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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56화-갈팡질팡하며 3일차(1) (56/131)



〈 56화 〉56화-갈팡질팡하며 3일차(1)

목적지인 에바랜드에 도착했다.
우리들을 인솔한 담임선생님이 매표소 앞에서 박수를 쳤다.
“주목! 다들 에바랜드 안에서 즐겁게 놀고, 저녁 7시까지 여기로 집합하면 된다. 이상!”
무려 한나절이나 되는 자유 시간에 다들 즐거워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애들이 여기저기에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요 앞에서 찍자!”
규원이가 가리키는 방향에 대관람차가 보였다.
나와 윤희는 규원이를 가운데에 세워둔 채 양옆에 섰다.
규원이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실행했다.
“하나, 둘, 셋. 김치이.”
촬영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둥글게 모여서 결과물을 감상했다.
“에엥? 윤희야. 표정이  이래. 안 신나? 영재도 신나 보이는 얼굴인데…….”
규원이의 지적대로 윤희의 미소는 묘하게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다시 찍을까?”
윤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 이번엔 좀 더 활짝 웃어봐. 잇몸 만개애.”
규원이가 굳이 자신의 윗입술을 들어서 잇몸을 드러냈다.
그때 들려오는 도연이의 목소리.
“얘들아. 나도 끼워 주라!”
돌아보니 우리들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오! 빨리 와, 빨리!”
규원이가 바삐 손짓을 했다.
“뭐 해? 사진 찍고 있어?”
“응. 같이 찍자!”
우리 넷은 똑같은 자리에 다시 선 직후, 셔터음이 울렸다. 우리는 둥글게 모여서 사진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모두들 즐거운 듯이 웃고 있는 사진이 나왔다.
“와아. 근데 여기 완전 넓다. 놀이기구도 엄청 많고. 천국에 온 것 같아!”
규원이의 눈길이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튀었다. 확실히 별세계에  것만 같은 기분이네.
규원이가 흥분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뭐부터 탈까? 역시 에바랜드하면 롤러코스터지?”
사실 규원이뿐만이 아니라 나와 도연이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직 윤희만이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윤희 너는 안 즐거워?”
바로 곁에 있던 도연이가 윤희에게 말을 걸었다.
“예전에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구나 싶어서.”
“그런 걸 다 기억하는구나.”
“그러게. 참, 필요 없는 것들을 많이 기억해내더라.”
의미심장한 발언 끝에 윤희가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나는 멈춰 서서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어떤 기억이든 다 소중하지 않아? 내가 여태까지 살아왔다는 증거잖아.”
도연이가 조금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러네.”
납득하는 것 치고는 떨떠름한 표정인데.
“기왕 온 거니까 우리 신명나게 즐기자구!”
도연이 기운차게 말하며 윤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윤희는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도연이를 따라 달렸다.
“너네! 언제  거야!”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규원이가 손나팔로 우리들을 불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모양이군.
나는 얼른 규원이에게로 달려갔다.

