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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71)화 (71/91)

71화.

“대, 대공?”

내 치마 쪽으로 쏟아져야 할 차를 이안이 몸을 숙여 가로막고 있었다.

그의 팔부터 맨손이 쏟아진 찻물로 흥건히 젖은 상태였다.

심지어 예상보다 온도가 더 뜨거웠는지, 내게 직접 닿지 않았는데도 쏟아진 찻물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깜짝 놀란 내가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때쯤 이안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친 곳은요.”

“아니….”

미친놈아, 지금 그걸 나한테 물어볼 때가 아니잖아. 너 지금 손에서 연기가 풀풀 난다고!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인 데다가, 눈앞의 상황까지 겹쳐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쿵 뛰었다.

“아니, 일단 대공부터 좀 봐요. 지금 손이….”

한 박자 느리게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손을 살피려 했으나, 그가 조금 더 빨랐다.

빠르게 몸을 젖힌 이안이 내게서 멀어졌다.

“괜찮습니다.”

“다쳤잖아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내 행동에 이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안뿐만 아니었다.

지금 막 입장하고 있던 일 층의 관객도, 주변 박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던 귀족들도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사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이안의 손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다친 게 뻔히 보이는데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져요?”

네가 진짜 깡통 로봇이야, 뭐야.

통각 없어?

걱정인지 호통인지 그것도 아니면 짜증인지 모를 내 태도에 이안은 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죄송하지만 부인, 목소리가 큽니다.”

시뻘건 손등을 하고서 말은 잘했다.

나는 그에게 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홱 돌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하인을 살벌하게 째려보았다.

“거기 뭐 하고 앉았나? 대공께서 다치셨는데 식힐 얼음물을 가져오지 않고!”

하인은 내 호통에 뒤늦게 정신이 든 건지, ‘죄,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후다닥 커튼 밖으로 사라졌다.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어디 봐요.”

“…….”

“보자고요.”

거의 반협박 같은 내 태도에 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뭐 해요? 안 주고.”

“굳이 살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굳이 살펴야겠네요.”

어울리지 않게 배려인지 뭔지, 내게 손을 내어 보이지 않는 그의 옷을 당겨 억지로 손을 살폈다.

예상대로 얼핏 보았을 때보다 훨씬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 얼굴이 팍 구겨졌다.

“아니, 그걸 맨손으로 막으면 어떡해요? 이거 다 흉 지겠네, 진짜….”

고마움은 둘째 치고,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에 한숨부터 나왔다.

나를 쳐다보던 이안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걸 보고 있습니까?”

“이 치마가 얼마나 두꺼운지 알아요? 안에 패티코트에 속치마에 몇 겹을 겹쳐 입었다고요. 크게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잔소리 폭격을 퍼부으려던 차에, 하인과 함께 지배인이 커튼을 확 젖히고 등장했다.

“괜찮으십니까, 대공 전하!”

허둥지둥 달려온 건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배인 옆 하인의 손에는 얼음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와 수건이 들려 있었다.

“양동이부터 여기 내려놓게.”

그들을 위아래로 훑은 내가 턱짓으로 지시했다.

하인이 재빠르게 양동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이안의 손을 양동이 물 안에 푹 집어넣었다.

“…부인?”

“기다려요, 이러고 십 분은 있어야 하니까. 원래 흐르는 물이 제일 좋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내가 그의 손을 물에 담그는 동안에도 지배인과 하인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 직원이 일을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제대로 교육시키겠습니다. 뭐 해, 얼른 고개 숙이지 않고!”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놀라고 화가 나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지배인은 물론이고 물을 쏟은 하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특히나 하인 쪽은 손까지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었다.

뒤늦게 정신이 드니 소리를 친 게 미안해졌다.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의사에게 연락했으니 바로 이쪽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지배인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되었네, 대공저로 돌아갈 테니 마차를 대기시켜 주게.”

이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집으로 가요.”

