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안 클라우드는 전형적인 똥차, 아니 후회남이었다.
소설 속 그의 행적을 나열하자면 이랬다.
여주인공 다이아나의 고백 무시하기, 고심해서 고른 생일선물 반송하기, 바쁘다는 이유로 대공저에 방문한 다이아나를 여섯 시간 넘게 방치하기.
심지어 그가 소꿉친구인 다이아나를 외면하고 집안끼리 맺은 계약 결혼을 승낙했을 때, 그녀가 얼마나 비참해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오죽하면 다이아나가 그의 결혼 직후 도망치듯 아카데미로 떠났겠는가?
이쯤에서 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주 너… 뭐 돼?
인성 뭐야?
물론 거기에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안 클라우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본능적으로 타인을 밀어내고,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며 살아왔다는 설정이었으니까.
그럼 뭐 해, 똥차짓 한 게 없어져?
여주인공 다이아나의 열렬한 팬인 나는 그가 아주 비참하고 혹독하게 구르길 바랐다.
원래 후회물이라는 게 그런 묘미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바람은 처참하게 박살 나고 말았다.
“응? 이게 뭐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휴대폰 스크롤을 휙휙 내렸다.
그러나 내 의지가 무색하게 화면 위엔 ‘마지막 페이지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만 뜰 뿐, 다음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완결이라고? 장난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직 후회물의 ‘ㅎ’도 시작되지 않았건만, 다이아나가 이안을 용서하고 두 사람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은 미안하다며 우는 이안에게 다이아나가 먼저 키스해 주는 모습이었다.
“아악! 작가 미친 거 아니야?”
휴대폰을 손에 쥐고 발을 쿵쿵 굴렀다.
이 똥차가 우리 다이아나한테 한 짓이 얼만데 이렇게 용서해 줘?
아무리 다이아나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상냥하고, 예쁘다지만! 이건 아니지!
다이아나 입술은 소중하다고!
“하, 안 되겠어. 이건 한마디 해야겠어.”
분노에 찬 나는 다시 화면을 켜 댓글창을 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댓글창마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이안처돌이: ㅠㅠㅠㅠㅠㅠ작가니뮤ㅠ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 완결까지 완벽한 소설은 진짜 오랜만이에요... 밥먹고 글만 써 주세요....
-엄마나이안사줘: 기승전결 짜임새가 탄탄한 글은 오랜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언제나 건필하시길. 외전은 언제 나오는 걸까요?
-후회남의정석: 하 떡밥 회수까지 완벽하시다ㅠㅠㅠㅠ 작가님 금손ㅠㅠㅠㅠ
-밥먹고로판만읽었어요: 외전 써 주실 거죠? 우리 이안 행복한 거 보고 싶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모두 눈물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중 팔 할은 작가와 이안을 향한 찬양이었다. 21세기 최고의 명작이라느니, 후회남의 정석이라느니.
나는 현기증이 나 이마를 짚고 말았다.
“하… 빡쳐.”
그랬다.
이 소설의 작가는 쓸데없는 금손이었다.
웹소설계의 헤밍웨이, 전설의 레전드, 혜성 신인.
온갖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웹소설계를 씹어 드시는 중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 글 실력을 모두 이안의 서사를 몰아 주는 데 썼다는 점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똥차 이안 클라우드는 작가의 손에서 사랑과 동정심, 죄책감 따위는 모르는 냉혹하고 우아한 남주로 탈바꿈되었다.
아니, 트라우마로 감정을 못 느끼면 병원을 가야지.
그걸 왜 셀링 포인트로 팔아먹는 건데?
그러나 독자들은 여기에 열광했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아도 심장이 뛰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유혹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위태로운 남자라나, 뭐라나.
작가의 손에서 빛나는 건 여주인공 다이아나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아니, 천만에.
다이아나는 말만 여주인공이지, 사실상 이안을 빛내기 위한 찬밥에 불과했다.
그건 작가도 알고, 독자도 알고, 서럽지만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아무리 남주를 사랑하기로서니, 상도덕이 있지.
어떻게 이안만 빛내 줄 수가 있냐고. 우리 다이아나는? 다이아나는!
결국 나는 팔을 걷고 전투적으로 키패드를 눌렀다.
-나의말랑콩떡다이아나: ㅋㅋㅋ개연성 나락갔네;; 남주가 그렇게 개똥차짓을 했는데 이렇게 쉽게 용서를 한다고? 우리 애를 무슨 배알도 없는 여주로 만들어 놓으셨어요?ㅠㅠㅋㅋㅋ 작가가 이안 편애한다는 건 알았는데 적당히 하셔야죠~ 우리 다이아나만 불쌍해 죽겠네 진짜ㅡㅡ 그냥 이안 팬북을 내시라고요~~ 아니 걍 이 소설에서 다이아나 그냥 빼주세요^^;;
└ 이안최고: 이 유난종자 또 왔네ㅋㅋ 지겹지도 않냐? 갈 길 가세요~
└ 우리이안이귀여워요: 징글징글하게 완결까지 보냐 ㅋ 마조인듯?
