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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41)화 (41/91)

41화.

이안에게 잡히지 않은 쪽의 신발 뒤꿈치를 바닥에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건, 좋은 곳으로 가라는 의미래요.”

잠깐의 간극 후 이안이 물었다.

“어디 말입니까.”

“뭐.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사람. 포괄적인 의미로요.”

그래서 옛날 영화에는 남자 주인공이 헤어지는 연인에게 구두를 선물하는 장면도 종종 등장하지 않는가.

꽃신, 구두 따위에 붙여진 말들을 떠올리며 가볍게 으쓱였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군요.”

“제가 예전에 살던 곳엔 좋은 구두는 주인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는 미신이 있었거든요.”

“부인께선 수도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

맞다.

“어렸을 때, 잠깐! 다른 곳에 살았답니다.”

“그렇군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내 핑계에도 이안은 별로 캐물을 생각이 없는지 쉽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믿는다기보단 또 헛소리를 하는군, 정도의 반응이었다.

‘이 인간이 먹금을 잘해서 진짜 다행이다.’

어쩐지 내가 하는 말의 반절 정도는 헛소리로 치부하는 것 같지만.

십년감수한 기분으로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시 후, 짧은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 이 구두를 선물 받은 부인께선 ‘좋은 곳’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응?

허공을 배회하던 눈길을 내려 이안에게로 옮겼다.

내내 정수리를 보이던 그는 어느새 고개를 들어 신발이 아닌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개나리색 구두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발목을 쥔 채였다.

“못 들었어요. 방금 뭐라고….”

“좋은 곳으로 가실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좋은 집이든, 좋은 사람이든.”

‘…갑자기 이게 무슨 질문이야?’

생각 없이 한 말에 질문이 돌아오자 오히려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그러든 말든 이안은 제법 집요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답이 궁금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청색 눈동자가 실내 조명을 받아 유달리 선명한 빛을 띠었다.

‘좋은 곳’이라니.

‘물론 다이아나가 돌아오면 이런 대공비 자리는 훌훌 털어 버리고 내 행복을 찾아 떠날 예정이긴 하지만.’

이안이 그런 대답을 바란 건 아닐 테고.

이 질문이 뭐라고,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발목을 쥔 이안의 손길은 진득하니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갑작스럽게 그의 손길을 의식한 탓에 내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 발목 쥐고 빤히 쳐다보면서 물을 일이야, 이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져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음… 아뇨, 아직 딱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요.”

애써 태연하게 뱉은 음성 끝이 떨렸다.

고개를 완전히 돌렸는데도 입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왜 얼굴은 잘생겨서!’

“…이제 좀 놓아주실래요?”

결국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던졌다.

“…….”

잠깐의 간극 후, 미련 없이 시선을 뗀 이안이 반대쪽 구두를 마저 신겨 주고선 몸을 일으켰다.

“다 됐습니다. 일어나시죠.”

다시 시야가 높아진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방금 전의 질문은 잊은 것처럼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황당했다.

‘뭐야, 이게 끝?’

이렇게 싱거운 반응을 보일 거면 갑자기 그런 질문은 왜 한 건데.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그의 손을 맞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깜빡했다. 이안 클라우드는 원래 이런 놈이었지.’

내가 완전히 일어난 걸 확인한 이안이 손을 놓고 점원을 불러 값을 치렀다.

수 분 뒤, 계산을 마친 그가 나를 슥 훑어보고선 말했다.

“다행이군요.”

신발이 잘 어울려서 다행인 거니.

다이아나만큼은 아니어도 엘로이즈도 되게 예쁜 얼굴이거든.

“뭐가요?”

욱하는 마음에 새초롬하게 되물었지만 그에게서 대답이 돌아올 리가 만무했다.

대신 이안은 들어올 때처럼 기계적인 에스코트와 함께 나를 구둣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마차가 근처에 있습니다.”

그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마차까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나는 미처, 그 말이 조금 전 내 말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해가 질 무렵, 공작저로 돌아온 이안은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버릇처럼 재킷을 벗고 의자에 몸을 묻듯이 기대던 그가 멈칫했다.

