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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화 〉 109화­평행선을 맞닿게 하는 방법(2) (109/131)

〈 109화 〉 109화­평행선을 맞닿게 하는 방법(2)

* * *

그러나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의문점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런데 누나.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에요?”

질문을 던지자 민주 누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5시쯤엔가, 네가 나한테 전화했잖아. 갑자기 과외 교사 잘렸다면서.”

나는 머리를 세차게 움직이며 긍정했다.

“그때 내가 한참 친구들하고 수다 떨고 있던 중이었거든. 근데 곱씹을수록 신경이 쓰이는 거야. 그래서 좀 일찍 돌아왔거든.”

거기까지 말한 민주 누나가 형을 향해 가볍게 턱짓을 했다.

“딱 집에 들어왔는데 글쎄, 얘가 우리 집 식탁에 떡하니 앉아있는 거야. 맞은편에는 엄마가 있었고. 처음엔 뒷모습만 보여서 누군지 몰랐어. 그때 얘가 딱 이쪽을 돌아봤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얘가 누군지 알았어. 그런데 얘는 아는 척도 안 하더라고. 날 기억 못하는 건가 싶었지. 엄마는 또 주책맞게 맏이인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진짜 말 그대로 우연이었네요.”

조금 놀란 어조로 내뱉었다.

“그러게 말야. 세상 참 좁다니깐.”

민주 누나도 동감을 표했다.

“설명 다 한 거야?”

용진 형이 심드렁한 얼굴로 묻자 민주 누나가 형을 향해 눈을 흘겼다.

“아는 척도 안 하고. 나 그때 실망했어.”

그러자 용진 형이 민주 누나를 향해 상체를 돌렸다.

“아니, 왠지 아는 척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 아주머니께서 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셔서 말야.”

“뭐라고 하던데?”

민주 누나는 턱을 괸 채 용진 형을 향해 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며칠 전 민주 누나에게서 들은 과거 얘기를 되짚었다. 아마도 공부나 성적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은데…….

용진 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민주 누나가 갑갑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그랬겠지. 내 머리가 안 좋아서 공부를 잘 못했다느니, 공부를 그렇게 시켜도 성적에 안 올랐느니 뭐니 하면서 말야. 그리고 판사가 되어야 했을 애가 이상한 데로 빠졌네 뭐네 했을 거고. 맞지?”

“…….”

용진 형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머리만 끄덕거렸다.

내 예상이 들어 맞았구만.

“그 아줌마 참…….”

민주 누나가 어깨를 가볍게 들먹였다.

나와 용진 형은 그런 누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가 이미 오래 전에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영재야. 이렇게 된 거야.”

그러면서 누나가 엄지로 용진 형을 가리켰다. 이번엔 턱짓이 아니구만.

“얘가 상담 끝내고 집 나올 때 일부러 같이 나왔거든.”

“그러고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면서 강제로 끌고 오더라고. 과제 밀려서 시간도 없건만.”

다소 불만스럽다는 어조로 말하는 용진 형.

“문제 있어? 방카스 빨고 밤 새면 될 일을 갖고 호들갑은.”

“됐다. 말을 말자.”

용진 형이 백기를 들어 올렸다.

“저기, 누나. 대학생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니죠?”

“네가 가보면 알게 될 거야.”

민주 누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고, 용진 형이 옆에서 열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닐 거야. 대학생들이 다 그런 식으로 과제를 하지는 않을 거야.

혼자 생각에 골몰해 있는 와중에 민주 누나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너 무슨 이유로 과외하려는 거야?”

“그걸 이제 물어보냐?”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이는 용진 형을 향해 민주 누나는 태평스러운 투로 그렇다고 답했다.

“뻔하지 뭐. 용돈 필요하니까.”

“너 그간 용돈 받지 않았어?”

민주 누나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아니. 올해부터 끊겼어. 군대도 다녀왔으니 혼자서 벌어다 쓰라고 하시면서. 나도 그게 맞는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고.”

