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렁이로 환생했다-29화 (29/45)

〈 29화 〉 전쟁의 시작(3)

* * *

배고파.

배고프다.

꼬르르륵...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을 것 같이 뚝뚝 끊어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부여잡으며 주변의 흙을 먹고 있었지만 도통 허기짐이 가시질 않는다.

[몬스터를 잡아먹는 걸 권장합니다.]

싫어.

지금 먹으면 내가 아니게 될 것 같아.

꼬르르륵...!

으으...

미치겠다.

몸에 흡수된 마기가 통제가 안 돼

[마기를 통제하기 위해선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지금 느끼고 있는 허기짐과 괴리감만 없앨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첫 번째는 마기를 순응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 부작용은 이성을 잃고 마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됐어.

피에 쩔은 괴물이 되긴 싫거든

[그럼 두 번째로는 더욱 많은 마기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있지만 첫 번째 보다는 확률이 적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 아니야?

그럼 당연히 안 되잖아. 지금 이곳에 마계의 종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균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돌아가기도 그렇고…. 그럼 나머지 두 가지는 뭔데…?

[세 번째로는 마기의 주체자를 완벽하게 흡수를 하는 것입니다. 확인 결과 사용자가 먹은 도플갱어는 씨앗으로 판단이 됩니다.]

씨앗…?

그게 뭔데? 도플갱어가 아닌 거야?

[도플갱어는 맞습니다. 단지 도플갱어가 개체 수를 불릴 때 씨앗을 뿌리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분신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먹은 건 가짜라는 거네.

진짜는 어딘가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 거고….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입니다. 먹으십시오]

뭘?

[닥치는 대로 무작위로 먹는 겁니다. 허기가 가실 때 까지]

지금도 먹고 있잖아.

비록 흙이라지만 무식하게 먹긴 하는데?

[흙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무생물에게 있는 마나는 미량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깃들어있는 마나는 그보다 수백 수천 배는 많기에 마기로 오염된 몸을 정화하는데 효율적입니다.]

살아있는 거..?

그럼 몬스터들을 먹으라는 소리네

그런데 지금 먹으면….

[이성을 잃겠죠. 한마디로 진짜 몬스터가 되는 겁니다. 마기가 정화 될 때까지]

으…. 싫은데….

그런 건 죽어도 싫은데…. 어째서 지금 상황이 더 싫은 걸까?

그래서 예상 기간은 얼마나 추측해?

[현재 마기의 오염도를 체크해본 결과 57%입니다. 인간을 기준으로 100명을 먹으면 1% 줄어든다고 보면 되지만 어디까지나 마나가 풍부한 마법사나 기사를 토대로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32만2천 명을 먹거나 오우거 기준 9천마리를 먹으시면 마기가 정화됩니다.]

.....

가능하냐? 그게?

[정 힘드시면 고블린 400만 마리를 드시면….]

됐어…. 그게 더 힘들 것 같다.

후….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세상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기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물론 자식 가진 부모 입장에서야 목숨 바쳐 지켜줄 순 있겠지만 몬스터인 나에겐 부정이란 게 없다. 그러니 난 내 목숨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킬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몬스터가 어디야?

계획을 짰으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괜히 뭉그적거리다간 이도 저도 안되는 꼴을 많이 봤으니 곧바로 실행하려는데 마침 근처에 인간과 오우거가 싸우고 있다고 한다.

[A등급으로 추정되는 능력자 1명과 B등급 3명이 있습니다.]

좋네.

A등급이면 상당히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50m 직진하시다 위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망설이지 말자.

망설이지 마.

넌 몬스터야

인간이 아니야.

[지금]

시스의 말에 방향을 바꿔 위로 향했다.

몸을 긁으며 지나가는 흙의 감촉이 지금은 불쾌하다.

당장이라도 이 불쾌감을 해소하고 싶었기에 더욱 빠르게 올라갔다.

쿠르르르르!!!!!

콰직!

뭔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뭐지? 인간인가? 아니다. 이건 오우거다.

비릿한 피 맛이 인간이 아닌 오우거라는걸 알려준다.

의식이 흐려진다.

비릿했던 피 맛이 점차 달콤한 꿀처럼 느껴지더니 이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아.

