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3화과외사기단(1)
* * *
“뭐, 뭘 하라고?”
혹시나 내 귀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네가 주현 선배의 과외 선생님을 하라고.”
윤희가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발음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윤희는 이런 엉뚱한 아이디어를 입에 담을 사람이 아닌데.
“잠깐만. 과외라고?”
지아 누나의 음성에도 당혹감이 배어있었다.
“오! 그거 기발한데?”
반면 규원이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음. 발상은 확실히 기발하긴 한데…….”
내가 아래턱을 문지르며 신음하자 윤희가 우리 모두를 향해 발언했다.
“그럼 다 같이 주현 선배네 집에 찾아갈 거야? 찾아가서 주현 선배를 스터디부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설득할 거야?”
거기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빈약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보았다.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주현 선배네 집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아무리 봐도 문전박대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는데?
그리고 다른 멤버들의 생각도 나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듯했다.
“저번에 주현이 엄마랑 우연히 만난 적이 있거든. 그때 영재도 같이 있었어. 기억 나지?”
지아 누나가 지난날 겪었던 일을 얘기하며 나에게 넌지시 눈길을 보냈다.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주현이 친구라며 인사드렸는데,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셨어. 그러니까 우리가 찾아가봤자 별 의미 없을 거야.”
“내 생각에도 그래요. 주현 선배랑 못 만나게 할 것 같아요.”
나는 지아 누나의 단언에 머리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그럼 주현 선배네 집에 단체로 찾아간다는 계획은 더더욱 실행할 수가 없겠네요.”
진지한 음성으로 말하는 윤희.
“그럼, 네가 말한 과외밖에 답이 없는 거야?”
규원이가 윤희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윤희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뒤, 자기 생각엔 그렇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혹시 이것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다면 얘기해 줘.”
윤희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가 신음만 흘릴 뿐, 이렇다 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주현 선배의 엄마를 설득하려면 당연히 거리를 줄여야 한다.
과외 선생을 하면 그 거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최소한 과외를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저기, 윤희야.”
“말해봐.”
윤희가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이쪽을 응시했다.
“내가 과외 선생역을 맡는 거라고 했지?”
“맞아.”
진짜 1도 망설이지 않네.
“내가 주현 선배보다 한 살 어린데 과외를 하러 왔다고 하면 받아줄까?”
“걱정할 만하지. 다른 건 더 없어?”
나는 좀 더 생각하고 나서 반론을 줄줄 읊었다.
“그리고 아무런 약속도 없이 불쑥 과외를 하러 찾아왔다고 하면 의심할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알고 왔냐고 추궁할지도 모르고.”
잠깐 말을 끊고 윤희의 표정을 살폈다. 내 반론에 대해 놀라거나 무안해하는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정도쯤은 다 생각해 둔 것처럼.
“그걸로 끝이야?”
“아냐. 하나 더 남았어. 가장 큰 문제는, 나를 과외 선생님처럼 보지 않을 거라는 점이야. 이렇게 키도 작고 몸집도 왜소한데 못 미더워 하지 않을까?”
말을 끝맺자마자 규원이가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이 올렸다.
“영재야. 못 생겼어도 자존심은 지키자.”
“나 자존심은 있어! 그냥 객관적인 현실을 얘기한 것뿐이라구.”
윤희는 무척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거기까지 다 생각해 뒀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
“윤희야. 위로 한 마디는 해 줘야지!”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혼자서 난리냐고.
나는 손을 들고서 규원이를 진정시켰다.
“워워. 진정해. 나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리고 그것보다 과외 선생 얘기가 더 중요하잖아.”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규원이가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아 누나는 소란스러운 와중에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연락이라도 온 건가.
윤희가 목청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영재 네가 지적한 문제점에 대해서 하나씩 답변할게. 첫 번째로, 네 나이를 사실대로 밝힐 생각은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간 당연히 안 받아줄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할 텐데…….”
나는 윤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 계획이 있어. 대책 없이 보내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
“그 계획이 뭔데?”
“그건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윤희의 눈매가 곱게 휘어졌다.
“으음…….”