군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로군.

“오, 멋지네. 나는 신입생 때부터 용돈이고 뭐고 없었지만.”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핀 뒤 용진 형을 호출했다.

“저기, 형.”

“어, 그래. 너 기다리는 동안 민주한테서 대강 얘기는 들었어.”

“그래도 본인한테 듣는 게 더 좋을걸? 나는 진짜 말 그대로 대강만 알려준 것뿐이니까.”

옆에서 민주 누나가 거들어주었다. 지금 이보다 더 든든한 아군이 또 있을까.

“음. 그래. 듣고 보니 일리 있네. 한영재, 라고 했지?”

“네.”

“한 번 들어보자. 왜 과외 교사를 계속 해야 되는지.”

용진 형이 팔짱을 꼈다. 나는 사정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제일 고등학교의 스터디부의 부장을 맡고 있다는 것.

주현 선배가 갑작스레 스터디부를 나가게 된 일. 거기에는 아주머니가 관여했다는 점.

우리는 그런 주현 선배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섰다는 점.

위의 내용을 최대한 추려서 들려주었다. 사실상 설명이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까웠지만.

내 얘기를 묵묵히 듣던 용진 형이 팔짱을 풀었다.

“네 사정은 이해했어. 하지만 이 자리를 양보할 수는 없어.”

이렇게 나오면 곤란해지는데.

나는 테이블에 양손을 올린 채 간절한 목소리를 냈다.

“형. 이건 저희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에요.”

용진 형이 뒷머리를 긁적거리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사실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뭔데 그래?”

민주 누나가 턱짓과 함께 반문하자 용진 형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요즘 우리 집안 사정이 좋지 않거든. 자세하게 들려주기는 좀 그렇고……. 아무튼 등록금도 내가 벌어야 할 판이거든.”

“아…….”

민주 누나가 말을 잇지 못했다. 용진 형의 시선은 어느새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진짜로 다급해. 등록금이 없으면 휴학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니까.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네가 하려는 게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인지, 솔직히 와닿지 않아. 좀 미안한 말이긴 한데, 애들 소꿉놀이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

“…….”

형이 ‘소꿉놀이’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다소 불쾌감이 일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차마 지적할 수가 없었다. 용진 형에게도 그만한 사정이 있으니까.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등록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돈 문제는 인생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해, 나아가 사람 대우를 받기 위해 돈은 필요하다.

나는 이 사실을, 진리를 뼈저리게 경험해 왔다.

돈 문제 앞에서 내가 하려는 일은 당연히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잘린 사람을 다시 받아줄지도 의문이고. 김민주, 너희 어머니가 얘를 다시 받아줄 것 같아?”

“으음…….”

민주 누나가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 이대로 끝인 걸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뿐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밤새면서 과제하기는 싫거든.”

용진 형이 짤막한 인사말을 남긴 뒤 홀연히 떠나갔다.

교섭은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 * * *

스타박스를 나왔더니 시간이 벌써 밤9시를 넘겼다.

주현 선배는 지금쯤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겠지.

나와 민주 누나는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겼다.

“쟤한테 그런 사정이 생긴 줄은 미처 몰랐네…….”

“모를 수도 있는 거죠, 뭐.”

“그래도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단 말야.”

민주 누나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투로 내뱉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하지 말라고 쏘아붙일 수도 없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

나는 맞다고 하며 동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들어서 말을 보충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하니까 자책은 안 하셔도 돼요.”

“자책은 무슨! 그 정돈 아냐. 단지 좀 아쉽다고나 할까.”

누나가 눈을 치뜬 채로 턱밑을 매만지다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홱 틀었다.

“너 앞으로 어떡할래?”

“글쎄요.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르네요.”

답하면서 고개를 모로 저었다.

무료 과외 선생님 말고 다른 작전은 생각한 적도 없으니까.