└ 이안처돌이: ――――――――먹금――――――――
“이 인간들이….”
순식간에 주르륵 답댓글이 달렸다.
그로도 모자라서 휴대폰에선 지잉, 지잉, 연신 답댓글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보나 마나 남주 팬덤의 사이버불링일 게 뻔했다.
“한 톨 여주 팬은 서러워서 살겠나!”
전투적으로 키패드에 손을 얹다가, 결국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하, 진정하자. 진정해. 이너피스.”
횡단보도 앞에 서서 가까스로 심호흡을 했다.
“아니 근데 이안 그 자식이 먼저!”
애석하게도 진정이 안 됐다.
문득 내 앞에 펼쳐진 광활한 8차선 도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 환생트럭 같은 거 안 지나가나.”
이럴 때 환생트럭에 치이면 로판 세계에서 환생하던데.
내가 소설 속에 직접 들어가면 남주 놈을 아주 묵사발 낼 자신이 있다고.
“…아휴, 열이 오르니 별생각이 다 드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이미 이안한테 참교육을 해 주고도 남았겠지.
김이 빠져 버린 나는 대충 고개를 털어 버리고 횡단보도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집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그런데,
빠아아앙-!
“…어엉?”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첫 교통사고의 감각은 아주 끔찍했다.
거대한 트럭이 내 몸을 덮쳤고,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거짓말처럼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누군 죽을 때가 되면 주마등이 지나간다는데 내가 죽어 보니 그런 것 따윈 없었다.
그저 마지막까지 이 사달을 만든 이안 놈과 작가가 원망스러웠을 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눈을 떴다.
‘…잠깐.’
눈을 떠…?
‘뭐야, 천국인가?’
어리둥절하던 나는 금세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대충 14세기 르네상스부터 18세기 로코코까지의 예술 양식이 미묘하게 짬뽕된 방에 누워 있었다. 심지어 가구 중엔 근대나 현대의 디자인도 보였다.
방 안에는 은은한 장미 향이 감돌고 있었으며, 내 몸에서는 향긋한 과일과 꽃을 섞은 듯한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목소리는….
“어라.”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청아하고도 아름다웠다.
고증은 엉망진창이지만 현대인에게 익숙할 공간적 배경.
그리고 내 것이 아닌 듯한 몸을 보았을 때 여긴….
“맙소사.”
나 지금 환생트럭에 치여서 로판 세계에 빙의한 거야? 진짜로?
혹시나 꿈일까 싶어 팔을 꼬집어 보았다.
“아!”
엄청 아팠다.
멍하니 앉아 있던 나는 튀어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잠깐.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진짜 내가 환생트럭에 치였다면, 분명 마지막으로 읽고 있던 소설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내가 ‘누구’로 환생했냐는 건데.
‘설마 여주인공 다이아나는 아니겠지.’
난 다이아나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다이아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까이서 최애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것과 최애의 몸을 뺏는 건 완전 다른 얘기였으니까.
이윽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봤을 땐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아… 다행이다.”
내 앞에 서 있는 건 잿빛 머리에 청록색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였다.
나의 여신 다이아나는 찬란한 벚꽃색 머리칼에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니, 확실히 그녀는 아니었다.
“역시 내가 우리 다이아나일 리 없지. 다이아나 소중해.”
가슴을 쓸어내리던 것도 잠시, 내 머릿속에 의문이 차올랐다.
“근데 이건 누구지?”
갈색을 띠는 잿빛 머리, 투명한 청록색 눈동자, 따뜻한 온미녀인 다이아나와 달리 서늘한 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그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가만 보자, 묘하게 낯이 익단 말이지….”
‘나한테 익숙할 정도면 꽤 분량이 있는 인물이라는 건데.’
잿빛 머리, 청록색 눈동자, 서늘한 얼굴….
곰곰이 기억을 되짚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머릿속에 소설 속 구절이 스쳐 지나갔다.
「이안 클라우드는 황제가 제안한 알피어스 후작가의 청혼서를 받아들였다. 그의 부인이 될 사람은 ‘엘로이즈 알피어스’. 잿빛 머리에 청록색 눈동자를 가진, 후작가의 차녀였다.」
「계약이란 이름하에 맺어진 사랑 없는 결혼. 엘로이즈는 잿빛 머리 색만큼이나 버석하게 메마른 여자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안에게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상대였다.」
“…왓 더.”
그제야 생각난 이름에 거친 언사가 튀어나왔다.
설마….
“나 설마 그 인간이랑 결혼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