“믿어 줘.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눈에 힘을 주고 말하니까 못 믿겠다고 하기 어려워졌다.
“그래. 믿어볼게.”
“마지막으로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옷이랑 신발을 준비할 거니까 걱정 말고.”
“오오? 사주는 거?”
규원이가 놀라워하자 윤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움직였다.
“아니,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집에 옷 많으니까.”
손사래를 쳐도 윤희는 물러나지 않았다.
“너에게만 모든 부담을 줄 수는 없잖아. 이건 어디까지나 주현 선배가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투자야. 투자.”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더 이상 말문을 열 수가 없었다.
애초에 옷을 살 만큼 용돈이 충분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무엇이든 대가 없이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론.
“솔직히 그냥 받기에는 마음이 좀 그래. 나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테니까.”
“왜애? 나 같으면 얼씨구나 하면서 받았을 텐데.”
그건 네가 철면피라서 가능한 거고.
“응. 당연히 그래야지.”
윤희가 부드러운 눈길을 보냈다.
“대가는 하나면 돼.”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윤희가 뜸을 들였다. 대체 뭘 원하길래 저러는 거야.
마른 침을 삼킬 무렵, 윤희가 입술을 떼었다.
“주현 선배를 반드시 돌아오게 하는 것. 이거면 충분해.”
“좋아. 꼭 그렇게 할게.”
나는 목에 힘주어 대답했다.
* * * *
그 뒤로도 대책 회의가 계속 이어졌다.
지아 누나는 스마트폰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과외 관련해서 네이바에 검색해 봤는데,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대. 그리고 계약서에서 학력을 조작하면 사기죄로 고발당할 수 있다고 하고.”
누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도 윤희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면에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띠었다.
“돈이 오간다면 문제가 돼요. 하지만 우리는 돈을 받지 않을 거예요. 무료 과외라는 명목으로 할 거니까요.”
“무료 과외여도 계약서는 필요하지 않아?”
지아 누나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모습이었다.
“돈이 걸리면 무조건 받는 게 원칙이지만, 무료 봉사 차원에서 하는 거라 문제되지 않을 거예요.”
“음. 그렇네. 돈 문제만 아니면야.”
지아 누나도 납득했다.
“제가 한때 무료 과외를 받아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어요.”
“어쩐지 잘 아는 것 같더라니.”
규원이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머리를 맞댄 채 회의를 한 덕분인지 앞으로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듯한 기분.
부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 30분이었다. 평소보다 30분 이른 시각.
“오빠 요샌 빨리 들어오네.”
슬기는 이부자리에 드러누운 채로 나를 맞이했다.
“방학이라고 너무 퍼져 있는 거 아냐?”
방으로 향하면서 가볍게 핀잔을 주었지만 슬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오빠아. 나 배고파. 밥 차려 줘.”
오히려 부려 먹으려고 하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럼 설거지는 네가 해.”
“응!”
가방을 책상 앞에 내려놓은 뒤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두부가 들어간 된장국과 콩나물 무침, 신김치였다.
슬기가 이부자리를 한쪽으로 대충 밀어 넣었다. 나는 그 자리에 밥상을 내려놓았다.
슬기는 수저를 들기가 무섭게 밥덩이를 와구와구 삼켰다.
“그렇게 배고팠으면 먼저 먹지 그랬어.”
“혼자 먹으면 맛없잖아.”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는 슬기를 보니 혼자 기다리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스터디부 활동을 하는 이상 빨리 귀가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안해. 오빠가 가끔씩 맛난 거 사 올게.”
“와아!”
슬기가 수저를 든 채 만세를 했다.
식사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슬기가 돌연 질문을 던졌다.
“근데 오빠. 지아 언니는 언제 온대?”
나는 순간 어깨를 흠칫 떨었다. 요 며칠 잠잠해서 그냥 넘어가는 줄 알았더니만.
“이번 학기 끝날 때까지는 못 올 거야. 이래저래 바쁜 시기니까.”
“그래도 언제 한 번 왔으면 좋겠는데.”
아쉬움을 토로하는 슬기.
“한 번 얘기해볼게.”