옆에서 누나가 흘리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현이를 다시 돌아오게 만들 만한 방법이 안 떠오르네.”

“그쵸? 스터디부 멤버들끼리도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고 결론 내렸거든요.”

“푸훗.”

갑자기 누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긴 포인트가 있었던가?

“갑자기 호랑이굴이라고 하니까 그랬지. 근데 틀린 말은 아니긴 해.”

민주 누나가 누구를 대상으로 그렇게 말하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민주 누나. 혹시 주현 선배는 뭐라고 안 하던가요?”

“아예 방에서 안 나와서 모르겠어. 뭐 그래도 과외 선생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야. 밖에서 그렇게 소란을 떨었으니까.”

“그렇겠네요.”

지아 누나가 전화를 통해 알려주기도 했고.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각자의 집으로 헤어질 때가 되었다.

“그나저나, 너는 나에게는 누나라고 하면서 주현이한테는 안 하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에 찌르고 들어오는 지적에 순간 뜨끔하고 말았다.

“혹시 스터디부에 2학년이 주현이뿐이었어?”

“아뇨. 한 명 더 있어요.”

“걔는 어떻게 부르는데?”

“누나, 요…….”

대답을 들은 민주 누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주현이한테만……. 섭섭했겠는데?”

“아, 저는 그냥, 갑자기 그렇게 부르면 주현 선배가 싫어할 것 같아서요.”

“또 선배라고 그러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러자 누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좀 더 다가가려고 해봐. 티는 안 내도 내심 좋아할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말을 마친 누나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노력해 볼게요.”

우리는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천천히 발을 옮기면서 혀를 굴려보았다.

“주현, 누나.”

* * * *

나는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놀이터로 향했다.

막막한 심정이라서 조금이라도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러면 기분도 좀 나아지겠지.

늦은 시간이다 보니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벤치에 걸터앉은 채 스마트폰을 꺼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동안 수십 건의 깨톡이 와 있었다.

단톡방을 확인해 보니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들 나와 같은 심정이었네.

스크롤을 내리다가 문득 지아 누나에게 방금 전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그 생각을 곧장 실천에 옮겼다.

[아, 영재야! 어떻게 됐어?]

소식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나 보구만.

[과외쌤은 다시 할 수 있대?]

나는 아랫입술을 짓씹다가 짤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아쉽게도, 어렵게 됐어요…….”

[그럴 수가…….]

이어지는 지아 누나의 탄식.

나는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누나에게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끝내자 누나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흘러나왔다.

[참 어렵네…….]

말꼬리에서 한숨이 달라붙었다.

“저도 이젠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나 역시 한숨이 나오기는 매한가지였다.

[우선은 내일 대책 논의해 보자.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게 좋겠어요.”

[나 이제 공부하러 갈게. 너도 공부하고 있어?]

“아뇨. 갑갑해서 놀이터에 있어요. 바람이나 쐴 겸.”

[너는 이런 일 있을 때 오히려 공부로 푸는 성격 아니었나?]

“좀 있다가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만.”

[그럼 그렇지.]

우리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주고받았다. 개학식 날 화해한 덕에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이만 끊을게요, 누나. 공부를 방해하면 천하의 나쁜 놈이 되니까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통화 종료.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은 덕택인지 갑갑함이 조금은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슬슬 돌아가서 공부를 하자.

어차피 꽁해 있는다고 해결책이 나올 상황도 아니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윤희인가? 아니면 규원이인가?

확인해 보니 민주 누나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영재야! 너 혹시 주현이랑 만났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는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고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9시 40분. 주현 선배가 아직 학원 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

“아뇨.”

[그래? 이거 참…….]

누나가 난감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 있어요?”

[좀 전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거든. 주현이가 학원에 안 왔다면서.]

“네?”

놀라서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전화도 안 받고……. 아무래도 가출, 한 것 같아.]

“…….”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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