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렁이로 환생했다-26화 (26/45)

〈 26화 〉 현실(2)

* * *

이야.

잘 싸우네

[일방적인 학살로 보입니다만?]

그러니까 잘 싸운다는 거지! 내가 인간도 아닌데 인간편 드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불과 10초도 안 되는 짧은 전투였지만 30마리…. 아니 실제론 20마리의 오크가 무려 80명이나 되는 인간을 죽였다.

오크가 가지고 있는 기본 근력은 성인 인간의 3배에서 4배로 말 그대로 맨손으로 인간의 육신을 찢어버릴 수 있다.

만약 소환된 오크가 무기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짧은 시간안에 더 많은 인간을 죽였겠지만 아쉽게도 맨손이었기에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인외자는 몬스터 편인가 아니면 인간 편인가?"

`나? 당연히 몬스터 편이지! 내가 인간들을 상대로 뭘 바라겠어? 공격 안 하면 다행이지`

"그런가? 하긴…. 세상이 말세라고 몬스터라면 종류 불문 공격하는 세상이 됐지"

유사인종? 어림없다. 지난 일주일간 몬스터 말고도 엘프와 드워프등 인간과 유사종족도 나왔지만 돌아온 건 총알과 학살 뿐이었다.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인데 오히려 적을 만들고 있으니 인간에게 빌붙어봤자 희망은 없었는데 그나마 능력자들이 속속히 나타나서 이렇게나마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여기서 뭐 하냐?`

이것들은 현실로 돌아왔으면 싸게싸게 돌아갈 것이지 내 옆에 착 달라 붙어서 꼼짝도 안 한다.

부비부비….

`야야…. 문지르지 마 소름 돋으니까`

"달팽이랑 지렁이 진액이 피부에 그렇게 좋다며?"

`수컷 주제 피부 타령은 무슨….`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세상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오오.

기다렸다고?

그래 세상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볼까?

지난 일주일간 묵묵하게 기다려온 이유? 당연히 시스를 통해서 지구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시스의 입장에선 `더럽고 치사하고 야비한 사용자`라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지만 어떻게 하겠나? 난 너무 연약한 지렁이인데

뭐.

이런 소리를 시스에게 했다간 당장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서 속으로 묵혀두기는 했지만?

[현재 총합적인 정보입니다. 지구와 모한다르가 차원 융합한 지 일주일이 지난 현 상황에서 지구에 체류하고 있는 몬스터의 숫자 7천만 마리입니다. 그중에 고블린과 놀, 오크 등 하급 몬스터가 약 6천만 마리고 오우거와 트롤 샤벨타이거 등 중상급 몬스터가 약 1천만 마리입니다. 예외적으로 리치와 마족은 10마리 미만으로 추정되며 미국 엘로우 스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최상급 포식자 레드드래곤이 있습니다.]

에?

드래곤도 넘어온 거야?

그 녀석들은 귀찮아서 넘어오지도 않을 텐데?

[레드 드래곤 칼세린이 자리를 잡고 있던 곳에 차원의 균열이 발생하여 자고 있던 칼세린을 강제적으로 이동시켰습니다.]

헤~

큰일났네?

드래곤이라면 나도 힘든데…. 아! 그러고 보니 벨로르 던전은 어떻게 됐어?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유독 벨로르 던전만은 아무런 연고 없이 규칙에서 제외되고 있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현재 7층까지의 벨로르 던전이 쪼개져서 전 세계 각국의 수도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쪼개졌더라 해도 대한민국보다 크기 때문에 던전위에 한국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세세한 정보까지 듣고는 내심 혀를 쳤다. 생각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져서 그랬는데 그중에 킹덤사에 4명의 신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현상의 주범이 한국에 있다는데 서두르게 움직일 수도 없고….

그런데

너 신한테 안 걸렸냐?

[저는 유능하니까 걸리지 않습NiDa]

아.

지랄….

언제 또 영어까지 배웠대?

[영어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언어를 습득했습니다. 한마디로 천재?]

너 언어 프로그램 다운로드 했지?

[닥쳐]

­­­­­­­­­­­­

쿠그그그그!!

쾅!!!

"인외자! 인외자가 나타났다!"

안녕?

반가워 그러니 죽어!

콰드드득!

꿀꺽!

탱크와 더불어 인근에 있던 인간들을 꿀꺽 삼켜버리고는 땅속으로 쏙! 도망가버렸다.

최근 하는 일이라곤 별것 없다.

그냥 먹는 것?

