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79화방학에는 조금 색다른 자극을!(2)
* * *
엄마가 스마트폰 얘기를 꺼낸 지 이틀이 지났다. 모처럼 엄마는 휴일을 얻었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나들이를 즐겼다.
그리고 그날 오후, 통신사에 들러서 저가형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마음에 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기쁨을 표출했다.
솔직히 말해, 한때는 스마트폰에 별 욕심이 없었다.
무엇을 하든 공부가 최우선이었고, 스마트폰은 공부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여겨왔다. 우리 집 형편에 맞지 않다는 생각도 했고.
하지만 스터디부원들과 어울리면서, 반 친구들과 지내면서 조금씩 인식이 바뀌었다.
그렇다고 해도 스마트폰을 계속 신포도처럼 여겨왔지만.
“그럼 다행이네.”
“엄마. 진짜로 잘 쓸게!”
우렁찬 목소리로 응답했다.
“오빠 진짜 부럽다…….”
슬기가 부러움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다음에 하나 장만해줄게.”
엄마가 슬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고, 슬기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이백에 넣어둔 포장 상자를 꺼냈다.
상자 겉면에 적혀 있는 회사 로고와 제품명을 몇 번이고 읽으며 나는 참을 수 없는 기쁨을 만끽했다.
* * * *
다음 날, 나는 3년 넘게 쓴 휴대폰 말고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을 챙긴 채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가는 이유는 스터디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주머니에 넣어놓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새까만 화면을 거울 삼아 얼굴을 요모조모 살폈다.
작은 눈과 입. 촌스러운 금테 안경.
스스로가 봐도 참 못 생겼구만.
그래도 스마트폰은 반짝반짝하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내가 향한 곳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40분 넘게 걸어갔다간 엄마 말대로 일사병에 걸려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학교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히 버스 안에 빈자리가 많았다.
게다가 에어컨도 빵빵하게 켜놓아서 시원했다.
이만하면 나름 괜찮은 피서지구만.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켰다. 참고로 어젯밤에 필수 앱은 모조리 다 설치해 놓았다.
형준이의 스마트폰을 몇 번 만져본 경험이 있었던 덕에 별로 헤매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윤희에게 따로 깨톡을 보내서 스터디부 깨톡방에도 초대되었고.
나는 스터디부 톡방에 들어가서 인사말을 남겼다.
나 : 하이루~ 다들 스터디부 오고 있지?
인사말로 하이루, 는 별로였나?
살짝 후회감이 밀려드는 찰나에 규원이가 답신을 보냈다.
규원 : ㅋㅋㅋㅋㅋㅋㅋ하이루 무엇?
덩달아 지아 누나와 윤희도 답장을 보냈다.
지아 누나 : 허러럴~ 언제적 사람이니??
윤희 : ㅎ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비웃는 거 아닌가.
나는 살짝 토라진 표정이 들어간 이모티콘을 올렸다.
규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아 누나 : 아 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뭘 하든 놀리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뒤이어 윤희의 메시지도 업데이트되었다.
윤희 : 요즘은 그런 이모티콘 잘 안 써.
여기서마저도 마침표를 철저하게 지키는 너는 정말…….
나는 구태여 지적해 보기로 했다.
나 : 마침표 찍는 버릇은 여전하네
윤희 : 그 정도는 기본이지.
규원 : 윤희 톡은 항상 딱딱하더랑 딱따구리인줄~
지아 누나 : 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처럼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지적을 당한 당사자인 윤희는 말줄임표밖에 적지 못했다.
왜 스마트폰 중독이 생기는지 알 것 같았다. 대화를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재미있으니…….
쉴 새 없이 깨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앞에 펼쳐진 경사로를 한 번 올려다보고 나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스터디드림 부실에 도착했을 쯤에는 이마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1등이로군.
부장으로서의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하자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나는 부실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문제집을 펼쳤다. 공부를 하는 동안 윤희, 규원이, 지아 누나가 거의 동시에 부실로 들어왔다.
“항상 먼저 와 있네. 역시 부장님 아니랄까봐.”
지아 누나가 반색하며 말했다.
“다 같이 왔네요?”
“집이 가까워서 말야.”
의문을 풀어주는 윤희.
규원이는 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영재야! 스마트폰 좀 구경하자!”
“너 막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아니거든! 적어도 남의 폰 갖고 그러지는 않는다구.”
규원이가 실제로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는 순순히 스마트폰을 넘겨주었다.
“이제 이 폰은 제 것입니다.”
