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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화 〉 124화­주사위는 던져졌다(4) (124/131)

〈 124화 〉 124화­주사위는 던져졌다(4)

* * *

윤희의 반응은 곧 기폭제가 되어 멤버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목소릴 냈다.

“그게 무슨 말이여?”

규원이는 금방이라도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모습을 한 채 나를 응시했다.

주현 누나는 왼손으로 입을 가린 채 숨을 삼키고 있었고, 지아 누나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편입한다고? 갑자기?”

“네…….”

고개를 끄덕거리자 지아 누나가 복잡한 얼굴을 했다.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긴데.”

“맞아!”

규원이가 곧장 동조했고, 주현 누나가 옆에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윤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맑은 눈망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흐릿해 보였다.

“어째서…….”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의문 부호.

“한영재.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 듣지 않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까.”

지아 누나가 평소답지 않게 한껏 내리깔린 목소리를 자아냈다. 그러면서 내게 강렬한 시선을 쏘고 있었다.

“…….”

털어놓아야 한다. 스터디드림의 창설부터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전말을.

언젠가는 마주했어야 할 일이었다. 매듭을 짓는 것 또한 나의 책임.

아무도 이야기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말을 꺼내길 차분히 기다려 주고 있었다.

“다, 얘기할게요.”

나는 한 호흡 쉬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스터디드림……. 스터디부의 부장을 맡은 건 약속 때문이었어요. 이사장님과의…….”

말꼬리를 흐린 채 윤희에게 눈길을 보냈다. 윤희가 입을 꾹 다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3월, 그러니까 새학기 직후에 이사장님이 나를 호출했어요.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비밀스럽게. 그때 부탁받은 거예요. 스터디부를 개설했으니 부장을 맡아달라고 말이죠.”

“그걸 바로 수락한 거야?”

지아 누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처음엔 거절했죠. 제 공부하기도 바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사장님이 그만한 조건을 걸었거든요.”

“그게 설마?”

“네. 한성고 편입이에요.”

지아 누나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아니, 지아 누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아래턱을 내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규원이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허벅지 위에 올린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왜 하필, 한성고야? 꼭 가야 돼?”

지아 누나가 간절한 눈빛을 쏘았다.

“우린 어쩌구!”

규원이도 합세했다.

“미안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요. 정말로 가고 싶은 학교니까.”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영재야. 아직, 아직 납득이 안 가. 받아들일 수 없어.”

머리를 세차게 젓는 지아 누나.

“안 돼! 너 없이 어떻게 공부를 해!”

“규원아 조용히.”

윤희가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손을 들고 규원이를 제지했다. 규원이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앙다물었다.

지아 누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짤막한 한숨을 토해낸 뒤, 날카로운 시선을 날렸다.

“다 얘기해 줘. 전부 다. 하나도 빠짐없이.”

나는 묵직한 어조로 알겠다고 답하고 나서 이야기를 재개했다.

“이사장님이 저에게 그런 제안을 한 이유는, 학교의 존페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공학 전환을 했는데도 입학생 수는 오히려 작년보다 적었거든요. 게다가 학력 수준도 몇 년째 꼴찌이고. 내년에도 입학생 수가 적으면 다른 학교에 통폐합 될 상황이었어요.”

혹시나 하고 윤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스터디부는…….”

윤희가 중얼거렸다.

“학력 수준을 올리기 위한 프로젝트였던 거야. 내가 부장으로 들어간 것도.”

“그랬구나…….”

윤희의 눈가에 그늘이 드리웠다.

“가능성이 없는 계획인 것 같은데.”

지아 누나의 일침이 들어왔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죠. 이 스터디부를 통해서.”

“그러니까 그거네. 그간 열심히 해온 일들이 전부 한성고 편입을 위한 거였다는 거지?”

“그건…….”

말문이 막혔다. 목구멍에 덩어리가 걸린 것처럼.

“대답해 줘.”

지아 누나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도저히 그 눈을 마주할 수가 없어서 눈을 내리깔았다.

윤희, 규원이, 지아 누나, 주현 누나.

모두 다 소중한 인연이다.

하지만 내 인생 목표를 이루는 일 또한 중요하다.

진심은 두 가지. 그러나 둘 다 챙겨갈 수는 없다. 결정해야만 했다.

나의 선택은, 인생 목표였다.

“네. 맞아요.”

어렵사리 답변을 입에 올렸다.

“…….”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가라앉아버렸다. 그렇게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이 수십 초간 이어졌다.

지아 누나가 한숨을 내쉬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언니?”

규원이의 부름에도 누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방의 지퍼를 잠갔다.

“오늘은 먼저 갈게.”

“어, 언니. 같이 가!”

부실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지아 누나를 따라 규원이도 부랴부랴 가방을 들고 부실을 나섰다.

남은 사람은 세 명뿐.

주현 누나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영재야…….”

나는 책상에 펼쳐놓은 문제집에 눈길을 고정했다.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성고……. 꼭, 가야, 해?”

“네.”

고개를 한 번 움직였다.

“왜, 왜?”

“저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그게 한성고 편입과 관련이 있는 거야?”

내내 침묵을 지키던 윤희의 물음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해.”

“그렇구나.”

윤희는 갑갑한 기색이 담긴 어조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사정 설명이라면 이미 최대한 했으니까.

“미안해…….”

“사과하지 마.”

고개를 젓는 기척이 느껴졌다. 뒤이어 윤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가방을 챙긴 뒤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스터디부를 떠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주현 누나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나. 오늘 부 활동은 여기까지 할게요.”

“으, 응.”

주현 누나가 그제야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너는, 안 가?”

“괜찮아요.”

“그……. 아, 알겠어. 난 갈게…….”

