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7화 〉 77화­여름방학에는 (77/131)

〈 77화 〉 77화­여름방학에는

* * *

7월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호출했다.

“이사장님께서 너 찾으신다.”

“네.”

나는 그길로 이사장실로 향했다. 이사장님은 우리 학교의 학업 성취도가 저번보다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무래도 학생 교사 활동이 예상보다도 좋은 성과를 낸 것 같구나.”

“다 애들이 잘 따라와 준 덕이에요.”

나는 공로를 모두에게 돌리고 나서 믹스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포상으로 걸었던 문화상품권은 다음 주중으로 담임선생을 통해서 받게 될 게야.”

만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문화상품권 3만원이면 미래책방에서 문제집 대여섯 권은 살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나는 우렁찬 목소리를 내며 머리를 꾸벅 숙였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이쪽이지.”

이사장님은 나를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았다. 왠지 부담스러워서 종이컵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그런가요?”

“그럼.”

나는 쑥스러움을 느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후로 나는 이사장님과 함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를 나누었다. 이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떴다.

막막한 줄로만 알았던 상황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종업식이 우리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 * * *

“전달 사항은 이걸로 끝! 질문 있는 사람?”

교탁을 짚고 선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둘러보으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콧숨을 내뱉더니 출석부로 교탁을 탕탕 두드렸다.

“그럼 종업식을 마치도록 한다. 모두들 여름 방학 잘 보내도록!”

담임선생님이 출석부를 흔들고 나서 교실을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참아왔던 함성을 내질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니까 그럴 만하지.

나도 들뜨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봤자 책상머리 앞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테지만.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날씨 한 번 참 좋구만.

“오늘 스터디부 갈 거야?”

옆에서 윤희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교과서를 욱여넣어서 빵빵해진 가방을 챙기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윤희의 가방도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공부하고 싶은가 봐?”

짓궂게 받아치자 윤희가 고민에 빠진 눈을 했다.

진짜로 하고 싶은 건가. 나야 무조건 환영이긴 한데.

“그보다는, 의논해야 될 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규원이가 가방을 든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흐어어. 팔 빠질 거 같아.”

마룻바닥에 보란 듯이 가방을 내려놓자 쿵, 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너도 다 들고 가는구나. 장하다.”

“방학 숙제도 있고, 공부도 해야 하니까 당연하지!”

내가 치켜세워 준 덕일까, 규원이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규원아. 공부는 어디서 하려고 그래?”

윤희가 불쑥 질문을 내던졌다.

“응? 그야 당연히……. 어디서 하지?”

“당연히 집에서 해야지.”

내가 정론을 펼쳤더니 규원이가 슬며시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방에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돼. 책상에는 컴퓨터가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확실히 그런 환경이면 집중이 안 될 만하군.

정작 내 방에는 그런 물건들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사실 나도 방학 내내 집에 있으면 문제집이랑 멀어질 것 같아.”

우등생에 속하는 윤희가 뜻밖의 발언을 했다. 내가 실망 어린 시선을 보내자 되려 왜 그러냐며 눈총을 쏘았다.

“너처럼 공부를 좋아하는 애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걸. 나도 해야 하니까 하는 거에 불과하고.”

담담하게 발언하는 윤희.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한때는 공부하는 걸 싫어했으니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의 태반이 애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도 성적이 올랐을 때는 보람을 느꼈어.”

“오 맞아! 나도 이번에 확실히 그 맛을 알았어!”

규원인가 반색을 하며 윤희에게 맞장구를 쳤다.

“나는 뭐랄까,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그 자체로도 즐거워. 그게 지금은 공부인 거고.”

항상 100점 맞는 것도 나름 재밌다는 말은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구나.”

윤희가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너네 둘이 좀 전에 무슨 얘기했어?”

규원이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방학 동안 스터디부 활동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의논하려던 참이었어.”

“아까 얘기하려던 게 그거였어?”

반문하자 윤희가 긍정의 고갯짓을 했다.

“영재 넌 왜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야?”

“말하려는 찰나에 네가 다가왔거든.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지.”

