한 정호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황급히 책상에 앉았다.

┖그래도 1레벨 스탯은 너무 구린데? 힘 14, 체력 8이라니 너무 낮아. 민첩이나 다른 건 너무 낮고.

┖나는 힘 8, 민첩 15인데?

┖사람마다 다른 모양인데? 난 힘 20임. 현실 직업은 보디빌더고.

확인해 본 댓글로는 아스텔의 상태창을 부여받은 이들은 그 스탯이 달랐다.

아무래도 현실의 상태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수치가 너무도 낮았다.

“뭐야.”

정호는 떨떠름하게, 노련한 창병의 능력치를 바라보았다.

자칭 보디빌더라는 사람이 힘 20.

노련한 창병의 힘은 47이다.

게임 시스템이 다르기에, 완전히 똑같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누가 봐도 노련한 창병이 강했다.

“이거 사실, 굉장히 좋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해 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스텔은 착실한 MMORPG, 레벨 업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해진다는 의미다.

그에 반해, 정호는 뽑기로 높은 등급의 화신을 뽑는 게 아니라면 강해질 여력이 없었다.

초반에는 걱정이 없지만, 후반에 가서는 크게 문제가 된다는 말이었다.

‘아냐, 그래도 하나는 더 있어야 해.’

막상 까 보니, 현 시점에서 정호의 화신보다도 강한 이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정호는 화신을 더 원했다.

톨비아를 시작하기 위해선, 소환할 화신 하나와 몸에 빙의시킬 화신 하나가 정석이었으니까.

“뽑기.”

혹시나 싶어, 외쳐 본 뽑기였으나.

[더 이상 무료 뽑기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1회 뽑기에 필요한 코인 100]

[11회 연속 뽑기에 필요한 코인 1000]

[보유 코인 : 0]

코인이 없었다.

‘...코인을 어떻게 구해?’

정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예상은 했지만, 당연하게도 현실화 된 톨비아의 시스템도 코인이 필요했다.

한데 게임일 때야 현금을 질렀으나, 지금은 그런 수를 쓸 수 없지 않은가?

“코인 충전”

곧장 게임할 때의 기억을 살려, 코인을 넣어보려 했다.

통장은 먼지만 날리는 상황이었으나, 적어도 11회 뽑기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오류 : 코인을 충전할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과는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럼, 그렇지...내 팔자에.”

정호는 눈을 잔뜩 찌푸렸다.

이제 노련한 창병이 쓸 만하다는 것에는 의문을 품지 않았으나.

그게 끝이었다.

이 뽑기 게임은 더 이상 정호에게 미래가 되어 주지 못했다.

“하아...”

정호는 눈을 감았다.

위기란 녀석이 어떤 형식으로 다가올지 모르니, 그 걱정은 배가 되었다.

천사인지 신인지 모를 녀석이 아스텔을 기반으로 만들었으니, 상태창을 부여받은 녀석들은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자신만 빼고 말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뽑기 게임은 되는 게 하나도 없어. ‘VIP 고객’을 이렇게 대하면 되는 거냐고.”

정호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었다.

톨비아에서는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돈도 그만큼 들였다.

수없이 많은 강한 강령체와 핵과금러를 증명하는 VIP를 받았으나.

지금은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정호가 눈을 떴을 때.

[VIP특전 사항]

[화신 소환 개체 수 증가]

[화신 빙의 개체 수 증가]

[화신 합성 성공률 증가]

[장비 강화 성공률 증가]

[장비 합성 성공률 증가]

[매달마다 프리미엄 확정 뽑기 1회 가능]

“어?”

정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을 부릅떴다.

“특전이 적용된다고?”

톨비아는 VIP시스템을 적극 권장하는 게임이었다. VIP가 되면 경험치는 물론이고, 확률이란 확률은 다 건든다.

사실 톨비아를 하는 유저라면 VIP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정호가 주목한 것은 다른 사항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

“VIP 뽑기.”

[VIP특전 : 프리미엄 뽑기 1회 가능]

[삼 성 이상의 화신이 출연합니다]

[한 달에 한 번만 뽑기가 가능합니다]

별이 세 개.

정호가 필요로 했고, 그토록 원했던 화신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호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이 정도면 할만 해.”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할 만했다.

삼 성 화신부터는, 소위 영웅이라 불리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소환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정호의 말과 함께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이젠 운이 있든, 말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꽝은 없다.

무조건 당첨일 수밖에 없는.

확정 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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