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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 105화­과외사기단(3) (105/131)

〈 105화 〉 105화­과외사기단(3)

* * *

“역시나. 현역 대딩의 눈은 못 속이지.”

민주 누나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 나는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얼굴에 철판 깔고 버텼어야 했는데…….

이제 진짜 큰일 났다. 만약 민주 누나가 아주머니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했다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테니까.

“저기 누나.”

“왜?”

묘하게 거들먹거리는 듯한 태도였다. 뭐, 나보다 연장자니까. 게다가 초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약점을 잡히고 말았으니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제 나이는 비밀로 해주세요. 제발요.”

나는 최대한 가엾은 표정을 지은 채 싹싹 빌었다.

“맨입으로?”

민주 누나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었다.

“시, 시키는 건 뭐든 다…….”

“어휴, 됐어. 그러지 마.”

민주 누나가 고개를 좌우로 털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걱정 붙들어 매. 내가 그 아줌마한테 일러바칠 일은 없을 테니.”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는데 덕분에 십년감수했다.

민주 누나가 나를 지그시 응시하며 머그잔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좀 궁금하네. 왜 나이를 속여 가면서까지 과외를 하려는 거지?”

“아, 그건…….”

“심지어 무료과외라면서? 이상한데.”

민주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정을 모르는 이상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차라리 용돈을 벌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겠거든. 근데 그것도 아니라니까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네.”

“아…….”

의미 없는 음절을 흘려보냈다.

“대체 이유가 뭘까?”

물음표를 내보내며 턱짓을 했다. 입을 좀 열어보라는 신호였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운을 뗐다.

“여기에는 좀 사정이 있거든요.”

“그래. 그 사정이 뭔지나 들어보자고. 물론 비밀로 해줄 테니까.”

민주 누나가 매끈한 다리를 꼬고 앉았다. 대학생은 확실히 고등학생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구나.

“어디 보니?”

“아! 아뇨.”

나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나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었군.

“저 근데, 진짜로 비밀로 해주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확인차 물었다.

“당연하지.”

즉시 긍정의 답변을 내놓는 누나.

솔직히 완전히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나이를 들킨 이상 숨기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섰다.

어쩌면 사정 설명을 통해 내 입장을 이해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게 여름방학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나는 입을 열고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내가 제일고등학교의 스터디부 부장을 맡고 있다는 점.

주현 선배 역시 부원으로 있었다는 점.

여름방학 때 바다에 놀러 갔다가 주현 선배를 기숙학원에서 무단 이탈하게 한 일.

“아. 그래서 그때 엄마가 히스테리 부리면서 기숙학원을 찾아갔구나. 무슨 일인가 했네.”

“네. 저희 때문에.”

면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후 주현 선배가 스터디부를 탈퇴한 일과 주현 선배를 다시 스터디부로 복귀시키려 하는 것까지.

“그래서 무료과외라…….”

민주 누나가 턱을 문질렀다.

“아이디어는 괜찮네.”

“제가 낸 아이디어는 아니지만요.”

나중에 윤희에게 알려줘야겠군. 아이디어로 칭찬받았다고.

“근데 어려울 걸? 그 아줌마가 진짜 똥고집이거든. 한 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영원히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그래도, 하려고요.”

“오호라.”

민주 누나가 낮은 톤으로 감탄했다.

“뭣하면 좀 도와줘?”

“괜찮아요. 저희끼리 해결해 보고자 나선 거니까. 누나도 이래저래 바쁠 거 아녜요?”

“방학이라 심심해 죽겠는데.”

민주 누나가 아메리카노를 후루룩 마셨다.

“아…….”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구만.

“됐어. 그냥 한 소리니까.”

“네.”

“그나저나 너 조심해야 할걸. 나한테 말한 것 중 하나라도 들켰다간…….”

누나가 내 기색을 살피더니 말꼬리를 덧붙였다.

“부엌칼 날아가는 수가 있어. 슉슉”

그러면서 칼을 던지는 시늉을 했고, 나는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아이 무슨. 그럴 리가 있겠니.”

