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36화-You Only Live Once(5) (36/131)



〈 36화 〉36화-You Only Live Once(5)

“엇! 눈치챘어?”
규원이가 머쓱해 하면서 뒷목을 긁적였다.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들켜서 아쉬워하는 행동에 훨씬 가까웠다.
내가 과제로 내준 범위에 수록된 문제는 총 25문항.
규원이는 그중 5문항만 직접 풀었던  같다. 전부 다 틀린 것을 보면.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정답률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러면 누가 봐도 의심할 수밖에 없지.
나에게  7등급 성적표까지 보여줘 놓고, 눈 가리고 아옹하려고 하다니.
“이런 식이면  하러 공부해. 아무 의미가 없는데.”
“그치만, 내가 풀면 거의 다 틀리기만 한다구.”
“꼭 정답을 맞춰야만 공부야?”
“당연하지! 다들 점수  받으려고 공부하는 거잖아.”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학교 공부라는 게 점수를  받으려고 하는 게 태반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인식은 공부의 본래 취지를 잊은 것이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정답 맞추기는 어디까지나 가장 마지막에 따라오는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 그걸 깨닫지 못하는 한 네 성적은 절대로 오르지 않아.”
“아냐. 난 할 수 있다구.”
규원이가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문제집을 펼쳤다.
“시험 당일에도 이렇게 답안지 보고 풀게?”
“…….”
나의 빈정거림에 규원이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이참에 어제 약속을 취소한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이 건에 대해서는 그래도 넒은 아량으로 넘어가기로 했으니까.
“정답만 맞춘다고 공부가 아냐. 모르는 걸 알아가고 이해하는 게 공부지. 순서를 머릿속에  새겨두라고. 물론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로 중요하고.”
내가 공부의 본질을 일깨워주자 규원이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규원이가 윤희의 반만큼, 아니반의 반만큼이라도 해준다면  편할 텐데 말이지.
“앞으로도 매일 과제를 내줄게. 분량은 항상 일정하게 맞춰서.”
“괜찮다고 생각해.”
공부를 하다 말고 윤희가 곧장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자 규원이가 경악으로 눈을 치떴다.
“뭐라고? 왜, 어째서 매일 내주는 건데?”
“시험까지 3주도  남았잖아. 매일 꾸준히 공부해야지.”
“과제는 원래 1주일에 한 번 아니었어?”
“그건 그냥  생각이고.”
무얼 어떻게 하면 과제가 일주일에  번만 나온다는 결론이 나온 걸까. 나는 오늘만 과제를 내준다고  적이 없는데.
“으음.  매일은 좀, 힘든데…….”
끽해야 문제집 7페이지를 풀어오는 걸 가지고 엄살이나 부리다니.
“스마트폰은?”
이럴 때 목표 의식을 되새김질해 주면 다시금 의욕에 불이 붙을 것이다.
“스마트폰……. 맞아. 나는, 스마트폰을 원해!”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꼴을 보니  의도대로 되었다.
“그럼 다음 과제도 답안지 보고  거야?”
규원이가 고개를 매우 거칠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내가 아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름하여, 답안지 빼앗기!
나는 답안지를 따로 빼낸 채 문제집을 돌려주었고, 규원이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헐?”
“잔머리꾼이네.”
윤희가 내린 평가였다.
“그리고 당연히 이 문제집으로 과제를 줄 테니까 열심히 풀어.”
“그럴 수가…….”
아니, 좀전에 공부하는 본질에 대해 일깨워 줬을 텐데?
“영재 너, 보기보다 사악하구나…….”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겠냐?”
일부러 규원이를 향해 날선 시선을 보내자 양심은 있는지 뜨금한 표정을 지었다.
“……저요.”
“다행이네. 자각은 있어서.”
뭐, 잔소리는 이만 하고 줄여야겠네.
나는 목을 가다듬고 하려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윤희에게도 과제가 나갈 거야. 그리고 나도 스스로에게 과제를 부여할 생각이고. 너에게만 과제를 주면 불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할 테니까. 참고로 나는 너희가 하는 양의 2배로  생각이야.”
부장인 내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면 분명 자극을 받을 것이다.
“웬일로 부장답게 하네.”
윤희가 칭찬했다. 그래봤자 이름뿐인 부장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오오. 부장 포스! 멋져!”
규원이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 이쯤하고 이제 공부하자.”
규원이가 나와 윤희 사이에 놓인 책상을 차지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장난스러운 어투에 경례까지 곁들이는 규원이. 진짜 쓸데없이 기운만 넘치는구만.
나는 규원이에게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문제 풀이도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부 활동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내일도 검사할 거니까 과제 꼭  와.”
스터디부를 나서기 전에 다시 한  더 강조했다.
“그렇다고 나만 보면서 얘기하는 건 좀.”
매서운 시선을 규원에게서 거두지 않은 채 한 마디 덧붙였다.
“안 해오면 무조건  배로 늘려버릴 거야.”
“히익!”
비명을 지르는 규원이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깃들었다.
이 정도로 경고했는데도 안 해오면 사람이 아니다. 진짜로.
윤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걱정 안 해도 돼.”
“물론이지.”
“왜 윤희한테는 친절하고…….”
규원이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윤희는 너처럼 대충 안 하니까.”
“앞으로는 저얼대로 답안지 안 볼게!”
“그건 당연한 거라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얘를 진짜 어찌하면 좋을꼬…….

