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전쟁의 시작(4)
* * *
"하아…. 미치겠네! 진짜"
케륵…!
파파파팍!!!
5명의 남성이 끝도 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오우거를 비롯한 트롤 사이클롭스 등 상급 몬스터를 비롯해서 최상급 몬스터 까자 밀려오는 상황에서 한숨을 쉬며 여유롭게 사냥할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잡을 수 있는 실력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절단"
샥!
성태의 사기스러운 스킬이 발동되며 순식간에 상하로 나눠지는 수백의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으며 절명한다. GM의 캐릭터로 넘어온 터라 잡다한 스킬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절단 스킬도 모한다르에서는 나무를 자르거나 다듬을 때 사용하는 아주 기본적인 스킬이였지만 현실에서 사용할 때는 그 위력이 천지 차이였다.
"거참…. 쓸모없던 잡스킬이 이렇게 좋네! 복구"
무너졌던 건물이 비디오 역재생하듯 주르륵 빨려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원상 복구가 된다.
이걸 보고 있던 박진태는 혀를 끌끌 차다가 이내 눈앞에 다가온 오우거를 향해 오러를 날렸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아무런 저항 없이 오우거를 갈라버린 뒤 위에서 달려오는 또 다른 오우거와 트롤들을 양분화 시켰다.
3년간 죽어라 노력을 했더니 등급들이 SSS 이상이었고 한성태 같은 경우는 EX 등급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레벨 100레벨과 300레벨이 되었다는 소리였는데 성태가 이렇게 빠른 레벨업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GM이기 때문이었다.
"부러워! 누군 뼈 빠지게 사냥해도 100레벨인데 누구는 패시브로 500% 경험치 버프를 가지고 있다니!"
"부럽냐?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평소보다 심하게 몰려오는데?"
매일 같이 몰려오는 몬스터들…. 아니 이걸 몬스터들 이라기보다는 `몬스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각기 다른 종류의 몬스터들이였지만 실상은 전부 같은…. 단 한 개체니까 말이다.
"이놈의 불사의 그림자는 뭐 한다고 이렇게 보내는 거야?"
불사의 그림자…. 정식명칭은 도플갱어라고도 불리는 존재로서 현재 그가 하는 일이라면 한국에 있는 모든 생명체와 모한다르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을 먹음으로써 분신체로 만들고 있었다. 도플갱어의 수중엔 한국 능력자들이 대거 포함되어있었지만 그들은 성태의 고유 스킬인 이동 마법으로 모두 목 없는 시체로 만들어버렸고 도플갱어 역시 이동 마법을 이용해서 죽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자체적인 힘으로 막아버리는 바람에 실패만 거듭되었다.
"하아…. 도대체 녀석은 왜 그렇게 변해가지고…."
"상세 보기를 통해서 상태를 확인해보니 마기에 오염이 됐다고 하더라…. 마기가 정화되거나 극복하지 못할 시엔 계속 저런 상태라고 하던데?"
자신들에게 모한다르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며 알려줬고 몬스터인 주제 사람처럼 생각하던 `인외자`는 마기에 중독되어 이제는 데스킹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녀석이 처음 발견된 곳은 2년 전 A등급 능력자가 오우거를 잡으려고 할 때 도망치던 오우거를 잡아먹으면서 알려졌다.
그 당시에 데스킹이나 불사의 그림자가 동시에 움직이는 바람에 대처할 시간도 여력도 없이 한순간에 폭삭 망해버렸는데 다행이라면 데스킹은 사람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몬스터와 사람들이 같이 있다면 최대한 몬스터만 먹으려고 했으며 가끔가다가 실수로 먹었더라도 최대한 뱉어냈었다.