겉치레에 불과한 말이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슬슬 설거지해놔. 난 공부나 해야겠다.”
슬기에게 일러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에 앉자마자 문제집을 펼쳤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조만간 주현 선배의 과외 선생님을 하게 될 텐데, 내 공부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부실에서 챙겨 온 2학년 문제집을 꺼냈다. 그간 지아 누나의 공부를 봐준 경험 덕에 못할 건 없었다.
나는 몬아미 볼펜을 쥐고 공부를 시작했다.
* * * *
우리는 대책 회의가 끝난 지 이틀 만에야 스터디부에 모였다. 그리고 주현 선배가 탈퇴 의사를 밝힌 지도 사흘이 지난 때였다.
참고로 주현 선배의 탈퇴 신청서는 여전히 문제집들 사이에 꽂혀 있는 상태였다.
만약 주현 선배의 엄마가 강제로 그만두게 한 상황이라면, 우리마저 주현 선배를 저버릴 수는 없으니까.
다들 오랜만에 문제집을 펴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지아 누나는 언어 영역과 외로운 싸움을 벌였고, 규원이는 수학책을 펼쳐놓고 내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윤희는 영어 모의고사 문제집을 술술 풀었다. 그런데 책상 귀퉁이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에는 스마트폰을 꺼내놓지 않는데 왜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물어볼 거리가 있었다.
나는 부원들을 슥 둘러본 뒤 운을 뗐다.
“그나저나 어제는 다들 뭐 하느라 빠진 거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규원이에게 물었다.
참고로 어제는 멤버들 모두가 준비할 게 있다는 사유를 들며 부활동을 빠졌다. 그 준비라는 것이, 내가 과외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하려는 준비라는 건 진즉에 눈치챘다.
궁금한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인가 하는 점이다.
“어제 언니랑 같이 주현이 언니네 집에 전단지 붙여놓고 왔지.”
규원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무슨 전단지?”
“무료 과외 전단지. 그저께 집에 오자마자 바로 하나 만들었거든.”
이번에는 윤희가 답했다.
“그리고 셋이서 네가 어른스러워 보일 만한 옷도 골랐어.”
마지막은 지아 누나의 음성.
그만큼 모두가 주현 선배가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리라.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와중에, 윤희의 스마트폰이 요란한 소릴 냈다. 윤희가 번호를 확인하고 나서 통화 아이콘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그러더니 우리를 향해 검지손을 세웠다.
“아, 네. 어제 전단지 돌린 사람 맞습니다.”
윤희의 한 마디에 우리 셋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현 선배의 엄마가 미끼를 문 것이다!
나와 지아 누나, 규원이가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당장에라도 환호하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통화를 방해하면 안 되니 강제로 묵언 수행 중이지만.
윤희는 주현 선배의 엄마를 자연스럽게 상대했다. 교복만 아니었다면 상담원으로 착각할 것 같은 솜씨.
“네. 저희가 무료 과외를 원하시는 분들께 과외 선생님을 보내고 있어요. 과외비요? 아니에요. 저희는 무료 봉사 차원에서 하는 거라…….”
규원이가 귓속말을 했다.
“전화번호는 자기 걸로 했대.”
“그건 보면 알아.”
최대한 소리를 낮추고 응대했다.
윤희는 한 치의 막힘도 없이 설명을 풀어나갔다.
“네. 그럼 내일 당장 과외 선생님 한 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로 주소 남겨주세요.”
윤희가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작전 성공이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윤희가 한숨을 흘려보냈다.
“하아. 엄청 긴장했어.”
“윤희 짱!”
규원이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말 잘했어!”
지아 누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윤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계획대로 흘러갔네. 다행이다. 고생 많았어.”
나도 옆에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윤희가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
“이제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어. 옷은 내일 가져오면 되고.”
거기까지 말한 뒤 윤희가 고개를 틀고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제일 힘들 걸 시켜서 미안해.”
“아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거니까. 꼭 주현 선배를 데려올게.”
모두들 나에게 힘을 내라며 응원해 주었다.
다음날, 나는 멤버들이 준비한 옷을 갖춰 입고 주현 선배네 집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