* * * *

규원이의 희망대로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 그런데 왜 내가 도연이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게 된 거지?
“명심해! 이건 몸풀기에 불과하다구.”
롤러코스터가 출발하기 전, 규원이가  뒤에서 외쳤다. 곧이어 출발하겠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안전바(bar)가 내 몸을 단단히 고정했다.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순간.
경사로를 올라가는 롤러코스터. 수십 초 후 가장 높은 지점에서 잠시 정지했다.
바로 앞에 펼쳐진 가파른 경사로.
우리 학교 앞에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는 비교도 안 되네…….
꿀꺽.
덩어리  침이 목울대를 간질이며 넘어갔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레일을 따라 롤러코스터가 순식간에 하강했으니까.
맞바람이 얼굴을 쥐어뜯는 것처럼 느껴지는 와중에 도연이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전염된 나도 같이 함성을 내질렀다.
“진짜 빠르다. 재밌네.”
나는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자마자 감탄을 연발했다.
“그 정도야?”
나는 도연이를 향해 그렇다고 답하며 고개를 크게 움직였다. 하지만 규원이는 혀를 차며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쯧쯧. 영재 넌 아직 풋내기구나.”
“뭐?”
“몸풀기랬잖아, 몸풀기. 이제 본방으로 넘어가야지.”
“본방?”
옆에서 도연이가 되물었다. 윤희도 궁금한 지 규원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규원이가 팔짱을 끼더니 후후, 웃음을 흘렸다.
“아침에 말했잖아. 나무익스프레스 타자고.”
“아 맞다!”
도연이가 손뼉을 쳤다.
“어서 가자! 그건 인기가 많으니까 빨리 가야 돼.”
그러더니 규원이가 제일 먼저 튀어 나갔고, 도연이가  뒤를 쫓았다.
아니 뭐, 놀이기구가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뛰어다녀야 하나.
그래도 즐거워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오늘 달릴 일 많겠는데.”
나는 윤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윤희는 대답 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까보단 한결 기분이 풀린 모양이라 다행이네.
나무익스프레스에 도착했더니 규원이의 말마따나 줄이 길었다. 우리 학교 애들의 모습도 꽤 보였고.
“으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줄 끝에 세워진 입간판이 30분 남짓 대기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우리는 줄의 맨 끝에 합류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탔던 롤러코스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코스가 만들어져 있었다.
규원이와 도연이가 괜히 기대하던 게 아니었군.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아까 롤러코스터 하나를 정복했으니 저것도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을 찍고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우리들이  차례가 다가왔다.
“난  앞!”
규원이가 재빨리 뛰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나와 도연이는 자신 있게 바로 뒷자리를 차지했다.
“잠깐만. 이렇게 되면 나는 앞에…….”
윤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빨리 타아.”
규원이는 의자를 손으로 툭툭 때리며 윤희를 재촉했다.
“…….”
눈을 질끈 감은  심호흡을 한 윤희는 어쩔 수 없이 규원이와 함께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안전바가 서서히 내려오더니 우리들의 몸을 완전히 고정했다. 이제 끝날 때까지 아무도 내릴 수 없다.
[자! 출발!]
놀이기구 운전기사의 외침과 함께 롤러코스터가 경사로를 등반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밖에서 봤을 때보다 더 높은데…….
한참을 올라간 끝에 롤러코스터가 최고점에 도달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지상이 아득하게 보였다.
가장 처음 탄 것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몸이 수직 낙하했다.
나는 롤러코스터가 멈출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 * * *

지상으로 간신히 무사 귀환했다. 나와 윤희는 벤치에 앉자마자 묵직한 한숨부터 내뱉었다.
“얼굴이 말이 아니네…….”
돌아보니 윤희가 나에게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윤희의 얼굴도 만만치 않은 상태. 평소의 단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너는 새파래…….”
나도 한 마디 해 주었다.
“너네들 괜찮아?”
도연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질어질하다.”
나는 이마를 감쌌다.
“좀만 앉아있을게…….”
윤희도 현기증과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엥? 아깐 자신 있어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규원이.
“저, 저건 사람이  만한 놀이기구가 아냐…….”
오늘은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만 같은데.
“앗! 저기 자이로드롭도 타러 가야 하는데.”
“규원아. 일단 얘들부터 안정시켜 놔야지.”
나는 규원이의 손가락이 향하고 있는 곳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웬만한 고층빌딩만큼 높이 솟은 탑을 올라가는 놀이기구.
나는 아연실색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네끼리 다녀 와. 우린 여기 있을게.”
“응! 금방 갔다 올게.”
대번에 반색하는 규원이.
반면 도연이는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규원이 혼자 가면 심심할 거 아냐.”
나는 속이 메쓱거리는 와중에도 애써 웃어 보였다.
규원이와 우리들을 번갈아 보던 도연이는 규원이와 같이 가는 쪽을 택했다.
“미안. 너무 타보고 싶어서……. 최대한 빨리 올게.”
나는 대답 대신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윽고 두 사람의 발걸음이 점점 멀어져갔다.
“속이 메스꺼울 땐 바닥이 아니라 하늘을 봐야 한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윤희.
“누가 그랬는데?”
“할아버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요즘 이사장님이랑은 어때?”
“그냥……. 전보다는 자주 얘기하고 있어.”
“그렇구나.”
고무적인 일이다. 윤희가 정말로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는 목을 뒤로 젖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 좋다. 새파랗고……. 평화롭네.”
“그렇네.”
뒤이어 턱을 세운 윤희도 맞장구를 쳤다.
그 자세로 계속 있자 어지럼증이 서서히 멎었다. 진짜로 효과가 있구나.
우리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때. 정상 상태로 되돌아오는 게 최우선이다.
한동안 그러고 있자 도연이가 돌아왔다.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러고 있으면 괜찮아진다고 윤희가 그랬어.”
“정확하게는 할아버지가.”
“그, 그렇구나.”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도연이.
“그나저나 규원이는 어디 갔어?”
내 질문에 도연이가 대답했다.
“좀 전에 다른 애들이랑 놀 거라면서 반대 방향으로 갔어.”
“걔넨 무서운 것도  타나 보네.”
“응. 자이로드롭이 재밌다면서 연속 3번이나 탔다고 하더라구.”
“진짜? 실화?”
되묻자 도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녀석이구만…….
“이젠 좀 괜찮아?”
“아까보단 확실히 나아졌어.”
나는 목을 바로 했다. 옆에서 윤희가 고개를 세우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럼 이제 다른 데 가보자.”
도연이가 우리 둘을 향해 제안했다.
“난 좀 더 쉴게. 너네끼리 다녀.”
“혼자 다니게?”
내가 반문하자 윤희가 옅게 웃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거든. 혼자서.”
뒷말에 묘하게 악센트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괜찮겠어?”
이번에는 도연이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응. 걱정하지 마.”
윤희가 대답을 마치고 얼른 가보라며 재촉했다.
저 정도로 의사를 표명하면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럼, 나중에 다시 합류하자.”
윤희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윤희를 남겨둔  걸음을 옮겼다.