일부러 놀림조에 가깝게 말했다.

“우와! 나 타이밍 진짜 잘 맞췄네!”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규원이. 윤희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생각해 봐. 윤희가 두 번 말할 뻔한 거 한 번만 말하게 해준 거잖아. 말 그대로 진짜 절묘한 타이밍이지. 안 그래?”

“오오.”

내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런 식의 역발상을 할 줄이야.

평소에 워낙 엉뚱한 행동과 발언을 하니까 가능한 걸려나?

윤희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느낀 모양이었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러자 규원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치? 나 머리 좋지?”

““아니, 그건 아니고.””

동시에 튀어 나간 대답. 우리는 서로를 향해 머리를 돌렸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스터디드림의 원년 멤버답게 죽이 잘 맞는구만.

“아냐, 좋단 말야.”

규원이가 볼멘소리를 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윤희가 치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일단 다 같이 얘기해 봐야 하니까 선배들에게 연락할게.”

“응. 부실에서 만나자고 전해 줘.”

그러자 윤희가 액정을 터치하려다가 동작을 멈췄다.

“맨날 부실에서 모였는데 오늘만큼은 다른 데서 얘기하는 게 어때? 여름방학이잖아.”

“나는 무조건 찬성!”

규원이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요즘 들어 윤희가 의견을 제안하는 경우가 참 많아졌단 말이지.

윤희의 말마따나 방학이 된 기분을 만끽하려면 학교 안보다는 바깥이 더 좋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선선히 대답했다.

“카페! 카페!”

“아, 알았으니까 진정해.”

윤희가 규원이를떼어놓은 뒤 선배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 * * *

지아 누나가 우리 반으로 왔다. 그런데 주현 선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누나가 얼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주현이는 종업식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더라. 깨톡 보내봤는데 아직 답장도 없고.”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짧은 한숨을 내뱉은 누나.

“미리 말하지 그랬어. 그럼 주현이 잡아뒀을 텐데.”

“음. 미처 생각 못했네요.”

윤희의 목소리가 다소 기어 들어갔다.

“아냐, 됐어. 잘못한 일도 아니고. 그나저나 카페 간다고 했지? 어서 가자. 마침 내가 아는 곳이 있으니까.”

그 길로 우리 넷은 카페로 향했다.

대체 어디인가 했더니 대로변에 있는 카페였다. 일전에 주현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단둘이 왔던 곳.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대낮이라서 그런지 한낮의 여유를 즐기러 온 손님이 몇 명 있었다.

“분위기 있네.”

윤희가 사방을 둘러보며 감상을 입에 담았다.

“스타박스랑 확실히 다르다!”

규원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지아 누나는 그런 규원이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문득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누나가 눈썹을 슬며시 휘었다.

우리는 각자 음료를 주문한 뒤 볕이 안 드는 시원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당연히 가장 싼 아메리카노. 지아 누나는 카페모카.

윤희는 카페라떼였고, 규원이는 딸기스무디였다.

“올. 한영재 도시 남자네.”

아메리카노가 든 컵에 눈길을 주는 규원이.

“네 기준대로면 아메리카노 마시는 여자는 도시 여자야?”

“아마, 도?”

대답에 머뭇거림이 있었다.

“거 참…….”

“자, 이쯤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

빨대에서 입술을 뗀 지아 누나가 정리에 나섰다.

나와 규원이는 자세를 똑바로 했다.

“윤희야.”

지아 누나가 가볍게 턱짓을 했다. 윤희가 물고 있던 빨대를 뱉고, 컵을 내려놓았다.

“오늘 논의하려는 내용은 알다시피, 여름방학 중에 스터디부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거예요.”

“난 같이 모여서 해야 공부가 잘돼! 방에는 집중에 방해되는 게 너무 많다구.”

규원이가 가장 먼저 의견을 피력하자 지아 누나가 공감한다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 다음으로는 윤희가 목소리를 내었다.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다른 거? 음…….”

규원이가 턱을 괸 채 천장을 응시했다. 윤희는 어쩌면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라 진짜 이유를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규원이를 빤히 바라보는 윤희의 눈빛을 보며 내 나름대로 짐작해 본 것이지만.

