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분명 나와 비슷한 또래일 그녀는 압도적인 비주얼 때문인지 적어도 열 살, 아니, 스무 살은 많아 보였다.
큼, 헛기침을 하고선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올슨 백작 부인. 갑작스러운 서신에도 선뜻 답해 주어서 고맙네.”
“대공비 전하의 서신인데 마땅히 그래야지요. 해서 무슨 일로?”
형식적인 예의만을 취한 뒤 곧장 본론을 꺼내는 모습이 심드렁했다.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올슨 백작 부인은 백작이 죽은 뒤로 지독한 무력감과 탈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리라고는 조금도 되지 않은 이 저택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차라리 이 편이 더 나아. 나도 돌려 말할 필요 없고, 얘기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냈다.
“아리아 소식지를 보고 찾아왔네. 메리 후작가와 1년째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지?”
방금 전까지 안광 없는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백작 부인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었다.
흐리멍덩한 암녹색 눈동자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그 얘기를 꺼내실 거라면, 더 나눌 말이 없을 것 같군요. 이만 나가 주시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날카로운 반응이었다.
‘말만 꺼냈는데 사람을 이렇게 쫓아낸다고?’
명목상의 예의도 차리지 않는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서 눈을 가늘게 떴다.
“날 이대로 내쫓으면 안 될 텐데. 난 자네를 도와주러 왔거든.”
“…네?”
방금 전까지 날 노려보던 올슨 백작 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자네, 그 광산을 욕심내는 게 아니잖나.”
그녀의 일순 눈이 커졌다.
“광산이 시작되는 곳 언덕에 있는 큰 비자나무 말일세. 광산이 개발되면 그 나무도 벌목될 테니, 그걸 막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다들 오해하고 있지만, 올슨 백작 부인의 목적은 광산을 독차지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광산을 아무도 개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쪽이었다.
스쳐 지나간 서술에 의하면 광산 근처 언덕의 비자나무는 백작 부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지키고 싶어 하는, 아주 의미 있는 곳이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올슨 백작과 처음 만났으니까.’
내 말에 올슨 백작 부인은 당황을 고스란히 내어 보이며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그걸 어떻게….”
“글쎄,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가?”
미안하다, 원작 읽었다.
곤란하니까 묻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내가 여유롭게 대답하자, 혼란스러운 듯 눈이 흔들리던 백작 부인이 입술을 꾹 물었다.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대공비 전하께서는 더 잘 아시겠군요. 저는 이 광산을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혹시 광산을 양보하면서 평판을 챙기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거라면….”
“자네, 내가 한 말은 뭐로 들은 건가? 나는 자네를 도와주러 왔대도.”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그제야 백작 부인이 멈칫했다.
“…도와주러 오셨다는 뜻이 정확히.”
나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광산, 자네 걸로 만들어 주지. 아주 확실하게.”
그녀의 눈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게 대체 무슨….”
올슨 백작 부인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만큼 진중하며, 입이 무거웠다.
그러니까, 좋게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다.
조금 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타고난 고집불통에, 자신이 마음을 연 상대가 아니면 해야 할 말도 하지 않아 타인의 오해를 사는 일이 잦았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입만 꾹 다물고 이 광산은 내 거요, 하면 누가 알아주냐고.’
나는 그녀를 가만 훑어보다가 물었다.
“자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그러고 있으면 정말 광산과 땅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버티는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없습니다.”
올슨 백작 부인이 단호하게 답했다.
“광산의 반쪽은 올슨 백작가의 소유입니다. 그러니 이대로 양보하지 않으면 아무리 후작가라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이야….’
이 정도면 고집이 대쪽을 넘어 황소 수준이었다.
나는 터지는 탄식을 애써 입 안으로 삼켰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슨 백작 부인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도 광산에서 채굴되는 광물의 일부를 저희 백작가에 할당하라는 지시를 하셨으니, 조금만 버티면 아예 무효화를 시킬 수도….”
“아니, 뺏겨.”
“예?”
“뺏긴다고.”
말을 가로채고 상큼하게 웃었다.
내 칼같은 답에 올슨 백작 부인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건 순진한 건지, 현실 감각이 없는 건지.’
물론 내가 원작을 수도 없이 읽긴 했지만,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싸움이 올슨 백작 부인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본인만 모르네, 본인만 몰라.’
이런 대쪽 같은 신념이 제일 무섭다고 했는데.
고개를 설설 젓고 올슨 백작 부인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자네, 어디 가서 순진하다는 소리 자주 듣는가?”
“…예? 아뇨, 딱히 그런 말은.”
주변에 친구가 없었구나, 나처럼.
“생각해 보게. 메리 후작가는 광산의 입구를 뚫어 개발하겠다는 확실한 명목이 있지. 한데 자네는 무슨 명목이 있는가?”
“그건.”
“어차피 자네 손에 들어가면 개발 못한 광산,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안 된다, 양보할 수 없다, 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
“한데 누가 누구 편을 들어? 자네는 이 상황에서 자네가 실로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가?”
너 그렇게 멍청했어?
표정으로 묻는 내 모습에 백작 부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지, 바보가 아니고서야 본인도 할 말이 없겠지.
실제로 이 일로 인해 잡음이 길어지자, 기 싸움에 질려 버린 황제는 아주 당연하게도 메리 후작가의 손을 들어 준다.
막무가내로 버티기를 시전하던 백작 부인은 광산도 뺏기고, 잘려 나가는 비자나무를 지켜보기까지 해야 했다.
‘귀국한 다이아나가 백작 부인을 위로한답시고 이 얘기를 꺼냈다가 점수만 더 깎아 먹었지.’
다이아나의 협상이 처음으로 실패한 데는 그 영향이 가장 컸다고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어.’
올슨 백작 부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무거운 한숨을 토했다.
“…그럼 제게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대공비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광산을 개발하려는 것도 아니고, 메리 후작가처럼 광물로 장사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버티기 작전 외에는 아무런 도리가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확실히 겉으로 놓고 보면 그렇긴 해.’
지금 이 시점의 백작 부인은 남편을 잃은 시름에 잠겨 가지고 있는 광산도 방치하고 있으니까.
본인이 몇 년 후에 엄청난 광산 부자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흠.”
고민하는 척 눈을 굴리다가 눈을 접어 웃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자네는 장사꾼의 기질이 있어. 내가 보기엔 3년 내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관상이란 말이지.”
“…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백작 부인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 같아도 그렇지, 사람을 대놓고 훑어보냐고….’
살짝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은 척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묻는 건데, 자네는 팔이 중 가장 잘 팔리는 팔이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백작 부인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땅을 파는 것 아닙니까?”
그거겠냐.
고개를 젓고서 씨익 웃었다.
“아니, 감성팔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