* * * *

오늘도 이렇게 도연이와 단둘이서 돌아다니게 되었다.
“근데 좀 전에 나무익스프레스 탔을 때 네 비명 소리 장난 아니더라. 고막 찢어지는  알았어.”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탓에  크게 들렸던 모양이다.
“너무 무서웠거든.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어.”
“그건 좀 오버 같은데.”
공감이 안 간다는 눈빛을 보내는 도연이.
나는 정말이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렸는데.
덕분에 우리는 별로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 위주로 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도연이가 스택 코너를 가리켰다.
“우리 잠깐만 쉴까?”
유원지에서 파는 군것질 거리들은 대체로 다 비싼데…….
하지만 이런 속내를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
“그, 그러자.”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들을 훑어보았다. 예상한 대로 하나같이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음료수 하나를 주문했다. 이조차도 2,000원이었지만.
도연이는 음료수에 츄러스 2개를 샀다.
주문한 것들을 받아들고 우리는 간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근처에서 오리 인형이 풍선 수십 개를  채 한가로이  있었다.
“두 개나 먹으려고?”
“아니.”
도연이가 배시시 웃더니 나에게 츄러스 하나를 건넸다.
“난 괜찮아.  먹어도 돼.”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받아.”
그렇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 안 받을 수가 없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츄러스 하나를 받아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츄러스를 한 입 물었다. 달콤한 와중에 계피향이 입 안에 은근하게 퍼졌다.
“사실은 그냥 준  아냐.”
“응?”
당황해서 눈을 깜빡거렸다.
설마 돈으로 갚으라거나…….
도연이는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 나랑 어울려주니까 작은 답례라고나 할까?”
“겨우 그런 걸로 답례라니. 오히려 나처럼 꽉 막히고 재미없는 놈이랑 같이 어울려주는 네가 답례를 받아야지.”
“사과하고 싶기도 하고. 어젯밤 일…….”
도연이가 뒷말을 흐렸다. 나는 진지한 자세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  생각해 봤는데 너에게 부담을 준 것 같아서.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선이 있는데 말야. 어젠 내가 좀, 과했어.”
“너무 담아두지 마. 진실 게임이니까 그런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거고.”
대수롭지 않은 투로 얘기했다. 그런데 도연이가 나를 향해 검지를 겨누었다.
“어. 뒤에…….”
돌아보자 아까 풍선을 들고 서 있던 오리 인형이었다. 나에게 풍선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공짜, 인가요?”
끄덕끄덕.
얼른 가져가라며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기까지 했다.
나는 얼떨결에 풍선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오리 인형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풍선을 올려다보았는데, 공교롭게도 핑크색 하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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