상의 주머니를 뒤적이자 조금 전 엘로이즈의 메리제인 슈즈에서 떨어진 큐빅이 나왔다.

그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걸 여태 넣어 두고 있었나.’

엘로이즈의 구두를 벗기던 도중 떨어진 장식을 챙겨 둔 것이었다.

“…….”

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로 손을 들어 정밀하게 세공된 큐빅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쏟아지는 샹들리에 빛이 보석을 통과하며 무지갯빛으로 일렁였다.

지난 2년, 엘로이즈는 항상 지나칠 정도로 몸가짐에 신경을 썼다.

이안뿐 아니라, 가까이서 엘로이즈를 모시는 사용인들조차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 없을 만큼.

그런 대공비가 신발의 큐빅이 덜렁거리는 줄도 모르고 번화가를 돌아다니다니.

게다가 뻔뻔한 얼굴로 대공인 이안에게 짐을 들어 달라, 허리에 손을 감아보라 하던 것은 또 어땠던가.

‘정말 모르겠군.’

이안은 자연스럽게 조금 전, 구둣가게에서 엘로이즈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 좀 놓아주실래요?”

답지 않게 뺨까지 붉혀가며 시선을 돌리던 얼굴은 확실히 낯설었다.

근래 들어 이안은 엘로이즈의 다양한 표정을 보는 것이 생경했다.

잘 세공된 도자기 인형 같던 엘로이즈가 얼굴을 찡그리거나, 웃거나, 울거나, 혹은….

“전하, 외출은 즐거우셨… 헉,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때마침 집무실로 들어오던 카일이 사색이 된 얼굴로 허둥지둥 달려왔다.

내내 큐빅을 들여다보던 이안이 카일을 심드렁히 쳐다보았다.

“뭐지?”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카일이 심각한 얼굴로 이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방금 웃고 계셨잖습니까…!”

“…내가?”

싸하게 가라앉은 이안의 물음에 카일이 과장스럽게 몸을 흠칫 떨었다.

“아니 그렇다고 또 그렇게 바로 정색하시기 있습니까?”

입술을 댓 발 내밀고 툴툴거리던 카일이 그의 손에 들린 큐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손에 드신 건 뭡니까?”

그제야 이안은 허공에 뻗었던 손을 거두고 큐빅을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에 그냥 넘어갈 카일이 아니었다. 시원스레 옆으로 찢어진 그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

“전하께서 혼자 큐빅을 들여다보면서 웃고 계시다니, 사악한 주술이 걸린 물건인 게 분명합니다. 이리 주시면 제가 당장 마법으로 확인을…!”

“혀가 길군.”

“합.”

카일이 양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눈치를 보며 손을 떼어 낸 카일이 한쪽 눈썹을 씰룩였다.

“요즘 좀 이상하신 거 아시죠? 전 이제 슬슬 전하가 걱정됩니다.”

“무엇이.”

“생전 안 그러셨던 분이 혼자 심각해지셨다가, 방금은 큐빅을 들여다보면서 실실 웃고 계시질 않나….”

슬쩍 이안의 눈치를 살핀 카일이 얄궂은 얼굴로 살랑살랑 눈웃음쳤다.

“크흠, 꼭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구시잖습니까.”

건방짐과 하극상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카일의 언사에 이안의 표정이 살벌하게 구겨졌다.

“그 헛소리는 언제쯤 그만둘 생각이지?”

“헛소리라니. 주군은 꼭 불리하실 때만 그 소리 하시는 거 아십니까?”

헹, 콧바람을 뿜은 카일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아무튼 이거나 보시죠. 영지에서 올라온 이번 분기 자료입니다.”

“이게 전부인가?”

“네. 이번 분기는 큰 사건이 없어서요. 날씨가 좋아서 영지민들 생활도 나쁘지 않고요.”

“듣던 중 다행이군.”

“예, 그렇죠. 황성에도 같은 자료를 올리고 오는 길입니다. 아, 그리고 조만간 폐하께서 두 분을 뵙자고 하실 것 같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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