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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60)화 (60/91)

60화.

덩달아 나까지 의욕을 잃을 뻔했지만, 차분하게 교육자의 태도로 채근했다.

“그래도 하나 골라 보세요. 황, 아니, 그분과 어울릴 것 같은 색이라도. 있을 거 아니에요?”

“…….”

“선물을 고를 땐 뭐라고 했죠?”

“…받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신중히 골라 보라고 하셨지요.”

“잘 아시네요.”

알았으면 순순히 고르도록 해.

어서 골라보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굳이 제가 골라야 합니까?”

“굳이 당신이 골라야겠네요.”

내 성화에 못 이긴 이안이 어쩔 수 없이 천 무더기 위를 살폈다.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제법 진중해서 웃음이 터지는 것을 꾹 참았다.

수 초가 지난 후에 이안이 폭이 넓은 리본 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 공단 리본이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오, 나쁘지 않은데요?”

저번 구둣가게에서부터 느꼈지만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센스가 있었다.

남주 버프 같은 건가?

역시 잘 닦아서 사람만 만들어 놓으면 다이아나에게 제법 도움이 될 것 같단 말이지.

그를 따라 수레 위를 살펴보던 내가 근처에서 그것보다 얇은 리본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잠깐 실례할게요.”

양해를 구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이안의 얼굴에 리본 끈을 가져다 댔다.

갑작스럽게 뻗어 오는 내 손에 이안이 움찔 떨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황, 큼, 그분과 같은 눈 색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당신이.”

내가 집어 든 리본끈은 보라색과 청색이 뒤엉켜 있는 오묘한 빛깔을 지니고 있었는데, 빛이 내리쬐면 밝은 보라색으로 빛났다.

그와 리본 끈을 한참 번갈아 보던 내가 활짝 웃었다.

“…예쁘다.”

내가 뿌듯하게 이안의 눈가에 대었던 리본 끈을 거두어들였다.

“잘 어울려요. 꼭 당신 눈동자로 만든 것 같네요.”

이 정도면 황녀한테도 잘 어울리겠지.

“사이즈가 좀 더 옆으로 넓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이어서 다시 천 무더기를 뒤적이는데, 어쩐지 옆에 선 이안이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뒤늦게 그것을 알아챈 내가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대ㄱ, 아니, 당신?”

내 부름에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퍼뜩 눈을 깜빡였다.

그가 잠긴 목을 가다듬으며 시선을 떼었다.

“…네, 그걸로 하시죠.”

꺼내는 말들이 답지 않게 한 박자 느렸다.

그를 의아하게 보던 것도 잠시, 나는 주인장에게 두 종류의 리본 끈을 내밀며 말했다.

“이 공단 리본 끈으로 장식용 리본을 하나 만들어 주면 좋겠네. 레이스나 부자재를 더 써도 좋아. 머리 장식을 만들 생각이니 화려하게 해 주게.”

주인장이 눈을 빠르게 껌뻑였다.

“리본을… 말입니까요?”

요청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벙하게 묻는 그를 향해 끄덕였다.

“그래, 못 하겠나?”

“아뇨,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그런 주문을 하는 분은 처음이라 그렇습니다요. 보통은 자재를 사 가기만 하시지….”

“애초에 별로 손님이 없었잖나.”

내 직설적인 말에 그가 정곡을 찔린 듯 고개를 돌리고 큼큼 헛기침했다.

“…거, 근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리본도 만든다는 거요.”

“시중에 나와 있는 것과는 패턴부터 다르니, 알 수밖에.”

“아, 예.”

“이 정도 실력이면 장신구 하나 만드는 건 어렵지 않겠지.”

“아아….”

주인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납득이 가는 듯 끄덕였다.

“바로는 어렵고… 가만 보자, 지금부터 두 시간 정도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두 시간 정도야.

“그럼 곧 찾으러 오지. 얼만가?”

“대충 공단 리본 두 개랑 들어갈 레이스, 부자재, 제작 비용까지 하면… 어디 보자, 은화 네 개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요.”

주인이 투박한 손가락 네 개를 쭉 펴 보였다.

내가 팔꿈치로 이안의 옆구리를 툭 쳤다.

“값 치러 주세요. 일단 선금으로 은화 두 닢만.”

이안의 황당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돈도 제가 내야 합니까?”

“저 지갑 안 들고 왔는데요?”

뻔뻔하게 되받아치자 황당함을 넘어 황망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배 째라는 듯이 그를 멀뚱멀뚱 볼 뿐이었다. 결국 어쩌지 못한 이안은 은화 두 닢을 꺼내 내 손에 건넸다.

“자, 여기 있네. 금액의 반은 리본을 찾으러 올 때 치르겠네. 괜찮지?”