오래지 않아 규원이가 답변했다.

“같이 있는 게 제일 즐거우니까!”

그런 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도 혼자 공부할 바에는 같이 공부하는 게 더 재밌더라. 혼자 고생하는 것보다 같이 고생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하고.”

규원이 옆에서 지아 누나가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경청하던 윤희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그래서 방학에도 스터디부에서 공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윤희가 꼬리말을 흐리면서 내게 눈길을 던졌다.

“정작 부장은 집에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해서요.”

“진짜? 영재가?”

지아 누나의 눈썹이 못 믿겠다는 듯이 들썩였다.

“……잠깐만. 영재라면 그런 소리할 만하네.”

“그쵸?”

“영재 아까 완전 밥맛.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정이 없을 수가 있어?”

셋이서 공격을 해댔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반기를 들었다.

“그, 그래도 다들 집 가서도 공부 열심히 했잖아. 혼자라고 못할 건 전혀 없다고.”

“영재야.”

윤희가 나직한 음성으로 호명했다.

“시험이 코앞에 닥쳐왔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중에서 언제 공부가 잘돼?”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든 잘 되지.”

내 발언이 끝나자마자 세 여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만큼 공부에 빠져 사는 애는 여기에 없어.”

지아 누나의 지적에 윤희와 규원이가 동의를 표했다.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게 가장 좋다고 봐. 너네도 그렇지?”

이번에도 윤희와 규원이가 옳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우리 그동안 같이 공부하면서 성적도 향상됐잖아. 오히려 혼자 하는 것보다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

지아 누나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집에서 공부하는 걸 고집하는 거야?”

윤희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그야…….”

운을 떼고 나서 적당한 사유를 골라보았다.

“더우니까. 우리 집이 학교에서 멀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할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게 효율적이거든.”

“어휴, 진짜 너다운 이유네.”

윤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일단 이해는 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때 지아 누나가 손바닥을 불쑥 내밀었다.

“아니면, 부실 열쇠를 우리한테 맡길래? 우리끼리라도 모여서 할 테니까.”

“오! 그것도 괜찮겠다.”

규원이가 손뼉을 가볍게 치고는 나와 누나를 번갈아 보았다.

“…….”

얼핏 괜찮은 절충안처럼 들리는 제안. 하지만 순순히 응할 수가 없었다.

지아 누나의 의도를 알아차렸으니까.

“응?”

지아 누나가 손을 한 번 움직였다. 나는 가만히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긴 한숨을 흘려보냈다.

“알겠어요. 누나 말대로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역시 그렇지?”

지아 누나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만약 내가 진짜로 열쇠를 줬더라면, 지아 누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지탄받았을 것이다. 누나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그런 제안을 한 것이고.

지아 누나한테 당해내려면 아직 멀었구나.

이후로 우리는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그 결과, 우리는 멤버 전원이 스터디부에 오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또한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것과 매일 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을 참작하여 월, 수, 금에만 부 활동을 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음료 잔을 카운터에 반납한 뒤 우리는 가방을 메었다. 카페 밖으로 나오자 뙤약볕이 매섭게 내리꽂혔다.

“오늘 얘기한 내용은 제가 주현 선배에게 따로 알려줄게요.”

“응. 잘 부탁해.”

지아 누나가 손을 흔들었다. 윤희와 규원이도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주머니에서 단잠을 자던 휴대폰을 깨웠다.

주현 선배에게 알릴 사항을 빠짐없이 적은 뒤 메시지를 전송했다.

답장은 아마도 나중에 오겠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마가 흥건하게 젖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은 정말로 장난 아니게 덥겠군.

나는 손등으로 이마를 수차례 훔쳐냈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주현 선배가 생각보다 빨리 확인한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았다. 예상대로 주현 선배의 문자메시지였다.

나는 메시지 확인 버튼을 눌렀다.

「미안.... 나... 모레에.. 기숙학원 들어가....」

그것은 4명이서 부 활동을 해야 한다는 선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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