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110화평행선을 맞닿게 하는 방법(3)
* * *
“가출, 이라구요?”
똑똑히 들었는데도 멍청하게 되묻고 말았다.
바다를 보기 위해 기숙 학원을 탈출했을 때조차도 남의 도움을 받았던 그 주현 선배가?
만약 민주 누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니까.
스피커 너머로 민주 누나의 침음이 들려왔다.
[아직 확정된 건 아냐.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거든. 단순히 학원만 빠진 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가출일 수도 있는 거고. 여태 주현이가 이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종잡을 수가 없네.]
그러면서 누나는 여름방학 때 있었던 사건을 제외하면, 이라고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너네들 탓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 걱정 말고.]
“네.”
반면 아주머니는 엄청 난리를 쳤다고 들었지.
“저, 아주머니는요?”
문득 생각이 나서 질문했다.
[울 엄마? 어휴, 말도 마. 진짜 집안 뒤엎을 판이야.]
때마침 노발대발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기에 내가 없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장난 아니네요.”
[그래서 나 지금 방에 피신해 있어. 이럴 때일수록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말야.]
나름 현명한 처사였다. 불 가까이에 있으면 불똥에 맞을 테니까.
하지만 아주머니는 민주 누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쾅, 하고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와 함께 아주머니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김민주! 놀러 다니지만 말고 빨리 가서 주현이 찾아 와! 오늘은 정말 곱게 못 넘어가겠어.]
이대로면 주현 선배 진짜로 큰일 나겠는데?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잠시 기다리자 다시 민주 누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렸어?]
“네. 똑똑히요.”
누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일단, 엄마 때문에라도 나가야 될 것 같아. 너는 지금 집이니?]
“아뇨. 그냥 밖에 있어요.”
[흐음. 그래? 너무 궁상떨지는 말고. 지금은 이래도 무언가 잘 풀릴 계기가 생길지도 몰라.]
“과연 그럴까요…….”
문득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젠가 엄마의 입을 통해 들었던 말.
“그리고 저 궁상떠는 성격 아니에요.”
[그래? 그럼 말고. 그나저나 혹시 주현이 찾는 것 좀 도와줄 수 있니?]
누나가 다소 조심스러운 어조로 부탁했다.
“물론이죠.”
힘주어 답했다. 나는 아직 주현 선배를 스터디부에서 떠나보내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주현 선배를 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고마워. 그러면 일단 우리 만나자.]
민주 누나가 합류 장소로 광장을 선택했다. 여기서 도보로 15분이면 가는 곳이다.
“네. 그럼 좀 있다 봬요.”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현 선배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끝내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짤막한 한숨을 흘린 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열심히 발로 뛰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발을 움직였다.
* * * *
광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한 번 더 주현 선배와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역시나 무응답.
나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을 때, 이 소식을 스터디부 멤버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단톡방에 들어가서 이 소식을 타전했고, 규원이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규원 : 허러러럴? 실화임??
이어 윤희와 지아 누나의 깨톡도 올라왔다.
윤희 : 갑자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지아 : 진짜루?? 주현이가??? 도저히 안믿기는데....
멤버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
나는 아직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엄지로 자판을 두드렸다.
나 : 지금 주현선배 언니랑 합류해서 찾으러다닐려고 해!!
나는 신호가 바뀌자 머리를 들고 발을 재게 움직였다.
횡단보도를 완전히 건넌 뒤에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니 지아 누나의 깨톡이 올라와 있었다.
지아 : 그럼 나도 갈께!! 사람이 많을수록 좋을거 아냐
나 : 늦은시간인데 괜찮겠어요???
지아 : 그게 무슨상관이야 친구가 가출했다는데, 어떠케 가만히있어
지아 누나는 평소에도 주현 선배와 관련된 일에 그 누구보다도 신경을 써왔다. 그런 누나의 마음 씀씀이를 알기 때문에 말만으로도 무척이나 든든했다.
규원 : 언니이~ 나도 감!!!
그러고 보니 지아 누나와 규원이는 서로 옆집이었지.
윤희 : 어디서 만날 거야?
윤희 역시 동참할 모양인 듯했다.
자기 일처럼 나서주는 멤버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해졌다.
나는 대화창에 장소를 공지했다. 지아 누나와 규원이는 10분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했고, 윤희는 두 사람보다 좀 더 걸린다고 채팅을 남겼다.
나 : 그럼 나는 주현선배 언니랑 먼저 만나서 기다리고잇을께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다리를 재게 놀렸다. 그로부터 5분 뒤에 광장에 도착했다.
입구 근처에서 민주 누나가 서성거리는 모습을 포착한 나는 지체없이 그리로 달려갔다.
“민주 누나!”
목청껏 부르자 누나가 나를 무척 반겨주었다.
“오, 영재야. 혹시 주현이한테 연락 온 거 있어?”
“여기 오는 동안 두 번 전화해 봤는데, 연결이 안 됐어요.”
고개를 가로젓자 누나가 실망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아, 누나. 스터디부 멤버들도 주현 선배 찾는 일을 거들겠대요.”
“또 주현 선배라고 하네?”
“앗. 이게 입에 붙어 있어서…….”
이놈의 방정 맞은 입! 나는 손으로 입술을 몇 대 때렸다.
민주 누나가 팔짱을 꼈다.
“그 애들은 언제 도착하는데?”
“대략 5분에서 10분만 더 기다리면…….”
“흠. 알았어.”
누나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스터디부 멤버들을 기다리면서, 주현 선배가 어디에 갔을지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놀이터, 노래방, PC방. 당구장, 재개발지구 등등…….
“어째 놀이터 말고는 주현 선, 누나가 갈 만한 장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어쩌면 술집 거리에 갔을 수도 있을 테고…….”
