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50화-부푼 기대감으로 1일차(1)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수학여행 출발일이 밝았다. 나는 평소보다 빨리 기상해서 준비물을 제대로 다 챙겼는지 재확인했다.
여벌옷과 속옷, 간단한 세면도구, 수저통, 휴대폰 충전기, 필통, 노트. 세탁물을 넣기 위한 비닐도 미리 넣어둔 상태였다. 참고로 가방은 학교에 다닐 때 쓰는 것.
이제 여기에 오늘 점심때 먹을 도시락만 챙기면 끝.
나는 손을 탁탁 털면서 일어섰다.
“아들. 빼먹은 거 있는지 확인했어?”
방으로 들어온 엄마는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다.
“당연히 확인했지. 이상 무.”
엄마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다음 나는 장롱 서랍을 열었다. 어차피 옷가지가 별로 없어서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옷차림은 면바지와 무난한 티.
가방을 들고 거실로 나오자 엄마가 도시락을 건넸다. 나는 그것을 가방에 챙기고 지퍼를 여맸다.
이로써 모든 준비 완료!
슬기는 여전히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현관으로 나섰다.
“영재야.”
“왜?”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많이 못 줘서 미안해.”
시선을 내리자 엄마가 손에 쥐고 있는 3만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냐. 기념품 살 것도 아니고, 밥도 때 되면 다 나오고 그러는데.”
마다해도 엄마는 손을 물리지 않았다.
“혹시 모르잖니. 챙겨 가렴.”
부드럽게 타이르니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돈을 반듯하게 접어서 동전 지갑에 집어넣었다.
“고마워. 잘 다녀올게.”
“항상 차 조심해. 선생님 말 잘 듣고.”
“그 정돈 알아.”
버스 출발 시간이 8시 20분이라서 일찍 출발해야 했다. 나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집을 나섰다.
들뜬 발걸음으로 학교했더니 운동장에 주차해 있는 버스 5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1-2’ 팻말이 적혀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가 거의 꽉 차 있었고,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던 담임선생님이 검지로 나를 지목했다.
“영재야. 가방은 버스 트렁크에 넣고 와.”
둘러보니 다들 작은 가방만 들고 있었다.
“네.”
대답을 하고 나서 버스 트렁크에 가방을 던져 넣고 왔다. 그런 뒤 자리배치표를 확인해 보았는데, 거의 맨 뒷칸이었다. 그리고 짝은 윤희였다.
이건 대체 무슨 우연이 작용한 거지?
자리로 향하는 동안 애들이 양옆에서 인사를 건네 왔다. 몇몇은 옷차림에 좀 더 신경 쓰고 오지 그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는데 그때마다 실없이 웃을 따름이었다.
솔직히, 옷가지가 별로 없다는 얘길 곧이곧대로 할 순 없잖아.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윤희는 턱을 괸 자세로 창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흰색 가디건 아래로 보이는 하늘색 티. 야외 활동을 고려했는지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왔어?”
옆자리에 앉자 윤희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3박 4일 간 잘 부탁해.”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 것 같은 말을 건네는 윤희. 그러면서 오른손도 내밀었다.
“그래. 나야말로.”
악수를 나눈 뒤 윤희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우렁찬 소리와 함께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이동 중에는 절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당부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댔다.
17년 인생에 처음으로 서울을 가보는 나.
버스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윤희는 스쳐 가는 창밖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딱히 할 게 없어서 이어폰을 꼈다.
고막을 울리는 유행이 지난 노래.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거부할 수 없는 잠의 유혹에 나는 온전히 의식을 맡겼다.
* * * *
“자! 모두 기상!”
마이크 소리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 부근이 뻐근해서 기지개를 켠 뒤 목을 몇 차례 돌려주었다. 그리고 침으로 축축해진 턱을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아무도 못 봤겠지?
“잘 자더라.”
고개를 돌리자 윤희의 눈이 가늘게 웃고 있었다. 괜스레 무안해진 나는 소매로 턱을 한 번 더 문질렀다.
담임선생님은 마이크에 대고 일어나라고 외쳤다. 그제야 다들 잠에서 깨어난 듯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어. 여기서 도시락 먹고 나서 바로 경복궁으로 갈 거야. 지금 11시니까 광장 둘러보고 나서 12시까지 광화문 앞으로 집합해. 이상!”
