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53화-교차하는 마음과 2일차(2) (53/131)



〈 53화 〉53화-교차하는 마음과 2일차(2)

우리는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도연이가 10장을 찍을 때, 나는 한 장 찍을까 말까 하는 정도였지만.
“여기 진짜 느낌 있다. 가는 곳마다 포토존 같아!”
“그러게. 운치도 있고.”
도연이의 발언에 동감을 표했다.
때마침 우리가 있는 곳은 샛길이 뻗어 나온 지점이었다. 담벼락 바깥으로 튀어나온 기와지붕들이 마치 겹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
지대가 높아서 멀리 떨어진 도심의 모습도 보였다.
“여기서 같이   찍자.”
도연이가 어서 오라며 손짓으로 재촉했다. 우리는 이번에도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밀착했다. 도연이의 요청 때문이었다.
“셀카봉  걸…….”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도연이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셀카봉이 있었으면 많이 편했을 것이다.
도연이가 노력 끝에 어떻게든 각도를 잡았다.
“영재야 여기 봐. 하나, 둘, 셋!”
찰칵!
경쾌한 셔터음과 함께 추억의 한 순간이 저장되었다.
도연이의 표정을 보니 상당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너도 봐봐. 풍경이 진짜 예술이지 않아?”
“진짜 그렇네.”
스마트폰 화면을보면서 대답했다.
“영재 너도 사진 좀 찍지 그래.”
“이런 거라서 좀.”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참에 저가형 스마트폰이라도 장만하는 게 어때? 학생요금으로 가입하면 통신비도 꽤나 저렴하고. 내가 그렇게 쓰고 있거든.”
예전 같았으면 그래도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었을 텐데, 왠지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였다.
“얼만데?”
“얼마더라. 2만원이었던가?”
나는 속으로 숨을 삼켰다.
역시 스마트폰 아니랄까봐 내가 지금 내는 요금보다 4배나 비싸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
“역시 공부가중요하다 이거지?”
“응 뭐, 그렇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여기 전망대도 있다는데 한  가보자. 시간도 아직 충분하니까.”
도연이의 말마따나 집합까지 아직 1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좋아.”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위치를 검색하고 나서 우리는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야.”
“이 빌라가?”
보통 전망대하면 타워나 탁 트인 곳 아닌가.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아. 저기 전망대라고 쓰여 있어.”
도연이가 안내문을 가리켰다.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전망대가 3층에 있다는 것과 입장료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무료일 줄 알았더니 3천원이나 받네…….”
3천원이면 지금 내가 가진 돈의 10%다.
전경 한  보겠다고 그 돈을 내기는 좀…….
“도연아 어떡할래?”
비싸니까 그냥 돌아가자,  하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일단 물어보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것도 있고.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긴 도연이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서울까지 왔으니까 한 번 가보자.”
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우리는 1층에서 주인아저씨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지폐를 건넬 때 손이 얼마나 덜덜덜 떨렸는지 모른다. 내  같은 3천원…….
아저씨에게서 북촌한옥마을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안내받은 뒤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다.
베란다로 보이는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만이 놓여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전망대였다.
“생각한 거랑 엄청 다르다…….”
내 중얼거림에 도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망대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둘 다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연보랏빛 머리였다. 그러면 옆에 앉아있는 단발머리는 안 봐도 비디오지.
나는 다가가서 두 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너희도 여기로 왔구나.”
“오오! 너네도 왔네?  무슨 우연이래.”
반색하며 의자에서 일어서는 규원이.
윤희는 옆에서 손만 들어 올렸다.
“나는 도연이가 오자고 해서.”
“응? 나만 오고 싶어 했던 것처럼 얘기하네.”
“네가 먼저 제안한 건 사실이잖아?”
“그렇기는 한데…….”
도연이는 약간 떨떠름해 하는 듯했다.
왠지 이긴 기분이었다. 무얼 이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윤희가 오자고 해서?”
“맞아. 와보고 싶었거든.”
줄곧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윤희가 대신 답했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일어섰다.
“여기 괜찮은 것 같아. 조용하고.”
나는 유리창 가까이 다가갔다.
낮은 기와지붕들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심 속의 고층 건물들.