민주 누나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은 모양이다.
주현 선배가 갈 만한 곳이라……. 고민해 보아도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지아 누나와 규원이가 도착했다.
“영재야, 안녕!”
규원이가 기운찬 음성으로 인사했고, 지아 누나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때마침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온 민주 누나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
“쟤들이 네가 말한 스터디부 멤버야?”
“네.”
“흐음. 그렇구나.”
고개를 두세 번 주억거린 뒤 둘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는 민주 누나가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김민주라고 해. 주현이의 언니되는 사람이야.”
““안녕하세요오.””
두 사람은 넉살 좋게 인사한 뒤, 자신의 이름을 각각 소개했다.
잠시 후 윤희도 대열에 합류했고, 민주 누나와 서로 통성명을 했다.
민주 누나가 우리를 둘러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일단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된 인사는 다음에 할게. 다들 주현이를 찾는 일에 협력해 주었으면 해.”
가로등 아래에서 비치는 누나의 눈빛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민주 누나 못지않게 우리들 또한 주현 선배가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네.”
나의 대답에 나머지 멤버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었다.
“정말로 고마워.”
누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게 풀어졌다.
* * * *
우리는 찾으러 다닐 장소를 각각 배정했는데, 장소 배정은 우리 중 가장 연장자인 민주 누나의 몫이었다.
지아 누나는 당구장.
규원이는 PC방.
윤희는 카페
민주 누나는 노래방.
나는 놀이터 및 공원.
이렇게 배정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르르 몰려다니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 다른 하나는 구역으로 설정하면 헷갈리기 쉬울 거라는 점.
출발하기에 앞서 민주 누나가 우리에게 한 가지 당부했다.
“누구라도 주현이를 발견하면 바로 연락부터 해 줘. 알겠지?”
“언니. 그럼 번호 알려주세요.”
나는 민주 누나를 대신하여 답해주었다.
“그건 제가 가면서 깨톡에 올려둘게요.”
“음. 좋아.”
민주 누나의 목소리에서 만족스러운 기색이 묻어나왔다. 지아 누나를 비롯한 윤희와 규원이도 알겠다고 응답했다.
“그럼 얘들아. 나중에 보자!”
민주 누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린 뒤, 가장 먼저 대열을 이탈했다. 그것을 신호로 우리도 뿔뿔이 흩어졌다.
주현 선배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서.
나는 광장을 빠져나왔다.
우리 동네에 놀이터와 공원이 몇 군데 있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총 6군데였다. 전부 다 돌려면 바쁘게 움직여야겠구만.
나는 경보로 이동하면서 골목 사이사이를 살폈다.
맘 같아선 주현 선배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밤중에 주택가에서 고성방가로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
목청을 지를 수 없는 만큼 나는 발을 열심히 놀렸다.
첫 번째 목적지인 공원에 도착했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거라곤 고양이 몇 마리뿐.
두 번째로 향한 곳은 놀이터였는데,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어르신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 달려간 곳도 허탕.
이거 참…….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나 누가 찾은 건 아닐까 싶어 깨톡방을 둘러보았지만, 새로운 채팅이 한 건도 없었다.
스마트폰을 도로 집어넣고,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 남은 놀이터가 3곳이니까.
나는 지체 없이 다음 놀이터로 이동했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유독 인적이 뜸했다.
가로등에 엉겨 붙은 하루살이 떼들. 낡은 자동차들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골목.
내 키보다 높은 담벼락이 줄기차게 이어져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골목 전체에 울렸다.
과연 주현 선배가 이런 곳까지 왔을까?
주현 선배는 겁도 많고 소심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토록 인적이 드문 장소는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놀이터 입구로 들어섰다.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벤치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가로등 빛이 옅어서 얼른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상태로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제발 주현 선배이길!
속으로 강하게 외치며 다가가는데, 불현듯 그 사람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주현 선배?”
낮은 음성으로 부르자 주현 선배가 눈을 치뜨며 놀라움을 표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조심스러운 태도로 질문을 건넸더니 선배가 시선을 회피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나서 민주 누나와 스터디부 단톡방에 이 소식을 알렸다. 모두가 한시름 놓았다며 안심하는 반응을 보였다.
김민주 : 알앗어! 최대한 빨리갈게 주현이 쫌 잘봐줘!!
나 : 그럴게여!
스터디부 멤버들도 여기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는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주현 선배가 이쪽을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 야?”
묘하게 경계하는 듯한 어조였다.
“별 거 아녜요. 그냥, 선배 찾았다고 연락 넣은 거예요. 다들 선배 찾으러 다녔거든요.”
“누, 누가…….”
“저랑 윤희, 규원이, 지아 누나, 그리고…….”
주현 선배의 표정을 살피고 나서 말허리를 이어붙였다.
“민주 누나까지요.”
“음…….”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신음성.
불편하게 여기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내용이었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되려면 말이다.
주현 선배가 고개를 천천히 떨구었다.
“선배. 옆에 앉아도 될까요?”
선배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수긍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선배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막상 앉았더니 주현 선배가 슬쩍 거리를 벌렸다.
너무 조심성 없이 다가간 걸까.
‘아냐.’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무 신중하게 굴면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다.
때로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한 법.
“선배.”
불러도 주현 선배는 나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주현 선배는 신발 코로 애꿎은 바닥만 찧었다.
“가출, 인 거예요? 아니면, 학원만 빠진 거예요?”
“…….”
문득 민주 누나가 해준 충고가 뇌리를 스쳤다.
“저는 꼭 들었으면 해요.”
잠시 텀을 두었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선배, 아니 누나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그러자 주현 누나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