그러고 보니 도시락을 가방에 집어넣었지?
애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는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해서 도시락과 수저통을 꺼냈다.
도시락 들고 돌아다니는 건 좀 부끄러운데.
“내 가방에 넣을래?”
곤란함을 느끼던 차에 나에게 권유하는 윤희. 역시 눈치 백단은 달라.
“응. 부탁할게.”
윤희는 내가 도시락을 넣을 수 있도록 뒤로 돌아섰다. 그리 크지 않은 가방에 도시락을 집어 넣고 지퍼를 닫자 윤희가 다시 몸을 돌렸다.
“다들 집합!”
담임선생님이 손뼉을 치면서 애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 많으니까 조심하고 다녀! 12시까지 충무공상 앞으로 집합하는 거 잊지 말고!”
““네에!””
이제는 다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모양인지 대답 소리가 우렁찼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드넓은 광장을 밟았다.
담임선생님이 자유롭게 구경하고 오라고 하자 다들 순식간에 흩어졌다. 마치 점심시간 때 급식실로 달려가는 듯한 속도였다.
“나 왔어어!”
규원이가 우리들 쪽으로 합류했다.
흰색 맨투맨에 무릎을 덮는 청색 데님 바지. 손목에는 변함없이 싸구려 팔찌를 차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들어서 화답했다.
“어우, 버스에서 잤더니만 어깨가 결려.”
규원이는 자신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때렸다.
“난 목이 좀.”
나는 손으로 뒷목을 주물렀다.
“윤희야, 너는? 너도 막 그렇지 않아?”
“난 안 잤어.”
“헐. 버스에서 안 잔다는 애는 또 처음 보네.”
규원이가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간에는 잘 버텨도 버스에서는 순식간에 넉다운되는데.
“원래 잠이 별로 없어서.”
“아하. 신기해라.”
그러더니 규원이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리 저기서 사진 한 번 찍자!”
규원이가 검지 손이 향하는 곳에 거대한 세종대왕상이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맨날 TV에서나 보던 걸 실물로 보는구나.
나중에 가족들에게 자랑해야지.
“그러자.”
내 대답을 들은 규원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성큼성큼 앞장섰다. 나와 윤희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세종대왕상 앞에 도착하자 규원이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이쁘고 깜찍하게 찍어줘어.”
카메라 기능을 실행하는 동안 규원이가 동상 앞에 서서 양손으로 V자를 만들었고, 윤희도 옆에서 사진 찍을 태세를 갖추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고 규원이를 향해 외쳤다.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가볍게 울리는 셔터음. 뒤이어 윤희의 스마트폰에서도 셔터음이 터졌다.
“어때? 잘 나왔어? 잘 나왔지?”
쏜살같이 돌아온 규원이. 곧장 내 어깨에 밀착하여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사진을 확대하고 축소하길 몇 번,
“오, 괜찮다!”
규원이가 엄지를 세웠다. 그러자 윤희도 관심을 내비쳤다.
“그렇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윤희야. 네가 찍은 것도 보자.”
규원이가 관심을 보이자 윤희가 선뜻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쪽도 꽤 괜찮은 느낌이었구만.
“이것도 좋네.”
한동안 액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규원이가 만족스러운 눈을 했다.
“근데 뭘 보고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거야?”
물어보자 규원이가 어깨를 펴며 답했다.
“내가 잘 나왔는지, 아닌지로 판단하지.”
“그냥 네 맘에 들면 된다는 거지?”
윤희의 반문.
“당근!”
규원이가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규원이 다음 차례는 윤희였다. 그 다음은 나.
윤희와 규원이, 나와 윤희, 나와 규원이 투샷도 각각 찍었다.
트리플 샷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하여 찍었고.
“사진은 깨톡으로 보내주면 되지?”
“응!”
윤희가 묻자 고개를 끄덕거리는 규원이.
“영재 너는 문자로 보내주면 될 테고.”
“그래 주면 고맙지.”
이럴 때는 휴대폰인 게 참 불편하구나.
깨톡 메시지를 주고받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어디 가볼까?”
규원이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저기 어때?”