물론 몬스터라고 해서 인간만 잡아먹는 건 아니다. 그냥 눈에 띄는 건 닥치는 대로 먹고 있는데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시크릿이랑 GM인 한성태를 따라 인간들 무리로 갔었는데 솔직히 덩치를 최대한 줄인 게 3m이었고 외모만 보자면 그리 험상궂지는 않다.

멋쟁이 모자에 바람의 스카프 거기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팔에 고급시계까지 착용한 터라 오히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랄까?

여기에다가 한술 더 떠서 착하게 보이려고 애들을 등에다 태운 뒤 군부대로 입성을 했다?

그리고?

응.

열라게 처맞았어.

그것도 좆나게 많이.

하늘에서 불벼락도 떨어지고 뭔 놈의 바람이 이렇게 날카로운지 나무건 뭐건 쑹컹거리면서 썰어버리는데 이건 말 꺼내지도 못하고 퇴각 행이였다.

참 이상한 건 능력자들이나 병사들이나 내 등에 타고 있는 이 녀석들을 봤는데도 공격을 가행했다는 거다.

한마디로 몬스터 한마리 죽이는 게 여타 인간들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뭐.

아무튼 그 사건 이후 제일 먼저 했던 행동은 당연히 날 공격했던 인간을 먹는 것이었다.

시크릿이나 한성태도 내가 행하는 행동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나름 충격을 받았다랄까? 그 뒤로 그 녀석들은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갔고 난 혼자서 땅을 파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퀘스트도 아직 진행 돼?

[이미 받은 퀘스트의 경우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9개라는 소리네?

한 군데만 더 보금자리를 만들면 메인퀘스트가 깨진다는 소린데…. 서울에는 안 되겠지?

[서울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체가 하나의 던전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보금자리를 만드시려면 외국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쳇.

쉽게는 안 된다 이 말이네

그때 9층에 넘어갔을 때 거기에 보금자리를 만들걸 그랬어….

[멍청한 사용자를 탓하세요]

시스의 꾸지람을 한번 받고는 보금자리에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예부터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라는 말이 있듯 괜히 귀찮은 짓 하기 전에 그냥 보금자리 주위로 들어오는 먹잇감만 잡아먹기로 했다.

애초에 천천히 강해졌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너무 순식간에 강해지는 바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스의 도움으로 스킬의 사용법이나 활용법을 알아가고 있지만, 실전 경험이 별로 없기에 너무 엉성하다고 해야 하나?

사냥을 할 때마다 사용하는 건 ,,, 이것들 뿐이 없다. 를 사용하는 건 거의 없었고 나 불멸화는 애초에 사용할 겨를이 없었으니 혹시나 리치나 마족, 또는 드래곤 처럼 나보다 강한 몬스터를 만나게 된다면 정말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내가 흡수한 능력이 몇 개나 있지?

[뇌전, 땅, 바람, 화염, 물, 입니다. 다만 사용자의 상태를 보아하니 사용 빈도가 전무하다고 예측됩니다]

내가 속성별 정령 지렁이도 아니고 자연체에다가…. 거참 이러다 정령계로 들어가 버리겠네

[...]

********

"으음…."

"왜 그래?"

성규가 두루뭉술 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졌는데 옆에서 최현이 부르기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어서"

성규는 품속에서 이때까지 조사했던 정보들을 꺼내 들어서 일일이 펼치기 시작했다.

"첫번째 격변의 날이 생겼을 때가 8년 전이었잖아?"

"그렇지 인외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을 구성하는 규칙을 깨트렸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잖아?"

첫번째 종이에 적혀있는 격변의 날을 빨간 펜으로 동그랗게 그어버린 후 두번째 종이에 적혀있는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모한다르에 살고있는 NPC…. 아니 이방인의 진술을 토대로 적은 건데 그중에서 벨로르 던전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술을 모아 적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지진과 함께 나타난 우리들…. 그리고 거짓된 지식의 주입"

스슥..

두번째 장에있는 글을 보고는 이내 세번째 장으로 넘어갔다.

유저…. 그러니까 지구인에 관한 정보가 적혀있었는데 워낙 방대한 정보라서 줄이고 줄인 것이 지금 손에 들린 정보였다.

모한다르에 접속한 사람들 대부분이 게임 속에서 몬스터나 NPC를 죽여본 적이 있다. 그리고 게임에서 나온 뒤 알 수 없는 괴리감에 빠져 사생활에 지장이 생겼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음. 현재는 실제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음.

