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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2화 (3/144)

# 2화

# 2화

월요일.

일주일 중 하나일 뿐인,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날.

하지만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싫어하는 날임에 틀림이 없다.

주말을 뒤로한 채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날은 괜히 몸이 아픈 것만 같고, 정신은 혼미해진다.

정호 또한,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월요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아...”

다만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은 이러한 요일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후...”

월요일보다 단순한.

그저 하나의 게임, 유저라고는 남아 있지 않던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정호는 한숨을 내리쉬었다.

접고 싶어도, 접지 못했던 게임이긴 했으나.

스스로 접는 것과 게임사 측에서 멋대로 종료해 버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얼마를...얼마를 박았는데!’

톨비아를 떠올리며, 속으로나마 오열하는 정호.

스윽.

그런 정호를 앞에 하나의 종이컵이 밀어졌다.

내용물을 확인하니, 인스턴트커피였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정호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슴팍에 달린 녀석의 명찰에는 ‘사원 김동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평소와 같았다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겠으나.

그 정체를 확인한 정호의 얼굴은 와락 찌푸려졌다.

“알 거 없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선배님.”

정호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다 큰 사내가 아양을 떠는 것만큼 혐오스러운 일은 없는 법이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다른 녀석이면 모를까, 이 능글맞은 녀석과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정호가 톨비아를 시작한 계기가 김동하, 이놈 때문이었으니까.

“아! 설마 톨비아 서비스 종료 때문에 그러세요?”

“이놈이...”

정호의 입에서 고운 말이 튀어나올 리가 없었다.

아픈 속을 달래 주지도 못할망정, 박박 긁어 대는 말이 아닌가.

“그러기에, 빨리 손절하셨어야죠. 그거 완전 순 망겜이라니까요?”

“네가 할 말이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요.”

능청스럽게 말을 받아치는 것이, 아주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본다.

“네가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에이, 추천해 달라고 한 건 선배님이잖아요.”

가증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동하.

그에 정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녀석과 말을 나누어서 울화통이 나지 않은 적이 없다.

“됐다.”

정호는 육 년 전, 동하의 꼬드김으로 톨비아를 시작했다.

녀석이 그토록 찬양을 해 대기에, 잠깐 즐겨 볼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스텔로 넘어오라고 했잖아요. 선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아니, 지금이니까 더 좋죠. 톨비아가 망했으니까.”

“시작하면 또 접으려고?”

톨비아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접은 녀석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하나, 동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 벌써 오픈베타 때부터 계속 하고 있어요. 톨비아 때랑은 다르다니까요? 이래 보여도 저 고렙이니까, 지원 팍팍 해 드릴게요.”

“아서라. 이제 게임 같은 건 안 하련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요즘 시대에 누가 게임 하나 안 해요? 정확히는 아스텔이지만.”

“됐다. 전혀 생각 없어.”

정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에 동하가 얼마나 아스텔이 좋은지 떠들어 댔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재밌는 거 나도 알지.’

정호라고 해서 동하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즐겼는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이미 아스텔을 플레이 해보았고, 잠깐에 불과했으나 그 마성의 게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온 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제 게임이라면 치가 떨린다. 그보다...”

정호는 턱을 들어, 녀석의 자리를 가리켰다.

아침.

그것도 월요일 아침부터 게임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에 저 멀리서 두 눈에 불을 태우고 있는 부장의 시선이 있지 않은가.

정호가 짐작하기에, 앞으로 몇 초만 더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난리 칠 게 분명했다.

“어? 어어...네, 선배님.”

그제야 동하 녀석도 그 악의에 찬 시선을 느낀 것인지,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쫓기듯, 발걸음을 빨리 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정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니까.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후우...’

여전히 아쉬운 것만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 * *

정호가 일하는 회사는, 자그마한 마케팅 회사였다.

‘마케팅보단 대행사지만.’

이른바 외주업체란 말이다.

돈을 받고, 대신 광고를 해주는 정도의 일.

올해 스물아홉인 정호가 이 곳에서 일한지는 벌써 수 년이 흘러가고 있었다.

타다닥, 타닥.

쉬지 않고 키보드를 눌러가며, 마우스를 이리저리 흔들어 대다, 문득 ‘하아.’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비단, 서비스 종료한 톨비아를 떠올려서는 아니었다.

