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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4)화 (4/91)

4화.

나는 지금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흐으음.”

‘확실히 계획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이거.”

며칠간 살펴본 결과, 이안과 엘로이즈는 정말로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조찬 시간을 제외하면 마주치지 않는 것은 기본, 그나마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까칠한 이안 클라우드 때문에 대화가 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상태로는 협조를 받기는커녕 깔끔하게 무시당할 미래가 뻔히 보였다.

그뿐인가. 수도 전역에는 이미 두 사람이 남보다 못한 부부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들이를 빙자해 저택 밖으로 나간 날, 평민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숙덕거리는 것을 들었으니까.

잠자리도 가진 적이 없다느니, 생판 남 같은 사이라느니….

문제는, 그런 소문 중에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는 점이었다.

“…평민들도 얘기할 정도라면 대체 어디까지 이야기가 퍼진 거야?”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책에서 읽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아.”

나는 오래전 읽었던 이 소설 속 한 구절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클라우드 대공가와 알피어스 후작가, 그 어느 쪽도 이득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두가 불행해진 결혼이었다.」

모두가 불행한 결혼.

지금 이 상황에 이보다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알피어스 후작도 참 딱했다.

평판과 맞바꾼 사업이라니.

‘아니, 근데 둘 평판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나 몰라라 하고 있었던 거야?’

본인들의 결혼 생활에 그렇게까지 무심할 수가 있다니.

어떤 의미로는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할 수는 없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름지기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인 법.

나는 그 길로 곧장 가장 가까이서 엘로이즈의 시중을 들고 있다는 하녀를 불러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 머리의 하녀 한 명이 고개를 조아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마님. 저를 부르셨다고….”

“그래. 그러니까… 이름이?”

“비비입니다.”

하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곧장 대답했다.

2년 넘게 모신 주인이 이름을 묻는데 이상함조차 느끼지 않는 기색이었다.

‘엘로이즈도 보통 무심한 게 아니었다는 뜻이지.’

하, 이 엉망진창 부부 같으니라고.

“그래, 비비. 고개를 들렴.”

“네.”

슬쩍 내 눈치를 본 하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동그란 갈색 눈동자가 잔뜩 긴장한 채 떨리고 있었다.

“네가 나를 지난 2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았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겠구나.”

하녀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조아렸다.

“과, 과분한 말씀이세요.”

“과분하긴 뭘.”

내가 방긋 웃었다.

“그런데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야.”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수도가 꽤 시끄럽다던데, 나와 대공의 이야기로.”

“네?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니 정말 장난 아닌 모양이구나.

나는 조금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수도에 퍼진 내 소문에 대해 한번 읊어 보렴.”

“네, 네?”

하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내가 어려운 걸 요구했니?”

“그것이 아니오라….”

하녀가 당황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표정으로 시선을 방황했다.

그렇겠지. 여태 엘로이즈는 뒤에서 자기에 대해 뭐라 떠들든 관심 한 톨 주지 않았을 테니까.

침묵이 길어지고, 내 시선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할 때쯤 하녀가 어렵사리 대답했다.

“마님께서 신경 쓰실 만한 소문은 아, 아닙니다.”

“왜? 내가 못 들을 소문이라도 있나 보지?”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하녀가 흠칫 놀라 손사래를 쳤다.

“난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해.”

내 뼈 있는 말에 하녀의 표정이 싸하게 식었다.

이윽고 사색이 된 하녀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수도에서 마님께 붙은 수식어는….”

“…….”

“사교계의 얼음꽃, 그 무엇보다 고결하고 아름다운 대공비….”

“잠깐, 거기까지.”

이어지는 뻔한 말들에 나는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털고 손을 들어 제지했다.

누가 그런 틀에 박힌 소리 듣자고 불렀겠냐고.

“비비, 내 말이 어렵니? 나는 내 소문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어.”

내 눈이 가늘어지자 하녀는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다.

어깨가 잘게 떨리는 것이, 한시라도 빨리 이 방에서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마님, 제가 어찌….”

“어려운 것 같으니 더 쉽게 말해 줄게. 정확히, 나와 대공에 관련된 추문들에 대해 듣고 싶은 거란다.”

“추, 추문이라니! 차, 차라리 죽여 주세요!”

급기야 하녀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비비.”

“예, 예. 마님.”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널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

“그러니 꼭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지금부터 네가 말할 것들은 내게 아주 필요한 정보거든.”

나긋한 설명이 이어지자 가만히 내 말을 듣던 비비가 입술을 살짝 물었다.

“…저, 정말 벌하지 않으실 건가요?”

“그렇대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근사근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네가 계속 나에게 함구하겠다면… 나는 너무 실망스러워서 너를 멀리할지도 모르겠구나.”

쉽게 말해 잘리기 싫으면 얌전히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 말뜻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은 비비가 허억,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 그런.”

“이제 말해 줄 생각이 들었니?”

한참이나 내 안색을 살피며 눈치를 보던 비비는, 내가 몇 번이나 재촉하는 눈짓을 하고 나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숨을 크게 뱉었다.

“실은….”

작은 목소리가 한껏 떨리고 있었다.

“세간에서 마님을, 대공가의 껍데기뿐인 안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클라우드 대공가의 유령이라고, 또….”

한 번 입이 터진 하녀는 나에 관한 온갖 추문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진부한 수식어부터 평민들이나 사용할 것 같은 천박하고 수준 낮은 별명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평범한 귀부인이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겠군.’

물론, 난 그런 귀부인이 아니었기에 턱을 괸 채로 하녀가 하는 말을 심드렁하게 듣기 바빴지만.

“…그 정도라 이거지.”

하녀의 말이 끝난 뒤, 내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 미소를 본 하녀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마, 마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웃은 게 그렇게 큰일 날 일인 거야?

다시금 고개를 조아리는 하녀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란다. 내가 대답해 달라고 한 거잖니. 이만 나가 봐.”

“…그, 그래도 될까요?”

“그래.”

내 평온한 반응에 하녀는 반신반의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마음이 놓인 듯 후다닥 허리를 폈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잠깐.”

“네, 네?”

돌아 나가려는 하녀를 불러 세우자 화들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나는 온화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웃어 주었다.

“말해 줘서 고맙구나, 비비.”

순간적으로 나를 바라보던 하녀의 얼굴이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떤 하녀가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량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님.”

“아량은 무슨.”

“그럼, 정말 물러가겠습니다!”

90도 인사를 한 하녀가 조심스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쪽을 가만 바라보다가, 편하게 팔짱을 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화려한 천장 벽화와 샹들리에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공가의 유령이라.”

하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곱씹어보던 내가 씨익 웃었다.

“넌 이제 죽었다, 이안 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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