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1화
검은 용의 둥지.
최상위권 유저들, 그것도 상위 0.01%라는 랭커에 오른 이들에게만 주어진 던전.
그저 레벨만 올린다고 도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검은 용의 둥지에 도사리는 최종 보스, 블랙 드래곤은 그 이름처럼 포악하고 지랄 맞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
피한다기보다는, 그 패턴을 맞고 버텨야 비로소 제한 시간 내에 잡을 수 있는 보스.
장비의 중요성은 말로 할 수도 없거니와, 어지간한 유저들은 이곳에 발을 내딛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런 악독한 난이도만큼, 막대한 보상을 주기에 모두가 선망했던 장소였다.
“...”
정호는 그런 장소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오늘이 바로 일주일에 한 번 리셋되는, 블랙 드래곤을 레이드 하는 날이었던 탓이다.
하나, 그런 정호의 얼굴에는 심란함만이 가득했다.
그 표정은 블랙 드래곤의 악독한 패턴을 겪을 생각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하아...”
나오는 것은 한숨.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검은 용의 둥지는 제아무리 높은 스펙을 가진 유저라 할지라도 혼자서 도달할 수는 없는 곳이다.
랭커.
한 명만 있어도 무쌍이라 불리는 이들.
그런 사람들이 무려 사십이 모여, 한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공격대 컨텐츠.
검은 용의 둥지란 그런 장소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아...”
정호는 홀로 검은 용의 둥지 입구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간단한 담소를 나눌 친구도 없었고, 호흡을 맞출 전우는 당연히 없었다.
“진짜 망했네.”
정호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갈게요!」
「애가 아파서...」
「몸이 아파서요.」
「친구가 휴가 나와서요.」
아마, 반년도 전쯤부터였을 것이다.
항상 접속해 있던 공격대원들이 아름아름 변명을 대기 시작한 게.
사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호는 그 상황 자체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검은 용 둥지의 공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했으나, 레이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었으니까.
그런데.
「공대장님 죄송합니다.」
「형, 미안해요. 저도 여기까지인가 봐요.」
「접었어요. 연락하지 마요.」
「유저가 없는데, 어떻게 레이드를 해요?」
최근에 이르러서는 공격대원들이 아예 게임을 떠나가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지난주에는 아예 블랙 드래곤의 얼굴은 구경도 못 했다.
제아무리 한 사람 분을 아득히 뛰어넘는 랭커들이라 할지라도.
아니, 열 명분의 스펙을 가졌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블랙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지르면 가능하지 않을까...”
검은 용 둥지의 용암이 흐르는 대지 위.
문득 혼잣말을 내뱉던 정호는 자신이 금기의 단어를 내뱉었음을 깨달았다.
짝!
“그만 지르기로 했잖아.”
화들짝 놀라며, 기어코 자신의 뺨을 거세게 때리고 나서야 정신을 되찾았다.
‘월급을 조금씩 박아 대던 게, 5년 사이에 벌써 1억에 가까워지고 있잖아.’
생각하면 할수록 놀랄 일이었다.
1억이라니!
언감생심, 정호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생각한다면 꿈도 못 꿀 금액이지 않은가.
야금야금 갉아먹은 돈이 이제는 정호가 가진 전재산을 통틀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아까워서 이걸 접을 수도 없고...”
정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차라리 이런 게임 시작하지 않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물씬 밀려왔다.
「이런 게임은 단물 빠지면 빠르게 빠지는 거예요. 아니면 지능에 문제가 있는 거라니까요?」
자신을 이런 게임에 빠뜨린 장본인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떠나며 했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모르는 게 아니라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벅벅 긁은 정호는 속으로나마 그리 부정했다.
‘그런데, 돈이 이렇게 들어갔는데 어떻게 접어?’
정호가 즐기는 게임은 톨비아라 불리는 가상현실게임이었다.
톨비아는 그리 특별할 게 없는 게임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뽑기, 가챠 게임이라 불리는 부류.
운만 좋으면 높은 등급의 화신을 얻고.
운만 좋으면 강력한 무기와, 단단한 방어구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일단 현금을 집어넣어야 돌아가는 녀석이란 게 문제다.
그뿐이 아니다.
“...소환.”
이런 게임의 특징이 한번 지르기 시작해서 맛을 보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된다.
“이게 다, 네 탓이야.”
정호는 자신의 명령에 의해 나타나는, 하나의 형상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꽤나 훤칠한 인상의 남성.
시원한 이목구비 하며, 드넓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에메랄드빛 머리칼은 사내 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으나.
“쯧.”
정호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다.
“바다의 지배자는 무슨.”
SSS등급.
소수점 아래로 한없이 내려가는, 극악의 확률로 나타난다는 화신.
그중에서도 유저들 사이에 ‘0티어’로 불리는.
별이 여섯 개 달린, 신화등급의 강령체.
포세이돈이 그 주인공이었다.
맛만 보겠다고, 돈을 지른 것이 화근이었다.
첫 과금에 이놈이 떠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코가 꿰였다.
남들은 오백, 천 만원을 아득히 넘어가며 질러도 나타나지 않는 녀석이 고작 정호의 만 원 한 장에 떠 버렸다.
그 탓일까.
