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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68화-우리가 만들어가는 방향(4) (68/131)



〈 68화 〉68화-우리가 만들어가는 방향(4)

오전 10시.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스타박스에 도착했다.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형준이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혼자서 6인용 테이블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구만.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는 문제집과 필통, 그리고 머그잔이 놓여 있었다.
“딱 맞춰왔구만.”
“내가 약속 시간은 잘 지키잖냐.”
내가 가방을 내려놓고 교재를 꺼내기 시작하자 형준이가 질문을 던졌다.
“야.  마실래?”
“어……. 그냥 아메리카노에 시럽 넣게.”
“그걸 뭔 맛으로 먹어? 엉아가 맛난  사줄게.”
“음. 그럼, 신세 좀 질게.”
“새삼스럽긴.”
우리가 음료를 주문하는 사이 윤희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윤희가 우리들을 향해 다가왔고, 나는 형준이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 어제 말한 내 친구야. 이름은 김형준이라고 하고. 그리고 여기는 스터디부의 멤버 중  명인 심윤희라고 해.”
그러면서 형준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윤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팔꿈치를 툭툭 쳤다.
“야. 정신 차려.”
“어? 어어.”
얼빠진 소릴 내는 형준이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윤희가 가볍게 웃었다.
이내 제정신을 되찾은 형준이는 윤희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거야.
옆에서 피식 웃는 사이, 윤희는 쿨한 음성으로 답했다.
“그래. 나도.”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자 형준이가 헤벌레  표정을 지었다.
윤희는 우리들의 자리가 어딘지 물었고, 나는 6인용 테이블이라고 말하며 가리켰다.
“그렇구나. 일단 음료 주문부터 해야겠네.”
윤희가 카운터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때 형준이가 뒤에서  어깨를 건드렸다. 뒤돌아보자 녀석이 아무  없이 엄지를 치켜 세웠다.
음료를 받고 나서 자리로 되돌아갔다. 문제집을 펼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나머지 멤버들도 속속 카페에 도착했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멤버는 규원이와 지아 누나였다. 그리고 규원이는 곧바로 형준이를 알아보았다.
“오! 누군가 했더니 전에 본 친구네.”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설마 형준이를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응? 우리 언제 본 적 있어?”
정작 형준이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태도였지만.
“나는 혹시 기억나? 그때 규원이랑 같이 있었는데.”
“아이, 물론 기억나죠! 어떻게 제가 지아 누나를 잊겠어요!”
녀석의 우렁찬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뭐지,  온도 차이는? 심지어 이름까지 기억하네.
“헐! 나는 기억  해놓고 언니는…….”
형준이는 그런 규원이를 내버려 둔 채 지아 누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늘 하루 재밌게 공부하자?”
“물론이죠!”
형준이가 양손으로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아 누나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모양새였지만, 금세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악수를 풀자 이번엔 규원이가 손을 내밀었다.
“난 이규원. 잘 부탁행.”
“어. 그래.”
형준이는 건성으로 응수해줄 따름이었다. 덕분에 규원이는 입을 떡하니 벌린  당황스러워  따름이었다.
“영재야아. 나 감자 취급당하는데 어떡해?”
나를 향해 돌아선 규원이가 우는 소릴 하길래, 나는 위로를 해줄 필요를 느꼈다.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포기하면, 편해.”
“너무해애…….”
이번에는 지아 누나까지 합세하여 규원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힘내. 적어도 나는 항상 귀여워해 주잖니.”
“지금은 언니한테 위로받고 싶지 않아…….”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진동벨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아 누나는 규원이와 함께 음료를 받아왔다.
“여기 앉아도 되지?”
지아 누나가 형준이 옆으로 가서 물었다.
“물론입죠! 저에게는 진짜 영광입니다!”
형준이는 과장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기쁨을 표출했다.
쟤가 저렇게까지 오버하는 건 살다 살다 처음 보네.
하지만 같은 남자인 만큼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아 누나니까.
내 17년 인생에서 지아 누나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적이 없으니까.
규원이와 윤희는 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부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참고로 주현 선배는 한참 전부터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상태.
한참 공부에 집중하는 와중에 윤희가  어깨를 살며시 건드렸다. 입 모양으로 왜, 하고 묻자 윤희가 귓말을 했다.
“잠깐 얘기하고 픈 게 있어서.”
우리는 나머지 애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스타박스 바깥으로 나갔다.
“형준이 말야, 지아 누나랑 인사할 때 엄청 좋아하더라. 역시 남자들은 예쁜 게 제일인가 봐?”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잠시 고민한 끝에 솔직하게 밝히기로 했다.
“뭐, 그렇긴 하지.”
“하긴, 지아 언니는 내가 봐도 예쁘니까.”
“그런데 이런 얘기하려고 불러낸 거야?”
윤희가 잠시 침음을 흘리고는 입술을 벌렸다.
“사실 좀 전에 봤었거든. 걔가 엄지 치켜세우는 모습.”
“용케 그걸 알아차렸네.”
분명 뒤돌아서 있을 때 한 건데 말이지.
“그 의미는, 나도 나쁘진 않다는, 거지?”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눈망울.
의외로 자기 외모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는 듯했다.
사실 지아 누나가 더 돋보여서 그렇지, 윤희의 외모도 상당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역시 이런 이야기를 면전에 대고 하기에는 역시 민망했다.
“응. 그런 셈이지.”
“그렇게 못난 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진심으로 안도했는지 한숨을 내뱉는 윤희.
솔직하게 얘기해 줄 걸 그랬나?
순간 후회가 밀려왔지만 도로 밀어넣었다. 그런 얘기는 나 같은 놈이 하는  아니니까.