그러나 독오른 마기가 점차 몸에 퍼지는 걸 막지 못해 이제는 사람이고 몬스터고 가리지 않는 그저 본능만 충실한 몬스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우선 녀석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제일 급선무야"
"그 녀석도 마기를 억누르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먹는다는데 문제는 더는 먹을 만 한 게 없다는 거야"
"모한다르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은 전부 불사 그 녀석이 먼저 먹어버려서 마기가 잔뜩 들어있어서 먹지 않고 죽이기만 할 뿐이지.."
"그럼 북한으로 보내버릴까?"
격변의 날 이후 멸망된 나라들 중에 속한 북한이었다. 육군으로는 최강인 북한이 멸망한 까닭은 실로 간단하다. 김씨 가문이 몬스터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대통령직부터 비서 등 높은 간부직에 속해있던 그들이 차례대로 몰락해버리자 지휘계통이 없어진 군인들이 말 그대로 떨어지는 나뭇잎이 되었고 나뭇잎을 쓸어내리듯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북한을 멸망시킨 것이었다.
"몬스터 나라라고 불리는 북한이라면 마기를 충분히 정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이긴 한데 광주에서 북한까지 이동시키려면 상당히 힘들겠는데? 불사 그 녀석이 가만히 두질 않을 테니.."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불사 녀석은 성태 네가 커버를 하고 나를 포함해서 이 녀석들이 녀석을 유인해서 북한으로 끌고 갈 테니 준비 좀 해줘"
********
쿠르르르르…!
난 어디로 가는 걸까….
쉼 없이 땅을 파 내려가는 무식한 몸뚱이를 TV 속 영상을 보는 듯 보고 있었다. 몸의 제어권은 잃은 지 한참 되었고 구경만 하는 것도 지루하고…. 아무것도 없는 이 공허한 공간도 싫증이 났다.
그저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하는 거라곤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언젠간 몸을 차지한 본능이 마기를 정화해서 나에게 육체권을 넘겨줄 거라는 막연한 희망….
그리고 한편으로는 혹시나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마음도 드문드문 생긴다.
시스 녀석은 내가 오우거를 먹는 동시에 어디로 가버린 건지 연락도 없고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왔는데도 그러한 기척도 없다.
처음부터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던 시스가 사라져 버린 뒤 난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벨로르 던전에서 시간 개념을 잊지 않기 위해서 버릇처럼 한 시간 단위로 나눴던 것을 벌써 17520번 헤아렸다.
즉…. 2년이 지났다는 소리다.
2년이라는 세월을 혼자서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고 겨우 2년밖에 못 버티냐는 말도 할 수 있겠지만….
지쳤다.
움직일 수만이라도 있으면 몇 년이라도 버티겠지만 움직일 수도 없는 게 가장 버티기 힘들었기에 이제는 시간을 놓으려고 한다.
얼마나 빨리 흐르고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보다는 좋을 것 같았다.
시스 녀석은 정신적으로 끈을 놓으면 영원히 못 돌아 온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몸을 가지고 있을 때는 외부의 충격으로 깨어날 수 있지만, 육체가 없는 지금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뭐.
될 대로 되라지 난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거참
지렁이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나?
마지막 환생이라더니 이게 뭐야? 20년도 못 살고 죽네
영화가 끝이 나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화면처럼 당장 바라보는 시야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는 사물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는데…. 난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
언젠간…. 깨어나겠지?
어차피 친하게 지냈던 몬스터들도 없잖아.
세이린이랑 유셀 청랑 보고 싶네…. 아. 뀨도….
콰아앙!!
"제발…. 닥치고 죽어"
"닥쳐라! 하등한 인간!"
"지겹지도 않냐!?"
얼마나 오랫동안 싸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싸웠던 시간을 대면해 주듯 부서진 건물잔해가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지속된 싸움의 여파로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는 게 정확하다.
"젠장! 데스킹이 사라지면 곧바로 한국을 지배할 생각이었는데.."
"미친놈! 내가 있는데 누구 마음대로 그딴 짓 한대?"