맛있다.

그리고는 퓨즈가 끊긴 전구처럼 눈앞이 깜깜해졌다.

*********

"으아앙...!"

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지하 방공호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걱정 마십시오! 이곳은 핵 공격에도 막을 수 있게 설비된 곳이기에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그걸 누가 믿어…."

"그 녀석은 여기도 찾아와서 우릴 먹어버릴 거야…."

지휘관의 말에 중년 남성과 피골이 상접한 늙은 할아버지가 낙담하듯 중얼거렸다.

비록 작은 목소리였지만 못 들은 사람들이 없었다.

불안하고 불안하고.. 또 불안했지만, 이제는 이곳뿐이 없다.

서울? 웃기지 마라.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남부 빼고 전부 몰살당했다.

그나마 바다를 헤엄치지 못해서 연평도나 울릉도 같이 섬마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나머지 땅덩어리가 붙어있는 북구 지방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인구를 자랑하던 한국인이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더욱더 줄어들게 되었다.

끔찍하기 그지없는 시커먼 몬스터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먹어 치웠다.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네 명으로 점점 불어나던 몬스터는 말 그대로 일인 군단이라고 해도 무방했는데….

쿵!!!

지하 방공호에서 둔탁한 진동이 감지 되었다.

"으아!! 왔다! 그 녀석이 온 거야!!"

핵 공격에도 문제없이 막을 수 있다던 방공호가 무너질 듯이 흔들렸다. 말 그대로 천장이 갈라지며 보이지 말아야 할 햇살이 보이는가 하면 우수수 떨어지는 돌가루와 바위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군중 심리라는 것이 한명이 불안해하면 다 같이 불안해 진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겁부터 지레 먹고 큰소리로 나불거리던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플레시브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혼란 속에서 여전히 천장은 붕괴되고 있었고 방공호 안에 있던 능력자들은 떨어지는 낙하물로 대피자를 지키느라 분주했다.

"젠장…. 도대체 저런 몬스터가 왜 나타나서…."

지휘관의 나직한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천장은 더욱더 심한 균열을 일으켰고 마침내 하늘이 훤히 보일 정도로 크나큰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안녕? 꽤 딴딴한 곳에 숨어있었네?"

등 뒤로 보이는 검은 박쥐 날개와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했다.

"인간들이…. 가만 보자 꽤 많이 있잖아?"

"으아아악! 살려줘!"

"꺄악!!"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지휘관과 능력자들은 눈앞에 있는 인간형 몬스터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격해라! 마나 아끼지 말고 몽땅 쏟아부어!"

이미 살아남기는 글러 먹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함께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능력자들은 말 그대로 몬스터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훤하게 뚫려있는 천장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 혹시 같이 매몰돼서 죽자는 건가?"

"아무리 괴물 같은 네놈이라도 수천 톤에 달하는 바위에 깔리면 죽겠지!"

콰가가가강!!!!

"꺄악! 미쳤어!?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바윗덩어리에 깜짝 놀라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고 능력자들이 함께 매몰 당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에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꺼내줘!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어차피 죽을 거 명예롭게 죽는다!"

"하!"

쿠르르르르!!!!

외부에서 터지는 핵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내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는 것은 막지 못하는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벽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마 30초 이내로 모든 것이 끝나겠지….

"흐응? 설마 내가 이 정도에 죽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시끄럽다! 어차피 살려줄 마음 따윈 없는 걸 알았으니 네놈이 죽든 안 죽든 상관없다!"

"멋지네! 마음에 들었어~ 넌 특별히 내껄로 만들어 줄게"

"뭐...우웁!"

츕~

지휘관은 살아생전 여자와 키스한번 못했으며 심지어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하필 남자…. 그것도 몬스터에게 기습 키스를 받았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도 의식이 몽롱하게 희석이 되는 것을 느꼈다.

꿀꺽..!

그리고 입으로 넘어오는 뭔가를 꿀꺽 삼키며 어둠으로 물들었다.

­­­­­­­­­

아….

뭐지?

뭔가 끈적하고 기분 나빠.

당장 목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몸이 움직여지질 않네.

