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3화누구에게나 있는 그림자(3)
* * *
“갑자기?”
반문하자 윤희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도로변의 가로등에서 약간 비껴 서있는 위치였지만, 윤희의 맑은 눈망울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원래 갑작스럽지 않은 일은 잘 없잖아.”
“뭐, 그렇기는 한데…….”
돌이켜 보면 스터디부의 부장이 된 것부터가 참으로 갑작스러운 일이었지.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어디?”
“어디든.”
윤희가 앞서 걸으면서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대체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저러는 걸까.
나는 물음표를 한가득 품은 채 윤희의 뒤를 따라갔다.
* * * *
우리가 들어온 곳은 스타박스였다.
최근 들어 여길 자주 오는 것 같단 말이지.
주변을 둘러보니 자리가 반 이상 차 있었다. 대부분 노트북이나 책을 펴놓은 손님들이었다.
윤희가 막힘없는 걸음걸이로 카운터로 향했고, 나는 군말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윤희가 돌아서서 내게 무얼 마실지 물어보았다.
“밤에 커피 마시면 잠 안 올 텐데.”
밤에 커피가 필요한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지. 바로 시험 직전.
“커피 말고도 많잖아.”
“물론 그건 알지…….”
나는 메뉴판으로 눈길을 옮겼다.
사실 그보다는 윤희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는지가 더 궁금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할 정도의 이야기라면 아마도 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모양인데.
“오래 걸리는 거야?”
슬쩍 떠보기로 했다.
“그건 네가 하기에 따라 달렸어.”
모호한 대답.
나에게서 무언가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일단은 얌전히 음료를 주문하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지갑을 꺼냈다.
그러자 윤희가 동전 지갑을 열지 못하게 손으로 막았다.
“내 건 내가 사려는데 왜?”
윤희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데려왔으니까 이 정돈 괜찮아.”
“나 요새 용돈 올랐어.”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니 더 이상 강경하게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어떤 거 할래?”
“카라멜 마끼아또…….”
“아까는 잠 안 올 거 걱정하더니. 이제 아메리카노는 싫어?”
사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장 싸다는 이유만으로 마셔왔을 뿐이니까.
“오늘은 그다지 안 땡기네.”
“원래 안 좋아하면서.”
윤희의 입술이 슬그머니 호를 그렸다.
……역시 윤희의 눈썰미를 속이는 일은 쉽지 않군.
“먼저 자리 잡아. 주문하고 올게.”
“알았어.”
주변을 둘러보니 창가 쪽에 위치한 2인용 테이블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더니 잠시 후 윤희가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
윤희가 카라멜 마끼아또 잔을 내게 내밀고 나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잘 마실게.”
나는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나저나 윤희는 무얼 주문한 걸까?
잔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아, 난 카페라떼.”
“아하.”
윤희는 빨대를 무는 대신 얼음을 휘휘 저었다.
얼음 조각들이 컵과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
나는 한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컵을 응시하고 있던 윤희가 턱을 들었고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운을 떼자 윤희가 빨대를 돌리기를 멈추었다.
“영재야.”
나직하고도 묵직한 음성.
나는 들고 있던 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윤희의 입술이 조심스레 벌어졌다.
“너도 얘기해 줄래?”
“어떤 걸?”
윤희의 눈길은 단 한 순간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관찰하려는 것처럼.
“내가 그동안 너에게 털어놓았던 것처럼 말야.”
그 부연 설명 한 마디 덕에 윤희가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아챘다.
그동안 꽁꽁 감춰놓은 채 단 한 번도 드러낸 적 없는, 나의 그림자를.
“…….”
“…….”
침묵 속에서 시선이 대치했다.
“진짜로 갑작스럽네…….”
앞니 사이로 튀어 나간 혼잣말.
“말하기 어렵다면 안 해도 돼, 같은 소린 안 할 거야. 애초에 그럴 거였으면 여기까지 불러내지도 않았어.”
윤희가 강경한 의지를 내비쳤다.
슬쩍 말아 올린 입꼬리와 부드러운 말씨하고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너 방금, 내가 사준 커피 마셨으니까.”
