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106화과외사기단(4)
* * *
그날 밤, 나는 방에서 못 다한 개인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한참이나 문제집과 눈싸움을 벌이다가 잠깐 휴식을 취할 겸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벌써 새벽 한 시라니.
엄마와 슬기는 이미 거실에서 잠든 지 오래다.
나는 기지개를 크게 켜고 나서 스터디부 단톡방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기 올라온 지도 벌써 2시간 전이었다.
나는 의자를 옆으로 치우고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딱 5분만 이러고 있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불현듯 반나절 전에 겪은 장면이 떠올랐다.
‘선배는 진짜로 의사가 될 생각이에요?’
주현 선배를 학원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그렇게 물었다. 그때 선배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선배의 의지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는 한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응’, 이라고 답했지만.
주현 선배가 뜸을 들인 그 시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워낙에 자기 속내를 보이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여러모로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물러설 내가 아니지.
애초에 포기할 거였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스터디드림 멤버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야 한다.
“아직은 좀 더 지켜보는 걸로.”
천장의 누렇게 변한 물자국을 멍하니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슬슬 일어나야겠군.
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는데. 책상 앞에 앉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계속 학교집주현 선배네 집 사이클을 돌아서 그런 걸까.
큼지막한 하품이 터져나왔다..
원래 계획은 3시까지 공부하기였는데……. 오늘은 도저히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대충 책상 정리를 하고 난 다음 거실로 나갔다. 사방이 어둑한 와중에도 거실 이부자리에 누워 자는 엄마와 슬기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냉장고로 향했다. 냉수로 가볍게 목을 축인 뒤 슬기의 옆자리에 누웠다.
이 일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
그로부터 며칠간 과외 수업은 매일 두 시간씩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사실 과외라고 부를 만한 것은 거의 하지 않았다. 주현 선배는 수학의 기본기도 탄탄하고, 필수 영단어도 이미 다 외운 지 오래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르칠 일이 없었다. 간혹 수학 문제 풀이가 막히는 때에만 도움을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고마워…….”
풀이를 도와줄 때면 주현 선배는 항상 그렇게 감사 인사를 했다.
“당연한 거예요. 저는 지금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 거니까.”
손발이 사라질 것만 같은 닭살 멘트였는데도 주현 선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참 착한 사람이구만.
아주머니는 수시로 방에 들어왔다. 노크도 없이 기습적으로.
제대로 수업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려는 모양새였다.
한 번은 주현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선배는 노크 없이 방에 들어오는 거 싫지 않아요?”
“…….”
선배는 답변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침묵 그 자체가 답이 되기도 한다.
“……싫으신 거죠?”
다시 한 번 더 조심스레 물음표를 띄웠다.
“……응…….”
샤프를 잠깐 멈춘 채 응답해 주었다.
“얘기해 보는 건 어때요? 그런 게 불편하다고.”
사실 나도 아주머니의 그런 행동이 불편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주현 선배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말, 해도…… 안 들어, 줄, 거야.”
그렇게까지 단언해 버리니 이쪽에서도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검지로 다음 문제를 가리켰다.
“선배. 어서 풀어요.”
고개를 움직인 뒤 샤프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선배.
“오늘은 다음 회차까지 풀면 될 것 같아요.”
끄덕끄덕.
나는 턱을 괸 채 주현 선배의 문제 풀이를 계속 지켜보았다.
며칠 동안 주현 선배네 집을 들락거리면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아저씨는 항상 9시 이후에나 집에 돌아온다는 것. 때문에 나는 여태 아저씨와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아주머니는 오전에 카페 일을 한다는 것. 그래서 오후 3~4시 이후로는 항상 집에 있다.
또한 아주머니와 민주 누나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화의 끝은 언제나 둘 중 한쪽이 열불을 내거나 싸늘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입 다물고 관심을 끄는 수밖에.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민주 누나와 주현 선배의 사이도 데면데면하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걸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민주 누나는 주현 선배에게 비교적 살가운 것에 비해, 주현 선배는 냉랭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냉랭하고 싸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나는 주현 선배의 옆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속으로 한숨 지었다.
* * * *
금요일 오후. 모든 수업이 끝났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다. 즉 주현 선배네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
나와 윤희가 가방을 챙기던 중에 규원이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흐으. 영재야아.”
규원이가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그러는데?”
목만 돌려서 규원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 없으니까 스터디드림이 스터디드림 같지 않아아.”
규원이는 아쉬워죽겠다는 얼굴을 한 채 앓는 소릴 했다.
“아. 그건 나도 그래.”
돌아보니 윤희가 내게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치? 윤희 너도 공감하지?”
윤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희가 잘 이끌어 나가지 않나?”
나는 규원이에게 물었다.
“그렇기는 한데…….”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보는 규원이를 향해 윤희가 편하게 말하라고 일러주었다.
요새는 그래도 눈치라는 개념이 생겨나서 참 다행이구만.
“윤희도 잘 가르쳐 주니까 충분히 따라갈 만하거든. 근데 그냥 뭐랄까, 허전한 기분?”
“그렇구만.”
“와. 반응 썰렁한 것 좀 봐. 설마 이해 못 한 거야?”
규원이가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얘기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요지는 즉 내가 없어서 스터디부 같은 느낌이 안 난다는 것.
어느새 내 존재가 그렇게 커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내가 너냐. 그 정도도 이해 못 하게.”
“이런. 모를 줄 알았는데.”
윤희가 뒤에서 짤막한 웃음 소릴 냈다.
“근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거야. 그때까지만 참아 줘.”