* * *

한참 동안 공부를 하다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나저나 형준아. 너는 어느 학교니?”
지아 누나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형준이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한성고 다녀요!”
“그러면 공부 엄청 잘하겠네.”
“좀, 그렇죠.”
그러면서 호탕하게 웃는 형준이.
“그래봤자 점수로는 저한테 한 번도 못 이겼어요.”
“하지만 한성고는 내가 갔지.”
나의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준이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야. 그냥 운이 없었던 거라니까.”
“부럽냐? 부러워 죽겠지?”
실실 거리는 얼굴을 보니 얄미웠지만, 할 말이 없었기에 입맛만 다셨다.
“재밌네, 둘이.”
지아 누나는 이미 관람객 모드.
나중에 한성고에서 두고 보자.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나저나 슬슬 점심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근처에서 먹을까요?”
나의 제안에 모두가 찬성을 표했다.  한 명, 주현 선배를 제외하고.
“나는…… 도시락이 있어서.”
결국 우리들은 주현 선배를 남겨둔 채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이번에는 떡볶이 먹자! 떡볶이!”
규원이가 팔을 들고 떡볶이를 연호했다.
“어제 편의점에서 먹었잖아.”
“그저께 나랑 먹었으면서.”
나와 지아 누나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그저께도 먹었다고요?”
반문하자 지아 누나가 고개를 움직였다.
“응. 우리 집에서 먹었어. 읎기떡볶이로.”
“안 질려?”
규원이에게 눈길을 던지는 윤희.
“떡볶이는 신이 내려준 음식이라구. 절대 질릴 리가 없지!”
“나는 떡볶이도 좋지만 라볶이.”
형준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오! 그건 그거대로 좋지. 자네, 뭘 좀 아는구만?”
형준이에게 눈빛 신호를 보내는 규원이. 한쪽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러자 형준이가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야. 세상의 모든 떡볶이는 맛있다. 이게 내 평소 지론이라구.”
“나 어쩌면, 인연을 만난 걸지도!”
규원이가 감격스러워하자 형준이는 자랑스러운 듯 호방하게 웃어젖혔다.
떡볶이 동맹이 탄생하는 순간이로구만.
“그래서, 우리 어디 갈 거야?”
말을 끝낸 윤희가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읎기떡볶이! 형준아 어때?”
규원이가 동맹원의 의사를 물었다. 무조건 찬성할 것이라는 확신이 가득한 눈빛.
하지만 형준이는 규원이의 기대를 배반했다.
“아……. 그걸 어제 먹었거든. 오늘은 딴 거 먹고 싶다.”
“동지. 이렇게 날, 배신하려는 건가?”
규원이가 애처로운 표정을 한 형준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형준이는 시선을 홱 돌린 채 휘파람울 불어댔다.
“이래서 점심은 언제 먹으려고.”
윤희가 볼멘소리를 하자 지아 누나가 곧바로 윤희에게 관심을 보였다.
“윤희야. 배 많이 고파?”
지아 누나가 윤희를 보았다.
“네. 좀……. 많이요.”
형준이와 규원이는 여전히 아웅다웅하는 중이었다. 지아 누나가 둘을 향해 외쳤다.
“얘들아. 윤희가 배고프대.”
그러자 규원이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어 진짜? 그럼 떡볶이 먹으러 가면 되겠네.”
“아니지. 때로는 다른 것도 먹어야지.”
좀처럼 대립이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자 지아 누나가 아주 적절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김밥극락은 어때?”
“맞다! 거기가 있었지.”
“와! 누나 천재네요.”
두 사람이 아주 밝은 목청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나와 윤희 또한 누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했고.
그렇게 우리는 김박극락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중 돌연 윤희가 말을 걸었다.
“영재야. 주현 선배 말인데, 그렇게 둬도 괜찮았던 걸까?”
“음. 솔직히 좀…….”
마음에  걸린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다른 사람들도 그럴 테고.
하지만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내 성미가 아니다.
적당한 선을 찾아낸다면 참 좋을 텐데.
“역시   신경 쓰는 게 맞겠지?”
그리 말하자 윤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이 거기! 둘이서 무얼 속닥거리는 거냐?”
앞장서서 걸어가던 형준이가 돌아서서 검지로 우리 둘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아 누나와 규원이도 우리 쪽을 응시했다.
“언니 봐봐. 역시 둘이 뭔가 있는  같지?”
“응. 확실히. 말로만 듣던 썸이려나?”
지아 누나가 턱을 매만지며 자못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나와 윤희가 거의 동시에 부정문을 외쳤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우리에게 야유를 보낼 따름이었다.