“아유, 그럼요!”

돈을 확인한 주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싹싹하게 대답한 그가 굽신거리며 우리 두 사람을 살폈다.

“그럼 오붓하게 데이트 즐기고 오십쇼. 후딱 만들어 두겠습니다.”

만족스럽게 끄덕인 내가 다시 이안을 잡아끌었다.

“들었죠? 가요.”

***

아침을 먹긴 했지만, 일찍부터 번화가에 나와 돌아다녔더니 부쩍 배가 출출했다.

나는 이안을 끌고 멜랑 거리에서 유명한 크레페 가게에 들러 크레페를 하나씩 샀다.

평민들이나 먹는 음식 아니냐며 타박할 것 같은 이안은 의외로 순순히 따라와 줄까지 섰는데, 정작 다디단 크레페 한 입을 먹고서는 영 취향이 아닌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걸 좋아하십니까?”

“맛있지 않아요? 여기가 수도에서 제일 인기 많은 크레페 가게라던데.”

“답니다.”

“달아서 먹는 거예요. 맛있기만 하구만.”

그를 쳐다보며 크레페를 한 입 크게 물었다.

그 순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안이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예, 그래 보이는군요.”

동시에 입가를 스치는 서늘한 체온에 나도 모르게 흠칫 상체를 뒤로 뺐다.

‘뭐, 뭐야.’

그가 금세 크림을 닦은 손을 거두고는 말했다.

“묻었습니다.”

“말로 하셔도 되는데….”

“먹는 데 정신없어 보이시기에.”

감흥 없이 대답한 그가 손끝에 묻은 크림을 할짝, 먹고선 인상을 팍 구겼다.

“역시 취향은 아니네요.”

…응?

“지금 뭐 한….”

내 입에 묻었던 걸 네가 왜 먹어?

그러나 정작 이안은 전혀 이상한 걸 모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부인?”

“방금….”

내가 반쯤 넋이 나가 그를 가리켰다.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 이안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듯 굳었다.

“아.”

“…….”

“…….”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먼저 시선을 피한 건 내 쪽이었다.

“어, 네. 그, 아, 앞으로는 제가 닦을게요.”

“…예, 그러세요.”

‘미, 미친 거 아냐?’

심장이 벌렁거려 시선을 돌리고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이안 역시 멋쩍은 듯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 인간 뭐야?’

평소엔 칼같더니 왜 이런 데서 무방비한 건데?

“그, 그러고 보니, 저기 분수가 있네요! 분수 보러 가죠.”

“…네.”

그 후로는 여름이 가까워졌다고 작동하기 시작한 광장 분수를 구경하다가, 오후 네 시를 가리키는 시계탑 종소리 듣다 보니 약속한 두 시간은 금방 지났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털북숭이 주인은 이미 리본 장식을 완성해 둔 뒤였다.

“여기 있습니다요.”

주인이 묘하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완성된 손바닥만 한 리본을 내밀었다.

이안이 고른 금색 리본을 메인으로, 중간중간 작은 비즈들이 달려 있고 그 중앙에 내가 고른 자청색 리본이 포인트처럼 달려 있는 모양이었다. 부자재를 추가한 건지 독특한 패턴의 레이스 리본도 달려 있었다.

내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리본을 받아 들어 이안의 눈앞에 흔들었다.

“어때요, 예쁘죠?”

“…나쁘지 않네요.”

예쁘면 예쁜 거지, 나쁘지 않은 게 뭐냐. 이 인간아.

나는 다시 이안을 툭툭 쳐 나머지 은화 두 닢을 건네받아 주인에게 주었다.

“남은 값일세. 아, 그리고 명함 한 장 줄 수 있겠나?”

“명함…이요?”

난생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주인이 나를 어벙하게 쳐다보았다.

맞다, 지금 이 인간의 상태를 간과했다. 명함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럼 아무 종이라도 괜찮으니, 자네의 이름과 연락 가능한 주소를 적어 주게. 긴히 전달할 곳이 있으니.”

“예, 예? 그건 왜….”

당황스럽게 묻던 주인은, 내 옆에 서서 서늘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안의 눈길에 잔뜩 쫄아 주섬주섬 종이를 꺼냈다.

이어서 그는 연탄 조각으로 무어라 길게 메모를 적어 건넸다.

“이, 이거면 되겠습니까?”

이름과 주소를 확인한 내가 끄덕였다.

“그래. 되었네.”

“그런데 어디 쓰시려고….”

“뭐, 그건 곧 알게 될 테고. 조만간 또 봅세.”

대답 대신 상큼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려던 내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중요한 충고를 하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리고 매대는 좀 정리하면서 장사하게. 그것만 해도 손님이 배는 늘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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