그 정도의 공과 사는 구분할 수 있어야 사회인이지 않은가.

‘어이가 없는 일이지.’

다만, 스스로 얼토당토 않는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탓이다.

정호가 두들기고 있는 내용.

[제 2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아스텔]

그것이 하필이면 아스텔의 홍보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 누구보다도 아스텔을 싫어하면서도, 스스로 광고를 하고 있으니 웃기는 일이다.

‘이미 전 세계에서 유명한 게임을 홍보하라니.’

아스텔은 모르면 간첩, 아니 외계인이라 불려야 마땅한 녀석이다.

그런 아스텔이 오픈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이러한 홍보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작은 회사도 먹고살 수 있는 거겠지.’

대기업부터 시작해, 이런 자그마한 중소 마케팅 회사까지.

아주 이 지구상에 아스텔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게끔 하겠다는 듯.

아스텔의 홍보는 사회의 모든 곳에 뿌려지고 있었다.

‘이러니, 게임회사들이 죽어 나가지.’

그렇지 않아도 재미 하나는 보장된 가상현실게임이다.

한데,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면 줄줄이 파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는 거야?’

그것도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말이다.

정호는 수개월째 같은 내용을 적어 넣으면서도, 이 의문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과금을 철저히 배제한 게임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아무리 많은 이가 플레이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스텔의 이 자본의 규모는 조금 선을 넘었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까닭은 뒤에 있을 달콤한 과실을 얻기 위함이다.

홍보에 돈을 투자를 한다는 것은, 결국 더한 자본을 얻기 위함일 터.

한데, 아스텔은 그저 의미없는 홍보만을 지속하고 있다.

투자에 대한 리턴이 없는, 돈 자체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투자 방식이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입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이 다 쓰러져 가던 마케팅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까닭이 아스텔의 자본력 덕분이었으니까.

‘기묘하지.’

의문을 품을 순 있어도, 그에 대해 확신은 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아스텔은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탓에, 현실과 혼동하기 쉬운...]

‘이런.’

홍보란 단점 따위를 적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정호는 자신이 쓰던 내용을 황급히 지우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라도 한잔하고, 다시 해야겠어.’

손을 들어, 미간을 매만졌다.

이럴 때 싸구려 인스턴트커피만큼 좋은 약이 없다.

정호는 몸을 돌려, 휴게실로 향하려 했다.

“음?”

그런데 막 발걸음을 때려하던 정호는 이상함을 느꼈다.

‘밝아?’

시간은 이제,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여섯 시를 향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밤이 찾아오는 시간.

한데, 그런 것치고는 기묘하게도 밝았다.

마치 창문을 향해 누가 손전등이라도 가져다 댄 것처럼.

의문을 느낀 정호가 고개를 돌리자.

“저건 또 뭐야.”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

하늘에 새하얀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 * *

“저게 뭐야?”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구름 사이로 밝은 빛이.

새하얀 날개를 단, 거대한 천사가 내려오고 있었다.

“천사?”

실제로 천사란 존재가 존재할 리가 없다.

그것이 얼마나 얼토당토않는 말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멍하니, 그 거대한 인영을 향해 중얼거렸다.

막강한 존재감을 풍기는 그것은 분명 천사 이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찰칵, 찰칵.

사람들은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며, 그 모습을 담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라니.

보기 드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이벤트인가?”

“홀로그램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겠지.”

제정신을 차린 몇몇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방향으로 그 존재를 받아들였다.

“조금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천사의 얼굴.

관점에 따라 자애롭게도 보이고, 슬프게도 보였으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데, 그런 천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고개를 기울었다.

익숙했다.

낯이 익었다.

“아, 아아! 그거다. 아스텔!”

“아스텔? 게임 말이야?”

스스로 깨닫고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사내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텔, 부활의 제단에 있는 천사 석상. 그거랑 똑 닮았어.”

“음? 어?”

“그러고 보니...”

이어지는 설명에 사람들이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게임 내에서는 석상이기에, 특유의 생기가 없었으나 분명 그 생김새는 하늘에서 나타난 천사와 똑 닮아 있었다.

“그런데, 왜 나타났지?”

“아스텔 홍보 아니야? 홀로그램까지 써가면서 광고할 만한 건 그것밖에 없잖아.”