방벽처럼 솟아올라 있는 산. 그리고 티 없이 맑은 하늘.
“여기서  한 잔 하면 운치 있겠다.”
도연이의 감상이었다.
“3천원  보람이 있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서 보니까 편하고 좋아.”
윤희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규원이는 손을 망원경 모양처럼 만든 채 창문에 밀착해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좋겠다아. 돈만 내면 이런 거 맨날 볼 수 있는 거잖아.”
“중국집 아들이 짜장면을 오히려 멀리한다고 하잖아.”
“그래?”
규원이는 대답하고 나서 몸을 돌렸다.
“……아! 질린다고?”
뒤늦게 깨달았구만. 아무래도 규원이가 돌려 말하는 화법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
무안한지 배시시 웃는 규원이.
“그나저나 우리 4명이서 사진 한 번 찍을까?”
도연이의 제안에 모두들 좋다고 했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주인아저씨가  있었고, 행동력이 좋은 규원이가 부탁하러 갔다.
그 사이 우리는 창문에 기대어 섰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도연이와 윤희 사이에 내가 낀 형국이 되었다.
아저씨에게 스마트폰을 건넨 규원이가 윤희 옆에 섰다.
“포즈 통일할까?”
“뭘로?”
내가 되묻자 도연이가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었다.
“이걸로.”
간단하고 좋군.
“자. 얘들아. 찍는다. 하나, 둘.”
같은 포즈로 통일한 직후 시원스런 셔터음이 터졌다.
스마트폰을 돌려받은 규원이. 우리는 규원이를 에워싼 채 사진을 구경했다.
눈에 새겨놓은 풍경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들의 미소가 유독 밝아 보였다.

* * *

점심은 규모가 큰 보리밥집에서 먹었다.
한옥마을이 거의 언덕길이었던 탓에 체력 소모가 컸는데 밥이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다음 코스는 청계천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몇몇 애들이 손이나 신발을 물에 슬쩍 담그며 즐거워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가벼운 꾸중을 들었다.
도연이는 이번에도 우리들과 같이 다녔다. 이쯤 하니 도연이가 없는 게 더 어색할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흘러가는 물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앉을 만한 자리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곳으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윤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일어났다.
“좀만 더 걷고 올게.”
“안 힘들어?”
걱정스레 묻자 윤희가 대답 대신 살짝 미소 지었다.
“이규원. 같이 가자.”
“나, 나도?”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속으로 꽤 놀랐다. 윤희가 규원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난 싫어. 다리 아파아. 앉아있고 싶다구우.”
징징거리는 규원이를 윤희가 기어이 일으켰다.
“그럼 좀 있다보자.”
“사, 살려 줘어.”
애원하는 규원이를 붙든 채 윤희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또 다시 나와 도연이만 남겨졌다.
“요즘 스터디부는 어때? 규원이가 저번에 5명  찼다고 자랑하던데.”
“그냥 사이좋게 공부하고 그래.”
간결하게 응답했다.
“공부만 하는 거야?”
“응. 나는 규원이 가르치느라 시간을 거의 다 보내지만.”
“재밌을 거 같아.”
도연이가 부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
“최근엔,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
지나가는 투로 말하는 도연이.
나는 도연이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도연이도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서로를 향해 올곧게 나아갔다.
“그, 그런가?”
갑자기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언저리를 문질렀다.
이윽고 물 흘러가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돌아갈까?”
“아……. 응.”
도연이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 * * *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N서울타워였다. 입구에 모여서 인원을 파악한 뒤 우리들은 타워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터치했다. 돌아보니 담임선생님이었다.
“잘 챙겨.”
선생님이 건네준 것은  생명을 지켜줄 소중한 귀마개였다.
“넵.”
나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머니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 3층까지 올라왔다.
저녁이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하늘에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고층 건물들이 모두 발밑에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커피  잔은 해줘야지.”
규원이가 카페를 가리켰다.
“많이 비쌀  같은데?”
원래 관광지 물가가 더 세니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와보겠어. 가자!”
규원이는 그 길로 카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도연이도 목이 마르다며 그 뒤를 따라갔다.
“우리도 가자.”
윤희마저 발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나는 거금 5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다.
“이젠 아메리카노가 마음에 드나 보네.”
