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변화 (5)
* * *
한편
이번 일에 끼어든 GM의 정체는 한성태였다. 이때까지 상황을 종합해본 결과 유저로 보이는 존재는 시크릿이라는 모한다르 게임의 비밀을 파헤치는 자였고 뒤쫓고 있는 GM을 보아하니 기존에 있던 GM 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GM은 총 5명으로 얼굴과 이름을 전부 알고 있기에 확인 가능했는데 아무래도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킹덤에서 직접 내려온 듯 보였다.
거기다….
확실한 정황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비밀로 감춰두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주 중요한 사항을 시크릿이 알고 있다는 말이었는데….
`굳이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비밀로 하려고 하는 게 궁금한데?`
오지랖이면 오지랖이고 무모하다면 무모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5인의 GM 중 가장 강력하며 가장 뛰어난 스킬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라면 2명의 GM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느끼며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넘나드는데 확실히 공간을 넘는 기술은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기술이었다.
휘익!!
뒤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에 다시금 공간을 뛰어넘어 반대편으로 이동한 뒤 삐쩍 마른 GM의 등에 손을 대고는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부분 이동=""/>
푹!
"어…?"
분명 방금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상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머리와 팔 하체만 남겨두고 딱 상체만 사라져 버렸는데 사라진 상체의 행방은 곧 알려지게 되었다.
철퍽!
"우웁…!"
"우엑…!"
적나라한 외형의 근육과 뼈…. 그리고 상체 안에 보이는 각종 내장 기관이 보이는데 잘려진 단면 사이로는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가 연신 사방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것으로 한 명 끝…. 나머지 한 명 남았나?"
자만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하곤 있지만, 실제론 한성태의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강력한 스킬인 만큼 몸에 작용하는 반발력이 상당히 강했기 때문이였는데 그럼에도 불과하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겁을 먹고 도망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비밀을 캐는자…. 죽음으로 답하리!"
"시발! 저 새끼들 머리에 총 맞았어!?"
예상과 다르게 무식한 속도로 공격하는 GM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모든 힘을 쥐어짜 스킬을 발동시켰다.
<원격 이동!=""/>
푹!
"아.."
머리를 원격으로 이동시켜버린 직후 한성태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예상보다 훨씬 힘든 싸움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대로 기절이란걸 해버렸다.
*********
으음?
이겼나 보네
[사용자를 지켜보던 GM이 도와줌으로써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래?
그 녀석 은근히 쓸모가 있네. 안 쫓아내길 잘한 듯?
청랑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GM을 흡수하면서 얻은 능력 <천리안>과 <물품 감정="">을 사용해보았는데 대충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천리안의 경우는 이렇게 뒹굴뒹굴하면서도 멀리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나저나…. 한성태라는 GM은 뭐 때문에 도와줬을까나?
평소에도 날 감시 하면서 주변에 있는 소식을 끌어 모으긴 했다.
예상대로 모한다르가 가상인지 현실인지 알아보는데…. 솔직히 말해서 시크릿을 구하면서까지 알아낼 필요가 있을까 한다.
[사용자처럼 변덕일 수도 있죠]
그런가?
난 괜히 옛날 생각나서 도와준 것일 뿐인데?
[과거는 현재를 만들어내는 잔여물일 뿐 입니다. 굳이 꼭 집어 옛날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킁.
너한텐 말로 못 이기겠네
시스 녀석의 말대로 나에겐 과거라는 존재는 그저 현재를 있게 해준 미증유의 유산일 뿐이다. 굳이 인간 시절의 일을 떠올리면 나만 가슴 아플 뿐이기에 그냥 추억이자 재미있던 일로 치부하기 바빴는데 막상 박진태라는 이름을 들으니 그게 또 안됐단 말이지?
[전방 32도 방향 900m에서 시크릿을 비롯한 GM 한성태가 다가옵니다.]
이것들은 가만히 있고자 하는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건지 자꾸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편하게 살고 싶어라.
[포기하세요]
닥쳐주세요
[시끄러워 변태야]
......