나는 황당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평소의 윤희라면 절대로 이런 생색을 내지 않으니까.
“그건 좀, 치사한 방법 같은데.”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듣고 싶은 거야. 네 이야기를.”
윤희는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시선을 곧이곧대로 받아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약간 틀었다.
그렇게 정적이 이어졌고, 윤희는 가늘고 긴 한숨을 잇새로 내보냈다.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왜 갑자기, 듣고 싶어 하는 건데?”
“갑자기는 아냐.”
윤희가 빨대로 방아를 찧어대자 얼음들이 서로 부딪치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너를 보면서 생각했어. 왜 그렇게까지 공부에 열심인 걸까? 주변에서는 너를 공부벌레라고 하면서도 부러워하며 추켜세우고, 나도 그런 네가 부러워. 부러웠다, 고 해야 조금 더 정확하겠네. 한편으로는 꼭 부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거든.”
“……왜?”
“가끔 네 눈빛을 보면,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사람 같아서. 야망에 가득 찬 사람 같기도 하고.”
“맞아. 나는 한성대학교에 가는 게 목표야.”
윤희는 반문하는 대신 나의 뒷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한성대학교 같은 일류 대학을 진학해야 취업이 잘되니까.”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는 윤희.
하지만 예리한 눈빛만큼은 쉴 새 없이 내 얼굴 여기저기를 스캔하기에 바빴다.
미세한 흠집 하나라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켠 도자기공마냥.
“영재야. 우리 수박 겉핥기는 그만하자. 나 진짜로 진지하니까.”
나는 빨대를 물고 커피를 마셨다.
여기까지 와서 들려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신뢰를 깨는 일이 되겠지.
그러니까 나는 윤희에게 들려줄 수밖에 없는 처지인 셈이다.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셨어.”
윤희의 어깨가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미, 미안…….”
“아냐.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니까.”
나는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네가 나를 믿어주는 만큼 나도 널 믿으려는 거야.”
“진짜 미안해. 그런 줄은 미처 모르고…….”
갑자기 저자세로 나오니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들어갔나?
“정말로 괜찮으니까 걱정마.”
“……응.”
윤희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만 해도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어.”
“이번에는 믿기 어려운 얘기가 나오네.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내 진심을 이렇게 폄하하기야?”
“그건 아니지만, 지금의 너를 보면, 상상이 안 가서 그래.”
“믿기 어렵든 어떻든 이건 사실이야.”
미심쩍어할 만한 구석을 주지 않기 위해 단정적인 말투를 썼다.
윤희의 맑고 투명한 눈이 내 안면을 훑어보았다.
“알겠어. 믿을게.”
윤희가 팔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자연히 상체가 기울면서 나와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경청하겠다는 신호.
나는 목이 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카라멜 마끼아또를 빨대로 마셨다.
이제부터 꺼낼 이야기는 형준이 말고는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다.
그만큼 입을 열기가 버거웠다.
윤희의 시선은 그런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시간을 들여 마음을 다잡은 뒤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부모님들이 수업 참관하는 날이 있잖아. 그때 우리 엄마도 왔었는데, 아주머니들끼리 대화하다가 우리 집에 아빠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 거지. 그리고 그걸 어떤 애가 들었고.”
“…….”
“받아쓰기는 항상 0점에, 쪽지 시험 문제도 대부분 틀리는 애, 체격도 왜소하고 운동도 제대로 못하는 애, 꼬질꼬질하게 입고 다니는 애. 나 그때 그런 애였어.”
내뱉고 나니 참 쓰디쓴 기분이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이제는 무덤덤할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트라우마였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왕따…….”
윤희의 입술 밖으로 뛰쳐나온 단어에,
“역시나. 바로 맞춰 버리네.”
곧바로 수긍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네 모습을 보면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겠어.”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그림자가 있는 법이잖아.”
“그렇지.”
윤희가 짤막하게 답하고 나서 빨대를 가볍게 물었다.
“일전에 내가 얘기한 거 기억나?”
윤희가 눈을 한 번 깜빡이더니 빨대를 뱉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 얘기.”