* * * *

점심을 해결한  카페로 돌아왔다.
주현 선배는 혼자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아까 전과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주현 선배는 6시쯤 학원을 가야 한다는 이유로 먼저 일어났다.
우리는 주현 선배가 떠난 이후 2시간 정도  공부를 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말을 필두로 모두들 짐을 싸서 스타박스를 나섰다.
“후아. 오늘 참 열심히 한 것 같아.”
지아 누나가 기지개를 쭈욱 켰다.
“나도 오늘은 머리 과열됐어.”
이마를 문질러대는 규원이.
“난  가르치느라 목이 탄다, 목이 타.”
“고생 많았어.”
윤희가 빙그레 웃어준 덕분에 조금 힘이 났다.
“오늘 정말 좋았어!”
형준이의 말에 모두들 오늘 재밌었다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우리는 정다운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려고 했다.
그때 형준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왜?”
“잠깐 얘기나 하자고. 따라 와.”
나는 형준이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형준이네  근처에 있는 놀이터였다.
“왜 하필 여긴데?”
“우리 집이랑 가깝잖아.”
“와. 이기주의 봐라.”
“하하. 얌전히 뒤따라온 네 죄지.”
그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나저나 너네 스터디부, 다들 좋은 사람인 것 같더라.”
“응. 다들 착하고 그렇지.”
“맞아. 물론 넌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형준이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내뱉었다.
“놀리려고 부른 거야, 뭐야.”
나는 형준이를 흘겨보았다.
“사실 궁금한  있어서 불렀어.”
“지아 누나?”
“오!”
형준이가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반색했다.
“근데 나도 아직은 잘 몰라. 스터디부 들어온  이제 2달밖에 안 됐거든.”
“그렇구만…….”
“번호 가르쳐 줄까?”
“뭐어? 진짜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 형준이.
얼마나 크게 떴는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일단 지아 누나한테 물어보고 나서.”
“와 씨. 네가 친구냐?”
“할 얘기 있다고 해놓고, 자기  앞으로 끌고  주제에.”
“야! 끌고 오기는. 네가 쫄래쫄래 따라왔잖아.”
“따라오라며.”
사소한 꼬투리까지 잡아가며 말다툼을 하다가, 별안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보를 터뜨렸다.
“아무튼, 뭐가 궁금한데?”
“심윤희라는  어떻게 생각하냐?”
“갑자기 왜?”
“둘이서 계속 붙어있다시피 했잖아. 스타박스에서. 김밥극락에서도 옆자리였고. 걔는 뭔가 너한테 마음 있어 보이더라고.”
“순정물 너무 본  아니냐?”
“그거야 맨날 보는 거고. 아무튼 분위기가  묘했다니까.”
“네가 착각한 거겠지. 더구나 오늘 처음 본 사이잖아.”
“아 뭐, 그렇기는 한데…….”
형준이가 말허리를 집어삼켰다.
나와 윤희는 어디까지나 스터디부의 멤버이자 친구다.
그 정도면 충분한 관계.
물론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형준이가 고개를 수그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엄청 떨떠름한 반응인데?”
“됐어. 그냥 오지랖 좀 부려본 거니까. 이제 집 가야겠다. 너도 잘 들어가.”
“그래.”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 혼자 걸어가는 길.
“묘한 분위기라…….”
형준이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았지만,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형준이가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본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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