도대체 왜, 저 천사가 현실에 있는가.

그에 대해 나름 논리적으로 서로에게 의견을 어필하던 그 때.

-행성, 지구의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

천사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조금은 슬픈 눈을 하고선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즐기고 있는 게임, 아스텔 시뮬레이션을 현 시간 부로 서비스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이해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스스로가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아스텔은 다가오는 지구의 종말을 대비한, 튜토리얼이었습니다.

그 뒤에 터져 나오는 것은 폭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누가 이런 이벤트를 짠 거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사람들이 믿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천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 시간부로 튜토리얼을 마무리합니다.

거대한 천사의 신형은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아스텔의 시스템을 통해, 힘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천사는 완전히 사라졌다.

성스럽기까지 한 빛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서비스 종료 한번 요란하네.”

“아, 안 돼. 내 계정이 없어진다는 거야?”

설령 천사의 말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전 세계인이 즐기는 게임이 성대하고도 갑작스럽게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 사실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상황은 누군지 모를, 망상이 잔뜩 실린 한 마디가 해결하는 법이다.

“...상태창.”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자그마한, 부끄럽기 그지없는 목소리.

본래라면 잔뜩 비웃음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그 상황이.

“허억!”

“상, 상태창!”

“이게 뭐야!”

기괴하게 변해만 갔다.

그리고 그 사태는 정호가 있는 회사의 내부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태창? 어어...?”

시작은 김동하였다.

“상태창. 어?”

“상태창. 레벨 1...?”

뒤이어진 사원들의 외침들.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듯, 하나같이 입을 벌렸다.

동하가 헐레벌떡 정호에게 다가왔다.

“서, 선배님! 이거 진짜 현실이 된 거 같은데요?”

“뭐?”

“아스텔이요. 아스텔! 갓겜인 줄은 알았는데. 설마 하니.”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

정호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김동하의 멍청한 망상 놀이에 어울릴 수는 없었다.

‘아스텔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진짜인가? 그럼 이 회사는?’

정호는 그 누구보다 침착했다.

사실상 아스텔의 홍보외주로 살아가는 것이 이 마케팅 회사였다.

‘월급은? 퇴직금은 받을 수 있을까? 아니지, 지금 당장 퇴직한다면...’

정호의 생각은 오로지 이 자그마한 회사가 파산 나고, 길거리에 나앉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선배!”

큰 소리로 다그치는 것은 동하였다.

정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허튼 소리 좀 그만해라.”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상태창이라고 말하기만 해보세요. 아오, 답답해!”

가슴을 퍽퍽 치는 동하의 모습.

정호는 미심쩍은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고개를 슬쩍 피한 채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말을 남들 앞에서 내뱉기에는 정호의 정신 상태는 매우 정상적이었으니까.

“...상태창.”

한데, 그 직후 정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야.”

“선배님, 선배님도 보이죠? 이거 아스텔의 인터페이스에요. 아주 판박이라니까요?”

“안 보여.”

“와, 레벨이 1인 스텟은 정말 낮구나. 그래도 보너스 포인트도 있으니 이걸 어떻게 분배하냐에 따라서....예?”

되묻는 동하의 말에 정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런 거 없다고. 상태창.”

어찌 된 영문인지, 정호에게만은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덩달아 심각해진 건 동하였다.

“...선배, 제가 아스텔 하라했죠.”

“장난은 거기까지만 해라. 이거 뭐 몰래 카메라인지 뭔가 하는 거야? 재미없으니 그만 두는 게 좋아.”

정호는 자신만 떠오르지 않는다는 상태창을 믿지 않았다.

애초에 게임이 현실이 되다니 말도 되지 않았다.

“아니, 선배님. 무슨, 이거. 이거 안 보이세요?”

“그러니까 안 보여. 시답잖기는.”

정호는 손을 휙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에 복잡해 죽겠는데 이런 장난질이라니.

심히 그 질이 좋지 않았다.

“설마 게임이 현실이 된다니, 내가 ‘뽑기’ 게임 하다가 망했다고 놀리는 것치곤...”

한데.

말을 하다 눈을 뜬, 정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료 뽑기 1회 가능]

익숙하기 짝이 없는, 더 이상은 볼 수 없을.

그 놈이 정호의 눈앞에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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