이젠 하다 하다 반말까지 쓴다.
거참.
살면 뭐하겠냐 AI한테 반말까지 듣는데….
[도움말을 검색합니다. 쉽고 빠르게 자살하는 방법 2,142가지를 검색하였습니다.]
아….
님 죄송요.
요즘 들어 제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요….
그냥 순순히 수긍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렇고말고!
[....]
응? 으으응?
이 반응…. 이건…. 뭐지?
뭐 됐어.
그냥 이대로 살다가 뒈지지 뭐….
********
시방 이게 뭔일이랑가?
뭐라고 해야 하나?
식구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낯선 쓰레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곳에 폐기처분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GM과 싸웠던 시크릿 녀석들은 한성태의 성수로 인해 상처 하나 없는 샤방샤방한 모습이었고 한성태 녀석은 스킬을 난발하다가 들것에 실려 온 상태였다.
"아니 이 사람들 왜 또 온 거야!?"
화의 주체자?
음.
당연히 세이린이 주인공이다.
안 그래도 가짜들에 대한 불쾌감이 하늘을 찌르는데 여기서 당분간 지내겠다는 소리에 아주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이린…. 진정하고 화를 내면 몸에 좋지 않아"
"앗! 그러고 보니…."
슬그머니 배를 어루만지면서 미소를 짓는데 아무래도 임신 중인 것 같았다.
흐응….
임신이라면 지금의 신경질 인정해줄게.
리드미컬하게 꿈틀거리며 녀석들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자 `어어어`하는 비명이 들리면서 우당탕 쓰러진다.
`자자 임신한 암컷은 내버려 두고 나랑 대화할까?`
나도 자식 낳아본 수컷으로서 애티켓은 지키는 녀석이라고?
캬~
이 얼마나 멋지고 수컷다운가? 지금이라면 지나가는 모든 암컷의 뺨따귀 후려치게 보이지 않겠는가?
[그게 뭐가 중한디? 이런 C+놈아]
아..?
잠시만
잠시만요?
잠깐만요~?
후…. 대단했다.
이 영문도 모를 감동…. 아니 감동이라기보다는 소름 돋을 정도로 라임이 쩔었다랄까?
비유하면 밤하늘의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데 옆에 있던 꼬마가 `엄마 별이 똥 싸?`라고 하는 느낌?
"인외자.. 다시보니 감외가 새롭네"
`난 그다지 반갑지 않은데? GM에 콱 죽어버리지 그랬어.`
"풋….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데?"
박진태에게 한 말이었지만 대답은 한성태에게서 나왔다.
분명 저 녀석은 내가 했던 행동을 모두 봤을 테니 지금의 상황을 웃기게 보고 있겠지?
에잉….
괜히 약점 잡힌 것 같아서 싫은데?
어차피 목적이 있으니 행동을 했던 것이기에 상관없나?
`자~ 그래 가짜 양반들? 다시 온 목적이 뭘까나?`
"아까부터 가짜가짜 하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 거야?"
`몰라서 물어? 가짜를 가짜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어? 설마 빈 껍데기 뒤집어썼다고 진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내가 생각해도 말 잘했는것 같지만….
[그다음 반응에 따른 대화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응.
내꺼 아니야.
난 그냥 듣고 말하는 것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시스가 알려주는 최적의 문체를 읽고 있는 터라 내 의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이 녀석들은 그저 내 말을 듣고 연신 감탄사를 자아내는데…. 뭔가 기분 나쁘다…. 랄까? 에잇! 뭐 어때 시스가 내꺼고 내께 내껀데
[불결합니다.]
시스의 귀여운 투정을 받아내며 계속 고민을 하고있는 녀석들을 지켜보는데 너무 지루하게 고민을 하는 녀석들을 보니 하품이 다 나온다.
으아암….
괜히 하품하니 움찔거리는 녀석들이었는데 난 그런 건 신경 꺼버리고는 잠들어있는 청랑의 품속으로 꾸물덕 거리며 들어가 버렸다.