"이거야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요즘 세상에 미친 싸이코가 아닌 이상 게임이라고 웃으며 죽였던 게 진짜 생명체였다고 하면 자죄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그래서 결론이 뭔데?"

언제 다가왔는지 박진태와 정민태가 주변으로 와서는 물어본다. 멀리서 한성태 또한 이쪽을 바라보면서 흥미롭게 주시하는데….

"글쎄.?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종합해볼 때?"

꿀꺽..!

다들 긴장하면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응! 아무것도 아니야!"

"..."

"..."

"..."

"..."

한순간에 맥 빠진다는 게 이런 걸까? 잔뜩 긴장감을 조성했다가 정작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니 다들 김빠진 콜라를 먹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이…. 어휴.. 아니다."

화를 내려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나는 모양이다.

다들 모냥 빠진다면서 각자 할 일을 하러 갔다. 그 와중에도 하하 웃으며 실없이 웃던 성규는 다들 시선에서 사라지자 네번째 장을 바라보았다.

네번째 장은 인외자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는데 16년 전 벨로르 던전에 갑자기 나타난 인외자는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라고 적혀있었으며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그는 세상을 먹어 치울 듯 먹어대며 크기를 불려갔다. 그리고 먹은 몬스터의 특성을 사용하는 기이한 능력을 지녔다고 서술되어있었는데 성규의 시선은 그것보다 맨 아래쪽에 적혀있는 글에 눈길이 갔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일정 기간을 두고 화려한 황금빛 발광체를 뿜어내며 덩치가 커졌다. 마치 지금의 유저들이 레벨업 하는 것 처럼…."

***********

지이이잉….

꾸물꾸물….

끄에엑…!

칠흑같은 어둠을 머금은듯 검은 액체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언뜻 보기엔 슬라임 처럼 보였지만 슬라임이 가지고 있는 부식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지 액체에 닿는 것들이 녹지 않았다.

"어? 여기에 웬 몬스터가…."

홀로 떨어진 병사는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액체를 보며 최하급 몬스터인 슬라임을 떠올리고는 총을 쏘는 대신 근처에 떨어져있는 쇠 파이프를 들고는 그대로 후려쳤다.

퍽!

끼엑..!

쇠 파이프에 맞은 검은 액체는 몸체가 터져나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렀지만, 병사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후려치기를 얼마 뒤 결국 죽었는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후! 죽이기는 힘들어도 손맛은 있네!"

땡그랑!

병사는 쇠 파이프를 던져버린 후 다시금 본진으로 들어가려고 뒤돌아서는 순간….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검은 액체가 사방에서 튕겨져 나오더니 병사를 감싸버렸다.

"으아…. 읍!!"

비명을 지르려던 병사는 입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액체를 뱉어내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가하고 결국 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검은 액체였다.

짧은 순간 비명을 질렀기에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경계하며 다가왔는데 혼자 땅을 보고 있는 병사를 보고는 이내 경계를 풀어버렸다.

"뭐야? 병수 너냐?"

"이 새낀 뭘 봤길래 저러고 있냐?"

같은 동기생인 그들은 평소에 같이 지냈기에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다.

"야! 그만 가자 김 상병님이 한 소리 하게…."

서걱!

"어…?"

서걱!

투툭...

순식간에 시야가 반전되면서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눈동자에는 `왜?`라는 의문만이 가득 들어있었다.

병수라고 불리는 병사는 자기 발밑에 굴러온 동기생 머리통을 힐끗 보더니 이내 섬뜩한 미소를 띠며 나직히 말을 했다.

"인간이라는 몸은 참 좋구나?"

파삭!

­­­­­­­­­­­

조각조각 나버린 육편조각을 헐떡이며 먹는다. 분명 인간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하는 행동이나 생각은 전혀 인간이라고 볼 수가 없었는데 말 그대로 인간형 몬스터라고도 볼 수가 있었다.

"하아…. 이 육체…. 마음에 들어"

우우웅...

손에서 뻗어 나오는 강렬한 오러를 느끼며 살짝 좌우로 흔들자 육중함을 자랑하던 탱크가 반쪽이 나버렸다.

이것만으로도 인간들이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라워했겠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강한 육체를 원했으며 힘을 원했다. 사방팔방을 뒤적뒤적하며 새로운 육체를 찾던 그는 어디선가 매혹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전해 받았는데.

"먹을 거? 죽일 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뭔가를 공격했는데 잠시 후 히히덕 거리며 목표물을 발견한 존재는 다시금 새로운 육체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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