조금만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뽑기, 가챠 게임은 남들보다 높은 등급을 뽑아, 찍어 누르는 맛으로 즐기는 게임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포세이돈은 과연 대단한 화신이었다.
극악의 확률, 비싼 녀석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단한 성능을 자랑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그 카타르시스를 안면으로 맞은 정호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마더라...”
포세이돈은 다른 의미로도 대단한 녀석이었다.
녀석을 키우는 것도 돈.
녀석을 중심으로 짜는 편성에도 돈.
등급을 올리기 위해 들어가는 것도 돈.
돈. 돈. 돈.
아주 돈이 호주머니에서.
아니, 통장에서 질질 새어 나갔다.
그렇게 빠져나간 돈이 기어코 억 대에 진입하지 않았던가.
‘회수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정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검은 용의 둥지는 최상위 유저들을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다.
그 덕에, 클리어하면 나오는 전리품들.
특히 블랙 드래곤 장비의 세트 효과는 탁월한 것이 당연했다.
그만큼 유저들 사이에서 높은 값에 판매되고.
지난 수개월 동안 들어온 수입은 정호가 ‘돈을 지른 만큼 회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행복 회로를 돌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애초에 거래란 것은 주고받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수완 좋은 상인이라 할지라도, 고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소위 말하는 최상위권 유저들도 접어 버리는 실정이다.
일반 유저는 남아 있지도 않다.
유저가 없는 게임은, 망한 게임이라 부르기 충분하다.
톨비아는 그렇게, 망겜이 되었다.
“아스텔, 아스텔, 망할 아스텔...!”
정호는 악에 바쳐, 이 일의 원흉을 되뇌었다.
톨비아는 망할 만했다.
하지만 이토록 빠르게 망할 게임은 아니었다.
아무리 망겜이라 한들.
최상위권 랭커들, 소위 ‘프로 개돼지’라 불리는 이들이 쉽게 접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정호가 아까워서 접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들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소모했겠는가.
그것을 손바닥 뒤집듯이 쉬이 접어 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을 저버려도 괜찮을 만큼 더한 재미를 찾지 않는 한은 말이다.
“아스텔만 없었어도, 이렇게는 되지 않았어.”
아스텔.
전 세계인이 플레이하고, 모두가 만족한다는 게임.
과금 유도 시스템이라고는 코빼기도 없는, 비현실적인.
제2의 세계라 불릴 만큼 방대한 아스텔의 세계는 모든 인간의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게임의 유토피아와 같은 녀석.
그런 아스텔은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톨비아의 유저를 완전히 빨아 갔다.
아니, 비단 톨비아뿐만이 아니다.
로크라이크, FPS, AOS, TCG...
장르마저 파괴하며,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괴물처럼 모든 게임의 유저를 흡수했다.
‘전에 해 봤을 때...재미있긴 했지.’
물론 아스텔의 게임성은 정호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토록 이슈가 되었는데, 정호라고 해 보지 않았겠는가.
정호 또한 아스텔을 플레이해보았고,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런 게임을 어떻게 이겨?’
실사와 다름없는 그래픽.
통각마저 구현되어 있는 시스템.
광활하기 짝이 없는 필드.
방대하게 구성된 콘텐츠들.
그 어떤 부분으로 보나, 톨비아는 아스텔에 미치지 못하는 게임이었다.
재미가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호는 아스텔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도망치듯이 접속을 종료했었다.
‘십 분만 더 했으면, 나도 톨비아를 접었을 거니까.’
그 정도로 아스텔의 매력이 대단했다는 말이다.
도저히 다른 게임과 병행하여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호에게 있어선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톨비아를 접을 순 없어. 박은 돈이 얼만데.’
이미 상위 0.01%에 해당하는 위치까지 온 마당이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공격대원들이 아스텔이 나왔음에도 톨비아를 플레이했던 것도, 정호가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이었다.
“후우...”
정호의 한숨이 깊어져 갔다.
남아 있는 거라곤, 애지중지 키운 수없이 많은 강령체들과 VIP 타이틀뿐.
유저라곤 남아 있지 않는 망한 게임 속의 허울뿐인 영광이었다.
“...나도.”
지금껏 그토록 꺼내기 싫어했던.
지금도 꺼내기 어려운 말을 가까스로 꺼내었다.
“나도 접어야지...”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가상현실게임 톨비아는 침몰 직전의 배도 아니고, 이미 심해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더 이상 이 게임을 지속해서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간간히 와서, 즐기면 되겠지.”
억지로 밝게, 스스로를 그리 자위했다.
랭커까지 키워 둔 캐릭이니, 언제든 다시 와서 즐길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자그마한 소망조차 이루어질 수 없었다.
[공지사항]
마치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
불안감이 엄습하는 불길한 그 단어를 정호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아니지?”
정호는 괜히 그 메시지 창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나오지 않은 업데이트가 갑작스레 나타날 리가 없다.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호이기에 불안감은 더더욱 컸다.
[그동안 톨비아를 사랑해 주신 모든 유저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떠오르는 그 메시지는 정호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당연한 낱말들의 조합이었다.
“이런...”
게임은 유저가 있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세계가 존속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망한 게임의 종착지는.
“시발...!”
서비스 종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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