입으로 스윽, 하고 효과음을 내며 주머니로 가져가는 시늉을 하는 규원이.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장난이라서 좀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버릇을 한 번 고쳐줄 필요가 있겠구만.
나는 규원이의 어깨에 턱 손을 얹었다.
“흠집 하나라도 나 봐. 피 보는 수가 있어.”
느와르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저음으로 겁박하자 규원이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에, 에이. 내가 지지, 진짜로 가져갈 것, 같아?”
규원이가 다시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는데, 손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이 정도로 잘 먹힐 줄은 몰랐는데.
나는 스마트폰을 낚아채듯이 가져왔다.
“방금 박력 있었어.”
지아 누나가 감탄을 표했다.
“연기로 친다면 10점이었어요.”
윤희의 태도는 마치 심사위원 같았다.
지아 누나가 자못 흥미가 돋는다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몇 점 만점에?”
“100점 만점에 10점요.”
“너무 야박한 거 아냐?”
나는 윤희를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 윤희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나름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뿐이야.”
“그보다 나는 평가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아, 음. 그렇긴 하지……. 그냥, 뭐든 한 마디 하고 싶었던 거야.”
무안했는지 윤희가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난 윤희가 뭐라고 하든 맘에 들었어. 굿잡.”
지아 누나가 생글생글 웃는 상으로 엄지를 세웠다.
“순간 쫄았어…….”
기어들어가는 음성을 내는 규원이를 보며 생각했다. 다음에도 이상한 짓을 하면 써먹어야겠다고.
“그보다 우리 슬슬 공부해야죠.”
지아 누나를 바라보며 목소릴 내었다.
“으이구, 공부벌레. 알았어.”
누나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문제집 한 권을 꺼냈다. 윤희와 규원이도 각자 공부할 책을 꺼내서 펼쳤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스터디부 활동을 시작했다.
* * * *
점심때가 되자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막도날드로 향했다.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카운터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
“으악. 바글바글해.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 거야.”
규원이가 질색하며 표정을 구겼다.
“밥시간이니까 이 정돈 감수해야지.”
지아 누나가 옆에서 규원이를 달래는 사이 나는 윤희에게 눈길을 던졌다.
“메뉴는 뭘로 할 거야?”
“난 무난한 걸로 하려고.”
윤희가 메뉴판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려보니 막도날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버거 세트였다.
가격도 나쁘지 않고.
“그럼 나도 저거 해야겠다.”
“아예 통일할까? 괜히 다른 거 시키면 나오는데 시간 더 걸릴 것 같은데.”
제안을 꺼낸 지아 누나가 규원이의 의사도 물어보았다.
“응! 난 상관없어. 햄버거는 뭐든 다 잘 먹으니까.”
“규원아. 너 싫어하는 음식 없지?”
나의 질문에 규원이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음…….”
규원이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역무침이랑 인삼이랑 알약이랑 또…….”
“약은 음식이 아니잖아.”
윤희가 가볍게 웃었다.
“아, 그런가?”
규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어느덧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똑같은 버거 세트 4개를 시킨 뒤 지아 누나가 한꺼번에 결제를 했다.
우리는 옆으로 나와서 지아 누나에게 각자 현금을 건넸다.
“아! 우리 그거 하자. 가위바위보.”
“갑자기 그건 왜?”
내가 의아함을 드러내자 규원이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뭘 걸고?”
옆에서 윤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규원이가 검지를 까딱거렸다.
“쯧쯧. 너네 둘은 아직 멀었구나. 당연히 트레이 옮길 사람을 정하는 거지! 다 먹고 치우는 일까지 포함해서.”
“그럼 세트가 4개니까 두 명을 정해야겠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지아 누나가 조건을 추가했다. 그런 뒤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그거 알아? 이런 내기는 항상 먼저 제안한 사람이 져.”
“후후, 언니. 걱정 마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데.”
진짠가?
고개를 돌리자 불현 듯 윤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윤희 역시도 긴가민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할 거야, 말 거야?”
우리 셋은 규원이에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원형으로 모인 우리.
교차하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반드시 상대를 밟아 죽이고 말겠다는 호승심에 불타는 눈빛에 가까웠다.
“가위, 바위.”
규원이의 구령에 맞춰 일제히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보!”
우리는 동시에 손을 내렸다. 결과는 나와 지아 누나의 승리.
“허얼. 이럴 수가…….”
규원이는 자신의 주먹을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았다.
“규원아. 내 생각엔 말야, 넌 별로 운이 없는 것 같아.”