***

결국 우리는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극장을 빠져나와 대공저로 귀가했다.

데이트랍시고 대공저를 비운 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돌아온 우리를 보고 집사장과 하인들이 기겁을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안은 치료를 하기 위해 집사의 손에 이끌려 곧장 방으로 올라갔고, 나 역시 침실로 향해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마님, 괜찮으세요?”

방 안을 서성이며 내 눈치를 보던 비비가 물었다.

침대 위에서 심란하게 턱을 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었다.

“어? 응.”

“표정이 안 좋아 보이세요. 데이트를 망쳐서 그러시는 거죠?”

이제 보니 나보다 비비의 표정이 더 울상이었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대답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거기서 나 대신 찻물을 맞긴 왜 맞아?’

자기가 언제부터 그렇게 매너가 넘쳤다고!

물론 이안 놈도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그랬겠지만, 새빨갛게 달아오른 손을 직접 본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베개를 끌어안고 인상을 구기던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침대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비비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마, 마님?”

“안 되겠다.”

찔려서 안 되겠다고.

아무리 내가 이안에게 유감이 많다지만, 나 때문에 다친 사람을 두고 방 안을 뒹굴거리고 있자니 양심이 콕콕 찔려 왔다.

“대공한테 다녀오마.”

비비한테 이야기한 뒤 슬그머니 방을 나섰다.

무작정 복도로 나와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침 저 멀리서 트레이를 들고 올라가는 하인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

“마, 마님?”

내 부름에 하인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렸다.

트레이에 약과 붕대가 담겨 있었다.

“대공께 가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만….”

음, 고개를 끄덕인 내가 그를 향해 선을 내밀었다.

“이리 주게.”

“예?”

“내가 가져다줄 테니 이리 주라고.”

결코 그냥 찾아가기가 머쓱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어벙하게 나와 트레이를 번갈아 보던 하인은, 뒤늦게 말뜻을 알아차린 건지 냉큼 그것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 대공께서는 어디 계시지?”

“주인어른께서는 지금 침실에….”

시종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평소에는 맨날 집무실에 처박혀 있더니 이럴 때는 또 침실이네.’

삐걱거리던 것도 잠시,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가 보게.”

“예, 마님.”

하인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고,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이안의 방이 있을 반대편 복도 끝을 쳐다보았다.

‘그냥 상태만 슬쩍 보고 오는 거야, 응.’

대공저에 머문 지도 2개월이 훌쩍 넘어가는데 이안의 침실이 있는 복도에는 한 번도 발을 들여 본 적이 없었다.

똑같은 복도인데도 왜인지 어색한 기분에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이윽고 문 앞에 도달한 내가 짧은 망설임 끝에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이안이 아닌 대공저 담당 주치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들이밀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

“…대공비 전하?”

그리고 오히려 그 모습에 당황을 한 건 나였다.

‘사람이 뭐 이리 많아?’

기껏해야 주치의와 이안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주치의뿐만 아니라 주치의의 보조와 시중을 드는 하인들까지 세 명이 더 있었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팔을 내밀고 있던 이안이 의아하게 물었다.

“…왜 부인께서 오십니까?”

“아, 그게.”

양심에 찔려서 왔다, 이 인간아.

내 어색한 대답에 주치의와 사용인들 사이에서 오묘한 시선이 오갔다.

잠시 후, 상황을 파악한 듯 주치의가 주변에 늘어놓은 약품과 의료도구를 챙기며 일어섰다.

“처치는 끝났으니, 연고를 바르신 후 붕대만 감아 주시면 됩니다. 하인들에게는 당분간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나를 향해 눈짓했다.

“그럼 마무리는 대공비 전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

“두 분께서 이야기 나누십시오.”

꾸벅, 인사한 그들이 정말로 자리를 비울 것처럼 채비를 하고 일어섰다.

트레이를 쥔 손등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야! 나가지 마! 어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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