나는 세종대왕상 뒤편을 가리켰는데 거기에 잔디가 조성되어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윤희가 휴대폰을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점심 먹어야겠네.”
벌써 11시 20분이라며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그래야겠네!”
손뼉을 치는 규원이. 사진 찍느라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의견이 일치한 우리는 잔디로 향했다.
따뜻한 햇볕 아래서 도시락을 먹을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들떴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도시락부터 꺼냈다.
“오늘의 점심은, 유부초밥!”
규원이는 양반다리 위에 도시락을 올렸고, 윤희가 가방에서 내 도시락을 꺼내주었다.
“자.”
“고마워.”
“어? 거기 스톱!”
갑자기 소리치는 규원이 때문에 나는 도시락을 받으려는 자세 그대로 멈췄다.
“왜 그러는데?”
“윤희 가방에서 네 도시락이 나왔는데, 반응이 어찌 그리 밋밋할 수가…….”
규원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규원이가 흥분했다.
“여자가 손수 도시락을 만들어줬으면 기뻐서 미쳐 날뛰어야지, 어찌 그럴 수가 있어!”
그러고 보니 얘도 여고생이었지?
연애나 썸에 뇌를 지배당하고 있는, 흔한 여고생.
“내가 왜 만들어 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윤희는 의아함을 느꼈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이거 우리 엄마가 해준 거야.”
“응? 잠깐만. 근데 그 도시락이 윤희 가방에서 나왔잖아.”
그러자 윤희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게 할 수 없으니까 잠깐 맡아준 것뿐이야.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닐 텐데?”
고개를 몇 차례 갸웃거리던 규원이가 내 쪽을 응시하다가 무언가 깨달은 눈을 했다.
“아! 가방이 없었구나.”
“이제야 눈치챈 거야?”
고개를 끄덕거린 규원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좀, 오해하고 그럴 수도 있지. 하하.”
“그래.”
윤희는 납득해 주는 눈치였다.
내 생각에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이제 점심 먹자.”
내 말을 끝으로 우리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 * * *
12시에 광화문 앞으로 집합했다. 113명이 한꺼번에 몰리니 다소 혼잡스러웠다.
반 별로 인원을 파악한 뒤 질서정연하게 경복궁 안으로 들어섰다.
“2시까지 광화문 앞으로 집합하면 된다!”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공지를 했다.
자유 시간 좋구만.
“와아. TV나 교과서로만 봤는데 엄청 넓다.”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규원이.
규모에 놀라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윤희도 흥미로운 눈길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역시 이런 건 사진으로 남겨야지.”
규원이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자 윤희도 손에 스마트폰을 쥐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어째 휴대폰 꺼내기가 좀 민망해지는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털어냈다.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그때 규원이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유, 윤희야. 혹시…….”
“화장실?”
되묻는 윤희를 향해 규원이가 열렬히 머리를 움직였다.
“으으. 급 신호가 오네.”
“저기에 있는 것 같은데?”
“오, 오케이. 얼른 다녀올게.”
내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규원이가 발걸음을 뗐다.
“우리끼리 구경할까?”
윤희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경내를 돌아다녔다. 건축물을 볼 때마다 윤희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따금 사진 촬영도 했다. 나에게 부탁하여 단독샷을 찍기도 했고.
“영재야. 저 앞에 서 봐.”
이런 식으로 내 단독샷도 촬영했다.
“그런데 규원이 얘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일단 깨톡 보내 놓았는데…….”
윤희가 스마트폰 액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있었던 데로 돌아갈까?”
내 말에 윤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만 더, 구경하자.”
윤희의 시선이 건축물로 향했다.
그 눈길은 마치 고즈넉한 풍경을 그대로 새기려는 듯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했다.
“서울은 어떤 것 같아?”
“나름 좋은 것 같아. 경주에 못 간 건 여전히 아쉽지만.”
윤희의 시선은 여전히 건축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후아. 이제야 살 것 같네.”
규원이가 돌아왔다.
“완전 쾌변했어.”
그러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꼭 그런 얘길 해야겠어?”
내 목소리에 규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면 안 돼?”
“……아니다. 말을 말자.”
저 정도면 말로 해줘도 안 통할 성 싶다.
우리는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집합 시간이 가까워졌다.
광화문으로 되돌아가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2반에 합류했다.
다음 행선지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