누나가 깔깔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을 내비쳤다.

“근데 진짜 곱게 안 넘어갈 거야. 히스테리가 장난 아니거든. 그러니까 조심해.”

그 누구보다도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해주는 충고였기에 나는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럴게요.”

“비밀은 확실하게 지켜줄 테니까. 알았지.”

“고마워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우리는 음료를 다 마시고 나서 스타박스를 나왔다.

“열심히 해 봐. 그럼 먼저 간다.”

시원털털한 인사를 남긴 민주 누나가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버스가 도착했고, 자리에 앉자마자 스터디부 단톡방에 공지 사항을 적었다.

나 : 앞으로 주 5일 저녁 7시에 주현 선배네 집에서 과외하게 됐어!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풀렸다. 앞으로도 이렇게 잘 풀려나가면 좋을 텐데…….

나는 버스 천장을 향해 한숨을 내보냈다.

* * * *

다음날. HR시간 전의 교실은 언제나와 같이 활기가 넘쳤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1교시 과목 교과서를 꺼내 펼쳤다. 그러다가 문득 윤희에게 전해야 할 말이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윤희는 나와 마찬가지로 예습을 하고 있었다.

“윤희야.”

불렀더니 윤희가 손가락에 페이지를 걸친 채 슬쩍 목을 돌렸다.

“부실 열쇠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거라면 내가 중간고사 때까지 책임질게.”

역시 눈치 백단이구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도 그런데, 사실 다른 부탁도 하려고.”

“어떤 거?”

“별 건 아냐. 그냥 한동안만 스터디부의 대리 부장을 해줬으면 해.”

“아…….”

윤희가 입술을 약간 벌렸다. 다소 의외라는 듯한 반응.

“그럼 열쇠 관리자로 할래?”

“그건 좀 별로네. 차라리 대리 부장이 낫지.”

“고마워.”

그러자 윤희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뭘. 네가 앞으로 하게 될 수고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안심하라는 듯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윤희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 그래?”

윤희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는데,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

“갑자기? 뜬금없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덕분에 윤희도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1교시 쉬는 시간에는 규원이가 내게 다가왔다.

“영재야아. 그럼 이제 나는 네 가르침을 못 받는 거야? 이렇게 버림받은 거야?”

마치 주인에게 매달리는 강아지 같았다.

“어쩌겠어. 주현 선배를 데려오려면 감수해야지.”

“아아! 난 이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나. 하늘 아래 두 스승을 섬길 수는 없는 법인데!”

“시대극 너무 봤어, 너.”

윤희가 어이없어하며 대꾸했다.

“그치만, 나의 진정한 스승은 한영재느님뿐인 걸!”

“오버 좀 하지 마, 제발.”

보다 못한 나는 규원이의 팔뚝을 툭툭 쳤다. 그러자 규원이가 불만 섞인 눈빛을 보냈다.

“나는 이렇게나 아쉬워하는데, 네 양심의 가책은 어디로 간 거야?”

그걸 왜 여기서 찾는 거지?

“윤희야. 앞으로 규원이 시험공부 좀 봐주라.”

“그럴게.”

중책을 맡겨도 윤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도 내 스승은 영재뿐…….”

“오늘 9시까지 해볼까?”

윤희가 생긋 웃으며 발언하자 규원이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 아닙니다. 윤희 스승님.”

역시 잘 다루는구만.

나는 속으로 만족했다.

* * * *

점심시간에는 지아 누나가 우리 반 교실을 찾아왔다. 나는 지아 누나에게 어제 있었던 상황들에 대해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물론 민주 누나에게 모든 사실을 실토했다는 것은 숨겼지만.

오후 5시. 종례 시간.

“윤희야. 나 먼저 갈게.”

“잘 다녀 와.”

나는 윤희에게 손을 흔들고 교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다가 규원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너는 윤희가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걱정 붙들어 매라구.”

규원이가 옆구리에 손을 얹고 어깨를 폈다.

“그래. 열심히 해.”