“아. 규원이가 한창 말썽부릴 때였구나. 기억하고 있어.”
“내가 그때 규원이를 믿는다고 말한 이유는, 나 자신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야. 엄마가 나를 믿어준 덕분이었어.”
“그랬구나.”
나는 다시 원래 하던 얘기로 궤도를 옮겼다.
“애들한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대들기도 여러 번 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주먹이나 발길질, 욕설이었어. 아빠도 없는 게 까부냐는 말도 들었고.”
“너무해.”
윤희가 아랫입술을 깨문 채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공감해 주고 화내는 모습을 보니 얘기하는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루는 참다못해 엄마한테 털어놓았어. 그랬더니 엄마가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더라고. 그때 펑펑 우는 나한테 엄마가 이렇게 얘기해 준 거야.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생기면 애들이 더 이상 날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그날 이후로 이 악물고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한 거야.”
말을 잠깐 끊고 음료를 들이켰다.
그나저나 주변에 떠드는 손님이 없다는 사실이 왠지 기묘했다. 낮이었다면 분명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을 텐데 말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고요한 분위기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 곧바로 좋은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고. 3학년 내내 반에서 20등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거든. 그렇지만 4학년이 되니까 10등 중반대까지 올라왔어. 이때부터 시험을 치를 때마다 성적이 오르는 거야. 5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는 기어이 전교 1등을 찍었고.”
“진짜로 노력했구나.”
“그만큼 필사적이었거든. 그렇게 1등을 하고 나니까 왕따를 주도하던 애들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어. 엄마 말대로, 무언가 하나 잘하는 게 생기니까 나를 얕잡아보지 않게 된 거야. 또 1등을 한 번 맛보고 나니까 다음에도 1등을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
윤희가 가볍게 손뼉을 한 번 쳤다.
“진짜 대단해. 나는 그저 엮이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려고 애쓰는 것밖에 안 했거든.”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택했지만, 그게 무조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한 경험이 나에게는 답이 될지 몰라도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일반화의 오류는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왕따 동지네.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렇네.”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에 윤희가 옅게 웃었다.
“……왠지 네가 웃으니까 더 슬퍼진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음료 컵을 들어 올렸다.
얼음이 녹은 탓인지 아까보다 맛이 연했다.
윤희가 빨대를 놓고 나를 응시했다.
“고마워. 얘기해 줘서.”
* * * *
우리는 스타박스를 나왔다.
“바래다줄까?”
“아냐. 혼자 가도 괜찮아.”
“혹시 모르잖아.”
“걱정 안 해도 돼. 버스 타고 가면 금방이니까.”
“그렇구나.”
윤희가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럼 내일 봐.”
“응. 잘 가.”
나도 손을 들고 화답했다. 그런 뒤 돌아서서 집까지 40분 동안 걸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더니 슬기가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어휴, 또 배 드러내고 자는구만.
이불로 배를 덮어주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깨톡 알림음이 울렸다.
지아 누나가 보낸 깨톡이었다.
지아 : 잘 들어갔어?
조금 전까지 윤희와 얘기를 하다가 들어왔다고 타이핑 하다가 지우기 버튼을 눌렀다.
나 : 그럼요 푹쉬고 있어요 ㅎㅎ
지아 : 사실 좀 걱정했거등 내가 갑자기 그런얘길 꺼내서 분위기를 망친게 아니었나하고 말야..
나 : 그런식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을 거에요 너무 염려치 마세요!!
느낌표 옆에 파이팅을 외치는 이모티콘도 함께 적었다.
그러자 지아 누나가 ‘Thank you' 문구가 적힌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누나의 성격답게 귀여운 이모티콘이었다.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액정을 바라본 뒤 방으로 들어갔다.
나 : ㅎㅎㅎ그럼 전 이만 공부할게요~ 누나도 열공!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나는 오늘 윤희에게 꽁꽁 감춰왔던 그림자를 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림자에서 빙산의 일각만큼은 보여주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존재하듯이 나에게도 그런 영역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심윤희. 너라면, 분명히 이해해 주리라 믿어.
그렇게 생각하며 기나긴 한숨을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