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전쟁의 시작
* * *
전쟁의 시작
음?
상당히 빠르다.
[전방 600미터…. 550m.. 500미터…. 아무튼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능력잔가?
[능력자로 판단이 되지만 그 몸에 흐르는 기운은 능력자기 보다는 몬스터에 가깝습니다.]
인간형 몬스터라...
뭔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데?
9층에 존재하고 있는 흉내쟁이 몬스터 도플갱어가 떠오른다.
그 녀석들은 마주친 존재의 80%를 복사하는 능력을 지녔는데 능력에 대한 한계는 있지만, 상당히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확실하다. 게다가 그저 복사하는 게 아니라 흡수 양식으로 기생을 할 경우엔 본연의 힘을 모두 끌어낼 수 있는 매우 짜증 나는 몬스터였다.
난 현재 내 몸을 매개체로 스킬을 시전하고 있었다. 땅속에서 사용하는 스킬이라서 지상에 올라갈 때 쯤이면 매우 희미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만으로도 오크나 트롤정도는 가볍게 매혹시킬수 있었다.
[왔습니다.]
쾅!!!
"히히…. 강한 존재!"
우웅!!!
서걱!
시발….
대비할 시간 좀 주지?
어떻게 보금자리의 위치를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순식간에 땅을 파고선 손에 생성된 오러를 이용해서 꼬리를 잘라버렸다.
다급히 몸을 틀지 않았다면 머리가 날아가 버릴 상황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따지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손에서 오러를 만들려면 몇 레벨이라는 거야?
[가상현실 게임 `모한다르`에 의하면 2차전직…. 즉 50레벨이 돼야 검에 오러를 생성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대충 50레벨 이상이라는 거네
형태가 있는 것에 오러를 입히는 것 보다 형태가 없는 것…. 특히 수강을 만들어 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따진다면 레벨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까가강!! 서걱!
육체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드는 지철봉과 몸에 가시를 생성시키는 돌기화를 시전해서 뻗어오는 오러를 막았지만, 육체는 몰라도 가시는 그대로 썰려나갔다.
[지철봉으로 인한 물리적 데미지 감소 70%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아픈데…?
수강과 부딪혔던 몸에 생채기가 난 것인지 피를 주르륵 흘리고 다니는데 그것보다는 잘린 꼬리에서 흐르는 피가 훨씬 많았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지만 어떻게 보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상대방의 움직임을 속도로 환산해보면 약 420킬로입니다. 하지만 지룡보와 지플링을 이용한 순간 속도를 따진다면 사용자의 속도가 몇십배 빠르기 때문에 위험하면 도망갈 수 있는 여력이 있습니다.]
시스의 말대로 상대방의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벨로르 던전 4층에 있던 렛트의 전광석화보다는 느리게 보였다. 물론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쪽이 훨씬 좋겠지만 나 역시 장기전으로 끌고 갈 생각이 없었기에 위험하면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실전 연습이나 해야겠네.
그그그그극….
300m의 몸체에서 순식간에 줄어 3m의 크기로 변했다. 빠르고 작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선 큰 몸집보다는 작은 몸집이 더 좋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 행동이었는데 적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간 같지 않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스르륵…!
나에게 뻗어오는 오러가 내 몸을 관통해서 뒤에 있던 흙벽에 박혀 들어갔다. 자연체 스킬이 마스터에 이르렀기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흘려 넘길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적은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는지 오히려 근접전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히히히!! 죽어라!"
스걱! 스걱!
지룡보를 이용해서 요리조리 피하는 와중 흙벽에 오러가 집중적으로 틀어박히자 보금자리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4번의 오러 공격이면 보금자리가 무너집니다.]
스킬로 인해 강화된 보금자리가 무너지려고 하자 난 재빨리 지상으로 올라갔다. 좁은 곳보다는 넓은 곳이 훨씬 안정된 싸움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행동을 한 거였고 나를 죽이기 위해서 따라오는 녀석을 보며 한가롭게 거미줄을 뿌려댔다.
츅!츅!
치지직!칙!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며 거미줄을 태워버리는 녀석을 보며 땅 위로 안착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녀석도 착지했다.
저 녀석 도플갱어 맞지?
[확인 들어갑니다. 97% 확률로 도플갱어라고 추측합니다. 복사형식이 아니라 기생형식으로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능력을 모두 사용하는 개체입니다.]
궁금하게 있는데
도플갱어를 먹으면 나도 복사 능력이 생길까?
[확답하기는 힘들지만 우선 먹는 것 부터 문제이거니와 먹는다 한들 복사 능력을 갖출 확률이 매우 미미합니다.]
복사를 했다면 도플갱어의 복사 스킬을 흡수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도플갱어는 기생형식이라서 흡수를 한다고 해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스킬까지 모두 랜덤형식으로 뽑힐 것이다.
아!
그럼 좋은 방법!
"히히히히!! 죽어라!"
넌 죽어라 대사뿐이 모르지?
서걱!!
아우 아파…!
퉁!!
몸체가 정확히 상하로 분리가 되어버렸다.
오러의 힘은 역시나 강력하다.
아니 오러 보다는 몸이 반이나 잘렸는데도 죽지 않는 내 몸뚱이가 신기하다랄까?
지렁이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죽은 척하며 가만히 있으니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도플갱어를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와라
내가 생각해낸 계획은 별것 없다.
단순히 도플갱어가 기생하기 위해선 딱 하나의 방식뿐이 없기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인데.
"꾸에엑!!"
녀석의 입에서 구토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진득한 검은 액체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저게 도플갱어의 본체다. 형태가 없는 액체라서 어떠한 모양으로도 변할 수 있는 몸을 가진 도플갱어는 기생하려면 무조건 상대방의 입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키에엑!!