* * * *

우리는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란히 하굣길에 올랐다.
정문을 통과하고 나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어떤 거 공부했어?”
“영어.”
질문에 대해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수학은?”
참고로 수학은 윤희가 가장 취약한 과목이다.
“집에서 하고 있어.”
역시 공부 습관이 몸에 배어 있구만.
평소에 독서를 하고 시도 써서 그런 걸까. 이런 얘기를 했다간  편견이라면서 일침을 가하겠지만.
“어려운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그럴게.”
그런데 규원이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니 규원이가 휴대폰 액정을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언니가 답장 늦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알기로 규원이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아 누나 한 명뿐이다.
“오늘 거기 갔나?”
나로서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내용을 중얼거리던 규원이가 신음성을 내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는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조금씩 어긋나는 타이밍에 들려오는 각자의 발소리. 어느덧 경사로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진짜로 집에 간다는 실감이 들어.”
윤희의 한 마디. 왠지 모르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부 활동을 계속해 와서 그런 걸까.
규원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부실 나서자마자 집 가는구나 하는데. 특이하네.”
“사람마다 느끼는  다르니까.”
나는 적당히 이해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아하.”
고개를 주억거리는 규원이.
우리는 경사로의 끝 지점에 도달했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럼 내일 보자.”
내가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네자 윤희가 손을 흔들었고 규원이는,
“빠이빠이!”
팔을 세차게 흔들며 격한 인사를 했다. 쟤한테는 창피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두 사람이 돌아서는 것을 확인한 나는 집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나저나 둘이서 무슨 얘길 나눌지 조금은 궁금하네.
뭐,  답을 알아낼 날은 오지 않을 듯하지만.