에잉….
좀 더 어메이징하게 밝히려고 준비했는데 이 녀석들이 안 받쳐주네?
원래라면 바로바로 대답해주면서 주고받는 맛으로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 애꿎은 시스 역시 계속 연산 중, 연산 중 이라면서 리로드 중이다.
하기야 이 녀석들도 대략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울 정도로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킹덤사에서 자신들을 죽일 이유도 없거니와 나 같은 특이 몬스터가 나타날 리 없으니 말이다.
"인외자, 한 가지만 물어볼게"
`뭔데?`
"이 세상…. 아니 모한다르는 실존하나?"
`너희들이 말하는 가상현실게임? 그런 거 없었을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쿵!
[경고! 외부 차원의 불규칙한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오?
해냈지렁지렁~
시스의 말에 의하면 신의 규칙이 깨진다면 규칙을 억제하고 있는 차원이 깨진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차원의 균열이 발생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현상을 만들어 낸다고 하는데 처음엔 나에게 부여받은 게임시스템이 튕겨져 나와 모한다르행성 자체를 게임 세계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모한다르 행성에 규격된 게임시스템이 다시 한번 튕겨 나가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어디로 튈지가 정말 궁금하다.
쿠르르르르…!
"뭐야!?"
"지진? 하지만 모한다르에선 지진이 발생할 리가…."
"인외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째 이 녀석들의 대표자가 나로 콕찝혀 버린듯한데 이걸 말해줘도 되나?
[어차피 알게 될 사실. 빨리 알아서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어 버리죠]
거참.
가면 갈수록 시스의 성격이 지랄 같아지네….
예전의 순수했던 시스를 보고 싶은 이유가 뭘까?
[20만 PS 포인트로 기억 소거 물약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응.
닥쳐요
어차피 사주지도 못할 거 말만 해서 뭐하게?
2016년 9월 7일 대한민국 수도….
"으음…. 결국 사단을 벌였구만"
"그렇게 최대한 억제를 했는데도 신의 규칙을 깨트려 버릴 줄이야…."
"역시 그냥 소멸 시켰어야 했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카르마의 법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환생 시켜야 한다는 건...."
세계 최대의 대기업이자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모한다르를 만들어 낸 킹덤사에서 흔하게 보이는 회의인 듯 싶었지만, 대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에코, 모한다르의 규칙이 깨진다면 다음은 역시…."
"맞아 지구야"
신에게 부여받은 이명` 규칙을 지키는 자`에코모니아는 모한다르에서 튕기어 나온 게임시스템을 지구에 고착화 시켜버렸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카르마의 법칙이었으며 제아무리 신이라고 한들 무조건 지켜야 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사건의 발단은 돌연변이 영혼이 태어난 날 이후였다.
첫 환생일 때 부터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켜 규칙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질 않나 100번째 환생 이후에는 환생했던 행성 자체를 부셔 먹으며 온갖 업보를 짊어지게 되었다.
선의를 쌓으면 쌓을수록 인간에 가까우며 업보를 짊어질수록 퇴물이 되는 업보 시스템 카르마는 신이라도 깨트릴 수 없는 법칙이었지만 돌연변이 영혼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지 마지막 444번째 환생 때 영원한 광물로 태어나야 했지만 미물이나 생물로 태어나버렸다.
거기다 한술 더 떠 옆에 붙어있는 존재….
"왜 그분이…."
쿠르르릉!!!
"시작됐나?"
종말을 아는 자 쿨레아는 킹덤의 최상층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점점 까만 구멍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구멍은 점차 커지며 세력을 넓혔고 푸르른 하늘 따위는 진득한 어둠에게 잡아 먹히듯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반복된 역사라…."
"직접 겪어보니 신님이 느꼈던 기분을 알 것 같은데?"
"그러게.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번 경험해보는 게 좋다던데…. 이런 기분이라면 그냥 백번이고 만 번이고 듣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모한다르에서 말한 격변의 날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결국 지구에 까지, 찾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