그냥 더 자자…. 언젠간 깨어나겠지 뭐.

********

전 세계적으로 몬스터들이 나타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대부분의 나라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완벽하게 적응했으며 이제는 몬스터를 사냥하여 부산물을 이용해 각종 무기와 갑옷들을 만들며 오히려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다만 `거의` 대부분이라는 나라 말고 아직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마족이 살고 있다는 아이슬란드와 리치 부대가 거주하고 있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지옥 같으면서도 절대적인 금지구역으로 치부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한국이였다.

어떠한 공격에도 죽지 않는 명칭 불사의 그림자들과 모한다르 게임에서도 유명했던 과거의 인외자는….몬스터가 나타난지 1년뒤 돌연 이상하게 변하더니 2년이 지난 지금은 데스 웜이라고 불리는 길이 5킬로에 육박하는 거대 지룡까지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였던 것이다.

처음엔 엘로우 스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드래곤이 제일 난감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인간들이었지만 계속된 수면으로 인해 이제는 한국이 가장 꺼림직한 장소가 되었다.

"핵을 투하하는 게 어떻습니까?"

"핵이라고 죽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특히 데스웜 같은 경우는 땅속에 서식하기 때문에 핵에도 살아남겠죠, 오히려 죽어가는 건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와 그곳에서 매우 강해진 능력자 분들…."

"쯧…. 어째서 다른 나라로 넘어오지 않습니까?"

"아마 의무감 또는 움직일 수 없는 소수의 생존자 때문 아니겠습니까?"

현재 그들이 모인 곳은 미국 연방에서 마련된 몬스터 연합본부였다. 몬스터에 대한 미래 대책을 모의하기 위해서 설립된 곳은 각국의 정상들이 참여한 곳으로 호위로는 나라별 최고 능력자들이 맞고 있었다.

그중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중국의 능력자 칭의 등급은 SSS 등급으로 미국의 SS 등급 능력자보다 훨씬 뛰어난 수준이었다.

다만 중국 같은 경우는 칭을 제외하고는 전부 B등급 이하의 다소 낮은 등급을 가지고 있었으며 미국의 경우엔 SS 등급이 3명 S등급이 9명이나 되기에 균형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세계 유일의 EX 등급의 능력자를 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가 있기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겨우 돌아가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죠"

"만약 우리가 그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간 순식간에 불사의 그림자와 데스웜이 뿔뿔히 흩어지고 말 겁니다."

세계 유일의 EX 등급 능력자와 SSS 급 몬스터 불사의 그림자와 데스웜은 서로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EX 등급 능력자가 권역을 잡고 있다면 안동 중심은 불사의 그림자가 있었고 광주 쪽은 데스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엔 서울 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데스킹을 EX 등급 능력자와 불사의 그림자가 힘을 합쳐 광주쪽으로 끌어내렸는데 이건 서로가 동맹을 맺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이해 합심이 맞아떨어졌기에 행해진 일이었다.

만약 데스킹이 땅을 파서 러시아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걸 알고 있는 EX 등급 능력자와 인간을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는 데스킹이 러시아로 넘어가 힘을 비축하는 걸 싫어한 불사의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삼각구도는 이렇다.

데스웜은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생명체를 모두 먹는다. 특히 강한 마나를 지니고 있는 불사의 그림자를 특식으로 생각하는지 끝도 없는 공격을 일삼는다.

그 반면 불사의 그림자는 하늘을 날 수 있기에 데스킹의 공격을 쉬지 않고 피하지만 EX 등급 능력자의 공격을 받으면 불사의 육체에 흠이 나기에 상당히 꺼리고 있었다.

EX 등급 능력자는 말 그대로 견제만 할 뿐 어느 누구도 죽일 생각이 없는 듯 했지만 유독 데스킹을 공격하는데 많이 꺼려하고 있었기에 EX 등급 능력자와 데스킹 사이를 상당히 의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분명 한국 땅은 좁지만, 고작 한명의 능력자와 2마리의 몬스타가 차지하기엔 상당히 큰 땅덩어리인 것 만은 확실하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호시탐탐 한국 땅을 넘보지만 아직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실정이라 손가락만 빨며 지켜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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