* * * *

집으로 향하던 중,  발 치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애들  명이 길가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이 가로등 아래라서 면면을 살필  있었다.
옆 동네 학교 교복. 몸에 딱 맞게 핏을 줄인데다 괜히 건들거리는 몸짓을 보니 양아치로구만.
저런 놈들한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가장 현명하다. 괜히 시비 걸리기라도 하면 귀찮아지니까.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슬쩍 내린  놈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윽고 놈들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우리랑 잠깐만 놀자니까.”
쯧쯧. 한심한 놈들. 자고로 학생의 본분은 공부건만.
“나 참! 바쁘다니까 왜 자꾸 치근거려.”
여자 쪽은 무서워하기보다는 상당히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3대 1인데도 엄청 당당하네.
내가 만약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었다면 벌써 구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체격도 왜소하고 완력도 약하다.
그래도 112를 불러주는 정도의 매너는 실천할 생각이다. 저기 골목만 지나고 나면.
그나저나 여자는 누구일려나?
나는 궁금하여 눈을 옆으로 굴렸고, 지아 누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아는 사람이라니…….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 위험헤 처한 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성격은 못 되니까.
……위험을 좀 감수하는 수밖에.
심소흡을 한  하고 나서 나는 양아치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어! 자기. 아까 온다더니 이런 데 있었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연기.
“내가 한참을 찾았잖아.”
“아유, 자기. 그래도 용케 찾아왔네.”
지아 누나가 눈치껏 장단을 맞춰주었고, 나는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대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한 놈이 앞길을 막아 세웠다.
“야. 너 뭐 하는 놈이냐?”
헌팅 상대를 빼앗겼다는 사실이 화나고 어이없다는 태도였다.
나는 무뢰배 짓거리나 하는 네놈들이 더 짜증나는데 말이지.
녀석의 눈에 잘 보이게끔 나는 지아 누나와 맞잡은 손을 들어 보였다.
“보면 몰라?애인.”
사실은 엄청나게 긴장이 되었지만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기에서 밀리는 순간 끝장이다.
“와 나, 멸치같이 생긴 놈이. 지금 어따 대고 씨부리냐?   깔어?”
한 놈이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공부가 그렇듯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때마침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엇! 저기! 경찰차!”
놈들이 화들짝 놀라며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기회는 지금!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놈을 밀쳐내고 우리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야! 저것들 쫓아!”
놈들이 고함을 치며 우리를 쫓아왔다.
뒤에서 따라오던 지아 누나가 어느덧 나를 제치고 달렸다.
나는 참 오랜만에 죽기 살기로 뛰어야만 했다.

* * * *

양아치 놈들을 간신히 따돌렸다.
우리는 한동안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 진짜 느리구나.”
히죽거리는 지아 누나. 이미 숨을 다 고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나보다 잘 달려서 놀라긴 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나는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을 짜냈다.
“그래도 도와줘서 고마워.”
지아 누나가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혹시 저녁 먹었어?”
“아뇨. 아직.”
고개를 저었다.
“잠깐 시간 내줄 수 있어? 뭔가 답례를 하고 싶어서 그래.”
“어, 그래도 되나요?”
“답례라니까. 부담 갖지 말아.”
“아, 네.”
지아 누나가 앞장서서 걸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버거왕이었다.
여기 엄청 비싼 덴데…….
“저, 누나.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요.”
“네가 해준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냐. 주문은 어떻게 할래?”
나는 가게 안에 들어오자마자 메뉴판을 확인한 가장  메뉴를 골랐다.
누나가 다소 못마땅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냥 내가 사주는 걸로 해.”
그러면서 자리나 맡으라며  등을 떠밀었다.
잠시  지아 누나가 쟁반을 들고 왔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메뉴였다.
“마음껏 먹어.”
그래, 누나가 답례라고 했으니까 고맙게 받도록 하자.
“잘 먹을게요.”
종이 포장을 벗기고 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슬라이스한 토마토와 베이컨, 육즙이 느껴지는 고기 패티, 양상추, 갖가지 소스가 입 안에서 잔치를 벌였다.
지아 누나는버거를 먹는 대신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앗. 규원이한테서 깨톡 왔었구나. 아까 그놈들 때문에 답장을 못 해줬네.”
지아 누나가 엄지를 열심히 놀리고 나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규원이는 거기서 공부 잘하고 있어?”
“일단 제가 가르칠 때는 열심히 들어요.”
햄버거를 잠시 내려놓고 누나와 눈을 마주했다.
“수업 시간에는 여전히 자고?”
웬만한 건 이미  꿰고 있었다.
“졸지 않도록 노력해 보라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뭐,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는 기대는 안 했지만.”
지아 누나가 턱을 괴더니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미인이 나를 바라봐주니 기쁘기는 한데, 부담스러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원하는 거 있으면 더 얘기해도 돼. 이건 진짜로 작은 답례에 지나지 않으니까.”
검지로 자신의 볼을 톡톡 건드리는 지아 누나. 귀여우면서도 요염한 인상을 한껏 풍겼다.
“진짜로 얘기해도 되나요?”
“야한 것만 아니라면?”
지아 누나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흘렸다.
“아이, 저 그런  아녜요.”
“한창 때 남자앤데?”
“저는 매우 건전한 사람이라구요.”
그런 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지아 누나.”
“응. 말해 봐.”
“스터디부 오실래요?”


지아 누나가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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