나는 곧장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도연이가 뒤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난간을 쥔 채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이윽고 도연이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오늘은 스터디부 안 해?”

“아. 그게, 좀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못 가게 됐어.”

그러자 도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에? 설마 또 싸웠다거나?”

“아냐. 그런 일은 없어. 그냥 사정이 있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그래. 무슨 일 있나 보구나.”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걸 알아차렸는지 도연이가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웬일로 스터디부에 안 가길래 궁금해서 그랬어.”

그럴 만도 하지. 나와 윤희, 규원이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스터디부로 향했으니까.

“맞다. 오늘 교무실 들렀다가 우연히 들은 건데, 이번 중간고사 기간 때도 주말 학생 교사제 할 거라더라. 이번에도 할 거야?”

도연이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응. 가능해.”

주현 선배의 과외는 평일에만 하면 되니까.

그러자 도연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잘됐다! 애들이 무척 좋아할 거야.”

“열심히 해야겠네.”

“당연하지.”

도연이의 눈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는데 그 미소가 마치 나를 격려해주는 듯했다.

나는 도연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뒤 과외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계단을 부리나케 뛰어 내려갔다.

* * * *

정확히 7시에 주현 선배네 집에 도착했다.

“어서 와요.”

아주머니가 나를 무척 반겨주었다. 집 안을 둘러보니 민주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로군.

“딸애가 지금 공부하고 있거든요. 자, 이리로 오세요.”

아주머니가 굳게 닫혀 있는 방문으로 나를 안내했다.

……잠깐만. 이러면 주현 선배의 방을 구경하게 되는 거잖아?

그러나 이미 윤희의 방을 구경해 본 적 있으니 괜찮…… 기는 개뿔. 솔직히 조금 긴장되었다.

물론 그런 내 심정을 알 리 없는 아주머니는 노크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주현아. 오늘부터 널 도와줄 선생님이야. 인사드려.”

문제집에 눈을 고정하고 있던 주현 선배가 이쪽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선배의 눈이 일순간 커졌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구면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존댓말이 아닌 반말을 해야 되려나.

갈팡질팡하는 동안 주현 선배가 살짝 목례를 했다.

“아, 안녕?”

누가 봐도 어색한 손동작.

“…….”

주현 선배가 시선을 거두었다. 일부러 저러는 건지, 진짜로 어색해서 그런 건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의자 가져다드릴게요.”

아주머니가 부리나케 방을 나섰다.

나는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꾸며진 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마치 공부하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듯이.

주현 선배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네요.”

이제야 차분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응.”

주현 선배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 * * *

과외는 1시간 반 동안 이루어졌다. 주현 선배가 9시에 학원을 가기때문이었다.

아주머니는 거의 20분 간격으로 우리를 감시했다.

대단한 교육열이로군.

나는 우선 주현 선배를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기로 했다. 사실 말이 그렇지, 가르칠 게 없어서 옆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과외를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우리 주현이 학원까지 바래다주실 수 있나요?”

아주머니의 눈을 피해 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물론이죠.”

그리하여 나와 주현 선배는 학원 건물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주현 선배는 계속 침묵을 고수했다.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하지만 딱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선배.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끄덕끄덕.

주현 선배의 눈은 여전히 길바닥을 향해 살짝 내려가 있었다.

“스터디부 그만 둔 거, 순전히 아주머니가 시켜서 그랬던 건가요?”

“…….”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선배 본인의 의사는 하나도 반영 안 된 거예요?”

이번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갔다.

“아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어, 엄마가, 어울리지 말, 라고 했어……. 의사,가 돼야 하니까…….”

“선배는 진짜로 의사가 될 생각이에요?”

“으, 응.”

“그건, 선배의 의지인가요?”

나는 선배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선배는 여전히 내게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기다려도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

“……응.”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주현 선배가 다 왔다며 걸음을 멈추었다.

“조심해서 가요.”

“응.”

주현 선배가 고개를 한 번 움직인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대답. 정말로 본인의 의지일까.

나는 주현 선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기력이 쇠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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