윤희가 덤덤하게 사실을 고했다.
지아 누나는 승자의 여유를 부리며 규원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뭐랬어. 이런 내기는 먼저 말한 사람이 진다고 했잖아.”
“큭!”
비통함에 들어찬 얼굴. 왠지 그 모습이 웃겨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주문한 버거 세트가 나왔다.
나와 지아 누나가 먼저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윤희와 규원이가 트레이를 들고 올라왔다.
우리는 따끈한 버거와 바삭한 감자튀김을 우물거리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최근에 화제가 된 어떤 감독의 영화를 봤는데, 무척 심오하고 주제 의식이 깊어서 좋았다며 평론을 하는 윤희.
지아 누나는 일주일 후에 4박 5일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난다며 무척 기대감을 드러냈다.
“어디 가는데요?”
폭발하는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 물었더니,
“베트남!”
지아 누나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대답했다.
“베트남 괜찮죠.”
“와, 부럽다아.”
윤희는 이미 가봤다는 말투였고, 규원이는 지아 누나를 부러워했다.
“사진 많이 찍어서 올게. 기대해.”
지아 누나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규원이는 친구와 PC방에 가서 배탈그라운드를 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본인의 활약으로 1등을 연달아 세 번이나 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확실히 게임 쪽으로는 소질이 있나 보구만.
“배탈, 그라운드?”
윤희는 게임 쪽으로는 아예 젬병인 모양이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우는 일 또한 윤희와 규원이의 담당이었다.
나와 지아 누나는 유유히 계단을 내려갔다.
“주현이는 거기서 공부 잘하고 있겠지?”
“주현 선배니까 엄청 열심히 할 거예요.”
“음, 그렇겠지. 그래도 역시 좀 걱정이 되니까…….”
지아 누나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영재야. 깨톡 한 번 보내 봐. 스마트폰 새로 생긴 기념으로.”
“오. 그거 좋네요.”
나는 지아 누나의 말대로 주현 선배에게 개인톡을 남겼다.
나 : 선배~ 잘 지내고 있죠?
그런 뒤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 * * *
부실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오후 3시를 넘겼을 쯤, 지아 누나와 규원이가 오늘은 약속이 있다면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오늘 둘이서 놀기로 했어요?”
의문을 표하자 누나가 도리질을 했다.
“아냐. 나는 따로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오랜만에 시간이 난다고 하셨거든.”
“아. 그 선생님?”
규원이가 알은 척하자 지아 누나가 그렇다고 답했다.
……혹시 발레 쪽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아는 정보가 거의 없는 탓에 두루뭉술한 추측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규원아 너는?”
“난 오늘 PC방에서 친구들 보기로 했걸랑.”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 짓는 규원이.
“PC방 자주 가나 보네. 나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뭐? 진짜 한 번도 안 가봤어?”
규원이가 윤희에게 반문했다.
“응. 갈 일이 없었으니까…….”
마음을 짠하게 울리는 대사였다.
“다음에 같이 가자!”
규원이가 다짜고짜 윤희의 손을 잡았다.
“나, 게임은 잘 모르는데.”
“분위기라도 한 번 느껴보라는 거지.”
“음, 그러면 그렇게 할까?”
다소 모호한 대답이었지만 규원이에게는 그걸로도 충분한 모양이었다.
“좋지! 다음에 날 잡고 한 번 가보자.”
“응.”
윤희가 고개를 한 번 움직였다.
“아 맞아!”
규원이가 자신의 이마를 때렸다.
“도연이도 배탈그라운드 잘 해.”
“리얼?”
도연이에게 그런 일면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앗, 시간 늦겠다. 우린 이만 가볼게. 잘 있어.”
지아 누나가 손을 흔들자 옆에서 규원이도 작별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부실을 떠나고 나니 나와 윤희만 남게 되었다.
“우리 둘만 남았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은 몇 시까지 할 거야?”
“음…….”
나는 펜을 멈추고 턱을 괴었다. 슬쩍 눈만 굴려서 벽시계를 확인했다.
“좀 일찍 끝낼까? 5시 반.”
“5시는 안 돼?”
“쉬고 싶어서?”
나는 윤희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냥. 방학이니까 여유도 부리고 싶어서.”
“그럼 5시에 문 닫자.”
내가 흔쾌히 의견을 수용하자 윤희가 밝게 웃었다.
다시 공부를 재개하려는데, 윤희가 말을 꺼냈다.
“이번 주 주말에 연극 관람하러 갈래?”
그것은 매우 뜻밖의 제안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