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손수레 가게를 떠나 골목을 빠져나오는 길에 이안이 물었다.
“황녀에게 이 장신구를 선물로 줄 생각입니까?”
“네, 물론 이렇게 그대로 드릴 건 아니고요.”
손에 덜렁 들린 리본을 흔들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손수레 털북숭이 주인의 손끝에서 만든 리본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이대로는 무언가 아쉬웠다.
도무지 내 생각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안을 끌고 이번엔 근처에 있는 제드 의상실로 향했다.
가로등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뒷골목에 있던 의상실은 최근에 광장 바로 옆 거리로 이사를 했다. 내가 준 백지 수표를 알차게 써먹은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요새는 전속계약 고용주인 내 허락하에 의상실에서 예약 손님도 조금씩 받고 있어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번듯해진 〈제드 의상실〉 간판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딸랑, 종소리가 울리자 옷감 사이에 좀비처럼 파묻혀 있던 마담 제드가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헉, 대공비 전하… 아, 아니, 대, 대공 전하…?”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채로 옷감을 기우던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찼다.
이번에야말로 바닥에 납작 엎드리려던 마담 제드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되었네, 되었네. 일어나게.”
“여, 여기까진 무슨 일로… 필요하다면 저를 부르시지 그러셨습니까!”
첫 만남 이후로 일행까지 대동하고 찾아온 건 처음이라, 마담 제드는 이 상황이 제법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황녀님의 드레스 건으로 찾아왔네. 주문한 의상 중 노란색의 외출용 드레스가 있지?”
“아, 예. 별궁 휴가 때 입고 가신다고 가장 빠르게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별궁에 갈 때 입을 드레스라니, 잘 되었다.
나는 가타부타 말을 덧대는 대신 그녀에게 들고 온 리본을 내밀었다.
“그 드레스와 어울리는 모자를 하나 만들어 주겠나? 장식은 이 리본으로. 보석도 좀 여러 개 박고.”
리본을 받아 든 마담 제드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아니, 이건…! 이런 리본은 처음 보네요. 레이스 무늬도 독특하고. 이게 뭡니까?”
리본의 구성을 낱낱이 관찰하던 마담 제드가 뒤늦게 고개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저쪽, 원단 도매 시장에서.”
“아니, 거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답니까? 제가 왜 여태 몰랐을까요?”
그야, 이제 연 지 일주일쯤 되었을 테니까.
확실히 마담 제드는 같은 재능인을 알아보는 심미안이 있었다.
이 손수레 가게의 주인은, 그냥 장사치가 아니라 장인이었다.
‘그 투박한 손으로 레이스를 직접 만드는 것만 봐도 가늠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다이아나는 귀국하고도 일 년쯤 뒤에 가게 주인을 만나게 된다. 그때 주인공의 안목으로 가게 주인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아본 다이아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와 거래를 시작한다.
그 일을 계기로 털북숭이 주인은 손수레 가게를 정리하고 수도의 직물 장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 리본을 만든 주인의 이름과 연락 가능한 주소라네. 황녀님께 모자를 전해 드리고, 만든 사람을 묻거든 이걸 드리게.”
황녀라면 틀림없이 알아볼 것이다.
‘내가 황녀에게서 마담 제드를 빼앗아 갔으니, 한 명은 줘야지.’
어차피 그가 황녀의 눈에 띈다면 이후 다이아나와 연결되기도 쉬울 것이다.
내가 황녀를 확실하게 다이아나의 편으로 만들어 둘 예정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고개가 떨어져라 끄덕이는 마담 제드를 흐뭇하게 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 모자를 보내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안 클라우드 대공이라고 덧붙여 주면 고맙겠어.”
내 말에 여태껏 병풍처럼 서 있던 이안이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부인?”
이안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그 질문이 나올 걸 알았던 나는 되레 뻔뻔하게 말했다.
“리본도 종류도 대공께서 고르고, 값도 대공께서 치르셨잖아요. 그러니 대공의 선물이죠.”
반박할 테면 해 봐라.
당당하게 그를 쳐다보자 이안이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
“…….”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마담 제드는 일찍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나와 이안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가 낮은 한숨을 쉬었다.
또다시 미간이 팍 구겨진 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왜 쓸데가 없는데요? 고작해야 생일 선물인데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이유도 말하지 못하면서 태도는 제법 단호했다.
이런 식으로 황녀와의 친밀감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이안은 황제는 물론, 황녀까지도 남처럼 대하고 싶어 하니까.
그를 물끄러미 보던 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설 젓고 마담 제드를 불렀다.
내 손짓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마담 제드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예, 대공비 전하.”
“혹시 ‘그걸’ 볼 수 있나? 황녀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것 말일세.”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이고 내 얼굴 쪽으로 귀를 기울이던 마담 제드가 소리 없는 탄성을 흘렸다.
이어서 그녀가 이안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게, 지금 있긴 한데….”
선뜻 내오기가 어렵다는 듯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네, 내가 책임질 테니까 잠깐만 내와 주겠나?”
“대공비 전하꼐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편 이안은 자신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져 수상하게 쑥덕거리는 나와 마담 제드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중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마담 제드가 뒤쪽에서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실크로 만든 행커치프였다.
행커치프는 총 세 장이었는데, 각각의 디자인이 조금씩 달랐다.
‘생각보다 공을 더 들였네.’
흐뭇하게 웃던 내가 손짓으로 이안을 불렀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가 마지못해 천천히 다가왔다.
“…이게 뭡니까?”
“황녀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선물이요. 본인 생일 기념 남부행인데 가족들 선물을 준비하셨더라고요. 안 그런가, 마담 제드?”
나는 황성에서 차를 마시면서 황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가족’이라는 말에 강조를 했다.
동조해 달라는 듯이 마담 제드를 쳐다본 건 덤이었다.
눈치껏 내 사인을 알아들은 그녀가 고개를 떨어져라 끄덕였다.
“예, 드레스를 만드는 김에 제작할 수 있냐고 하셔서, 황녀님이 그려 주신 도안에 맞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마담 제드와 나의 협공에도 이안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꼭 낯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린 채 행커치프를 살피던 이안이 눈을 끌어 올렸다.
“한데 이걸 왜 저한테 보여 주십니까?”
…난 이럴 때마다 이 인간이 정말 심장 없는 양철 나무꾼 같은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이 됐다.
이 인간을 어쩌면 좋지.
한숨을 삼키고 물었다.
“이 행커치프가 누구 거 같은데요?”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그리고 황녀의 것이겠죠.”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와 마담 제드가 거의 동시에 이마를 짚었다.
“…선물인데 본인 걸 만드셨겠어요?”
“하면요.”
“하나는 대공의 것이죠.”
당연하게 흘러나온 내 대답에 이안의 미간이 좁아졌다가, 이내 팍 구겨졌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껴야 하는지 착잡함을 느껴야 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이 인간의 철벽에 갈 길이 멀다며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혀 위에서 몇 번이나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수 초의 침묵 끝에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하셨던 말 기억하세요? 대공 작위를 받았다고 해서 대공께서 황족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요.”
당연하게도 그 말을 잊지 않은 것처럼 이안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까와 다른 이유로 미묘해진 분위기를 귀신같이 알아챈 마담 제드가 조용히 손수건을 내려놓고 가게 뒤쪽으로 사라졌다.
내가 가벼운 어투로 덧붙였다.
“황녀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신 모양이죠.”
“…….”
“대공 작위가 생겼다고 혈연관계까지 끊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냐는 듯 그를 향해 눈짓했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평소와 같은 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비스듬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쓸데없지 않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