“영재, 아메리카노 좋아했어?”
윤희의 목소리에 도연이가 의외라는 듯이 반응했다.
“좀? 계속 먹다 보니까 맛을 알겠더라고.”
사실은 제일 싸서 마시는 거지만.
이번에는 시럽을 한 번 넣었는데도 맛이 쓰게 느껴졌다.
“그렇구나. 새로운 걸 알았네.”
도연이가 이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커피 한 잔을 하자고 처음 제안했던 장본인인 규원이는 정작 딸기라떼를 음미하는 중이었다.
“으음! 역시 딸기가 최고야.”
우리는 규원이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기념품 상점을 둘러보고 나서 4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저쪽으로 가볼게. 규원아. 가자.”
“잠깐만!”
규원이가 윤희를 제지했다.
“아니이, 왜 자꾸 따로 다니려고 하는 거야? 같이 다니면 어때서.”
불만을 표출하는 규원이.
“……그런  있어.”
윤희답지 않은 모호한 말이었고, 규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말을 마친 윤희가 규원이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갔다.
아마 규원이는 나중에 되어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재야. 저기 가까이 가보자.”
나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도연이에게 다가갔다.
석양 아래로 펼쳐진 도심의 풍경이 아득하게 보였다. 북촌전망대와는 차원이 다른 뷰(VIEW)였다.
“이쁘다.”
“그러게.”
도연이의감상에 동감을 표했다. 이후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깐, 미안해. 쓸  없는 말해서.”
“청계천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더니 도연이와 눈이 맞았다.
“응.”
“미안하긴. 그냥  쑥스러웠을 뿐이야.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갑자기 분위기 어색해져서 걱정했었거든. 그렇게 말해주니 한시름 놓았어.”
도연이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어쩌다 보니 그랬다고 해야 할까…….”
“그 얘긴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자.”
매듭을 지은 도연이. 나도  의견에 동의했다.
“옆에 망원경도 있는데   볼래?”
도연이가 가리키는 망원경 옆에 동전 투입구가 보였다. 누가 관광지 아니랄까 봐…….
“난 그다지.”
“걱정 마. 나한테 동전 많으니까.”
도연이가 500원 동전을 내게 주었다.
“고마워. 다음에 갚을게.”
“고작 500원인데. 우리 사이에 그럴 필요 있어?”
“……그럴 필요 없는 것 같네.”
우리는 차례로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 * *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도 어제처럼 뷔페식이었다.
배불리 저녁을 먹은 뒤 세면세족까지 마친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선생님들이  편히 있으라고 했으니까 뭐, 괜찮겠지.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담임선생님이 나가서 문을 열었다.
“선생님! 오늘도 영재 여기서 자요?”
규원이의 발랄한 음성이었다. 몸을 일으켜보니 규원이와 도연이를 비롯한 애들 몇 명이 현관에 모여 있었다.
“당연하지.”
“영재 혼자만 따로 떨어져 있는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요.”
도연이도 가세했다.
“그러다 일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선생님의 대응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치만, 밤에 같이 놀지도 못하고…….”
“야! 그걸 말하면  되지.”
옆에서 지적이 들어오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규원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영재 데려가서 뭐 하고 놀게?”
“아, 아뇨. 그냥 얘기나 좀 하다가 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연수가 수습에 나섰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이 선생님. 그냥 한 방에 보내도 되지 않겠어요?”
3반 담임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어차피 몸도 약한 앤데  일 있겠어요?”
대변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마음 한구석이 좀 아팠다.
나는 언제쯤 저런 말을 듣지 않고 살지…….
담임선생님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어휴 참. 영재야. 넌 어쩌고 싶냐?”
주어진 선택권을 두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비록 여자애들뿐인 방이라고 해도 선생님들과 같이 지내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겠지.
무엇보다 귀마개가 있다고 해도 그 코골이를 하루 더 버틸 자신이 없다.
“방 옮길게요.”
와아!
애들이 짧게 환호성을 질렀다.
“너네들 진짜로 사고 치면  된다. 사고 치면 진짜로 묵사발을 만들어 줄 거니까 각오해.”
선생님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거의 경고를 넘어서 협박 수준인데.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나는 윤희, 규원, 도연이를 비롯한 반 애들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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