녀석이 광주에서 끌고 갔던 시크릿은 한참 전에 돌아왔다. 그것도 무척이나 한참 전에….
하지만 원래 목표했던 데스킹의 원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처음 북한에 가서 몬스터들을 한번에 수백 마리 수천 마리씩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는 쉽게 마기를 정화 시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동안 마기가 많이 퍼졌는지 수십만 마리의 몬스터들을 다 먹었음에도 불과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돌아가는 상황에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시크릿은 이윽고 러시아로 끌고 갔으며 러시아에 있던 몬스터 역시 데스킹의 먹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약 6년 전 이야기다.
그리고….
"젠장! 그 녀석은 뭐 한다고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거야?"
성태는 6년 동안 몬스터를 먹으며 마기를 정화 시키던 녀석이 마침내 황금빛을 내뿜으며 발광을 하자 예전에 성규가 알려줬던 정보를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닌데 `인외자`저 녀석…. 아무래도 게임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것 같아. 그것도 모한다르 게임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처음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름 400m에 달하는 빛줄기가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그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마기가 정화된 다음부터 꼼짝도 하지 않는 녀석이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박제처럼 외부의 공격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러시아 측은 능력자들과 현대식 무기를 이용해서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다행이랄까…. 아니면 안타까움이랄까? 어떠한 공격 속에서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아니. 타격을 입지 않는 게 아니라 엄청난 회복 속도로 인해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 정확했다.
벌려진 입속으로 미사일도 날려봤고 SS 급 능력자의 공격을 내부에서 시도 해봤음에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심지어 몸 안으로 들어가서 심장과 뇌를 직접적으로 공격해 보았지만 그때뿐 말 그대로 뇌와 심장 또한 순간 재생력을 보여주며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러시아와 각국은 말 그대로 아예 손을 놔버렸다.
살아있는 샌드백이자 사람들의 관광상품으로 변한 지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격변의 날로부터 총 18년이 지났다는 소리였다.
"아우…. 너 지겹지도 않냐? 언제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울래?"
"네놈이 죽으면 싸움도 멈출 것이다!"
불사 녀석이 손톱을 길게 빼더니 매번 보던 공격 수단을 사용한다.
휘리리릭!!
매우 가느다란 은빛 선들이 허공을 수놓으며 빠르게 다가오는데 성태는 그것을 보며 욕을 날렸다.
"시발…. 그동안 배운 거라곤 욕뿐이 없는 것 같아! 절단!"
날아오는 은빛 선들과 다르게 단 하나의 굵직한 날을 뽑아낸 뒤 그대로 충돌시켰는데 놀라운 건 불사가 쏘아낸 은빛 선들이 말 그대로 절단당해버렸다.
"도대체 네놈의 기술은 뭐냐!"
"몰라 새끼야 꼬우면 너도 GM 하던가"
폭발적으로 쏘아져 나가는 몸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땅이 갈라지며 충격파의 결을 따라서 튕겨 나가는 파편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하여 섬뜩하게 만들었지만 이미 10년 넘도록 싸웠던 불사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 안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을 뽑아냈다.
"시발 것…. 그런 거 작작 뽑아내면 안 돼!?"
"네놈도 그딴 빌어먹을 기술을 사용하지 말란 말이다!"
푸푸푸푹!!!
성태의 공격은 불사에게 치명적이다. 그리고 불사는 성태를 공격하지만, 방어가 너무 단단하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듣기만 한다면 성태가 유리하게 보이겠지만 불사가 괜히 불사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아닌지라 끝도 없이 재생된다.
도플갱어는 말 그대로 살아가는 세월이 길면 길수록 부활의 횟수도 증가한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먹음으로써 그것의 수명을 대신 소모한다는 것이 정확한 말이다.
불사가 먹은 몬스터의 숫자는 못 해도 1천만.
즉 불사를 완전히 죽이려면 1천만 번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는 소리였기에 사실상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