주현 누나가 손을 살짝 흔들고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나는 부실에 홀로 남겨졌다. 3월, 나밖에 부원이 없었던 그때처럼.

* * * *

그날 저녁에 나는 슬기와 저녁을 먹고 나서 현관으로 향했다.

“오빠 어디 가는데?”

“그냥. 산책 좀 하게.”

신발을 꿰어 신고 바깥으로 나왔다.

따로 목적지는 없었다. 하지만 내 발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놀이터로 향했다. 마침 아무도 없었는데, 나로서는 오히려 더 좋았다.

혼자 조용히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던 참이니까.

벤치에 걸터앉자 다소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입바람을 불었다.

솔직히 부원들에게 털어놓으면 조금은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내가 내린 결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막상 얘기하고 나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부원들이 내비친 반응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충격이 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다. 나의 인생 목표인 성공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니까.

한성고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초석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한성고 편입에 대한 사실도 밝힌 상황.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이 버스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후우.”

결심을 굳히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심란했다.

나는 머리칼을 세차게 문질러댔다.

그러다가 아직 형준이에게는 편입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역시 말하는 게 좋겠지? 내년이 되면 같은 학교에서 지낼 사이니까.

나는 형준이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형준아.”

[뭔데 그러냐?]

“혹시, 잠깐 시간되냐?”

[웬일이야? 네가 이 시간에 다 만나자고 하고.]

놀란 듯한 음색이 스피커를 통해 새어 나왔다. 그리고 형준이는 곧장 시원스레 말했다.

[그래. 마침 학원도 다 끝났으니까. 어디로 가면 되냐?]

“우리 자주 만나는 편의점에서 보자.”

[오키.]

통화를 마친 나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깥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더니 형준이가 나타났다.

“이 늦은 시간에 불러냈는데, 당연히 뭐라도 사주겠지?”

녀석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어! 지갑 안 들고 왔는데…….”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다음엔 꼭!”

힘주어 외쳤더니 형준이가 피식 웃었다.

“어휴. 됐어, 한두 번도 아니고.”

나는 형준이를 따라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의 선택은 졸지마 캔커피 두 개, 그리고 왈새우칩이었다.

우리는 바깥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 뒤 한가운데에 펼쳐놓은 과자를 집어 먹고 캔커피를 들이켰다.

“그래서, 뭔 일인데?”

과자를 집어 든 손으로 손짓하는 형준이.

“시덥 잖은 건 아니겠지?”

“나 내년에 한성고 간다.”

“…….”

형준이가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뭐라고?”

“한성고 간다고. 편입으로.”

분명한 목소리로 밝혔다. 형준이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어조.

“제일고에서 잘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굳이 오겠다고?”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잖아.”

“물론 그렇기야 한데…….”

형준이가 도중에 말을 끊고 신음성을 냈다.

“그나저나 어떻게 편입을 와? 우리 학교는 편입도 엄청 깐깐하게 보는데.”

“아, 그게 말야.”

나는 모든 전말을 얘기해 주었다. 얘기를 듣는 내내 형준이의 표정은 다채롭게 변했다.

동공이 확장되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가…….

“흠. 그랬단 말이지. 3월부터 이미 약속된 것이었다, 라…….”

형준이가 검지로 캔을 톡톡 두드렸다.

“잠깐만. 그러면 스터디부는 어떻게 되는데?”

“스터디부는 계속 남아있을 거야. 이사장님이 책상을 더 늘리겠다고 했으니까.”

“그렇구만.”

고개를 주억거리는 형준이.

“부장은 누가 하고?”

“그건 아직 생각 중이라서…….”

“얘기는 했어? 한성고에 편입한다고 말야.”

“응.”

머리를 한 번 끄덕였다.

“다들 뭐라고 하던데?”

“…….”

나는 시선을 내리깐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땠는지 대충은 알겠다.”

그러더니 내 어깨에 큼직한 손을 턱, 얹었다.

“근데 진짜 괜찮겠냐?”

“뭐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녀석은 내게 진지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스터디부 말야. 다들 너만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을 건데. 이대로 내버려 두고 떠날 거야?”

“…….”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형준이가 내 어깨에서 손을 치웠다.

“뭐, 제일 중요한 게 자기 앞가림이니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매정한 것 같다.”

“매정하긴.”

이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데.

“여튼 마무리나 잘해. 서로 아쉬움 없게 말이야.”

“응. 그래야지.”

나는 힘없는 어조로 답했다.

형준이에게 털어놓아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 * * *

다음날,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곁눈으로 윤희의 기색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이 시집을 탐독 중인 모습.

“윤희야.”

“왜?”

묘하게 냉랭한 어조였다. 게다가 눈길은 여전히 시집에 고정된 상태.

역시 어제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걸까.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중요한 거야.”

후우.

윤희가 바람 소리를 내더니 시집을 덮었다. 맑은 눈망울이 이쪽을 빤히 응시했다.

교실을 주욱 둘러보니 때마침 우리밖에 없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부실 열쇠를 내밀었다.

“이거, 받아.”

하지만 윤희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떠한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앞으론 네가 스터디드림을 이끌어 줬으면 해.”

“왜 나야?”

여전히 차갑게 들리는 목소리. 눈길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너 말곤 없다고 생각했어.”

어제 밤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다음 부장은 무조건 윤희가 해야 한다고.

윤희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이제…….”

나를 흘겨보는 윤희.

“이제 스터디부에는 안 올 작정이야?”

“이번 주까지만, 하려고…….”

“그렇구나.”

윤희가 한숨을 토해냈다. 오래 묵힌 듯한, 그런 한숨이었다.

그런 뒤 말없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나는 부실 열쇠를 건네주었다.

윤희는 그것을 치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금요일.

나는 스터디부를 완전히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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