“걱정하지 마. 너만큼은 못해도 최선을 다할 거니까.”
윤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주현이 언니 집은 어땠어?”
규원이는 이때다 싶어 그간 참아온 듯한 호기심을 표출했다.
나는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민감한 남의 가족사를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으니까.
그때 윤희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런 건 물어보지 말랬잖아.”
“그치만 궁금해서 못 참겠단 말야.”
다섯 살 어린애마냥 투정을 부리는 규원이를 보고는 윤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득 요 며칠 사이에 규원이가 이 화제에 대해 질문을 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나는 윤희를 바라보았다.
“너한테 물어보려고 하던 걸 계속 말리고 있었거든. 눈치껏 처신하라고 덧붙이면서. 사흘 간 잘 참았더니 오늘 결국 이렇게 됐네.”
“궁금한 걸 어떡해. 이건 본능이라구우.”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윤희 옆에서 규원이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투정했다.
뭐라도 한 마디하는 게 좋겠구만.
“음. 그냥 평범한 가정집이더라. 그런데 분위기가 좀 그래.”
“오? 예를 들면 어떻게?”
“이 이상은 얘기 못해.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너도 이해하지?”
마지막에는 타이르는 어조가 되었다. 규원이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는지 알겠다고 답했다.
“좋아. 그럼 난 슬슬 가봐야겠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윤희가 나를 불렀다.
“영재야.”
“왜?”
“그동안 계속 스터디부에 못 왔잖아. 우리, 주말에도 스터디부 활동하자. 마침 중간고사도 다가오고 있으니까. 지아 누나도 어제 찬성했어.”
옆에서 규원이가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중에 깨톡방에 시간 알려 줘.”
“그럴게.”
나는 두 사람과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섰다.
* * * *
정확히 저녁 7시 맞춰 주현 선배네 집에 도착했다.
“딱 맞춰 왔네.”
나를 맞이해준 이는 아주머니가 아닌 민주 누나였다.
“아주머니는요?”
“몰라. 어디를 갔는지. 내 알 바도 아니고.”
주현 선배의 방을 향해 눈을 돌렸다. 굳게 닫혀 있었다.
내 시선의 움직임을 알아챈 민주 누나가,
“아, 쟤 맨날 너 오기 전까지 공부하잖아.”
라고 답해 주었다.
“그리고 제가 와도 계속 공부를 하죠.”
“주현이 공부하는 거 어때?”
민주 누나가 거리를 한 발짝 좁혔다.
“잘하고 있어요. 제가 따로 옆에서 봐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렇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민주 누나.
“근데 나, 방금 전에 깨달았는데. 너 주현이보다 1살 어리잖아.”
고1이라고 밝힌 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이제야 눈치채다니…….
“네.”
“어떻게 주현이를 가르치려고?”
“사실 제가 영재거든요. 한영재. 한 영재해요.”
“농담 수준 처참하네.”
민주 누나의 헛웃음에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 지금껏 전교 1등을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어요.”
“오. 좀 하네? 나는 초등학교 때 전교 1등 몇 번 해본 게 전부인데.”
“그리고 스터디부를 하다보니 2학년 선배들을 가르쳐야 할 일도 생겨서 2학년 공부도 어느 정도 해놨어요.”
“독학으로?”
“그렇죠.”
민주 누나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호라.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걸.”
그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주현 선배가 문고리를 쥔 채 서 있었는데, 평소보다 차가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화장실 가게?”
“…….”
민주 누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주현 선배.
심지어 민주 누나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누나는 자주 겪는 일이었는지 어깨를 으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와요…….”
주현 선배는 민주 누나가 내 정체를 모른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존칭을 쓸 리가 없을 테니.
나는 민주 누나에게 인사한 뒤 주현 선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
과외가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방 밖으로 나와보니 거실이 썰렁했다. 민주 누나도 방에 틀어박힌 모양이로군.
나는 주현 선배와 함께 학원으로 향하기 위해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그러자 민주 누나가 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이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영재야. 나랑 잠깐 얘기 좀 나눌까?”
지금은 어렵겠다고 대답하려는 찰나에 주현 선배가 선수를 쳤다.
“나, 나랑 학원, 갈 거야…….”
“흐음. 그래? 알았어.”
민주 누나는 의외로 쉽게 물러났다.
그렇게 우리 둘은 바깥으로 나왔다. 8월 말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우리를 에워쌌다.
보도를 밟는 소리와 차도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음이 한데 뒤섞여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영재야…….”
한참 걸어가던 중에 주현 선배가 목소리를 냈다.
“네.”
나는 주현 선배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아, 아까, 언니랑, 무슨…… 얘기, 했어?”
줄곧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던 눈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선배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그러다가 제 얘기가 좀 나왔고요.”
“……어, 어떤?”
맥락상 나에 관해 어떤 얘기를 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무어라 얘기해야 좋을까.
머리를 긁적이다가 민주 누나에게 나이를 들켰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 대목에서 주현 선배가 눈을 치떴다.
처음 보는 반응이어서 나는 흠칫 놀랐다.
“그, 그럼…… 우리 사정, 도 전부?”
“어, 음……. 그렇게 됐어요.”
“으음…….”
주현 선배가 신음성을 흘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오늘따라 신선한 반응을 자꾸 보여주네.
어느덧 학원 건물 앞에 도착했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저기, 영재야…….”
“네.”
주현 선배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랫배에 모은 손가락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언니를, 너무, 믿지 마…….”
“왜, 그러는 거예요?”
조심스레 되물었더니 주현 선배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나쁜, 사람이거든.”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 튀어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