슈우우...
도플갱어가 살짝 벌어진 내 입으로 들어오는 걸 느꼈다.
월척이요!
텁!
끼에엑!
솔직히 말하자면 난 먹으면 무조건 소화 시킨다는 엄청난 위장을 하고 있다. 거기다 흡수라는 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입을 통해서 기생해야 한다는 도플갱어의 특성상 나와는 상극이 될 수 밖에 없다.
잘 먹을게?
꿀꺽!
비명을 지르며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진득한 도플갱어의 느낌을 느끼다가 이내 순식간에 사라지는 놀라운 마술을 보았다.
[참…. 잔머리 하나는 끝내주네요]
그렇지? 거기다 이런 좋은 먹잇감이 하나 더 있잖아?
난 눈앞에 쓰러져 있는 인간 능력자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왕지사 하나를 먹고 하나의 스킬을 가질 바엔 둘로 나눠서 두개의 스킬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는가?
[멍청이! 처음 흡수의 설명을 똥구멍으로 읽었나요? 종족 하나당 하나의 스킬만을 얻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시스의 말대로 종족 하나당 하나의 스킬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바보는 바로 너야!
[네?]
멍청아 내가 이때까지 인간을 먹으면서 몇 개의 스킬을 얻었다고 생각해?
[어? 그러고 보니..]
분명 종족당 하나의 스킬을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수많은 인간을 먹고 얻은 스킬만 해도 몇 가지가 넘는다. 특히 자연 속성의 스킬을 5가지나 얻었다는 것만 봐도 시스템에 의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종족이란 같은 종류의 생물을 보고 말하는 것으로 인류라는 종족을 따진다면 인류 전체를 종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난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화염, 바람, 땅, 물, 번개…. 등등 하나의 종족에 다시 각 개체의 종족을 다시 나눈 것이었다. 처음엔 도박이라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스템이라는 게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시스가 생명체의 지식을 통해서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것을 보고는 모든 존재가 종족이라는 틀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할 때 내가 그 틀을 깨버리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다르게 생각해봤던 것이 규제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인간들도 인간들끼리 황인,백인,흑인, 나누는데 나라고 나누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아무리 인격과 지성이 생겼다고 하지만 원본은 컴퓨터 AI인 시스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뜻 보였다.
뭐.
알아서 고민하다 보면 깨닫겠지?
덥석!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도플갱어와 능력자를 동시에 먹는 아주 운이 좋은 날이 되었다.
아….
상당히 난해하다.
[사용자의 꼼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게?
이놈의 신은 날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걸까?
방금전 도플갱어의 육체를 먹고 복사라는 스킬을 얻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걸 복사라고 사용하는 게 맞나?
[도플갱어의 능력은 복사로서 복사 대상의 80%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데…. 푸..]
어!?
어어!?
어어어?!
너 웃었어? 지금이게 웃겨?
[네 웃깁니다.]
아악!!
누가 이 녀석 좀 잡아가 줘!
양손으로 머리를 박박 긁으며 심란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시스의 웃음이 더 커진다.
웃지마.
나 매우 심란하단 말이야.
[정상적인 도플갱어라면 이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내 모습?
일단 피부는 빨갛다.
그리고 몸에 마디가 촘촘히 달려있는데 딱 보기에도 말랑해 보인다. 팔? 다리? 팔은 몰라도 다리는 없다. 매끈한 몸뚱이가 잘빠진 아가씨 다리처럼 쭉 늘어져 있는데 어째 많이 보던 형태다? 응 딱 봐도 지렁이지? 그런데 딱 한 군데만 다르다?
손으로 머리를 슬금슬금 만지는 데 우선 머리카락이 만져진다. 코고 만져진다. 눈도 만져지고? 귀도 만져져.
대충 이해가 돼?
[인면지룡인가요?]
인. 사람 인
면. 면상…. 아니 낮 면
지. 땅 지
룡. 용 용
해석하면 인간 얼굴의 지렁이라는 건데 딱 그거다. 내 모습이 말이다.
아니 왜 80% 복사가…. 전혀 안 되는 건데!? 이건 딱 봐도 80%는 버리는 거고 20%만 되는 거잖아?
시스템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규칙이 어긋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스킬 자체가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오러는 제대로 발동하네요]
다행이라면 내 손에 피어오르는 오러는 정상적으로 작동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도플갱어의 복사 능력을 이용해서 인간들 틈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려고 했다. 일단 심심하니까 재미부터 즐기자는 심보였는데 이런 쓰레기 같은 상황으로 인해 계획이 물 건너 가버렸다.
하아.
짜증나.
당장 눈앞에 뭐라도 있으면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야….
[사용자 빡쳤나요?]
응.
상당히 많이?
서걱!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정확하게 18등분 해버렸다.
처음 써보는 오러였지만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 마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써진다.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드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뭘까?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살육감 같은 건...
[도플갱어는 마계에 사는 몬스터로 자체적으로 마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마기.
말 그대로 마의 기운으로서 8층 흉폭과 비슷하지만 좀 더 원초적인 기운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이 마기에 노출이 되면 즉시 살인마 또는 광인이 될 정도로 지독한 오염물질이었는데 난 그걸 통째로 먹어버렸으니 더욱 심한 노출이 된 것이었다.
그거랑 스킬 사용이랑 뭐가 연관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사용자는 점점 미쳐간다는 것]
하!
고작 도플갱어 하나 먹었다고 내가 미칠 것 같아?
마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난 나 자신일 뿐이다. 다른 존재가 내 몸뚱이를 지배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기 싫다.
으….
우선 쉬어야겠다.
쿠그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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